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의 사과와 박근혜의 침묵

대통령 당선 후 박근혜의 머리 속에 '책임'이란 단어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 듯

서울의소리 | 입력 : 2015/06/24 [22:29]

어제(23일) 오후 TV에서 뜻밖의 장면을 보게 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사과를 하는 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날 "메르스 감염과 확산을 막지 못해 국민 여러분께 너무 큰 고통과 걱정을 끼쳐 드렸다"며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신뢰에 미치지 못해 참담한 심정이며 책임을 통감한다"고 두 차례에 걸쳐 머리를 숙였다. 순간 의아해졌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은 이재용 부회장이 아닌 다른 사람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에서만 어제까지 총 85명의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다. 이는 전체 환자 175명의 48.6%에 해당하는 수치이며 처음 문제가 됐던 평택성모병원(37명)보다 2배 이상 많은 규모다.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의 최대 진원지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이유다. 최고를 지향해 온 삼성그룹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참담함 그 자체다. 

 

그의 사과를 어떻게 봐야 할까. "삼성이 뚫린 것이 아니라 국가가 뚫린 것"이라는 인식이 그룹 내에 팽배해 있을 만큼 오만하고 우월적인 기업의 후계자가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자청했다는 것은 그만큼 메르스 사태가 위중한 국가적 위기상황이라는 의미다. 이재용 부회장의 진심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런 의미에서 그의 사과는 반드시 해야만 하고 거쳐가야만 하는 과정이었다. 

 

 

메르스 감염과 확산을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사과는 박근혜 대통령의 그것과 자연스럽게 비교된다. 대한민국의 최고통수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대한민국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국가적 재난의 최종 책임자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메르스 사태에 대해 단 한 차례도 사과를 하지 않았고, 심지어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을 언급한 적도 없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머리 속에서 '책임'이란 단어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 듯 하다.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 사건, 거듭되는 인사참사, 대선공약 파기 논란, 미국 순방 중 벌어진 윤창중의 성추문 사건, 세월호 참사, 국정원의 간첩조작 사건,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사건, 성완종 게이트와 이완구 총리 사퇴, 메르스 사태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국정최고통수권자로서 대통령 스스로 책임을 통감해야 할 막중한 사안들이었으나 그녀는 한결같이 그것들과는 상관없다는 태도를 고수해 왔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책임을 묻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책임을 지는 자리다. 이는 도덕교과서나 사회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세간에 대유행하고 있는 '아몰랑'처럼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국가적 재난과 자신은 별개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고, 마땅히 거쳐가야만 하는 과정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책임과 권위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권위 없는 책임이란 있을 수 없으며 책임이 따르지 않는 권위도 있을 수 없다." - 막스 베버(Max Webber)

 

대통령제의 미덕 중의 하나는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것에 있다. 대통령은 자신이 내세운 공약들과 정책, 국가비전 등에 대해 무한책임을 질 뿐만 아니라 국가 내에서 발생하는 국가적 재난에 대해서도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져야만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책임과 권위 사이를 균형있게 조율하는 조절기능이 없어 보인다. 그녀에게서 권위는 있으되 그에 따른 책임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버린 '책임이 따르지 않는 권위'는 아버지의 영향때문일 것이다. 1인독재권력인 박정희 체제 하에서 국가는 곧 박정희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국민은 언제나 계몽과 통치의 수단일 뿐이었다. 국가의 권위에 대한 도전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던 시절, 그녀는 무려 20년 가까이 권력의 최정점에 서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책임과 권위는 동전의 양면이 아니라, 권위의 한면일 뿐이다. 이런 인식으로 무장한 박 대통령에게 소통과 화합, 민주적 리더십, 책임정치 등을 기대하기란 애시당초 난망한 일이었다. 

 

 

5년 동안 대한민국의 우월적 지위를 위임받은 박근혜 대통령이 권위주의에 기반한 독단과 독선의 정치를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과거의 경험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그 우월적 지위에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에 있다.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는 이 명징한 사실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 못지 않는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있던 이재용 부회장은 그 이유야 어찌되었든 메르스 감염과 확산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대국민사과를 자청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리더십의 부재와 정부의 무능이 극대화되어 나타난 메르스 사태에 대해서도 국가 최고통수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책임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무책임은 공동체의 기본질서를 저해하고 위협하는 사회악이다. 그런데 그 무책임을 다른 누구도 아닌 국가최고통수권자가 국민들에게 솔선해서 보여주고 있다. 당연히 최악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출처 - 세상이 보이는 정치·시사 블로그 ▶ 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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