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현’ 돌풍, 인간 노무현에 대한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 3만 관객을 돌파하며 장기 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의소리 | 입력 : 2016/11/03 [14:51]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조용한 흥행 돌풍이 의미하는 것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민주공화정의 위기를 목도하고 있는 이때, 무슨 정신으로 영화를 보랴. 영화를 보는 것도, 영화 글을 쓰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국내 대작 영화가 없는 틈을 타 극장가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스크린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

 

이 와중에 조용한 반향을 일으키는 영화가 있다. 소수의 스크린에서 개봉 중이면서도 어느새 3만 관객을 돌파하며 장기 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는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이다.

 

 

영광의 세월이요, 치욕의 세월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16년 만에 공개된 자료들과 노무현을 회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실린다. 여기에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던 백무현 화백의 이야기가 함께 녹아든다. 그 결과 영화는 무현이라는 이름을 지닌 두 사람의 기록이 된다. 노무현과 백무현, 그들이 부산과 여수라는 두 도시에서 2000년과 2016년에 남긴 기록들. 이를 통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는 디킨즈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인용문으로 시작된다. 프랑스 혁명의 시기, 파리와 런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랑과 죽음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의 첫 구절은 “영광의 세월이요, 또한 치욕의 세월이었다. 지혜의 시대이자 몽매의 시대였다. 믿음의 시절인가 하면 불신의 시절이었다. 광명의 계절인 동시에 암흑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 곧바로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들 앞에 모든 것이 마련되어 있는 가 했으나 실제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었다.”이다. 프랑스 혁명기를 가리키는 이 발문을 노무현의 삶과 죽음을 그린 다큐멘터리의 발문으로 가져온 것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과연 영광의 시대이자, 치욕의 시대였으니.

 

노무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고 할 때, 어느 시기 어떤 사건을 중심으로 담을 것인지는 감독의 선택에 달려 있다. 영화는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에 치러진 총선에서 부산에 출마하여 낙선하는 노무현을 담는다. 그리고 2009년 그의 죽음을 담는다. 영화는 또한 백무현 화백이 2016년 총선에서 여수에서 출마하여 낙선하는 것과 그의 죽음을 담는다. 노무현의 삶 중에서 대통령에 당선되고 국민들의 지지와 환호를 받았던 영광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대통령 당선이라는 사건을 한 마디의 내레이션으로 갈음한다. 영화는 왜 하필 그가 마지막으로 맛보았던 낙선의 고배와 안타까운 죽음에 주목했을까. 그리고 마치 그 좌절의 뒤를 잇는 듯 한 백무현 화백의 낙선과 죽음을 담았을까.

 

 

왜 하필 좌절과 죽음을 다루었을까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참여정부의 공과를 진지하게 논하거나 노무현을 위대한 인간으로 미화하는데 별 관심이 없다. 그의 영광이 아닌 좌절을 담음으로써, 그가 무엇을 하고자 하였는지, 그가 어떻게 실패를 견디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말을 하다가 울컥 목이 메어 당혹해한다. 영화는 굳이 그 모습을 삭제하지 않는다. 차라리 우리들의 약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편을 택한다.

 

노무현이 지지자가 없는 지역에서 유세를 하다 들른 다방에서 “지지자가 없으면 유세를 하지 말아야 하나?”는 질문을 던지고 종업원의 대답을 진지하게 듣는 모습, 비 오는 날 유세를 공쳤다며 소파에서 잠을 청하는 모습, 쉰 목소리로 ‘부산 갈매기’를 노래하는 모습 등은 너무도 친숙하고 안쓰럽다.

 

김대중 정부에서 호남만 특혜를 입었다고 유세하는 한나라당 허태열 후보에게 “지역감정에 편승하지 마십시오”라고 준엄하게 꾸짖고, 자신의 참모들에게 “역사의 피해자인 호남의 지역감정과 가해자인 영남의 지역감정을 동일 선상에 놓고 보아서는 안 된다”고 분명하게 말하는 그는 확고한 신념을 지닌 정치인이다. 신하가 왕을 탓할 수 없다는 유교의 군신관계를 들먹이는가 싶더니, 곧바로 그 왕이 지금은 국민이라고 말하며, 정치인은 국민을 탓할 수 없고 계속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그는 주권재민의 사상을 뼛속 깊이 받아들인 민주주의자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아가라, 우리 부모님들은 말씀하셨지만 더 이상 그런 세상에서 그렇게 가르치며 살수 없습니다.”라고 목 놓아 외치는 자, 낙선 후 캠프 해단 식에서 “역사에서 실패가 훨씬 많았다. 그러나 길게 보면 정의가 승리한다.”고 차분히 말하며 우는 운동원들을 다독이는 자, 그는 역사의 진보를 믿고 헌신하고자 했던 개혁주의자였다.

