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재정정책’으로 민생안정, 복지경제 실현해야

‘민주정치’는 시민, 경제민주화는 ‘노동자참여경영’이 관건

권혁시 칼럼 | 입력 : 2017/07/21 [02:12]

조세강화로 재정정책을 실행하고, 

노사 공동경영의 법제화,산업별·지역별 노동조합 결성을 확대한다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5월 17일에 출범하여 2개월이 지난 이달 14일, 공식 활동을 종료하였다. 그리고 어제 19일, ‘국정운영 5개년 계획’;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였다.


모두에 내세운 ‘5대 국정목표’는 ①국민이 주인; 국민주권 실현, 소통의 광화문 대통령, 투명하고 유능한 정부, 정부 권력기관 민주적 개혁, ②더불어 잘사는 경제; 소득주도 일자리경제, 공정경제, 과학과 4차산업혁명, 중소벤처 혁신성장, ③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포용적 복지국가, 국가책임 보육·교육, 생명 지키는 안심사회, 차별없는 공정사회, 자유·창의 문화국가, ④고르게 지역발전; 풀뿌리 자치분권, 골고루 균형발전, 사람이 돌아오는 농촌, ⑤평화와 번영; 강한 안보와 책임국방, 남북협력과 비핵화, 당당한 외교 등이다.

 


주요 국정계획 가운데 특별히 관심을 갖고 예의주시한 이슈는 거듭 주장한 바처럼 민생경제, 국민교육, 시민정치다. 왜냐하면 교육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기회평등’이 완전하게 실행되어야 하고, 경제는 말 그대로 ‘경세제민’(經世濟民)이 이루어져야 하며, 민주정치는 국민 참여정치, 곧 ‘시민정치’가 확대, 정착되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교육기회의 평등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과중한 비용부담으로 약자들의 가정경제(가계)를 위협하는 사교육 문제에 대한 특단의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민생의 기본인 주거·교육·의료에 대한 공개념 실현의 의지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핵심적이며 구체적인 방안도 극히 미흡하다. 시민정치, 책임정치의 첩경인 국민소환·국민발안·국민투표 등, 직접민주제의 도입 역시 빠져있거나 충분치 않다.


이를 일일이 다 짚어 한 번에 말할 수는 없는 바,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국정과제인 ‘민생경제’ 문제부터 거론해야 할 듯싶다(이상의 문제들을 다음 기회에 소고(小考)에 불과하지만, 나름대로 구상한 바 있는 ‘정책제안’을 제시하여 좀 더 포괄적이고 구체적으로 거론하는 게 어떨까 생각 중이다).

 

강력한 ‘재정정책’으로 민생안정, 복지경제 실현
재원확충-분배정의에 의한 ‘세제강화’(합리화, 조세정의·세제개혁 추진)

 

우리나라 ‘민생경제’ 위기의 근본원인은 ‘중소기업 부실, 고용불안·소득감소 및 가계부채 급증’이다. 이는 소비위축, 내수경기 침체, 중소기업(자영업체 포함) 매출부진의 악순환을 반복하면서 경제의 불균형과 저성장을 확대, 증폭시켰다(경제성장률이 1980년대는 8.6퍼센트였으나 근래에는 2퍼센트대로 추락했는데, 경기 사이클이 아닌 구조적 현상이어서 문제가 심각하다).


요컨대, 빈부의 국민 간의 격차는 바로 기업 간(대기업, 중소기업)의 격차에서 기인한 것이다. 삼성·현대·LG·SK 등 4대 재벌그룹의 연간 매출액이 GDP(국내총생산)의 60퍼센트를 점유하는 사실이 이를 반증하고도 남는다. 그렇게 절대다수 국민의 ‘고용·소득’의 원천인 수많은 중소기업의 부실화에 비례하여 고용불안, 소득불평등이 증폭된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


이를테면 2003년 이후 10년 동안 경제성장률은 46퍼센트를 기록했는데도 실질임금은 반도 안 되는 20퍼센트 포인트 오르는데 그쳤다. 더구나 1980년대,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중소기업 평균임금이 대기업의 90퍼센트를 넘었으나 근래에는 62퍼센트(100대기업 대비 39~42퍼센트)로 임금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토록 양극화가 극심하다. 그래서 가진 자들(부유층)이 나라 전체의 부(富)를 거의 독차지, 독식하여(10퍼센트가 70, 1퍼센트가 30퍼센트) 그 나머지를 서민들이 차등하여 나눠 갖는 경제적 ‘불평등’이 극에 달한 것이다. 간과할 수 없는 ‘부의 차별’인데, 그런 탓에 ‘국민 행복지수’는 143개 나라들 가운데 118위(2015년 3월, 갤럽조사), ‘2015 삶의 질·How’s life?’는 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 27등으로 최하위권이다(경제협력개발기구 보고서). 그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삶의 만족도에 관한 지표들도 밑바닥이다.

