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결과 '헬조선'

신학과 영성 지금여기 강론대

서울의소리 | 입력 : 2015/09/28 [20:21]

오늘 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루카 12,15.a)

 

탐욕은 ‘더 많은 물질적인 부, 소유물, 권력을 갖고자 하는 욕망’을 의미합니다. 대체적으로 우리는 더 많은 부를 갖고 싶어 하고, 무언가를 더 소유하려고 하고, 직장이나 사회, 인간관계 안에서도 더 큰 힘(권력)을 갖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욕구가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인간의 욕구는 그 방향성과 그 정도에 따라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하기도 하고 추한 삶으로 전락하게 하기도 합니다.

 

탐욕은 분명 우리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남길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에게도 피해를 줍니다. 물질적인 삶과 정신적인 삶의 균형이 깨지고 무엇이 내 삶에 더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기준이 뒤바뀌면서 탐욕의 노예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어떤 부자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부자는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지만 이 소출을 고스란히 자신만을 위해 쓰고자 합니다. 더 큰 창고를 짓고 거기에 모든 곡식과 재물을 쌓아 두고 한평생 먹고 마시고 즐기려고 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자신이 그날 밤에 죽는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성서를 읽다가 ‘부자들에 관한 지침’이 나와 있는 대목을 보았습니다.

“현세에서 부자로 사는 이들에게는 오만해지지 말라고 지시하십시오. 또 안전하지 못한 재물에 희망을 두지 말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시어 그것을 누리게 해 주시는 하느님께 희망을 두라고 지시하십시오. 좋은 일을 하고 선행으로 부유해지고, 아낌없이 베풀고 기꺼이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라고 하십시오. 그들은 이렇게 자기 미래를 위하여 훌륭한 기초가 되는 보물을 쌓아, 참 생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1티모 6,17-19)

 

   
▲ 성 토마스 아퀴나스. 그는 사회정의 문제를 많이 다뤘다.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부자로 사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정당하고 열심히 일한 대가로 돈을 벌어 물질적으로 부유하게 살아가는 것이 잘못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서에서 부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교회 공동체에서 그들에게 지침까지 내리는 것을 보면, 부자로 사는 것이 한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 사회와 공동체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부자 개인의 내적 태도, 부를 얻고자 하는 탐욕이 불러일으키는 악영향, 그리고 부의 분배의 문제는 우리 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모든 부자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부에 대한 태도는 재물에, 물질적인 소유에 절대적인 가치를 두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개인에게 있어서 물질적인 소유를 자신의 인격과 동일시하는 천박한 사고, 물질적인 부가 삶의 질을 결정짓는 물화적인 태도로 나갈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지만,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 것이다."(법정스님) 부자들이 이러한 가치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교회는 재화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는 사유 재산의 합법적 권리를 옹호합니다. 그러나 또한 분명히 모든 사유 재산에 대한 사회적 부채가 있다는 사실도 언제나 가르칩니다. 재화는 하느님께서 정하신 보편적 목적에 이바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선물을 소수를 위해서 사용한다면 하느님의 계획에 맞갖지 않은 것입니다. 이는 인류의 일부 불의한 이들의 습관에 대하여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찬미받으소서”, 76항)

 

부의 재분배 문제는 인류 생존의 문제입니다. 부가 넘쳐나는 사회가 있고, 먹을 것이 없어서 죽어 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인지하고 있듯이, 전 세계적으로 양극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양극화란 사회가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진 극단적인 두 개의 집단으로 나누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특히 한국사회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양극화가 급속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간격이 점차 커지고 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의 차이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의 지적에 의하면, 소득분배 상황이 나빠지고 동시에 중산층이 점차 얇아지고 있고 사회 빈곤층의 문제 또한 심각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세상은 불공평합니다. 소말리아 오지에서 태어난 아이가 부자 아버지를 둔 아이와 결코 동등한 기회를 누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입니다. 미래가 보이질 않습니다. 지난주에 JTBC를 보면서 ‘헬조선’이란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요즘 인터넷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단어인데, 지옥을 의미하는 영어단어인 '헬'과 '조선'을 합친 신조어로 요즘 20-30대 젊은층이 자주 사용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팍팍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냉소적인 표현이 등장한 겁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고 자신을 위해 재화를 모으지 말고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이 생명이 하느님에게서 왔고 하느님이 생명의 주인이시고 이 세상을 떠날 때, 생명은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간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은 눈에 보이는 돈 앞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고, 사랑과 자비, 진실과 관대함, 나눔, 사회정의 같은 복음의 가치들은 돈 앞에서, 인간의 탐욕 앞에서 버려집니다.

 

우리의 삶은, 1) 필요 이상의 것들을 그때그때 나누고, 2) 작고 연약하고 불우한 생명들을 더욱 귀하게 끌어안고, 3)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복음의 가치를 살아가며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지 싶습니다. 그러한 삶이 바로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삶일 것입니다. 

 

   
▲ 사랑의 연탄 나눔.(사진 출처 = www.flickr.com)

 

 

최성영 신부 (요셉) 서강대학교 교목사제 예수회 청년사도직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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