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교수]'역선택'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라도 하고 쓰는 것인지

멀쩡한 경제학적 용어가 오남용의 수모를 당하고...

서울의소리 | 입력 : 2017/02/19 [23:05]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

외부 인사들이 더불어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과정에 개입해 자기 입맛에 안 맞는 후보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하더군요. 남의 잔치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이 들어가 재를 뿌리려는 심보가 고약하지만, 법이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 그런 짓을 한다면 어찌 하겠습니까?

요즈음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사건에 관련된 수사와 재판과정을 보면서 법이 허용하는 자유의 한계가 의외로 넓다는 데 놀라게 됩니다. 국회에서 불러도 숨어버리면 그만이고, 특검에서 불러도 몸 아프다고 핑계 대면 그만이더군요.


강압수사를 받은 적이 젼혀 없는데도 기자들을 향해 강압수사를 받았다고 소리치면 그걸로 끝이었구요.  돈 없고 빽 없는 잡범이라면 그런 자유는 꿈도 꾸지 못할 텐데요.

그런데 나는 더불어민주당 대선호보 경선에 들어가 재를 뿌리려는 행위에 '역선택'이라는 이름이 붙은 걸 보고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대체 그 행위에 무슨 역선택의 소지가 있다고 그런 경제학적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나는 1989년에 쓴 "미시경제학"에서 역선택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교과서에 소개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이 이처럼 오남용되고 있는 현실에 분노마저 느낍니다.

경제학을 배우신 분은 잘 아시겠지만 역선택(adverse selection)은 정보경제이론(economics of information)이라는 분야에 등장하는 용어입니다. 거래의 두 당사자들 중 한쪽만 정보를 갖고 있을 뿐 다른 쪽은 정보를 갖지 못한 비대칭정보의 상황에서 발생하는 독특한 현상 중 하나가 바로 이 역선택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중고차를 사려고 하는 사람은 그 차가 겉모양뿐 아니라 속도 좋은 차인지의 여부를 잘 모릅니다. 물론 팔려고 내놓은 사람은 과거에 충돌의 전력이 있는지 혹은 침수피해를 당한 적이 있는지 등에 대해 잘 알고 있지요.


겉만 멀쩡할 뿐 속으로는 골병이 든 중고차를 ‘개살구’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반면에 겉과 속이 모두 좋은 차를 ‘참살구’라고 부르기로 하지요.
(참살구라는 말이 없지만 개살구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내가 편의상 지어냈습니다.)

이런 비대칭정보의 상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중고차의 내막을 잘 모르는 사람은 두 종류의 차에 대해 지불할 용의가 있는 금액의 중간 정도의 가격을 내겠다고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참살구를 팔려고 내놓은 사람과 개살구를 팔려고 내놓은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짐작해 보십시오.

참살구를 팔려고 내놓은 사람은 그 가격엔 팔지 못하겠다고 거부하는 반면, 개살구를 팔려고 내놓은 사람은 신나서 팔겠다고 나설 것입니다. 따라서 이처럼 겉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참살구와 개살구를 구별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개살구들만이 거래되고 참살구는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바로 이것이 역선택이라는 현상입니다.

지금 보고 있는 비대칭정보의 상황에서 정보를 갖지 않은 측, 즉 중고차를 사려고 하는 사람은 참살구를 팔려고 내놓은 사람을 만나 거래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막상 만나서 거래를 하는 사람은 개살구를 팔려고 내놓은 사람입니다. 이처럼 원하지 않는 상대와 만나 거래를 할 가능성이 큰 현상을 가리켜 역선택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문제되고 있는 상황에 무슨 비대칭정보의 상황이 존재합니까?
오히려 후보 경선에 개입하려는 외부인사들은 여러 후보들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자신의 입맛대로 결과를 좌우하고 싶어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역선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는 근거 그 자체가 전무한 상황입니다.

그들이 무얼 하든 나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멀쩡한 경제학적 용어가 오남용의 수모를 당하고 있는 모습은 나를 분노하게 만듭니다. 

 

출처 : 이준구 전 서울대 경제학 교수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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