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이두황 100년만에 '처단'

윤치호 단죄비 이어 이두황 단죄비 세워··· 반민족 행위 경계 삼아

서울의소리 | 입력 : 2016/08/13 [13:32]

친일파의 단죄비를 세워 역사의 아픔을 지우기보다는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는 움직임이 활발해 지고 있다. 그 일환으로 전북도내에서는 명성황후 시해 조력자로 활동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이두황의 단죄비가 세워졌다.

 

전주시 기린봉에 위치한 친일파 이두황의 묘비 앞에서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 김재호 지부장(사진 오른쪽)이 명성황후 암살과 일제의 수탈에 협력한 이두황의 친일반민족 행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전북일보

 

전북일보에 따르면 11일 민족문제연구소전북지부는 오는 13일 친일반민족행위자 이두황의 단죄비를 세우고 제막식을 갖는다고 밝혔다.

 

단죄비는 이두황의 묘가 있는 기린봉인근 전주시 중노송동 기린봉사거리 일대에 세워진다. 도내에는 진안 윤치호의 단죄비에 이어 두 번째다.

 

연구소에 따르면 이두황(1858~1916)은 서울의 가난한 상인(常人) 출신으로 1894년 동학운동 진압에 투입돼 동학농민군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진압하는데 앞장선 인물이다.

 

이후 이두황은 명성황후 살해 사건에 훈련대 간부 제1대대장 자격으로 제2대대장 우범선, 제3대대장 이진호, 전 군부협판(軍部協辦) 이주회와 조선인으로 직접 명성황후 살육 프로젝트를 세워 일국의 국모를 살해해 불태우는 엽기적인 범죄행각에 가담하기도 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아들과 함께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도주했다가 1907년 귀국해 1908년 전북 관찰사에 임명돼 이른바 일본의 “남한대토벌”로 불리는 호남지역 의병운동을 초토화 시키는데 앞장서기까지 했다.

 

파렴치한 이두황의 행적은 죽을 때까지 계속됐으며 전북 도장관으로 재직 하면서 일본의 식민통치하수인으로 복무하고 일본의 노지수탈에 협력했다. 일제는 이러한 이두황에게 한국병합기념장, 일본적십자가사조선본부 유공장, 천황즉위기념대례기념장, 훈3등 서보장 등을 수여했으며, 전라북도 장으로 장중히 엄수됐다.

 

김재호 지부장은 "이두황의 잘못된 역사적 사실의 행적을 낱낱이 드러내놓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교훈과 경계를 삼기 위해 단죄비를 세우게 됐다"며 고 말했다.

 

한편. 현재 전국에 세워진 친일반민족행위자 단죄비는 진안에 윤치호, 춘천 정선에 이범익, 제천에 반야월, 국립국악원에 함화진, 김기수 등의 단죄비가 있다.

 

이날 설치된 단죄비는 이틀 뒤인 13일 오전 11시 기린봉아파트 아래 권훤로 사거리에서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 주관으로 ‘친일 반민족행위자 이두황 단죄비 제막식’을 통해 세상에 공개된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
친일파 관련기사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