정동영 “개성공단과 한국형 통일방안”

새날희망연대 제65차 정기포럼

서울의소리 | 입력 : 2014/12/06 [15:27]

 

개성공단,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이자 한국형 통일모델

 

얼마 전 『10년 후 통일』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눈부시게 발전한 대만과 중국 관계를 보면서 우리라고 10년 안에 ‘사실상의 통일 상태’를 이루지 못하란 법이 없다는 뜻에서였다.

 

나는 10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다고 본다. 대만-중국 관계를 봐도 그렇고, 우리 민주정부 10년 동안에도 적대와 증오를 걷어내고 철도·도로를 잇고, 금강산 관광을 가고, 서로 총 쏘고 전쟁하던 곳에 공단을 세워 물건을 만들어내는 등 눈부시게 변화했던 경험이 우리에겐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 눈앞에 길이 나 있다. 개성공단이 10년 후 통일로 안내하는 길잡이다. 그걸 쭉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왜 ‘사실상의 통일’을 말하는가. 단순히 통일이라는 당위론적 개념이나 안보 차원에서의 개념을 넘어선다. 그것만이 머지않아 엔진이 꺼질 위기에 놓인 대한민국호의 경제적 성장 동력을 힘차게 재가동시킬 유일한 돌파구이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은 그 성장동력의 생명줄이자 숨구멍이다.

 

이것은 우리만의 주장이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이미 나와 있다.

 

OECD 사무국이 작년(2013년) 6월에 발표한 한국 경제 전망 보고서를 보면, 2031년이 되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0% 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다른 말로 성장 엔진이 꺼진다는 뜻이다. 더 큰 문제는 잠재성장률 하락이 급속도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그런데 몇 해 전 세계 최대의 투자 금융기관인 골드만삭스에서는 정반대의 예측을 내놨다. 한국이 30년 뒤에 독일과 일본을 제치고, 40년 뒤에는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을 했다.   골드만삭스의 <글로벌 경제, 상품 및 전략 연구소>는 2009년 9월 ‘글로벌 경제 보고서’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남한과 북한이 '평화적·점진적 통일 한국'으로 가면, 본 연구 결과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 통일 한국의 잠재적 규모이다. 북한의 성장 잠재력이 실현된다면, 미 달러화 기준으로 통일 한국의 GDP가 30년에서 40년 후 프랑스, 독일을 추월하고 일본까지도 앞지를 수도 있을 것으로 우리는 내다보고 있다. 이러한 예측에서 보면 2050년 통일 한국의 규모는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G-7 국가와 동등하거나 넘어설 것이다.(*2050년 통일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 86,000달러 전망)

 

​북한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강력한 잠재력이 있다고 우리는 믿고 있으며 일단 의미 있는 경제 개혁이 단행되기만 하면 투자가 유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요 요인에 집중하고 있다. ①풍부하고 경쟁력 있는 노동력, ②남한 자본과 기술, 북한의 천연자원과 노동력 간의 막대한 시너지 효과의 가능성, ③체제전환국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생산성 향상과 통화절상으로 인한 커다란 잠재적 이익.​​

 

​한국이 독일식 통일 방식(흡수통일)을 선택하면, 한국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비용을 짊어져야 할 것이다. 비용이 가장 적은 선택은 한 국가에 두 개의 경제적 정치적 시스템이 공존하는 것을 허용하는 중국과 홍콩의 통합방식이 될 것이다. 적절한 정책만 뒷받침된다면 남북한의 통합 비용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고 우리는 믿고 있다.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북한 경제 붕괴를 대비해 통일 비용을 줄이기 위한 적절한 정책이 필요하다.』

 

이 보고서에서 언급한 ‘평화적·점진적 통일 한국’은 내가 주장하는 ‘사실상의 통일 상태’와 내용상 거의 일치한다.