 

그러한 일례로써 각별히 주목해야 할 사태는 ‘인구절벽 해소’ ㅡ 출산율이 2.08 미만으로 저하되면 국가의 존립이 불가능하다 ㅡ 그 대책의 실효성이 무색할 정도로 이른바 '헬조선'이 키운 대표적인 현상, 자화상이 ‘N포’다. 특히 딩크족(DINK, Double Income No Kids), 즉 결혼을 해도 자식을 갖지 않겠다는 젊은이들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니 슬프고도 두려운 일이다. 


맞벌이를 해도 감당이 안 되니 ‘무자식 상팔자’라는 자조, 자포에 마음이 아프다. 앞서 강조했듯이 ‘사교육의 고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취업난(청년실업)에 더하여 저임금·고용불안으로 소득의 불안정이 걱정되고 주거문제에 대한 불안감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더 말할 나위 없이 ‘신자유주의’가 불평등·양극화를 몰고 왔고, 그래서 서민(민생)경제를 불안에 빠뜨린 것이다. 대다수의 일반서민과 중소기업, 영세업체들이 절망하고 기력을 잃은 현 상태를 타개, 극복할 수 있는 다른 처방, 비책은 없다. 단지 분배정의에 입각한 세제강화(합리화, 세제개혁·조세정의 실현)를 통한 광폭하고 강력하며 보다 유효한 ‘재정정책’을 실행하여 경제활성화를 바탕으로 ‘복지경제’(welfare economic, 후생경제)를 실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사회중시 경영의(socially responsible management) 차원에서 ‘초과이익 공유’와 함께 특히, 극소수의 기득권층이 거머쥐는 자본소득에 대하여 중과세(부유세)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재원조달·확충방안이 선결되어야 할 ‘복지확대’ 정책을 입안하면서도 증세를 배제하고 있거니와 재고해야할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적이 의아스러운 점 가운데 하나는 경제정책의 전부인 것처럼 줄곧 강조하였던 ‘경제민주화’에 관한 비전(vision)과 방책(solution)이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것이다. 물론 경제민주화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민생안정·복지경제’의 필수불가결한 절대적 조건의 국정과제는 결코 아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정부여당이 오래 전부터 내세웠던 슬로건이며 경제정책의 중심이슈였기에 일관성은 물론 국가정책에 관한 한, 종국적 목표로써 이상(vision)이 실제(현실)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렇듯 “이상을 실현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는 관점에서 정책집행에 있어 시간적으로 최우선 순위는 아닐지라도 경제부문 ‘과업의 최종목적’(goals)으로 선언되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이를 간과한 이유가 경제민주화의 적확한 개념을 제대로 인식,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그래서 이를 거론치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노동자참여’의 기업경영·임금협약 
‘민주정치’는 시민, ‘민주경제’는 노동자참여가 핵심

 

우리나라 경제는 ‘임금소득’의 격차가 아주 큰데다가 ‘재산소득’은 엄청나게 편중되어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실업자나 저소득층을 위한 ‘고용창출·소득증대’를 실현하여 빈부격차를 줄임으로써 경제적 평등을 이루는 것이 민생안정의 가장 실질적인 대책이고 급선무다. 이를 위해서 과감하고 강력한 ‘재정정책’이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모든 정책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경제민주화는 아니라는 점 또한 명확하게 인식하여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금권(경제력)을 최상의 가치로 여길뿐더러 그로 인하여 임노동(wage labour)에 대한 착취가 자행되기 십상인 까닭이다. 갑질의 횡포가 주로 그래서 일어난다. 가진 자들의 갑질은 종근당 같은 대기업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중소·영세기업, 자영업체의 고용주가 피고용자 노동자들에게 더 심한 임금착취와 인권유린을 아무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무한 경쟁은 이를 뒷받침하고 부추긴다. 그렇게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이 작동하는 시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이 같은 사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경제의 민주화론을 말하는 경제학자, 전문가 또는 정치인들은 임금의 격차완화 내지 균등화를 통한 불평등, 양극화의 해소를 그에 대한 방책으로 주장한다. 


더하여 약탈적 재벌경영에 대한 과감한 체제개혁을 실행하여 시장질서(공정거래)를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경제민주화 실현의 상책이라도 되는 듯 이구동성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게다가 “종북, 좌파로 공격받겠지만 기득권 경제를 반드시 타파할 것”이라는 언설로 미루어 짐작컨대 유럽식의 현대 사회주의(사민주의)를 대안으로 삼는 듯도 하나, 이 역시 경제민주화의 핵심을 빗나간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본위주, 시장우위의 신자유주의, 즉 21C 선진제국의 모스인 금융(투기적 자본) 중심 자유시장의 극대화다. 재테크가 극성인 자본시장의 사태는 경제의 혈액, 곧 자본의 흐름이 극한적으로 과도한 말기적 징후다. 그럴진대 ‘주주민주주의’를 주창하여 주주들만 경제민주화의 주체세력으로 나섰다. 소액주주의 주권 운운하지만, 기실은 소수의 가진 자들이 주도하니 어찌 경제민주화라 하겠는가.

