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딱지'는 더이상 전가의 보도가 아니다

권종상 | 입력 : 2016/08/23 [22:46]

재미동포 린다 리씨가 제소한 종북몰이에 대한 배상 재판, 꽤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결국 이씨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또 미국 내 한인여성 대표 커뮤니티인 미시 USA가 종북단체가 아니라는 판결도 아울러 났습니다.

 

 

사실 당연한 결과이지만, 이걸 받아들이면서 기뻐해야 한다는 사실조차도 우리가 처한 슬픈 상황을 말해주는 것 같긴 합니다. 이씨는 평범한 생활인이었고, 그녀가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데는 세월호 문제가 크게 작용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쫓아가다보니 결국 만나는 것은 잘못된 정치였습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투사가 됐습니다.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이 그랬고, 밀양의 나이드신 분들이 그랬습니다. 세월호 문제도, 그리고 지금의 사드 배치에 관한 문제도, 정치에 별 관심 없었던, 그리고 거의 관성처럼 현재의 집권여당을 찍어오던 사람들을 투사로 만들었습니다.

 

린다 씨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나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자들은 늘 같은 말로 이들을 탄압했습니다. 그것은 이승만 정권부터 지금까지 공통된 것이었습니다. 빨갱이의 낙인. 그것은 저들이 가진 전가의 보도였습니다. 이승만은 자기 정적 뿐 아니라 좌익 전력이 있다는 죄로, 보도연맹에 보릿말이나 받고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가입했던 사람들, 말 그대로 평범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고, 그것은 살아남은 이들에게 공포의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빨갱이, 그 말은 죽음의 말이었고, 어느날 갑자기 자기 집 뒤 골짜기로 끌려가 죽음을 당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우리가 늘 쓰는 말 중 '골로 간다'는 표현은 이런 역사적 배경을 지닌 것이지요. 골짜기로 가면 죽었으니까.

 

민주정부 10년동안 그렇게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 억울하게 빨간 두껍을 쓰고 자기의 삶이 망가져 버린 사람들에 대해 부족하나마 재평가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일부였지만 억울함을 풀어낼 수 있었고 이 말도 안 되는 빨갱이 사냥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근거가 주어졌습니다만, 이명박의 집권은 이 모든 것을 다시 과거로 돌려버렸습니다.

 

빨갱이는 종북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역시 같은 목적으로 쓰여 왔습니다. 인터넷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일들에 자기 의견을 내는 사람들은 예외없이 종북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일본의 식민지배 역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도,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심지어는 정부의 태만으로 인해 소중한 자식들의 죽음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도, 이 딱지는 그대로 붙여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한국 사법체계조차도 이번에 인정한 것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을 겁니다. 일단 분단 체제를 자기들의 존재 연장의 숙주로 삼고 있는 이들의 작태가 도를 넘어섰다는 것이 그 하나일 것이고, 종북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인격의 말살이 얼마나 언어도단인가를 보여준 것이고, 한국의 사법부가 행정부에 대해 견제 역할을 오랜만에 한 것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역시 분단의 극복입니다. 그리고 분단의 체제가 극복되려면 먼저 지금 이 분단의 상황을 조금 더 전향적으로 바라보는 정치 세력이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정권교체는 반드시 선행돼야 하며, 이를 통해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추진했던 남북 관계에서의 평화 구축이 따라야 합니다.

 

분단은 한반도에서 이뤄지고 있는 비상식적인 일들을 합리화하는 데 이용돼 왔습니다. 평화적인 남북관계가 선행돼야 그 다음에 통일도 이뤄질 수 있고, 분단 획책 세력들의 준동도 막을 수 있습니다. 린다 리 씨 판결이 의미가 있는 것은, 분단의 현실과 이를 이용하는 세력들의 준동에도 불구하고 상식의 힘이 이겼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판결에 박수를 보냅니다.

 

오랫동안 불편하고 아픈 굴레에 쓰여 맘고생했던 린다 님에게도 당연히 큰 박수를 보냅니다. 쉽지 않은 싸움 잘 해 냈고, 그걸 통해 분단의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진실은 이긴다는 것을 보여 주었으니까요. 당신이 지켜낸 그 명예는, 바로 상식의 명예니까요.


시애틀에서...작성자 권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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