 

왜 이렇게 국제적 신인도가 높은 두 기관이 상반된 전망을 하는 걸까? 골드만삭스는 개성공단이 쭉 확장된다는 것을 전제로 삼은 것이고, OECD 보고서는 남북이 분단된 현 상태에서 남한 단독 경제를 전망한 것이다. ​

 

사실 따져 보면 상식이다. 한 나라의 경제가 성장하려면 인구가 늘든지, 기술 혁신이 일어나든지, 자본 투자가 활발하든지 해야 하는데, 현재 대한민국은 어느 것 하나 녹록치 않다. GDP 성장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고, 최근에는 분기별 성장률이 0%대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 상태에서는 누가 대통령이라도 국내에서는 용빼는 재주가 없을 듯하다. ​​

 

골드만삭스 보고서도 사실 새로운 건 아니다. 국내의 여러 학자들과 전문기관들도 그렇게 예측한 곳이 많지만 이걸 확인시켜준 의미가 있다. 이 보고서를 보면 한국 경제가 남한의 자본과 기술에다 북한의 노동력과 풍부한 광물자원을 결합하면 다시 한번 고성장 시대로 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또 북한은 북한대로 발전해서 20년 후에는 북한의 국민소득이 한국의 절반까지 따라올 수 있다고 예측했다. 북이 베트남·중국 모델을 착실하게 뒤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북한 경제가 자체 발전을 하게 되면 통일 비용 걱정은 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 북한이 한국 경제에 두통거리가 아니라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게 된다. ​​

 

따라서 개성공단은 현재 가장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한국형 통일 모델’이기도 하다. 내가 몇 년 전에 독일에 갔을 때 에곤 바르(EGON BAHR) 박사가 나에게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분은 빌리 브란트 수상의 특별보좌역이자 정무장관으로서 동방정책을 설계한 분이다.

 

그런데 내가 개성공단 사진을 보여주고 몇 가지 설명을 했더니 그 분이 무릎을 탁 치면서 “이건 놀라운 상상력이다. 내가 동방정책을 설계할 때 동독 지역에 서독의 공단을 만든다는 생각은 미처 못 했다. 대단한 상상력이다”고 놀라워했다. 그러면서 “한국에도 통일 모델이 필요한데, 한국은 베트남 모델도 될 수가 없고, 독일 모델도 될 수가 없다. 한국형 통일 모델이어야 하는데, 한국형 통일 모델이 바로 개성공단 모델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이 개성공단을 확장해서 계속 따라가면 그 중간에 경제 통일이 올 것이고, 종점에 마침내 한반도의 통일이 올 것이다”고 단언했다.

 

​"30만 인민군대 군복을 벗겨 개성공단에 넣겠다​"

 

2000년 정주영 회장이 개성공단을 시작할 때 김정일 위원장과 나눈 대화 내용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정 회장은 김 위원장한테 “2000만 평이 완공 되면 적어도 창원처럼 50만 공업도시가 되고,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만 35만 명에 달하는데, 개성 주변의 인구가 30만 명밖에 되지 않지 않습니까. 그러니 노동력 조달은 어떻게 하죠?”라고 물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이거 다 하는데 몇 년 걸립니까?”라고 되물었다. 이에 정주영 회장은 “착공해서 8년이면 됩니다”고 답변했다. 김 위원장은 잠시 생각해보더니 “8년이라…. 우리가 6.15도 했고, 8년이면 남북관계도 발전했을 것이고, 그런데 남과 북에는 군대 숫자가 너무 많아요. 자, 그 단계가 되면 내가 인민군대 군복을 벗겨서 한 30만 명을 공장에 넣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결과적으로 실현은 안 됐지만, 북한 최고 지도자의 머릿속에 그런 그림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이는 개성공단의 노동력도 되면서 자연스럽게 군축이 되는 것, 그런 단계적 발전 모델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바로 햇볕정책이다. 이 얼마나 훌륭한가?

 

미국까지 날아가 '강경 매파'를 설득하다​

 

나는 참여정부 때인 2004년 7월 1일 통일부장관으로 부임했다. 내가 통일부장관에 취임했을 때 개성공단은 벽에 부딪혀 있었다. 나는 통일부 직원들을 모아놓고 “내가 통일부 장관으로 온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개성공단에서 손에 잡히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내 사명이다. 내가 그걸 하려고 왔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막상 앉아서 들여다보니까 속도조절론이 있었다. 그게 어디서 나왔느냐고 하니까 미국이었다. 미국이 ‘핵 문제나 해결하고 이걸 해야지. 2차 핵 문제가 불거졌는데 북쪽에다 무슨 공단을 짓느냐. 그건 안 맞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관으로서 내 생각은 달랐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야지. 무슨 소리냐”고 했다. 왜냐하면 미국이 협조를 해주지 않으면 공단을 지을 수가 없다. 북한은 미국의 적성국가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직접 워싱턴으로 가서 미국을 설득해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2004년 8월 말 나는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네오콘 수장을 직접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럼스펠드와의 회담 '개성공단 세일즈'

