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전두환은 ‘전두환’을 반성하지 않는다

‘적폐 중의 적폐’인 전두환은 이제라도 역사의 심판을 받을 각오를...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 입력 : 2017/08/15 [01:25]

1965년 여름, 한국의 재야와 학생운동권은 극심한 분노와 좌절감을 억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1964년 봄부터 한 해 남짓 ‘굴욕적 한일회담’을 반대하면서 격렬한 투쟁을 벌였는데도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이 타결되었기 때문이다. 

 

‘천황 폐하’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를 바치고 일본군 장교가 된 바 있던 박정희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어 ‘청구권 자금’이라는 명목으로 일본 정부한테서 3억 달러를 받는 한편 장기저리 차관 2억 달러를 도입하는 조건으로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우리 민족이 겪은 압제와 생존권 박탈을 없던 일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바로 그 무렵 시인 김수영은 ‘절망’이라는 시를 발표했다.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 바람은 딴 데서 오고 /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이 시에 관한 해설과 평가는 아주 다양하다. 그런 문학적 측면을 소개하지 않은 채 이 글의 들머리에 ‘절망’의 전문을 인용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1961년 5월 16일 박정희가 김종필과 함께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민선정부를 뒤엎고 정권을 탈취한 직후 전두환은 육사 생도들을 이끌고 ‘군사혁명 지지’ 가두행진에 나섰다. 그 이후 영남 출신 장교들의 모임인 ‘하나회’의 수장으로 승승장구한 전두환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비극적 죽음을 당하기까지 그를 ‘정치적 주군이자 사부’로 모셨다. 

 

박정희는 18년 동안 독재자로 군림하면서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을 조금도 반성하지 않았다. 전두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유신독재권력을 실질적으로 이어받은 뒤 민중을 상대로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부정과 비리를 자행하면서 단 한 번도 반성하지 않았다. 1988년 2월에 대통령직을 떠난 뒤 30년이 가까워지도록 그의 행태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기는 했는가

 

그런 전두환이 최근 언론에서 역설적 의미로 ‘각광’을 받고 있다. 법원의 ‘회고록 출판·배포 금지’ 결정과 영화 ‘택시운전사’ 열풍이 그 원인이다.
 
광주지법 민사21부는 지난 4일, 5·18기념재단 등이 전두환을 상대로 제기한 ‘회고록 출판 및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모두 받아들였다. 

 

“회고록이 공공의 이익을 위하는 목적에서 벗어나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초과해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가 하면 “5·18기념재단 등을 비하하고 그들에 대한 편견을 조장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를 저해했다”는 것이다. 

 

5·18기념재단 등이 지난 4월 3일 출간된 〈전두환 회고록 1-혼돈의 시대〉 가운데 출판 및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내용은 무려 30여 곳이었다. “5·18의 발단부터 종결까지 전 과정에 자신은 관여하지 않았다”(27쪽),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직전 시위대의 장갑차에 치어 계엄군이 사망했다”(383쪽),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반란이자 폭동이다”(535·541쪽) 등 18곳, “진압 당시 헬기 사격이 없었다”(379·484쪽) 등 4곳, “계엄군은 광주시민을 향해 총을 겨누지 않았다”(382쪽 등 3곳)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법원의 가처분 신청 수용이 정당함을 입증하는 책과 문서, 광주항쟁 참여자들의 증언은 차고도 넘친다. 당시 ‘신군부’를 이끌던 전두환이 ‘광주 민중학살’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은 지난 37년 동안 셀 수도 없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전두환은 거기 대해 일일이 반박을 하지 않았고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엄두를 내지도 못했다. 그런데 19대 대통령 선거를 한 달 남짓 앞둔 때에 광주항쟁을 ‘폭동’으로 몰아붙이는 회고록을 뜬금없이 낸 것이다.
 