 

경제민주화의 관건은 ‘노사관계’임을 바로 알아야 한다. 상당한 개선과 관계의 진작이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기업경영에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사고와 관습이 지배한다. 노사관계를 피고용자에 대하여 고용주는 일터와 생활보장을 해주는 대가로 피고용인의 충성을 요구하는, 이른바 주종관계로 인식하는 경향도 상존한다. 더구나 정부와 노동조합의 개입을 극단적으로 배척하는 ‘신자유주의’의 악폐가 더 심각한 문제의 핵심이다. 


신자유주의가 증폭시킨 경제적 불평등이 극심할뿐더러 이로 인해 자유까지도 억압당하는, 이런 부당한 경제체제는 반드시 배척하고 개혁해야 마땅하다. 민주주의가 이루고자 하는 근본목적이 자유와 평등이며, 이를 성취하고자 ‘정치민주화’의 쟁취를 위한 투쟁을 벌여왔던 것이다. 그 최상의 방책이 수없이 되풀이하여 말한 ‘11·12민주시민혁명’의 중요한 목적의 하나인 국민 참여정치, 곧 ‘시민정치’의 실현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경제민주화와 역시 시민, 즉 노동자의 경영참가가 실현되어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영국에서 시발하여 도버해협을 건너 유럽대륙의 중앙지대 독일에서 정착, 발전하였다. 독일에서는 1951년,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보장하는 ‘공동결정법’이 제정되어 석탄, 철강업의 40여 개 기업에 적용되었다. 그 후 25년이 지난 1976년 3월 17일, 노동자 2천명 이상의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신공동결정법’이 제정(1979년 7월 1일 시행)되기에 이른다. 이 법에 의하여 노사 공동결정체가 노사대표들로 구성되며(감사역회, 노사 동수의 이사 선발권을 갖는다), 각각 총원의 반수를 사내선거와 주주총회에서 선출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1952년, ‘경영조직법’이 별도로 제정되어 석탄, 철강 이외의 모든 일반산업 분야의 노동자 경영참가를 법적으로 규정하였다. 시초에는 노사 간의 협조, 협력에 관한 지침 정도에 불과했으나 1971년 12월, 대폭적인 개정을 통하여 노동자의 실질적인 경영참여를 강화하였다(그러나 신공동결정법과는 달리 노동자 대표가 3분의 1로 제한된다). 


노동자 경영참가의 정착, 활성화를 기반으로 독일은 ‘임금의 사회적 표준화’(동일노동 동일임금) 또한 철저히 실행된다. 일반회사(사기업)에 소속된 노동자의 임금은 2개 그룹으로 구분된 급여체계에 준거한 직종·산업의 등급별 세부기준(능력·자격 중심)에 따라 주로 산업레벨의 사용자단체와 노동조합이 결정하며, 일부(스페셜리스트, 중급·상급 관리직 등)는 노동자 개인과 소속회사와 계약을 체결하여 결정한다. 


그러나 등급, 호봉 인상률 이외의 노동조건이나 휴가, 특수노동, 수습직원의 수당 지급 등에 대해서는 노사 당사자의 자치권을 존중하여 자주적으로 심의 결정한다. 어떠하든, 모든 협약임금은 최저기준이며 실제로는 대다수 기업들이 그 금액보다 10~15퍼센트 정도 많은 급여를 지급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독일은 초기의 적잖은 우려를 불식하고 노동자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경영참여, 즉 ‘노사 공동경영’으로 (집단지성·다중지혜를 통하여) 기술, 경영의 효율성이 대폭적으로 향상되었다. 이로써 생산(산출)능력과 급부(지출)능력이 증진되어 기업발전과 노동자 복리후생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한 노동자의 협정참여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비롯한 ‘임금 및 노동조건의 사회적 표준화’를 확립, 발전시켜 노동권의 핵심인 임금소득의 평등을 실현하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노사 공동체정신, 노사 파트너십 정립
지역·산업별 노조 확대, 경영주의 의식전환이 필수

 

독일뿐만 아니라 스웨덴, 프랑스, 덴마크, 네덜란드 등, 서유럽의 여러 선진 ‘복지국가’들은 우리나라처럼 공정거래법에 의한 원·하청 규제가 없다. 그런데도 산업공생주의(industrial symbiosis)가 잘 이루어지고, 그래서 대기업의 갑질이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는 이유는 치열한 시장경쟁 속에서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할 수밖에 기업경영의 속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모든 상(商)거래에 경영에도 참여하는 전체 ‘노동자연대’의 힘이 강하게 작용하는 까닭이다.


