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제도 국민 신뢰도 27%...조사 대상국 42개국 중 39위

국민을 참담하게 만든 충격적인 OECD 보고서

서울의소리 | 입력 : 2015/08/10 [19:10]

10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킨 영화 '변호인'과 '국제시장'에서는 공통된 장면이 등장한다. 공안경찰로서 국가폭력의 대리인 역할에 충실했던 '차 경감'은 송우석 변호사를 폭행하는 와중에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돌연 폭력을 멈추고 반사적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 공원에서 말다툼을 벌이던 '덕수'와 '영자' 역시 언쟁 도중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무의식적으로 가슴에 손을 얹는다.

 

이 기묘한 모습은 국가에 대한 충성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공권력을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경찰이든 평범한 소시민이든 국기에 대한 경례는 국가를 향한 그들의 변치 않는 충성심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이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로서의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된 것이든 아니면 국가의 강요에 의한 소시민의 비자발적 복종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최근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에도 보니까 부부싸움 하다가도 애국가가 들리니까 국기배례를 하고, 그렇게 해야 이 나라라는 소중한 우리의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2014년 12월 29일 발언

 

국제시장이 큰 화제를 불러 모으며 흥행몰이에 성공하자 '국기 하강식'을 부활하자는 목소리들이 노골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슬그머니 불을 붙이자 교육부, 미래창조과학부, 국토교통부, 인사혁신처 등 10개의 정부 부처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들은 대대적인 태극기 달기 운동을 펼치는 것은 물론 상가와 사무실 등으로 쓰이는 민간 건물에 국기 게양대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흐름과 맞물려 공무원 시험에서는 애국가 4절을 외우라고 하는가 하면, 관료들의 옷깃에 태극기 배지가 달리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국경일마다 태극기를 게양 한 뒤 인증샷을 찍어 제출하고 소감문을 발표하도록 하는가 하면 역사의식의 일원화를 위해 국정교과서로의 전환이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기까지 한다. 이 모두 시대가 만들어낸 애국주의의 풍조들이다.

 

박 대통령의 인식과 관료들의 태도를 묘사하는 데 있어 '웃프다'라는 말처럼 시의적절한 표현이 또 있을까. 창조경제를 수도 없이 외쳐온 박근혜 정부의 인식과 태도가 지극히 일차원적이고 평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저 기묘한 행위와 풍경들이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나 충성심과는 전혀 별개라는 사실을 저들은 정말 모르고 있다. 국가를 책임지는 최고통수권자와 국가정책을 계획하고 운영하는 관료들의 '단순무식함'이 조폭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어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눈에 보는 정부 2015'(Goverment at a Glace2015)의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꽤 충격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34%로 조사 대상 41개국 가운데 중하위권인 26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치가 불안정한 인도네시아, 터키, 브라질보다도 낮으며 체코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같은 수준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 신뢰도다.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2013년 기준 27%로 조사 대상국 42개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인 39위에 머물렀다. 사법제도 신뢰도는 OECD 회원국 평균 54%보다 한참이나 낮은 수치로 우리보다 사법제도 신뢰도가 낮은 국가는 콜롬비아, 칠레, 우크라이나 3국에 불과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존감이 한없이 무너지는, 부끄럽고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결과다.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이나 정부를 불신하고 있고, 사법제도에 대한 대국민 불신이 극에 달했다면 국가에 대한 애국심은 그야말로 바닥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기를 통해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고양하고,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서 횡횡했던 방법들로 충성심을 드높이려는 박 대통령과 정부의 인식과 태도는 황당할 뿐만 아니라 기괴스럽다.

 

 

국민은 교화의 대상이 아니며 계몽의 대상은 더더욱 아니다. '덕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과는 별개로 국기에 대한 경례나 태극기를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는 그래서 영 어색하고 불편하다. 국가를 절대선으로 간주하는 전체주의 국가나 정치권력을 1인에게 집중시켰던 독재국가가 아닌 이상, 이 같은 인식과 태도는 시민이 주권자인 민주주의 시대에 부합하는 모습이 절대로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애국심과 충성심은 국민이 국가를 신뢰하면 할수록 자연스럽게 고무되게 마련이다. 국민이 국가와 정부를 신뢰하면 애국심과 충성심은 저절로 배양되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과 정부는 이를 억지로 연출해 내려고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인가.

 

젊은 세대가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칭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이는 국가와 정부가 그들의 삶과 미래를 위한 기회를 제공해 주지 않고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제 국가가 국민을 선별하고 통제하는 시대는 끝났다. 지금은 국민이 국가를 선택하는 시대다. 박 대통령과 정부가 이번 OECD의 보고서에 담겨 있는 의미를 직시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단언코 없다.

 

출처 - 세상이 보이는 정치·시사 블로그 ▶ 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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