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정이 기록한 장준하

서울의소리 | 입력 : 2016/05/11 [19:50]

 

장준하를 기록한 책은 그의 자서전 ‘돌베개’를 비롯하여 참으로 많고 다양하다. 그 만큼 우리 시대가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는 가장 최근에 나온 장준하 평전이다. 가장 최근에 나왔다는 것은 새로 발굴된 자료를 그만큼 많이 싣고 있다는 뜻이다....

 

중정은 중앙정보부(현재의 국가정보원)를 말한다. 장준하가 민주화 투쟁을 벌이던 시대는 제대로 기록을 남길 수 없는 시대였다. 민주 세력의 주장과 발언을 보도하는 방송이나 언론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장준하의 발언, 전화 통화 내용, 대화, 연설문, 만나는 사람, 활동 등 일거일동을 기록한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정보기관 중앙정보부였다. 그들은 시간 단위로 장준하의 모든 움직임을 감시하여 보고서로 남겼다. 누군가에게 보고하기 위한 것이었다.

 

저자 고상만은 2003년 2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활동했다. 그 과정에서 장준하 관련 중정 기록을 접할 수 있었고, 그를 바탕으로 새로 쓴 장준하 평전이 이 책이다.

 

장준하는 백범 김구 다음으로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보수적 우파 정치인이다. 정치인이기에 앞서 학도병으로 끌려간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서 목숨 걸고 탈출하여 6,000리 대장정 끝에 광복군에 합류한 독립투사다. 중국 시안에서 OSS(미국 전략첩보대) 훈련을 받고 임시정부와 미국의 연합 국내진공작전을 진행하던 중 일본의 항복 선언으로 낙하산 한번 펴보지 못하고 허망하게 8.15를 맞이한 인물이다. 그리고 암흑 시절에도 언론과 언론인의 사명이 무엇인지 잡지 ‘사상계’와 출판사 ‘사상사’를 통해 몸소 실천했던 인물이다.

 

그가 정치에 직접 나선 때는 박정희가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이후다. 언론인 장준하는 5.16 초기엔 군부 세력에 기대를 걸기도 했다.  4.19 혁명 정신을 민주당이 담아내지 못하는 것을 군부가 완성해 줄 것을 기대하였을 것이다. (장준하는 그 자신이 광복군 출신이고 특수 훈련을 받아서인지 내내 군인에 대한 애정과 기대를 가졌다. 나중에 국회의원이 되어서도 국방위원회에 속했으며, 누구보다 국방력 강화와 병사들의 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했던 우파다.)

 

그러나 권력을 찬탈한 5.16 세력의 실체를 파악한 장준하는 바로 날카로운 비판으로 돌아선다. 특히 만주군관학교와 일제 관동군 장교 출신이며 해방 후에는 군대 내 남로당 조직책으로 여순 사건에 연루되어 숙청되었다가 부활한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어 굴욕적 한일협정 체결을 비롯한 독재를 휘두르자 장준하는 민주화 투쟁의 날을 더욱 예리하게 세운다.

 

민정 이양의 약속을 뒤집고 63년 대통령에 당선된 박정희가 67년 재선에 나섰을 때, 장준하는 4자 회담을 주선하고 통합 야당을 추진한다. 직접 야당 대선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서 박정희의 급소를 찌르는 명연설을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쏟아낸다.  그러나 부정선거가 일상이었던 당시 상황에서 박정희는 재선에 성공하고 장준하는 국가원수 모독죄로 구속된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 하에서 총 37회의 연행과 3회의 구속을 당한다.) 그러나 그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옥중 출마를 하여 유력 여당 후보(강상욱, 당시 공화당 서울시당위원장)를 꺾는 기적을 만든다. 그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어느 정도였는가를 알 수 있다.

 

박정희는 69년 강압적인 3선 개헌을 밀어붙였고, 71년 대통령에 또 당선된다. 그러나 신민당 김대중 후보와 대결한 선거에서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하고도 그 성적표는 초라했다. 급기야 72년 10월 박정희는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를 규정한 헌법마저 짓밟고 계엄령 선포하에 유신헌법으로 폭압적인 1인 독재 체제를 수립한다.