이들 나라가 대기업, 중소기업의 공존공생과 상호협력이 잘되는 주된 요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강력한 산업별·지역별 노동조합의 역할과, 그러한 노력의 일환의 성과다. 그리고 그 시너지효과는 임금이 차별 없이 합리적이고 적정하게 결정, 지급되는 것이다. 노동운동으로 성립된 법적의무화에 의한 표준화된 임금협상은 그 같은 효과에 더하여 임금차별, 즉 이중구조화의 노동시장 문제를 근본적으로 방지함으로써 소기업과 대기업의 갈등의 소지까지 제거, 원천봉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도 독일을 위시한 서유럽국가들을 전범삼아 정상적이고 효율적인 ‘노동운동’의 차원에서 이를 확대하고 강화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987년, ‘6·29민주화선언’ 직후부터 2년 반 만에 18.6퍼센트의 최고치에 이른 후 감소세로 반전되어 지금은 10퍼센트 안팎의 극히 낮은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는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앞길을 막는 장벽이다. 노동운동의 견인차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전체 노동자의 80퍼센트나 되는 중소, 영세기업의 수많은 노동자와의 연대에 실패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절대다수 노동자들은 기업경영(의사결정)은 물론이고, 임금수준과 노동조건의 협약을 경영주의 일방적인 결정에 맡길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이런 지경이므로 ‘경제민주화’는 물론, 부당하고 불법적인 노동권 침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노동자 1인 기업까지 노조가입을 모색하는 ‘노동자연대’의 정신과 사명감으로 조직증강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렇게 산업, 지역별노조 조직을 확대하여 임금과 사회복지의 차별을 타개하는 데 매진하지 않는 한, 기업규모에 의한 임금격차는 날이 갈수록 커져갈 것이다.


민주경제의 실현을 위한 그러한 일련의 노력으로 월간 최저 150만원의 저소득 노동자들의 임금을 향후 5년 동안 300만원 이상 인상하여야 한다(이는 경제원리에 따라 연간 150조 내외의 근로소득을 나누어 ‘분배정의’를 실현하는 전 국민과 국가의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그리고 ‘재정정책’에 의한 지원·육성을 강화하여 중소기업의 지불능력을 배가시켜 점차적으로 중소기업 대비 대기업의 임금을 1980년대 후반 이후 90년대 중반 시기의 90~95퍼센트 수준까지 회복, 정상화시켜야 한다. 


노동운동이 진전하여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통한 경제민주화의 결실은 궁극적으로 평등하고 적정한 임금뿐 아니라, 인권침해 근절, 근로시간 단축, 자기계발 및 여가선용 지원 등 인간 존엄성을 중시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이는 곧 노동권을 포함한 인권보장과 ‘삶의 질’(quality of life) 향상이 실현되는 길이다.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권혁시 이사장

결론삼아 말하거니와, 노무현 대통령은 ‘유로피안 드림’을 꿈꾸었다. 이는 다름 아닌 교육, 경제, 문화, 정치 등 국가·사회의 지속적인 안정과 번영을 구가하는 독일이 그 대표적인 모델이다.

독일은 다른 모든 분야는 차치하고 유럽의 다른 복지국가들에 비해 경제민주화를 가장 먼저, 확실하게 정립하였다. 그 원동력은 노사의 ‘공동체의식’이다. 일찍이 경영자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을 다하기 위하여 노동자와 대등한 관계에서 합심 협력하여 회사를 경영해야 한다는 철학과 신념이 일반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국민적 합의(consensus) 내지 사회적 기풍이 오래전부터 형성되었고, 이를 통하여 법적, 실질적으로도 경영자는 노동자의 경영참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기저가 견고하게 다져졌다. 그러므로 반드시 노동자의 적극적인 경영참여가 전제되어야 하는 ‘복지경제, 경제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경영의 주체인 경영자의 발상의 대전환, 의식혁명이 선결되어야만 한다.


“노사관계는 유기체·생명체다” 따라서 외생적으로는 환경변화에 적응, 일신하여야 하며 내생적으로는 활력을 강화하고 혁신을 추진함으로써 지속적인 성장, 발전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변화의 관리’(change management) 주체로서 경영자의 역할, 곧 노동자 경영참가의 노사관계 변화과정에서 현실적으로 주도권이 경영자에게 있는 만큼 이제, 경영자는 ‘투쟁, 대립’의 노사관계를 ‘참여, 협력’의 패러다임으로 전환, 발전시켜 나가야한다.

 
아울러 정부는 ‘국가의 역할은 광범위한 의무와 무수한 기능들을 확대하고 분화시키면서 떠맡고 있는 현대사회의 중추기관’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리하여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노동자, 기업 등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공생, 협력이 지속될 수 있도록 온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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