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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조작(趙作)씨의 안경(1)

고문(拷問) 전문인(專門人)-조작(趙作)씨(1)

김제영 소설가 | 기사입력 2015/06/13 [16:10]

중편소설-조작(趙作)씨의 안경(1)

고문(拷問) 전문인(專門人)-조작(趙作)씨(1)

김제영 소설가 | 입력 : 2015/06/13 [16:10]

      작가의 말

 

김제영 소설가

지구의 어느 모퉁이에서고 고문이 자행되는 한 어찌 태양은 예사로 떠오를 수 있는가. 1981년 대만에서 개최된 ‘한중작가회의’중 한 작가의 청으로 논하게 된 내 작품 경향의 한 줄기다.

 

1999년 <월간중앙> 12월호는 노태우정권 시절 입북을 했다가 모진 고문을 당한 서경원 전 의원과 그에 대해 취조 지휘를 한 정형근 의원을 취재한 기사를 실었다.

 

정형근이 직접 고문을 하고 안하고는 논외의 문제이다. 그가 대공 수사국장이던 89년 서경원 말고도 고문과 의문사 등 안기부가 저지른 불상사에 그가 책임을 통감 한다면 머리를 깍고 입산을 해도 모자라거늘 오늘날 정치 탤런트로 활개를 치고 있으니, 그를 국회로 보낸 지역구민들도, 그에게 안내의 등불을 들게 한 정당도 내게는 그저 수수께끼 같은 존재들이다.

 

내가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소이가 거기에 있다. 정치 도의가 부재하는 오늘 그것은 작가의 사명이기도 할 터이다. 그러나 작품 속의 주인공을 깍아 내리지만은 않았다. 입지전적인 요인과 엘리트적 긍지 또한 사회의 한가닥 희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편소설-조작(趙作)씨의 안경(1)

 

고문(拷問) 전문인(專門人)-조작(趙作)씨(1)

 

조 작(趙作)씨가 소속된 정당은 <두나라당>이다. 발음만으로는 하나, 둘, 셋 하는 둘. 집합이나 물질명사 앞에서 그 양을 말해 주는 한 마리 두 마리 할 때의 ‘두’. 즉 아라비아 숫자의 ‘2’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더러는 양분된 남과 북을 상징하여 명명된 당 명일 것이라고 정치적 의미를 부여, 비약적인 해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두나라당의 ‘두’는 머리 두(頭)이다. 의석수를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기에 제1의 두(頭)나라 당이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새벽 풀 섶에 맺힌 이슬처럼 순간 반짝하다가 꺼져버린 장 면 정권 말고는 내내 집권을 해 온 반공을 국시로 한 보수 여당의 정통을 계승하였기에 으뜸인 머리 두의 두(頭)나라당이다. 상투가 국수버섯 솟듯 위세가 당당한 두(頭)나라당 의원들이 어려움 없이 그동안의 정부를 휘어잡고 좌지우지하였음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1997년 연말쯤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도 당연히 두(頭)나라당 후보가 당선되려니 소속 의원들은 의심치도 않았다. 개표결과는 날벼락이었다. 1960년 4월 19일 학생 의거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면서 민주당 정부가 잠깐 얼굴을 내밀었다가는 박정희의 총칼에 찍소리 한마디 못하고 들어 가버린 흔적 말고는 한국 최근대사에서 야당이 집권을 해 본 일이 없다.

 

선거에 의해 정권이 교체되다니 두(頭)나라당 으로서는 변고요 천재지변(天災地變)이었다. 게다가 역대정권이 그의 정치적 역량을 두려워하여 눈의 가시로 기휘했던 평화주의자가 대통령으로 취임을 했으니 양이 고양이를 낳은 것을 인정하라면 인정했지 평화당의 집권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어찌 두(頭)나라당에 초비상이 걸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안절부절 못하는 당 소속 의원들과는 대조적으로 조 작씨는 느긋하다. 과거를 미루어 현재를 진단할 수 있고 현재에서 미래를 추출 예측할 수 있다는 조 작 의원 나름의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조 작씨의 호적상의 이름은 고문전(高文專)이다. 국회의원석 이름패에도, 학생 시절의 학적부에도, 주민등록증에도 고문전이라고 기재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군 복무 때는 고 대위, 검사 시절에는 고 검사가 통칭이었다. 검사에서 안기부로 발탁이 되었던 초기 무렵만 해도 고문전(高文專)으로 불리는 것에 대래 전혀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조 작씨는 지금도 그 때의 기억은 추석에 먹은 오리 송편이 넘어오듯 신물이 난다.

