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시대정신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리뷰] 5공 시절 언론통제 보도지침 사건 다룬 연극 ‘보도지침’

서울의소리 | 입력 : 2016/04/22 [21:32]

연극 <보도지침>(연출 변정주)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실제 사건과 인물을 소재로 삼고,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하면서 입소문을 탔다. 지난달 26일 상영을 시작한 <보도지침>은 언론계의 흑역사 ‘보도지침’ 사건을 들춘다. 당시 언론계에 깊숙이 틈입한 권력의 모습에 이에 저항하는 이들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무거운 소재의 특성상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스토리에는 블랙 코미디의 요소들을 곳곳에 배치해 스토리의 완급을 조절한다.

 

<보도지침>의 실화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역사’라고 부르기에 너무 가까운 시대, 고작 30년 전의 일이다. 제 5공화국 시절인 1987년 전두환 정권 당시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 등은 월간 ‘말’지에 정부의 ‘보도지침’을 폭로했다. 이 사건으로 김 기자와 ‘말’지 특집호로 발행한 김종배 편집장 등은 국가보안법과 국가모독죄 등으로 기소돼 법정에 섰다. 그리고 9년 만에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 “언론의 자유가 있는 것 같기도, 없는 것 같기도 하다”는 주인공은 정부가 내린 가이드라인을 ‘보도협의사항’이 아닌 ‘보도지침’으로 규정, 이를 월간 <독백>에 폭로한다. 연극 <보도지침> ⓒ벨라뮤즈

연극은 실화를 상당 부분 각색했지만 권력의 숨은 얼굴을 드러내는 본질을 흐리지 않는다. 김주언 기자 역할의 김주혁은 정부가 매일같이 편집국에 기사의 아이템, 표현 수위까지 일일이 관여하는 데 문제의식을 느낀다. “언론의 자유가 있는 것 같기도, 없는 것 같기도 하다”는 그는 정부가 내린 가이드라인을 ‘보도협의사항’이 아닌 ‘보도지침’으로 규정, 이를 월간 <독백>에 폭로한다. 그의 폭로로 대학시절 같은 연극반이었던 친구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대면하게 된다. 주혁은 기자로, 정배는 <독백> 발행인으로, 승욱은 변호사로, 돈결은 검사로, 대학스승이었던 원달은 재판관으로 한 자리에 모인다. 한 때 “연극은 시대정신의 희망”이라고 함께 외치던 이들은 언론의 ‘보도지침’을 두고 끊임없이 충돌한다.

 

문제의식은 무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보도지침>은 관객을 무대로 끊임없이 소환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막이 오르자마자 관객은 주혁이 ‘보도지침’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장의 기자로서 주혁과 정배를 대면한다. 이어 원고와 피고가 날카롭게 대립하는 재판정에서는 방청객이 되고, 광장의 시민의 일원이 되어 얼룩진 언론의 현실을 목도한다. 연극의 4대 요소인 관객, 즉 무대와 관객석의 경계가 희미해질수록 1980년대와 2016년의 언론의 현실은 짙게 겹쳐진다.

 

또한 무대 위 인물들은 관객에게 대사를 통해 수많은 질문들을 던진다. 그것도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뿐이다. “답하라, 당신은 권력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죽느냐 사느냐”, “몰라서 묻나” 주어나 목적어가 생략된, 다소 추상적인 대사들은 당시 사건 속 문제의식을 꼬집는 ‘직언’이자, 무대 바깥 여전히 쉽사리 개선되지 않는 언론의 현실을 비추는 ‘메타포’처럼 들린다. “100%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는 없지만, 통제에도 수위가 있지 않느냐”는 주혁의 반문 또한 매년 후퇴하는 한국의 언론 자유 지수를 떠올리게끔 한다.

 

▲ 연극 <보도지침> ⓒ벨라뮤즈

어쩌면 <보도지침>이 말하는 건 의외로 간단하다. 무대에서 ‘정의’, ‘자유’, ‘민주주의’ 등 너무나 익숙한 단어들이 수차례 반복되는 만큼 현실에서 그 단어가 지닌 본질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재판관 원달이 최후 변론에 앞서 “과연 거리가 좁혀졌습니까”라는 질문에 “거리를 좁히자고 재판하는 건 아닙니다”라고 단호한 주혁의 대답은 언론을 되짚어보게 한다. 한국의 언론 자유 지수가 뒷걸음질 친 만큼 사람들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언론 스스로가 ‘공정성’이라는 말 뒤에 숨어 의혹 제기를 꺼리고, ‘균형성’이라는 말 뒤에 숨어 편파·왜곡보도의 민낯을 가리는 언론의 현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다시금 무대에서 자주 반복되는 “연극은 시대정신의 희망”이라는 대사를 떠올려본다. ‘연극’이라는 단어 대신 ‘언론’을 넣는다면. 연극 <보도지침>이 던지고 싶었던 묵직한 외침이 아닐까.

 

PD저널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