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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은 불공정했다...'공고출신 막변호사'의 '법정 밖 변론'

전관예우,대형로펌 장벽 부딪치며 절감한 사법부의 불공정한 현실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5/08/02 [09:47]

法은 불공정했다...'공고출신 막변호사'의 '법정 밖 변론'

전관예우,대형로펌 장벽 부딪치며 절감한 사법부의 불공정한 현실

서울의소리 | 입력 : 2015/08/02 [09:47]

안천식 변호사 @법률저널

공고를 나와 용접공으로 일하다 늦깎이 대학생이 됐다.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막 변호사(연수원 수료 후 바로 개업한 변호사)가 되었다.

2005년 5월 A씨의 사건만 맡지 않았어도 안천식(49·사법연수원 34기) 변호사의 식의 인생은 평탄했을지 모른다. 굳이 한 사건을 두고 10년간 오랜 법정싸움을 하지 않아도 됐었을지 모른다.

A씨는 경기도 김포의 한 마을의 부친 땅을 한 대기업 건설사에 뺏길 위기에 놓여 있었다. 시가 수십억원 짜리 땅이었다. 건설사는 아버지가 생전에 썼다는 매매계약서를 내밀었다. 그런데 계약서의 글씨는 아버지의 필체가 아니었다. 도장도 평소 쓰던 게 아닌 막도장이 찍혀 있었다. 

계약서의 부친 계좌번호 역시 계약시점에는 해지된 계좌였다. 건설사는 개발이 추진되던 마을의 다른 주민을 상대로도 이런 수상한 계약서를 만들었다. 정황상 아버지가 동의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이에 안 변호사는 당연히 승소를 예상했다. 그런데 결과는 패소였다. 재판부는 증인인 건설사 직원 말만을 신뢰했다.

받아들일 수 없어 항소했다. 재판을 거듭하며 허위 계약서임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하나하나 나왔다. 하지만 결과는 또 패소. 상고했지만 심리 불속행 기각이었다.

재심과 관련 소송까지 10년 동안 한 사건을 놓고 민사소송 18건을 치렀다. 그러나 법원은 모두 건설사의 손을 들어줬다. 안 변호사의 주장은 법정에서 번번이 막혔다. 18전 18패. 왜 그랬을까. 건설사는 늘 대형 법무법인을 썼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배경도 연줄도 없는 '막 변호사'인 안 변호사를 상대했다.

사건이 대법원에 가면 넉 달 전 대법원 재판연구원을 했던 전관 변호사가 건설사를 대리했다. 인천지방법원에서는 1년 전 그 법원 단독판사였던 변호사가 나왔다. 어렵게 구한 증인은 건설사 측의 회유를 받은 듯 법정에서 말을 바꿨다. 마을 주민은 '거대 기업을 상대로 어떻게 싸우겠느냐'며 도와달라는 요청을 거부했다.

계약서가 무효라는 단순한 사실을 증명하려던 안 변호사는 이런 과정을 겪으며 일반 국민은 물론 변호사인 자신에게도 사법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안 변호사는 "평범한 변호사인 저로서는 아무리 증거를 제출하고 주장을 해도 이들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이 제가 경험한 엄연한 사법 현실"이라며 전관예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현실을 탄식했다.

이길 수 없는 소송이 지나간 자리엔 '폐허'만 남았다. A씨 부친의 땅에 세들어 살던 세입자는 집을 철거하라는 건설사의 법적 요구에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 전직 장교였던 A씨도 병을 얻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다. 땅 역시 뺏겼다. 안 변호사도 무력감에 한때 변호사업을 정리했다.

그는 지난해 7월 마지막 소송이 대법원에서 기각되자 그간 악전고투의 과정을 「고백 그리고 고발」(도서출판 옹두리)이란 책에 담았다. 법정 밖에서 이어지는 변론인 셈이다. 안 변호사는 "왜 설득이 안 되는 이런 재판과 판결을 강요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국민의 사법 불신은 단지 법에 대한 무지 때문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가 말하는 책이야기] 고백 그리고 고발

 