 

“고 국장, 어찌되었소.”

 

“간첩 죄목을 적용시킬 수는 없을 것 같십니더.”

 

“간첩이 아니면 밀입북자가 절도범이라도 된다는 거요?”

 

부장의 얼굴엔 도끼날이 섰다.

 

“밀입북이 아입니더. 통일부에 입북 허가를 신청했십니더.”

 

“통일부에서 허가를 해줬답디까?”

 

“허가를 해 줄 리가 있겠십니꺼.”

 

“정부의 허락 없이 이북에를 갔으면 그게 밀입국이 아니고 뭐란 말이요?”

 

고문전을 쏘아보는 부장의 시선에 에누리가 없다.

 

“밀입북으로 처리하시오. 현역 국회의원이 이북에를 갔다 온다는 게 말이나 되오. 푸락치요. 국회푸락치 말이요. 제헌국회 때도 김약수, 이문원, 노일환, 김옥주 등 국회 푸락치가 있지 않았소? 공작금에 대한 자백을 꼭 받아 내시오. 평화당 총재에게 공작금의 일부를 전달하지 않았겠소? 유념해서 그 부분에 대한 철저한 진술을 받아 놓으시오.”

 

“부장님예….”

 

대답 대신 부장의 시선이 레이저 광선인 양 고문전 국장의 눈을 뚫고 지나간다. 부장의 눈빛이 어찌나 시퍼런지 고문전 국장은 -그동안 취조는 철저히 했십니더. 회유도 하고 고문도 하고 모든 방법이 동원된 수사였십니더. 꼼꼼이 검토하고 또 했십니더. 진술에 허위가 없었십니더. 공안사범 수사 경력 십년 아입니꺼. 뭐가 희고 검고는 척하면 구별이 됩니더- 하려다가 목젖까지 올라온 낱말들을 꿀꺽 삼켜버리고는…….

 

“알겠십니더.”

 

선선히 대답을 하기는 하였으나 고문전 국장은 땡감을 씹었을 때의 입속처럼 기분이 개운하지가 않았다. 과장도, 계장도 안기부 대공수사팀은 미국의 CIA나 FBI 요원 부럽지 않게 훈련된 정예 부대이다. 그들의 밤샘 수사 조서를 뒤집으라는 명령이다. 조걸위학(助桀胃瘧)이라 고문전 국장은 혼자 중얼거리며 습하고 음침하고 딱딱하고 냉랭한 지하실로 내려간다. 계단을 헤이듯 한 단 한 단 내려간다.

 

“죽이시오. 죽어도 여한이 없소. 먼저 간 동지들과 그들의 뜻을 이어 최선을 다했으니 여한이 없소. 당신이 진정 S대를 졸업한 지성인이오? 당신이 진정 이 나라의 불의를 응징하고 기강을 잡아야 할 검사 그게 맞소? 웃기지 마시오. 당신네들은 인간 도살자들이오.”

 

그는 손바닥으로 귀를 막고 고개를 좌우로 세게 도리질을 하지만 발가벗긴 채 매달려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사나이의 목소리가 등뒤를 따라 내려온다. 이곳을 거쳐 간 공안사범들의 피멍으로 일그러진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크게 심호흡을 한다. 그들 중에는 고문 후유증으로 벌써 저승으로 간, 소위 말하는 민주투사들이 많았다.

 

그들이 고문실에서 줄을 섰다가 고문전 국장이 한 단 내려가면 그들은 한 단 올라서곤 한다. 고문전을 비롯, 안기부 자체를 증오하고 저주하는 유령의 얼굴들이다. 십여 년 간 고문취조실을 오르내리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있게 마련이다. 그가 검찰청에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와 이곳 생활에 아직 익숙치 않았을 때였으니까 광주의 소용돌이가 채 가라앉지 않았을 때가 아니었을까.