 

2004년 8월 31일 오전 10시. 펜타곤 회의실에서 한 시간쯤 럼스펠드와 회담을 했다. 내가 럼스펠드를 설득한 논리는 이랬다. “종심이 짧습니다. 그런데 개성이라는 곳이 6.25 때 제2축선입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여기(개성)를 북이 가로 8킬로미터, 세로 8킬로미터 열어준다고 합니다. 군사전략적으로 이를 돈으로 따지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철조망 즉 DMZ 군사 분계선 너머의 북한 영토를 준다는 것인데, 그걸 왜 하지 마라, 속도 조절하라고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위성으로 사진 찍는 곳을 내준다는데 안 할 이유가 있습니까”라고 하니까 럼스펠드가 대답을 못 한다.

 

위성사진에 따르면 개성공단을 건설하고 있는 부지 자체가 북한 6사단, 64사단, 2군단 포병여단 이렇게 6만 명의 병력과 화력이 밀집한 부대 주둔 지역이었다. 포 진지와 탱크 부대가 있고, 중화기와 대포와 2개 사단 병력과 1개 포병 여단이 쫙 깔려 있는 곳이었다. 나는 “그 곳을 비워준다는데 멈출 이유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럼스펠드는 경청했다. 설명을 잘 들었다면서 달리 반문도 없었다.

 

사실 럼스펠드를 잘 설득했다기보다는 럼스펠드와 담판을 한 것이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이나 서구 사회는 합리적으로 얘기를 해서 납득이 되면 선선히 받아들이기도 한다. 개성공단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이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설명한 것이 앞뒤가 맞으니까 입장을 바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 한국 담당 보좌관은 리처드 로리스(Lawless)였다. Lawless는 무법자라는 뜻인데 우리한테는 악명이 높은 국방부 차관보로 한국 담당이다. 미국 CIA 직원도 했는데 그 친구가 나한테는 잘했다. 그가 나중에 특파원들한테 브리핑을 했는데, 내가 나온 뒤에 럼스펠드가 로리스한테 “로리스, 아까 미스터 정이 얘기한 것 있지, 그거 대통령 보고 자료에 넣어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다음 날 부시한테 보고를 했다. 부시도 정신은 이라크에 가 있었는데 럼스펠드가 얘기를 하니까 승인을 했다.

 

그리고 나서 미국이 속도조절론 대신에 적극적인 협력으로 돌아섰다. 개성공단 사업도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개성공단에 들어가는 15개 공장의 설비에 대해서 한 건도 거부하지 않았다. 100% 승인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나도 박차를 가해 그 해 연말, 내가 통일부 장관이 되고나서 6개월 뒤인 2004년 12월 15일 마침내 개성공단 제1호 공장인 냄비 공장이 가동됐고 첫 번째 물건이 생산되었다. 그게 개성공단의 출발점이다.

 

중소기업과 청년세대의 유일한 돌파구이자 블루오션

 

개성공단의 가치는 1번이 군사전략적 가치, 2번이 경제적 가치, 3번이 미래적 가치다. 그런데 1년 전 개성공단 철수 사태에서 보듯, 아직도 정부여당이나 보수진영의 인식은 한참 거리가 멀다.

 

그와 관련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 몇 가지가 있다. 첫째, 개성공단에는 신변 위협이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개성공단에 식량난은 없었다. 왜냐하면 5만 3000명의 점심과 야간 간식을 주기 위한 식량이 부식 창고에 가득 쌓여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123개 공장 전체가 흑자가 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얘기는 잘 알려지지 않는다. 사실 흑자가 안 나면 이상한 것이다. 왜냐하면 인건비가 양질의 노동력 한 명을 쓰고도 한 달에 13만원인데, 남쪽에서 한 명을 고용할 수 있는 비용으로 거기서 거의 15~20명을 고용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토지 비용이 평당 14만 9000원이라서 대부분의 공장이 천 평, 이천 평, 사천 평씩을 매우 넓게 사용하고 있다. 토지 비용에 대한 부담이 남쪽에 비하면 거의 제로에 가깝게 수렴하는 것이다. 50년 사용권이 14만 9000원이기 때문에 흑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아마도 어떤 규제조치나 제한이 없었다면 이익이 많기 때문에 서로 들어가려고 줄을 섰을 것이다. 개성공단의 장애물은 딱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정치적 불안이다. 정부가 제 역할을 해서 문제해결 능력을 가지고 해소해 주면 즉 군사적 충돌 가능성만 없애주면 대한민국 중소기업들은 다 들어가고 싶어 한다.