 

73년부터는 숨가쁘게 돌아갔다. 미국 일본과 외교 마찰을 무릅쓰면서까지 김대중 납치살해를 시도할 정도로 박정희는 정적(政敵) 제거에 몰두했다. 최종길 교수도 고문 끝에 죽였다. 누구도 반대를 말할 수 없는 암흑의 시절이었다. 그럼에는 장준하는 73년 12월에 민주 회복을 위한 개헌 청원 백만인 서명운동을 공개적으로 주도했고, 그 파장은 엄청났다. 당시의 공포 분위기에서도 순식간에 30만이 서명을 했고, 억눌렸던 민심이 가두시위로 확산될 조짐이 뚜렷했다.

 

어떻게든 폭압적으로 막지 않으면 정권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74년을 맞이한다. 1월 8일 긴급조치 1,2호를 발표하여 유신헌법과 관련한 일체의 비방, 유포, 보도, 방송은 물론 주장, 발의, 청원까지 금지시킨다. 위반 시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이 가능하며 비상 군법회의를 통해 처벌하도록 하였다. 민주주의가 완전히 사망한 긴급조치 시대가 박정희가 총 맞아 죽는 79년 10월까지 지속되었다.

 

그렇기에 74년은 가장 참혹한 조작 사건이 많이 등장한 해다. 50여명에 이르는 울릉도 간첩단 사건을 시작으로 민청학련, 인혁당재건위 사건 등 수많은 사건들이 조작되었다.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 가족과 친인척 등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이 파괴되었다. 장준하는 체포대상 1호였기에 긴급조치 발동 후 곧바로 구속되어 1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국제적인 외교 압력과 옥중 건강 악화로 동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된다.

 

그러나 석방 후에도 장준하의 민주주의를 사수하기 위한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2차 100만인 서명운동을 도모하다가 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에서 등산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정부는 실족사라고 했지만 의문투성이였다.  그러나 의문을 제기한 신문 기자를 구속했고, 외국 기자는 추방하는 현실이었으니 긴급조치 하에서 진실규명이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2012년) 폭우로 인해 무너진 묘지 이장 과정에서 경악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모습을 드러낸 두개골은 둥그런 모양의 망치에 맞아 함몰된 형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의학자의 유해 정밀 감식을 통해 추락에 의한 골절이 아니라 외부 가격에 의한 손상임을 밝혀졌다. 공교롭게 장준하의 유해가 세상에 나타나 타살되었음을 알린 해는 박근혜가 대통령 선거에 나온 해였다.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에서는 일정한 자격과 조건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통령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박정희 씨만은 안 됩니다. 그는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군 장교가 되어 우리의 독립 광복군에게 총부리를 겨누었으니 이런 인물이 우리나라 대통령으로 있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수치입니다.”

 

67년 박정희가 재선에 도전할 때만 하더라도 박정희의 친일 행적과 남로당 활동 전력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장준하는 ‘대한미국 대통령 자격’을 방방곡곡 다니며 외쳤고, 이것으로 그는 ‘허위사실 공표죄’와 ‘대통령 후보자 비방죄’로 두 번째 구속을 당하였다. 그런데 40여년이 지나 그의 딸이 다시 대통령이 되려 하는 시점에서 그는 두개골이 되어 스스로 세상에 다시 나온 것이다. 그의 67년 연설은 2012년에도 유효했다.

 

그러나 역사는 한 세대 전에 그랬듯이 지금도 정의의 편에 서지 않았다. 박근혜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부정선거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그를 타살한 것이 누구인지 밝히는 진상규명 제정 법안을 외면하였다.

 

중정은 장준하의 모든 것을 자세한 기록으로 남겼지만, 그가 죽던 75년 8월 17일의 현장 기록은 남기지 않았다. (의문사 진상규명위 활동을 했던 저자는 어딘가에 남겼으나 공개하지 않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수사권 없는 조사권만으로는 밝히는 데 한계가 있었고, 이를 밝히는 것은 역사적 과제라고 말했다.) 장준하 감시를 담당하던 중정 과장은 그가 죽은 다음날 가장 바빠야 할 시간에 오히려 휴가를 떠났다.

 

장준하를 기록한 책은 그의 자서전 ‘돌베개’를 비롯하여 참으로 많고 다양하다. 그 만큼 우리 시대가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는 가장 최근에 나온 장준하 평전이다. 가장 최근에 나왔다는 것은 새로 발굴된 자료를 그만큼 많이 싣고 있다는 뜻이다....

 

출처 -  http://blog.naver.com/gaebbul99/22070605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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