 

지금은 웃음이 나오지만 당시에는 혼쭐이 났었다. 항쟁의 도시 광주의 표면은 일상의 생활로 복귀하여 조용해 보였으나 5·18항쟁을 반란으로 규정한 전두환 정부는 제5열로 도색해 놓은 주모자 색출에 혈안이 되어 특히 망월동 묘역에 감시자를 상주시키고 있었다. 소나무 뒤에 숨어서 그들이 묘를 찾는 사람들의 신원을 체크하고 있을 그 무렵에 광주에 파견된 요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미모의 여자간첩을 잡아 서울로 압송중이라는 것이다. 젊은 요원들은 여자간첩이라는 호기심에 벌써부터 웅성웅성 휘파람을 불어대며 기대에 들떠 있다.

 

고문전 차장실에서도 대공수사국의 분위기가 쉽게 느껴졌다. 압송된 여인은 과연 미모였다. 도착하자마자 심문이 시작되었다. 성명, 생년월일 등 그런데 주소란의 답변이 모호하다. 광주에서는 여관에 투숙했던 게 확인이 되었다. 서울에는 주거지가 일정치 않단다. 그동안 머무른 곳을 대라니까 서울역 대합실이란다.

 

그들은 쾌재를 부르짖었다. 그동안 체포된 간첩들의 공통된 주소가 서울역 대합실이었기 때문이다. 대어중의 대어를 낚았다고 그들은 그날 저녁 부장이 내려 준 금일봉으로 화창한 자축연을 벌였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차장님, 축하드립니다.”

 

고문전 차장을 위한 잔을 높이 들어올렸다.

 

“뜻이나 알고 축하잔을 받아야 하지 않는교.”

 

그가 만족스럽게 좌중을 둘러보자,

 

“하모, 차장님예, 와 안그렇겠십니꺼.”

 

경상도 출신 계장이 팔을 일직선으로 뻗어 잔을 머리 꼭대기로 쳐든다.

 

“운수가 대통입니다. 차장님께서 이곳으로 오시자 마자 걸려든 대박이 아닙니까. 대공수사국의 탄탄한 앞날의 영광이 기약되었습니다.”

 

과장의 다분히 아첨기가 있으면서도 점잖은 한마디가 더욱 좌중의 흥을 돋구었다. 광주에서 간첩을 잡아 서울로 압송한 요원에게는 특별 보너스로 한 주일 휴가와 휴가비가 지급되었다.

 

고문전 차장은 그녀에 대한 조사 결과가 궁금했으나 보고가 올라올 때까지 참기로 했다. 상부의 지시가 있거나 그들의 실수가 발견 되었다면 모르되 채신머리없이 책임자들이 진행 중인 심문을 참견한다는 것은 부하를 거느리는 윗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과장이 여자간첩을 수사한 기록을 갖고 들어왔다. 대공수사국의 영광… 어쩌고 할 때의 떡 벌어졌던 과장의 어깨가 영락없이 비맞은 용대기(龍大旗)이다.

 

“어데 몸이 불편한가요?”

 

“아닙니다.”

 

“안색이 않좋구마.”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뭐꼬? 말해 보소.”

 

“다 시인했습니다. 김일성 지령으로 남하했고, 광주의 인심을 교란할 목적으로 광주에 내려갔고, 반정부 인사들을 규합하기 위해서는 망월동 묘지에 묻힌 광주항쟁 참여자들의 유족을 만남이 최우선일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그들이 묘에 찾아오기를 바라고 매일같이 망월동 묘지의 한 묘 앞에 앉아있었다고…. 서울말씨도 순안 정치학교에서 이남 서울 출신 교관에게 교습을 1년간이나 받았답니다. 비행기를 폭파한 김현희도 잘 살고 있지 않느냐. 우리에게 협조만 잘 하면 남한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했더니 묻는 대로 순순히 답변을 했습니다.”

 

“수고했구마. 잘 된기라예.”