 

 

용기를 내라는 다독임

 

신문의 시사 만평가이자 <만화 박정희> <만화 노무현> 등을 그린 백무현 화백의 2016년 여수출마. 일찍이 지역감정을 없애기 위해 온 몸을 던진 노무현이 있었건만, 이제는 아이러니 하게도 호남의 지역감정을 앞세운 ‘국민의 당’ 후보에 밀려 고전하는 백무현. 그의 유세를 도우러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내려오기도 했지만, 좀처럼 판세를 뒤집지 못한다.

 

백무현의 딸이 단상에 올라 “가난한 가장이었던 아버지 백무현”을 말할 때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노무현과 같은 길을 걷게 될까봐 겁난다”는 말을 할 때 그 말이 복선이 되리라 짐작한 이는 적을 것이다. 그러나 유세도중 병원에 들른 그에게 암이 발견되었음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듣게 되었을 때, 보는 이의 뇌리엔 ‘운명이다’라는 말이 떠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좌절과 죽음. 그것은 현재의 노무현이 겪는 반복적인 실패이다.

 

 

하지만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가 마냥 좌절과 죽음을 부여잡고 우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보는 도중 눈물을 훔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영화에는 뭔가 후련함과 위안이 담겨 있다. 자신이 기억하는 노무현을 말하면서, 지금은 친노 패권을 말할 때가 아니라 여전히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유신 패권과 싸워야 하지 않느냐고 담담히 말하는 사람, 그리고 노무현의 죽음 이후 그를 가슴에 품은 사람들이 일어나 싸우고 있기 때문에 노무현은 실패한 게 아니라 성공했다고 말하는 한 종교인의 위로는 비상한 용기를 북돋운다.

 

백무현을 비롯하여 영화 안팎에서 그를 기리는 사람들이 좌절을 겪고 있지만, 그 실패의 경험들이 쌓여 역사가 진전하리라는 것을 영화가 조용히 다독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인권의 노래 <걱정 말아요 그대>는 탁월한 선곡이다. 실패의 바닥에서 ‘지나 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고,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하자’는 절창은 기묘한 달관과 긍정을 선사한다.

 

인간 노무현에 대한 향수가 아니다

 

가장 치욕스러운 정치 추문으로 일상을 추스르기 힘든 지금,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가 조용한 흥행을 거두고 있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것은 민주정부 시절 연설비서관을 지낸 강원국의 책 <대통령의 글쓰기>이 발간 된지 2년이 지나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윤태영의 책 <대통령의 말하기>가 화제에 오르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인간 노무현에 대한 감상적인 회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민주정부 10년은 일제와 독재에 항거했던 세력들이 수많은 좌절의 경험을 딛고 처음으로 승리하여 정권을 잡았던 시기였고, 참여정부는 민주주의가 정점에 오른 시기였다. 당시의 시대정신이 가장 멀리 가 있었고, 당시의 국가 시스템이 가장 선진적이었다.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이 이후 민주주의의 후퇴와 국가 시스템의 붕괴를 경험하면서, 그 시대에 대한 다른 관점이 생긴 것이다.

 

가령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은 리더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는 돈과 권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말과 글로 하는 것이다.”라는 노무현의 말이 그 시절에는 심상하게 들렸지만, 이제는 가슴을 후벼 파는 통한의 말로 들린다. 연설 비서관들과 얼마나 치열하게 연설문을 다듬고, 관료조직과 어떤 회의를 통해 결정에 이르렀는지 하나하나의 과정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요컨대 지금의 관객들에게 그 시절의 민주주의와 국가 시스템은 다시 회복해야 할 고토이자, 딛고 넘어서야 할 제로 그라운드로 인식된다. 인간 노무현에 대한 맹목적인 향수가 아니다. 잠시 맛보았던 민주주의의 공기와 잠시 몸담았던 선진국 시민으로서의 기억이 간절하게 그 시절을 불러내는 것이다.

 

역사에서 반동의 시기는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힘을 내자.

 

원문기사 - 엔터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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