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순 잔치에 마지막 고별식을 미리 한 김현철 전 언론인

서울의소리 | 입력 : 2015/09/17 [01:21]

김현철 전 한겨레저널 초대 발행인 겸 편집인의 “80회 생일 축하 겸 미리 하는 마지막 고별파티”가 지난 6일 저녁 6시, 포트로더데일 싸우스웨스트 렌치스에 있는 '선교치유센터'(원장 서정자 권사)에서 백여 명의 친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참석자들에게 인사하는 김현철 전 언론인

 

생일축하 파티가 끝나고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American Sniper)’ 주제곡인 장송곡(The Funeral)이 은은히 흐르면서 고별파티가 시작되자 이날의 주인공 김현철 전 발행인은 인사말을 통해, ‘우리 인간은 육신을 떠나 평균 15~16개월 후면 다시 이 세상에 돌아온다는 사실이 이제 과학적으로 입증됨으로써 우리는 그동안 수억 만번 이 세상에 왔다 갔다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죽음은 더 이상 슬퍼할 대상이 아니지만, 다만 이번 생애 후 조만간 다시 이 세상에 돌아 왔을 때는 서로가 기억을 못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맺은 인연, 특히 처자식, 가까운 친척, 친구의 죽음을 맞으면 조금은 슬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발행인은 사전에 참석자들에게 보낸 초청장에서 ‘죽은 후 역겨운 시신을 조문객들에게 보여 줘 불쾌하게 할 필요는 없다. 또 사 후 내 장례식에 누가 다녀갔는지, 또 누가 읊는 조사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 할 텐데 그보다는 죽기 전 살아 있을 때 따스한 상대방의 손을 잡아 보고, 정감 넘치는 작별 인사도 하고, 소박한 식사를 함께 하며 담소하는 일이 보다 뜻 깊은 일이다.

 

더구나 장례식 때 조위금을 챙기고 조화를 받고 번거로운 장례 의식 절차를 거치는 게 성미에 전혀 안 맞았다. 지금은 아주 건강하지만 90까지 산다는 자신이 없어서 8순 잔치 때 마지막 파티를 겸하기로 했다’고 이 날 파티를 열게 된 이유를 설명했었다.

 

이날 고별 파티에서 김 전 발행인이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읊을 때, 장내는 숙연해졌으며 이어 가곡 ‘이별의 노래’를 부인(김연순, 77)과 함께 노래했다. 아들 재이(Jay, 변호사, 48)씨는 “아버지가 부르셔야 할 노래를 대신 부른”다면서 프랑크 씨나트라의 ‘My Way'를 불렀다.

 

김 전 발행인은 이날 충남 보령시 주산면 명덕산에 마련된 항일민족시인 김영랑(부친) 등 시인 7명의 분향단 사진과, 주월한국군 채명신 사령관 단독회견, 존슨 미 대통령 방한 취재, 그레엠 플로리다 주지사와의 단독회견 등 사진을 소개했다.

 

마지막 순서로 ‘김 전 발행인과 나’ 라는 주제로, 홍순관(전 순천평회학교 교장), 이하진(전 마이애미한인회장), 윤기향(FAU 경제학 석좌교수), 손시향(전 가수)씨 등이 나와, 평생 '언론인의 정도'를 오롯이 지켜 온 김현철 전 언론인의 지난날을 간략하게 회고했다.

 

그런데 ‘미리 치른 장례식’의 전례를 보면, 3년 전 캐나다 동포 의사 이재락 박사가 암으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에, 또 미국인으로는 1938년 테네시 시골의 펠릭스 브리질(당시 73)씨가 건강한 몸으로 ‘미리 하는 장례식’을 치르고 7년 후 사망하는 등 북미에서 두 차례가 있었다.

 

<김현철 전 발행인의 인사 말>

바쁘신 데도 저의 80회 파티를 위해 이렇게 많이 참석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우선 아주 생소한 ‘미리 하는 마지막 고별 파티’ 를 생일파티와 겸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실 듯해서 그 이유를 설명 드리겠습니다.


8순이 되니, 전보다 ‘죽음’이 가까워져서인지 자주 ‘죽음’에 관해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죽음‘이라는 단어는 ’모든 게 다 끝난다. 이제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영혼이 몸을 떠나서 본래 왔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니 ‘죽었다’ 보다는 ‘돌아갔다’로 표현함 이 옳은 것 같습니다.


1950년대의 미국의 정신의학 박사 이안 스티븐슨의 연구 업적을 이어 받은 짐 터커 박사(Dr. Jim B Tucker)의 저서 ‘Life Before Life' 를 보면 우리 인간이 육신을 떠난 후 평균 15~16개월 후면 다시 이 세상에 환생한다고 밝혔습니다. 15억만년 인류 역사를 생각하면 우리 모두 수억 만번 이 세상을 다녀갔다는 뜻입니다.


이제 막, 말을 하기 시작한 4살 된 딸아이가 엄마가 매를 때리자 “엄마, 엄마가 내 딸이었을 때는 엄마가 아무리 못되게 놀아도 나는 말로 타일렀지 매를 때린 적이 없는데 엄마도 이제 나에게 그렇게 할 수 없어?”하고 항의를 했습니다. 깜짝 놀란 엄마는 이 말에 의심이 들어 딸에게 전생의 주변 환경을 집중 질문했고 딸은 당시의 아빠 이름, 할아버지, 할머니 이름을 모두 올바로 댔을 뿐 아니라 죽을 당시의 상황도 소상히 밝혀 결국, 엄마는 자신의 엄마가 죽은 후 자기의 딸로 다시 환생했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 역시 다른 비슷한 수십 건의 사례와 함께 실린 터커 박사의 임상실험 내용을 쓴 책에 실려 있습니다.


여러 종교 중 유일하게 기독교인들은 윤회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만, 초대기독교 4세기 동안 성서 상에 분명히 ‘윤회’라는 단어가 수십 군데 있었고, 서기 325년 니케아공의회에서 기독교 신자도 아닌 콘스탄티누스 로마황제의 엄명에 따라 ‘윤회‘라는 단어를 낱낱이 솎아냈지만 아직도 성서에는 '뿌리는 대로 거두리로다' 또는 '엘리야가 세례요한으로 환생했다'는 등 일곱군데나 윤회를 암시하는 구절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 후 기독교 성서는 지금까지 무려 20차례나 편집을 당했습니다.


20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 죽음 후의 삶을 연구해 온 미국 등 유럽계의 그 많은 정신의학 박사들 중 기독교인이 아닌 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 중 20세기 후반에 ‘죽음의 학’을 창시한 퀴블러로스 박사의 저서를 보면 “나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교회에서는 윤회를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윤회는 과학적으로 규명된 진실이다‘고 했습니다.


13세기 때 영적 능력자 잘라루드딘 루미 성자는 '달콤한 죽음에의 여행'이라는 시를 통해 "수억만번 되풀이 되는 자신의 환생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생애가 거듭될 때마다 영혼은 한 번도 후퇴함이 없이 꾸준히 진화해 왔고 앞으로도 수억 만 번 윤회를 거듭하다 보면 결국 우리는 모두 신적 존재가 된다'는 신념을 노래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이 고달프더라도 우리 모두 언젠가 신이 될 귀중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확신하고 조금도 좌절하지 말아야하겠습니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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