 

고문전 차장의 얼굴엔 생기가 돌았다.

 

“차장님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라꼬? 무슨 문제꼬?”

 

“증거를 찾아 내지 못했습니다.”

 

“무슨 소리꼬? 자백을 했다카지 않았나?”

 

“공작금과 위조 주민등록증을 어데다 숨겼느냐니까 안 갖고 내려 왔답니다. 어느 간첩이 맨몸으로 내려옵니까. 소위 그들이 말하는 이만저만 당성이 강한 간첩이 아닙니다. 결정적 대목에서는 수사관들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이북 정치학교의 간첩 훈련이 철저한 것 같습니다. 시종일관 맨몸으로 내려 왔다고 뻗대기에 고문을 했습니다. 고문을 당하는 데는 용빼는 재주가 없었던지 망월동 묘역 소나무 밑에 묻어 놓았다고 자백을 했습니다. 요원들이 달려가 그녀가 말한 소나무 밑을 파보았으나 소나무 뿌리에 상처만 입혔습니다. 혹시 그녀가 위치를 잘못 짚은 게 아닌가 해서 그 일대를 다 파보았으나 기진맥진 돌아왔습니다. 광주에 내려갔던 요원들이 당장 이년의 가랑이를 찢어 놓아야 한다고 씩씩거리는 것을 간신히 진정시켜 놓았습니다. 고문할 때마다 도봉산, 마이산, 설악산 등으로 장소를 옮겨 요원들을 등산시켰지만 위조 신분증과 공작금은 발견되지 않으니 환장하겠습니다. 고문이란 고문은 다 했습니다. 박상배 영감처럼 시체를 치우게 될까봐 고문을 계속할 수도 없고 난감합니다.”

 

“이상하지 않은기요. 우예 산 만인교.”

 

“그렇지 않아도 누군넨가의 집에 숨겨둔 게 아니냐고 족쳤지만 남한에는 아는 집이 한 곳도 없답니다.”

 

“지금 심문 중인교?”

 

“다시 한번 시도해 보겠다고 계장이 고문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가보입시다.”

 

고문전 차장은 과장을 앞세우고 고문실로 내려갔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밤톨 만하게 불거진 눈두덩의 피멍에 덮인 눈은 감았는지 떴는지 분별이 되지 않았다. 꽈리처럼 부르튼 입술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입술을 방불케 했다. 그녀는 일어서려다가 엎어지자 일어설 수 없음을 깨닫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는 고문전 차장을 바라본다. 얼굴의 방향이 그쪽으로 되어 있으니 바라본다이지 그녀의 눈의 동작은 보이지 않았다. 단정하고 아름답던 그녀의 인상은 어느 구석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꿈에 나타날까 두려워 외면하고 싶은 그녀의 몰골을 응시하고 있던 고문전 차장이 입을 열려는데 그녀가 선수를 친다.

 

“고문전 씨예. 이번엔 당신 차례인교? 자. 구두발로 짓이겨 보시라예. 날래 짓밟아보기요. 공작금이 쏟아져 나올기라예. 날래 밟아보라예. 자.”

 

그녀는 치마를 걷어 올리고 가슴을 풀어헤쳤다. 온 몸뚱이가 구렁이 허물이다. 고문전 차장은 눈썹 한 올 까딱하지 않는다. 실토하지 않는 물증을 찾기 위해서 취할 수밖에 없었던 타당한 조처이니 부하들을 나무라고 싶지 않았다. 고문전 차장은 죽어 마땅한 간첩인 주제에 건방지다고 아니꼬운 생각이 들었다.

 

“김일성이 남조선 안기부 요원들을 등산 시키라고 지령하였는교? 와. 바븐 우리 요원들을 산으로 산으로 유인했는교?”

 

“고문전씨예. 하모 몰라서 묻는기요? 망월동에 가 물어보이소. 당신 친구 김봉래 씨가 대답해 줄 기라예.”

 

“뭐라꼬? 김봉래라꼬?”

 

고문전 차장이 덴 소처럼 놀란다.

 

(다음주에 계속 이어집니다)

 

김제영(소설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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