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 교장에게 무릎 꿇고 술을 따른 사실

"박정희의 천황페하에 대한 충성심은 일본인보다 훨씬 더 일본인다웠다"

이건흥 칼럼 | 입력 : 2017/07/30 [11:17]

1961년 11월 12일 박정희가 5.16쿠데타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신분으로 미국 방문길에 일본을 들렀다. 이날저녁 영빈관에서 박정희가 초대한 만찬회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다닐 때 교장이었던 나구모 신이치로를 만나자 “선생님의 지도와 추천덕분에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여기까지 올수 있었습니다.” 라고 말한 뒤 큰절을 하며 술을 따랐다.

 

1961년11월12일 박정희는 대한민국최고회의 의장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했고, 만주군관학교 교장이었던 나구모 신이치로를 만나자 “선생님의 지도와 추천덕분에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여기까지 올수 있었습니다.” 라고 말한 뒤 큰절을 하며 술을 따랐다. 

 

박정희가 과거 은사에게 깍듯하게 보은의 술잔을 올리자 동석한 이케다 총리를 비롯한 군국주의자 전원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케다는 “박정희가 동양의 예의사상을 갖고 은사를 섬기고 선배를 존중하는 훌륭한 모범을 보여 주었다”고 극찬했다.

 

이 자리에는 이케다를 비롯한 참석자 전원이 기립박수를 치는 장면이 일본국영NHK TV방송에 보도되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한국의 대통령이 군사쿠데타에 성공하고 자신의 성공이 만주군관학교 일본인교장 때문이라고 “큰절을 하며 술을 따랐다.” 는 사실 자체가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치욕스러운 역사다.

 

이 자리에 함께 있었던 이케다를 비롯한 관동군출신 장교들과 참석자 전원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 장면은 일본국영NHK TV방송에 보도되었다. 

 

나구모 신이치로는 박정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다카키 마사오생도(박정희)는 태생은 조선인일지 몰라도 천황페하에 대한 충성심은 일본인보다 훨씬 더 일본인다웠다."고 박정희를 평가했다.

 

이날저녁 만찬회에서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시절 일본관동군장교들과 동기생들을 만나 회포를 푸는 자리에서 박정희는 유창한 일본말로 “나는 정치도 경제도 모르는 군인이지만 일본근대화의 아버지인 요시다 쇼인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자 그 자리에 있었던 일본군국주의극우세력들 조차도 조선침략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정한론의 원조로 불리는 요시다 쇼인을 박정희가 존경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면서 즐거워했다.

 

만주군관학교시절 일본관동군장교들과 동기생들을 만나 회포를 푸는 자리에서 박정희는 유창한 일본말로 “나는 정치도 경제도 모르는 군인이지만 일본근대화의 아버지인 요시다 쇼인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자 그 자리에 있었던 일본군국주의극우세력들 조차도 조선침략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정한론의 원조로 불리는 요시다 쇼인을 박정희가 존경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면서 즐거워했다. 

 

요시다 쇼인은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고 대표적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이노우에 가오루(미쓰이 재벌을 키운 인물) 그리고 군부강경파인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지금 일본총리 아베신조의 고조할아버지인 오시마 요시마사는 경복궁을 기습 점령하여 청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물이다. 명성황후를 살해했던 미우라 고로 일본공사 등 무수히 많은 조선침략의 원흉들을 길러냈던 요시다 쇼인을 박정희가 가장 존경한다고 말했다.

 

요시다 쇼인은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고 그들은 메이지유신을 일으킨 천민사무라이출신으로 대표적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이노우에 가오루. 야마가타 아리토모. 오시마 요시마사. 미우라 고로 일본공사 등 무수히 많은 조선침략의 원흉들을 길러냈던 쇼인을 박정희가 가장 존경한다고 말했다.

 

박정희는 자신이 일본육사출신이라는 걸 내세우면서 "강한군대를 만드는 데에는 일본식교육이 가장 좋다"며 일본군국주의 정신을 찬양하자.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일본극우세력들조차도 기쁘면서도 민망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박정희가 과거 청와대에서 술에 취하면 일본군복을 입고 군가를 부르고 일본천황의 ‘교육헌장’을 줄줄이 암송했던 뼛속까지 일본군국주의 친일분자 였다. 중앙일보 1991년 12월14일자 보도에 의하면 강창성 당시보안사령관이 “박정희가 1971. 10유신계엄령 선포 한 달 전에 청와대로 불러서 들어갔더니 박정희는 일본군장교복장을 하고. 가죽장화에 점퍼차림으로 말채찍을 들고 있었다고 증언하면서. 박정희는 가끔 이런 복장을 하고 말을 타고 즐기면서 만주군관학교시절을 회상했다고 증언했다.

 

강창성 당시보안사령관이 박정희가 청와대로 불러서 들어갔더니 일본군장교복장을 하고. 가죽장화에 점퍼차림으로 말채찍을 들고 있었다고 증언하면서. 박정희는 가끔 이런 복장을 하고 말을 타고 즐기면서 만주군관학교시절을 회상했다고 증언했다. 

 

1963년 12월 17일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에 일본 자민당 부총재 오노 반보쿠 가 참석했다. 그때 이 사람이 일본에서 말하기를 "박정희와 나는 부자지간일 정도로 친한 사이다. 라고 말하면서, 아들의 경축일을 보러 가는 일은 무엇보다도 즐겁다." 라고 말해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한국인들의 분노를 일으키게 했다. 도대체 한국 대통령 취임식에 가는 외교 사절단이 어떻게 이런 망언을 할 수 있는가!

 

박정희 정권은 오노 발언은 매우잘못된 것이다. 라고 강력하게 항의를 했어야 하는데 일본에 대해 일체 언급이 없었고 한국정부에서 항의한번 못하고 방관만 하는 박정희정권에 대해 대학생이나 지식인들은 굴욕적인 저자세라며. 강한 반발을 했다.

 

그 이후 미국은 기시 노부스케를 앞세워 만주국인맥인 박정희와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성사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CIA의 공작에 의한 작품이었다. 교수형으로 사라졌어야 할 군국주의 A급 전범자인 기시 노부스케를 미국이 비밀공작원으로 활용해서 일본총리로 둔갑시켜 미국이 중국과 소련을 견제하기위한 동북아 군사방위전략에 이용했다.

 

이건흥 단재 신채호 기념사업회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 사무총장

미국의 공작정치는 소련과의 냉전시대가 시작된 2차 세계대전직후 가장 극심했다. 미국중앙정보국 CIA의 공작은 한반도분단을 비롯해서 일본자민당정권의 탄생과 중동의 알카에다 이슬람세력 등 전 세계 수많은 분쟁지역에 개입해왔다.

 

이러한 사실을 ‘뉴욕 타임스’ 특파원 팀 와이너 기자가 방대한 비밀문서를 분석하여 잿더미로 남은 유산 CIA의 역사라는 책을 2008년 5월 미국에서 출판하여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책에는 6.25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과 아프간이스탄 공격 사담 후세인과 오사마빈 라텐체포가 미국중앙정보국 CIA가 개입했다고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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