 

현재 가동 중인 개성공단 크기는 원래 설계도의 64분의 1이다. 왜냐하면 2000만 평은 64평방킬로미터인데, 현재 가동 중인 123개 공장이 입주해 있는 면적은 30만 평, 1평방킬로미터에 불과하다.

 

개성공단은 당초 계획대로라면 2012년까지 총 2000만 평의 부지 가운데 800만 평은 공단 부지로 2000개의 공장이 들어서고, 나머지 1200만 평에는 아파트, 상가, 공원, 골프장 등 근린 시설을 만들어 총 50만 명의 인구가 생활하는 첨단 공업도시로 완성이 됐어야 한다. 그와 동시에 해주, 남포, 원산, 신의주, 나진, 선봉, 함흥, 청진 등 해안선을 따라 경제 특구를 설치했었더라면, 북한은 지금쯤 중국과 베트남을 뒤쫓아 가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개성공단은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유일한 활로이다. 우리 중소기업들이 중국도 가 보고, 동남아도 가 보았는데 활로가 안 생겼다. 현재 중소기업들은 수직 계열화, 재벌들의 하청 구조화되어 있다. 현재 중소기업에는 4가지가 없다. 돈이 없고, 사람이 없고, 판로도 없고, 기술이 없다. 신용이 약하니까 금융 쓰기도 어렵다. 자기 돈도 없지만, 신용을 쓰기도 어렵고, 땅값도 비싸고, 중소기업에 인재가 안 온다.

 

그런 문제들에 대한 포괄적인 해법을 찾기가 힘들고, 중소기업 정책을 어떻게 해도 즉효가 나기 어려운데, 개성공단에 123개 공장을 두었더니 팔팔하게 살아난다. 123개 공장이 모두 흑자인 것으로 증명이 되었다. 123개가 아니라 1200개, 아니 12,000개를 갖다 놔도 다 흑자가 날 수 있는 구조다.

 

지금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학교 졸업하고 취직한다고 할 때쯤이면 우리의 경제성장이 멈춰선다는 전망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때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데, 마땅한 돌파구가 없다.

 

결국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는 다른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블루오션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개성공단을 계속 키워나가야 한다. 그게 밥이고 일자리고 꿈이 될 것이다.

 

남북 소통의 차단벽 ‘5·24 조치’ 해제해야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2008년 5.24조치를 통해 남북교류를 중단시켰다. 2004년 12월에 첫 가동을 하고, 2006년도에 만 명을 넘어서고, 2007년까지 커지다가 2008년 정권이 바뀌면서 개성공단 계획이 갑자기 얼어붙은 것이다.

 

사실 모든 관계를 끊어버린 5·24 조치는 강도는 셌지만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한미가 공동으로 압박한 군사적 압력은 오히려 중국을 자극해 중국의 대북 접근을 높이는 역효과를 냈다. 북한과 중국은 두 차례 정상 회담을 가졌고, 창지투(장춘-길림-도문) 개발 계획에 따른 북-중 간 경제 협력이 긴밀해지는 효과를 낳았다. 북한과 중국은 1330킬로미터에 이르는 긴 국경선을 마주 대고 있어서 중국이 협력하지 않는 한 대북 압박과 봉쇄는 실효성을 가질 수가 없는데, 이것이 여러차례 입증되었다.

 

개성공단의 장래는 박근혜-김정은 정상 회담이 언제 이루어지느냐에 달려 있다. 전반기인 2015년 말 이전에 성사되면, 개성공단은 이 정부 하에서 상당히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정상 회담이 박근혜 정권 후반기로 넘어가면 개성공단은 1단계를 못 벗어난다.

 

대통령 특사로 평양에 가다

 

노무현 정권 전반부 2년 반 동안 남북 관계가 경색을 면치 못했다. 그러다가 2005년 6·15 5주년을 기해 내가 평양에 특사로 가서 김정일 위원장과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남북 관계가 풀리게 된다.

 

2005년 6월 14일 6·15 5주년에 6·15 남측위원회, 북측위원회, 해외위원회 3자가 공동으로 기념행사를 하기로 했는데, 내가 정부 대표로 참석하게 됐다.

