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칼럼] 비판은 고발정신을 낳는다.

비판, 비난, 비방은 어떻게 다른가?

서울의소리 | 입력 : 2015/04/03 [12:45]

국내의 TV 방송의 토론 프로그램을 볼 때 마다 아쉽게 느끼는 것은 '앞서 가는 나라'들에 비해 토론문화에서 국내 지식층이 많이 뒤처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출연자들이 '비판(批判), 비난(非難), 비방(誹謗)'을 잘 구별하지 못해서 정상적인 토론이 이뤄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김현철 칼럼 리스트
(김영랑,항일저항시인3남)
MBC 서울본사 기자
한국일보 시카고주재기자
중앙일보 마이아미지국장
한겨레 마이아미지국장
미주한겨레저널 창간 발행인
현재 자유 기고가

저서 ; '아버지 그립고야'

우선 '비판'이란 무슨 말인지 부터 살펴보자.

한자가 말해 주듯 '비판'의 비(批) 자는 비평한다는 뜻이고 '판'(判)은 바로 잡는 뜻이다.  즉, 앞서 말한 분의 말 가운데 어느 부분의 명확한 오류를 지적하면서 자신의 합리적인 주장과 함께 그에 대한 보안책은 무엇인지를 제시하는 경우를 '비판'이라 하는 것이다.

 

한편 '비난'의 비(非)는 비방한다는 뜻이고, 난(難)은 힐난한다는 뜻이다. 즉, 상대방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하되 터무니없이 사실과 전혀 맞지 않게 헐뜯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는 악의가 보인다.


또 '비방'의 비(誹)는 헐뜯는다는 뜻이고, 방(膀) 역시 헐뜯는다는 의미다. 즉, 상대방의 언행의 잘잘못을 거론하지 않고 무조건 상대방을 헐뜯고 비웃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파괴적이다.


따라서 듣는 이들은 비난성 내지 비방성 발언의 경우 설득력이 없어서 받아 드릴 수 없는 대신 '비판성 발언'은 건설적으로 설득력이 충분해서 양심에 비추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내의 개그맨 중 박명수가 밑도 끝도 없이 앞서 말한 사람의 말을 끊고 "그건 그렇고..."하면서 뜬금없는 말로 상대방을 언짢게 하는 발언을 할 때 좌중이 웃는다. 이것은 개그맨이라 좌중을 웃기려는 의도로 그렇게 하는 것이고, 좌중 역시 개그맨 쇼를 즐기는 중이라 이러한 돌출 행위를 비난이나 비방으로 나무라지 않고 그저 웃는다. 이런 경우 논리적으로는 분명히 박명수는 '비판'이 아닌 비난 또는 비방을 한 것이다.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목적으로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게 언론, 사법, 경찰 당국이다. 이들에게는 '비판적 자세'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비판을 당하면 본인을 비롯해서 측근 인물 중에는 '왜 남을 비난(또는 비방)하느냐?'고 반발하는 분들이 있다. '비판', '비난', '비방'의 엄청난 차이점을 모르기 때문이다.


필자가 평소 존경해 오던 인물 중에는 모진 협박, 고문 등 온갖 고초를 감수하면서도 군사독재의 악행을 끈질기게 비판하고 고발해서 독재자 측의 미움을 샀던 고 리영희, 송건호 등 언론인들, 또 함세웅 신부, 문익환 목사 등 우리 민주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분들이 계신다.


이들은 남들처럼 편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여건임에도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못 된 독재자를 수없이 비판해왔다.


이 분들은 인생의 낙원이 내세에 있지 않고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어 우리가 몸을 지니고 살고 있는 이곳부터 악을 제거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여 온 것이다.


장기집권을 노린 독재자 측은 이 분들을 '빨갱이', '정치신부' 또는 '정치목사'로 매도했음을 우리가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영적으로 높은 경지에 있는 '구루(영적 스승 = Guru)'의 눈에는 '선도 악'도, '아름다움도 추함'도, '있음도 없음'도, '삶과 죽음'마저도 분별할 필요 없는 일원론(一元論)의 경지에 서 있어서 이 세상의 사회정의 같은 것은 다 하찮은 것에 불과할 것이다. 비판을 해도 비난 또는 비방을 해도 다 유치한 단계일 뿐이다.


허나 그 정도의 경지에 오른 '구루'들은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일을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바라볼 뿐 말이 없는 법이다.


그러나 그 경지까지 아직 못 오른 사람치고 몸을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사회에서 어디 이게 가능한 소견법(消遣法 = 그럭저럭 세상 살아가는 방법)인가?


악행을 저질러 남을 심하게 괴롭힌 사람이, 자신의 기사를 보도하면 기자를 '청부살인하겠다'(실제로 미국서는 3천달러면 가능함)고 협박을 해도, 또 다른 사기꾼은 자신의 비리를 감춰달라고 엄청난 액수의 물량 공세를 펼쳐 와도 단 한번 굽힌 적도 타협한 적도 없는 꿋꿋한 '언론인의 생활'은 바로 '약자 편에서 싸우는 비판자의 자세'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꿋꿋한 신념이 없이는 불가능한 경지일 것이다.


평소 모범 경찰관(또는 언론인, 검사, 판사 등)인 줄 알았던 자가, 경찰관 신분으로, 도둑을 잡으라고 준 권총을 들고 필요할 때 마다 살인강도짓을 한다면 이 세상에 이 보다 더 큰 악은 없다는데서 '정의의 펜대'(비판)는 어느 사회악보다도 이 악을 먼저 고발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자세인 것이다.


비판은 고발정신을 낳는다.


앞서가는 나라들의 국민들은 부정, 불법, 비리를 그냥 넘기지 않고 자신이 본 즉시 당국에 고발하는 일을 올바른 시민의 도리라고 믿는다. 고발이야 말로 이 사회를 개선해 나가는 방법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다른 분의 학문적인 앞섬을 칭찬하고 부족함을 지적하는 비평(예술분야에서는 '비판'을 '비평'이라 한다) 역시 값진 것이다. 거기에 지혜와 용기가 필요함은 정이 넘치는 한국적인 현상임을 알아야 한다.


지혜도 용기도 필요 없는 직설적이고 자연스런 생활화된 비판이야 말로 우리 사회의 발전과 개선을 훨씬 앞당긴다는 교육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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