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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진실'을 외면한 언론의 '중립과 공정'은 그 자체로 '편파이자 불공정'

박성호 MBC해직기자 박사논문 ‘공영방송 뉴스 불편부당성 연구’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7/07/16 [20:45]

'정의와 진실'을 외면한 언론의 '중립과 공정'은 그 자체로 '편파이자 불공정'

박성호 MBC해직기자 박사논문 ‘공영방송 뉴스 불편부당성 연구’

서울의소리 | 입력 : 2017/07/16 [20:45]

언론에게 중요한 것이 ‘진실’인가 ‘균형’인가?

 

지금껏 한국의 기자들은 ‘누가 이렇게 말했고 다른 쪽은 이렇게 말했다’는 보도가 중립이고 공정이라 배워왔다. 그러나 정의와 진실을 외면한 중립과 공정은 그 자체로 뉴스수용자에게 편파이자 불공정으로 다가왔다. 한국의 공영방송이 공영성을 상실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 박성호 MBC해직기자. ⓒ미디어오늘

 

박성호 MBC해직기자가 고려대에서 ‘공영방송 뉴스의 불편부당성 연구 : BBC와 KBS의 선거보도를 중심으로’란 주제의 박사논문을 펴냈다. BBC ‘10시 뉴스’의 2015년 영국 총선 투표일 이전 18일 간 선거뉴스와 KBS ‘뉴스9’의 2012년 한국 대선 투표일 이전 21일간 선거뉴스를 전수 분석해 신화처럼 유통되던 BBC의 ‘실체’를 추적한 점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많다. 

 

분석 결과 BBC는 정책 이슈 중심으로 해석적 역할에 비중을 두며 양가적 기사가 자주 등장한 반면 KBS는 후보자 언행을 전달하는 단순 중계 역할에 충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BBC뉴스가 비판적 검증에 적극적인 반면 KBS뉴스는 무비판적인 태도가 두드러졌다. 또한 BBC는 다관점적인 뉴스를 지향했고 KBS는 단일 관점 뉴스를 양산했으며 BBC뉴스 육성 분포는 정치인 못지않게 시민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 반면 KBS뉴스에선 정치인 독점이 두드러졌다.  

 

예컨대 앵커 단신과 시민 리포트를 제외한 뉴스 아이템에서 관점의 수를 세어본 결과 BBC는 하나의 아이템에 4개 이상의 관점을 담은 경우가 29%로 가장 높았다. 반면 KBS는 1개 관점을 가진 경우가 40.7%로 가장 높았다. 4개 이상 관점은 8.3%에 불과했다. 기사의 문장 기술 방식빈도에선 BBC의 경우 해설 문장이 48.7%로 가장 높았던 반면 KBS는 정보 전달 문장이 26.7%, 간접 인용 문장이 26.2%였으며 해설 문장은 17.4%에 그쳤다. 아이템 길이도 BBC는 평균 2분54초, KBS는 1분34초로 1분20초 차이가 났다.  

 

 BBC·KBS 선거보도 실증적 분석…“BBC는 ‘묻는’ 기자, KBS는 ‘듣는’ 기자”

 

▲ 영국 BBC본사

▲ 서울 여의도 KBS 본사. ⓒ 미디어오늘

 

행위자별 사운드바이트 비율도 주목할 지표다. BBC는 정치지도자(41.6%), 시민(33.1%), 정당(10.2%)순이었던 반면, KBS는 정치지도자(65.7%)가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이어 정당(23.3%), 전문가(7.3%) 순이었다. 시민 비율은 단 1.1%에 불과했다. 기사당 시민 취재원 수도 BBC가 평균 1.5명, KBS는 0.1명이었다. KBS 선거보도에서 다양한 삶의 공간을 대표하는 시민들의 의견은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다.