 

참여정부 5년에서 가장 중요한 남북의 소통은 2005년 6월 17일 대통령 특사로서 나와 김정일 위원장이 다섯 시간 만난 것이다. 두 시간 반은 배석자가 한 명씩 있었지만 사실상 일대일로 대화한 것이고, 오찬 회동을 하면서 두 시간 반까지 합하면 전부 다섯 시간을 얘기했다. 그리고 거의 모든 현안을 다 얘기했다. 충분히 소통을 한 것이다. 북한의 모든 의사 결정은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는데, 그 한 사람과 남북한 간에 맺혀 있는 거의 모든 사안들을 솔직하게 얘기했고, 되는 것은 되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대화를 나누었다. 이렇게 해서 시작한 것이 이른바 제2의 6·15 시대다. 그 연장선에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2005년 9월 19일 베이징 공동성명이었고, 그걸 통해 ‘핵을 포기하겠다, 북미 수교하자, 한반도 평화 체제를 논의하자’는 보따리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을 다섯 시간 동안 만나고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모든 얘기를 다 했는데, 김정일 위원장은 현안에 정통했다. 질문에 답하기 위해 보좌관을 찾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말이 통한다는 느낌이었다. 상대방의 말이 듣기에 이치에 맞다, 사리에 합당하다고 하면 즉석에서 “좋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하고 의사 결정을 내린다. 북한에는 단 한 사람의 정책 결정자가 있고, 바로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자신의 답변을 통해 분명히 보여 주었다. 예를 들면 이산가족의 화상 상봉을 내가 제안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좋은 제안입니다. 흥분되는 제안입니다. 이번 8·15부터 합시다”라고 해서 실제 시행이 되었다.

 

사상 최초 김정일 위원장과 '핵 문제 토론'

 

김정일 위원장과 대화에서 또 하나의 핵심 주제는 바로 핵 문제였다. 2003년 2차 핵 위기가 발생한 이래 열 몇 차례 남북장관급 회담이 열렸지만, 그때마다 실랑이를 벌인 게 핵 문제다. 우리는 장관급 회담 발표문에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명기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북은 고집스럽게 핵 문제는 남북이 논의하고 합의할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북한 주장에는 문제가 많지만, 예컨대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당사자로서 이를 깬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만, 북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북 간에 핵 문제를 놓고 실질적인 토론을 한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2005년 6월 17일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가 더욱 크다. 처음으로 남쪽의 고위 당국자가 북쪽의 최고위 지도자와 핵 문제를 놓고 직접 토론을 했기 때문이다. 핵 문제와 관련해 김정일 위원장의 생각을 직접 들어보고 반론도 하고 설득했던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왜냐하면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는 핵 문제가 현안이 아니었다. 이슈가 아니었기 때문에 문제 제기가 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이미 합의된 2007년 2·13 합의가 있었다. 그건 미국 강경파가 찢어버렸던 9·19 합의 문서를 다시 살려내자는 합의였는데, 이걸 충실히 이행해가자는 원칙적인 대화가 있었다.

 

대통령 특사로서 첫 번째 목표가 북한의 6자 회담 복귀였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나의 요구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나는 김 위원장에게 첫째 “6자 회담 틀은 북에 불리하지 않다”는 걸 역설했다. 본래 부시 정부가 6자 틀을 짤 때는 5:1, 즉 북한 빼고 한-미-중-러-일 다섯이 공조해서 북핵 폐기를 밀어붙이겠다는 의도였지만 실제 진행 과정에서는 1:4:1, 북한과 미국이 대척점에 있고 나머지 넷은 중간 지점에 서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두 번째는 “북이 그토록 원하는 북미 관계 정상화를 우리가 도울 테니 우리를 활용하라”고 말했다. 미국과는 우리가 가깝다. 우리는 북이 핵을 포기할 의사를 명확히 한다면 미국에 대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도록 설득할 용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일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하이라이트는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답변을 받아낸 것이다. 이는 그때 그 자리에서 처음 나왔고 그 뒤 북핵 협상에서도 하나의 기준선이 되었다.

 

김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오.” 이렇게 답변했다. 귀가 번쩍 뜨였다. 내 기억에 북핵 위기가 발생한 이후 십수 년 동안 북한 당국이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언이라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핵에 매달리는 이유가 자신들의 생존과 체제 안전 보장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를 최상급 어법으로 강조한 것이었다. 김 주석은 북에서는 신과 동급 아닌가.