변호사 생활에서 점차 느끼는 것은, 세상이 생각처럼 정의롭지 않다는 것, 법원판결 역시 다르지 않다는 것, 재판에서 법관의 권력은 가히 신에 견줄 만큼 절대적이라는 것, 그럼에도 대체적으로 판결에 수긍하며 적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 변호사의 비애이자 숙명이라는 것, 수긍하기 어려운 판결이라 생각되더라도 우리 사법현실에서 그러한 일은 의례 있어 왔고, 또한 있는 것이며, 아마도 스스로의 집착과 자격지심이 그러한 느낌을 배가시켰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애써 위로하며 살아간다는 것, 그래서 오히려 의뢰인을 설득하기에 진땀을 흘린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개의 일련의 사건에서 변호사로서는 물론이고 일반인의 최소한의 상식에서도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판결을 10여 년 동안 무려 20여 차례나 받았다면, 이는 우리가 처한 사법현실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쟁점은 비교적 간단하였는데, ‘계약서의 위조(진정성립)여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대기업이 소송에서 의뢰인에게 내민 것은, 돌아가신 선친이 6년 전에 작성하였다는 매매대금 20억 원 상당의 문제의 부동산매매계약서였고, 거기에는 선친의 필적도 없었고, 막도장이 날인되어 있을 뿐 선친이 작성하였다는 어떠한 흔적도 없었습니다. 선친의 다른 계약서에는 모두 인감도장이 날인되어 있고, 선친의 필적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물론 의뢰인이나 선친은 상대방으로부터 어떠한 매매대금도 받은 사실이 없습니다. 상대방 대기업은 6년 전에 매매계약 현장을 유일하게 목격하였다는 하청업체 전무이사를 증인으로 출석시켰습니다. 그리고 증인(하청업체 전무이사)은 의뢰인의 선친이 다른 사람(A, 사망)에게 막도장을 건네주고 그 자리에서 통장번호까지 불러주어, 다른 사람이 직접 계약서에 도장을 날인하고 계좌번호를 기재하는 것까지 현장에서 분명하게 목격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확인해 보니 계약서에 기재되어 있는 계좌번호는 그 계약시점 3년 이전에 이미 예금계약이 해지되어 폐쇄된 것이었습니다. 계약서에 기재된 계좌번호의 필체도 현장에서 다른 사람(A)이 기재한 것이 아니라, 사무실에서 다른 직원(B)이 기재한 것이라는 사실도 확인되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작성된 똑같은 형식, 똑같은 필체로 기재된 계약서 1부를 찾아냈는데 그것도 위조된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추후에 또 다른 위조된 계약서 4부도 찾아냈는데, 그것은 모두 하청업체 전무이사의 필체로 작성되어 있었습니다. 하청업체 전무이사는 위 증언과 관련하여 위증죄와 무고죄의 유죄가 인정되어 처벌받았습니다. 


어렵사리 문제의 계약서를 작성한 직원(B)을 찾아냈습니다. 그는 문제의 계약서를 사무실에서 작성하면서 가지고 있던 의뢰인 선친의 막도장을 날인하였다고 하였고, 그러한 내용의 진술서를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하였습니다. 그런데 상대방 대기업은 그 직원(B)을 찾아가서 진술을 번복시켰습니다. 그 직원(B)은 상대방편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하여, 계약서의 성명, 주소 등은 자기가 기재하였지만 막도장 날인은 모르겠다고 증언을 번복합니다. 오히려 변호사가 협박하고 의뢰인이 평생 먹을 것을 보장해 주겠다면서 회유하였고, 자신은 오로지 돈을 받을 목적으로 거짓임을 알면서도 최초 진술서를 허위로 작성해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직원(B)은 결국 두 개의 위증죄 유죄가 인정되어 처벌받았습니다.

 

그런데 법원의 최종판결은, 증인(하청업체 전무이사)은 의뢰인 선친이 다른 사람(A)에게 막도장을 건네주며 계약서에 날인하게 하는 현장을 목격하였다고 하였으므로, 문제의 계약서의 진정성립은 인정되고, 따라서 의뢰인은 상대방 대기업으로부터 10여 년 전의 매매대금의 절반만 지급받고 부동산 소유권을 넘겨주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10여 년 동안에 민사, 형사, 재정신청, 가처분까지 합하여 무려 23차례나 수행하였고, 2014. 7. 경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패소하였습니다. 뻔한 사건을 너무도 명정하게 계속해서 왜곡하는 법원의 행태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할 수가 없었고, 이를 ‘고백 그리고 고발’이라는 책으로 출간하였습니다.


그리고 돌아보니, 기본권의 최후보루라는 법원에 대한 검증과 견제가 너무도 엉성하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법독립은 국가권력은 물론 사회권력과 자본권력까지 견제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보다 철저하게 보장하기 위한 것인데, 오히려 법원 스스로가 권력자가 되어 국민의 기본권과 헌법적 가치를 임의로 왜곡, 조작하면서도 사법독립이라는 도그마 뒤에 숨어 있는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국민들의 사법불신은 날로 심화되어 가고 있고, 최근 몇몇 판결은 법원과 법조계 모두를 한낱 조롱거리로 만들었습니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최소한 우리가 생활하는 일터와 환경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을 받는 곳이기를 원합니다. 저는 위 사건을 10여 년간 경험하면서 법원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법원에 대한 막연한 신뢰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명제입니다. 법관으로 임용되었다고 그들이 내린 판결에 곧바로 신뢰가 생길 수는 없습니다. 심급제가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며, 우리 사법체계는 실질적으로 3심이 아닌 2심제나 다름없습니다.

 

저는 분명히 인식하였습니다. 철저한 감시와 견제가 없는 곳에 신뢰란 있을 수 없고, 기본권의 최후보루인 법원에 대하여는 더더욱 엄격한 감시와 견제가 있어야만 국민들로부터 최소한의 사법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이 사건을 통하여 온몸으로 절감하였습니다. 법관의 양심은 보호대상이 아닌 헌법가치의 담보를 위한 비판과 검증의 대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법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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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견제 2015/08/19 [17:09] 수정 | 삭제
  • 검찰도, 국회도 마찬가지지만... 독립되어 이 모든 기관을 견제,검증,번복할 수 있는, 제 4의 호민관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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