 

박 기자는 “충분한 설명으로 시민의 이해를 돕는 것을 불편부당성의 요소로 받아들인 BBC는 해석적 저널리즘의 관행이 기사 작성과 주제 선정 등에까지 두루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박 기자는 “BBC뉴스는 정치인들과 면대면 상황에서 기자의 도전적 질문이 검증 역할을 수행했다”고 지적하며 “BBC는 묻는 기자, KBS는 듣는 기자로 서로 다른 기자의 정체성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BBC는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뉴스, 맥락과 배경을 충분히 설명하는 뉴스, 집요하게 묻는 뉴스였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신뢰도와 영향력을 자랑하는 JTBC ‘뉴스룸’이 ‘한 걸음 더 들어간 뉴스’로서 맥락저널리즘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집요하고 공격적인 인터뷰가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에서 BBC와 JTBC 뉴스의 공통분모는 시사점이 있다.  

 

박 기자는 한국 언론계에서 신화처럼 유통되고 있는 BBC에 대한 실증적 분석을 ‘BBC에 대한 찬사’로 끝내지 않는다. BBC의 롱 저널리즘이 최선이므로 이를 이상향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는 한국언론계의 ‘공정성 신화’에 도전적 메시지를 던진다.

 

오늘날 공정하다는 것은 ‘수학적 균형’이나 ‘의견 없음’이 아니다. 지지율 등을 바탕으로 한 ‘비례적 균형’이나 다양한 의견과 사안의 복잡함을 인정하는 ‘전체성’이 곧 공정함으로 인식될 수 있다.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에 따르면 JTBC는 박근혜 탄핵국면에서 75%대 25% 수준이었던 탄핵 찬반여론에 맞춰 리포트도 탄핵찬성 75%, 탄핵반대 25% 분량으로 보도했다. 유권자가 궁금해할만한 질문은 집요하게 반복적으로 물었다. 그것이 뉴스수용자에게는 실질적인 공정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JTBC는 한국 방송뉴스가운데 BBC를 가장 많이 닮았다. 디자인=미디어 오늘 .

 

박성호 기자는 “BBC와 KBS가 자체적으로 제정한 보도 가이드라인에서 각각 불편부당성과 공정성의 지향점은 큰 차이가 없었지만 ‘듣기’의 불편부당성을 BBC는 탄력적으로, KBS는 시간 맞추기를 통해 기계적으로 실천했다”며 “BBC가 균형을 보도의 수단으로 여긴 반면 KBS는 사실상 목적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기자는 두 나라 공영방송의 차이가 “언론 전문직화 수준, 뉴스에 대한 성찰과 개선의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 정도라는 근본적인 비대칭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하며 언론의 신뢰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인 불편부당성(어느 편도 들지 않으며 편견과 선입견을 배제한 상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듣기 △설명하기 △묻기라는 다층적 차원의 접근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KBS의 113페이지짜리 공정성 가이드라인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 불편부당성의 요소. 박성호 기자 논문에서 인용. 디자인=미디어 오늘

 

이 논문은 공정보도를 고민하는 모든 현장 기자들에게 유용하다. 저자는 “현장기자들의 답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혁이라는 하드웨어에 쏠려 있을 뿐, 소프트웨어에 관한 논의는 빈곤해 보인다”고 지적하며 “그 지점이 이 연구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되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 기자는 1995년 MBC기자로 입사해 민주당과 한나라당 출입 기자를 거쳐 국회반장까지 경험한 베테랑이다. 그래서인지 논문에 담긴 그의 고백이 더 와 닿는다.  

 

“나는 이번 연구과정에서 나를 포함한 한국의 많은 정치부 기자들이 정치인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온 심경을 집중하는 반면, 선거의 주인공인 시민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으로 일관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당신의 말을 어떻게 믿으라는 것이냐’고 따져 묻는 기자의 모습은 나의 머릿속에도 자리 잡고 있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2012년 170일 파업 당시 MBC 기자회장이었던 그는 공정방송을 위해 싸우다 현재는 해직언론인 신분이다. “이번 연구에서 드러난 KBS뉴스의 문제는 내가 몸담았던 MBC의 문제이기도 했다. … 공정보도는 현장에서 부딪히는 매일의 과제였고, 공영방송 종사자로서 마땅히 수행해야 할 사명이었으며, 해직기자로서의 운명을 걷게 된 원인이기도 했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공정하고 불편부당한 뉴스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얻고 싶었다.” 해직 5년, 그는 여전히 공정방송을 고대하고 있다.

 

원문기사: 미디어 오늘 언론에게 중요한 것이 ‘진실’인가 ‘균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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