 

그리고 다음 달인 7월 말 6자 회담이 재개되고, 마침내 9·19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그 과정까지의 얘기는 소설 한 권 분량은 될 정도다.

 

6자회담 재개까지 '긴박했던 외교전'

 

평양에서 돌아온 뒤 내가 집중한 것은 미국에게 김정일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하고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도록 설득하는 일이었다.

 

나는 키신저 박사와 만나고 난 뒤 뉴욕을 떠나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거기서 북한 문제를 포함해 부시 정부 내의 대외 정책을 좌지우지하던 네오콘 수장 체니 부통령을 만났다.

 

미국에서 돌아온 뒤 7월이 됐는데 북이 안 나왔다. 속이 탔다. 나는 북에 편지를 보냈다. “김정일 위원장이 다음 달에라도 나온다고 했는데, 7월이 며칠 안 남았습니다.” 그런데 답이 없었다. 마지막에는 “7월 31일과 8월 1일의 차이를 아느냐”고 팩스를 보냈다. 국제 사회는 7월 31일에 나오면 김 위원장이 말을 지킨 게 되고, 하루 지나면 안 지킨 것이 된다. 이런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상기시켰다. 북한은 그런 관념이 약해서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기왕 나올 바에는 7월에 나와야 합니다. 당신들 위원장 말을 내가 미국에도 전했고, 다했는데….” 그런데 북한이 진짜 7월 말에 나온다고 발표를 했다. 남북 관계가 이렇게 피를 말린다.

 

마침내 중단된 지 1년 1개월 만에 2005년 7월 26일 베이징에서 6자 회담이 열렸다. 8월 7일까지 1단계 회담을 하고 9월 13일부터 2단계 회담이 열렸다. 이 기간 중에 나는 남북 장관급 회담 참석차 평양에 가서 북측에 핵 포기에 관한 최종 결심을 촉구했고,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에 가서 라이스 미 국무장관에게 협상 타결을 위해 미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줄 것을 주문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2005년 9월 19일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제4차 6자회담에서 북핵 문제 해결 위한 ‘9.19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내 강경파의 방해 공작에 뒤집히긴 했어도 6자 회담의 9·19 합의문은 앞으로 적어도 10년 동안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표준 문서가 될 것이 확실하다. 9·19 합의문에 ‘북핵 포기’를 담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북미 간 적대 관계 청산과 관계 정상화, 정전 체제를 항구적인 평화 체제로 바꾸자는 원칙까지 담았으니 이건 자화자찬이긴 하지만 한국 외교사의 금자탑이라고 할 만하다.

 

우리가 언제 우리의 운명을 다룬 국제 협상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제대로 낸 적이 있었던가. 현대사의 비극이지만 주변 강대국들은 고비고비마다 한국인의 목소리는 배제한 채 자기들끼리 모여 마음대로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고 자기들끼리 이익을 나눠 가졌다. 다시는 이런 역사를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

 

9.19의 핵심은 세 가지다. 하나, 북은 핵을 포기하고, 둘, 미국은 북과의 적대를 청산하고 수교하며, 셋,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바꾼다. 여기에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3대과제가 다 들어 있는 셈이다. 9.19는 한국 외교사에서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스스로 주도한 드문 예다. 따라서 북핵 문제는 9.19로 돌아는 게 가장 빠른 해법이다.

 

같은 꿈을 꾸면 그 꿈은 현실이 된다

 

​​훗날 정말 한반도가 경제 공동체를 거쳐서 통일로 가고 있을 때 개성공단이 결정적인 역할은 한다면, 그래서 개성공단을 설계도 상태에서 손에 쥘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든 장본인이 ‘통일부 장관 정동영’이었다고 기록이 될 수 있다면 그것보다 큰 보람과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그건 정동영 개인의 보람과 영광이 결코 아니다.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8천만 민족 전체의 보람이자 후손들에게 남겨줄 빛나는 유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개성공단은 정치인으로서 나의 정체성이다”고 말하곤 한다.

 

부산역과 광주역에서 파리행 열차표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 비단 나만의 소원은 아닐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공동 번영,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의 건설은 우리 시대 최고의 과제이다. 또한 우리가 후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미래상이다. 그 원대한 꿈이 있기에 우리는 대륙으로 가는 길을 멈출 수 없다. 더 많은 사람이 같은 꿈을 꾸면 그 꿈은 현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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