 

지난 2일 개봉된 영화 〈택시운전사〉는 열하루 만인 12일(토요일) 누적관객 700만을 돌파했다. 광주항쟁 당시, 독일 제1공영방송 도쿄 특파원 위르겐 힌츠페터가 서울에서 한 택시운전사(배우는 송강호)의 차를 타고 광주에 극적으로 잠입해 계엄군의 무차별 살상과 보통사람들의 장엄한 투쟁을 카메라에 담아 온 세계에 전하는 과정을 소개한 이 영화는 관객이 감동과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게 만든다. 137분이라는 긴 상영시간 동안 객석에서는 웃음과 소리 없는 울음이 그치지 않는다. 

 

아내를 여의고 10살 박이 딸을 홀로 키우는, ‘정치의식’이라고는 거의 없는 송강호가 토마스 크레치만(힌츠페터 역)과 함께 광주학살의 실상을 목격하고 항쟁의 투사로 변신하는 과정은 이 영화의 백미이다. 그리고 민중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자의 책무를 다하는 힌츠페터는 세계 모든 언론인의 귀감이다. 〈택시운전사〉는 그동안 선을 보인 광주항쟁 소재의 그 어떤 영화들보다 시민과 학생의 장엄한 투쟁과 계엄군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재연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작품에 대해 전두환의 대변인 격인 민정기(전 청와대 공보비서관)가 엉뚱한 시비를 걸고 나섰다. 그는 지난 7일 SBS 라디오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아무 법적 정당성도 없는 시민이 무장하고 무기고를 습격한 걸 폭동이 아니면 무어라고 하겠느냐”며 “당시 5·18 상황은 폭동인 게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 조준사격한 일이 없으며 그냥 계엄군이 자기들이 공격을 받으니까 자위 차원에서 사격한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는 “영화를 아직 못 봤지만, 정도가 지나치다고 한다면 법적 검토도 가능하다”고 했다.
 
민정기의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증거는 사망자 통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1980년 5월 31일 계엄사령부는 “광주사태 사망자는 170명(민간인 144명, 군인 22명, 경찰 4명)”이라고 발표했다. 같은 해 7월 25일 계엄사령관 이희성은 사망자가 189명(민간인 162명, 군인 22명, 경찰 4명)이라고 ‘수정’했다. 이에 반해, 5·18기념재단 등 4개 단체는 2005년 5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항쟁 관련 사망자가 606명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20여년 동안 관련자들을 일일이 만나 확인한 결과, 165명은 항쟁 당시 숨졌고, 상이 후 사망은 376명, 행방불명은 65명으로 추정된다는 것이었다. 계엄사의 발표대로 민간인 사망자가 144명이라 하더라도, 그들 모두가 조준사격이나 가혹한 폭행을 당하지 않았다면 ‘유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는 뜻인가? 전두환은 이제라도 민정기의 주장은 내 뜻과 다르다고 해명하고 광주의 시민과 학생들이 계엄군에게 죽음을 당했음을 인정해야 마땅하다. “속속 드러나고 있는 역사적 자료의 증거는 광주 학살의 가해자가 누구인지, 그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보여주고 있다. 

 

1980년 광주 진압 상황이 담겨 있는 ‘광주권 충정작전간 군 지시 및 조치사항’에는 ‘전 각하’라는 존칭과 함께, ‘초병에 대해 난동 시 군인복무규율에 의거 자위권 발동 강조’라는 메모가 적혀 있다. 전두환이 자위권 발동을 강조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 국방정보국 비밀문서도 계엄군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전두환이라고 지목하고 있다.”(뉴스타파, 2017년 5월 18일자 기사)
 
전두환은 박정희에 이어 헌정을 파괴하고 국정을 농단한 죄 때문에 1996년 1월 4일 노태우와 함께 기소되어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같은 해 12월 16일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그의 위법행위는 주권자들이 용납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반란 수괴, 반란모의 참여, 반란 중요임무 종사, 불법진퇴, 지휘관계엄지역수소 이탈, 상관 살해 미수, 초병 살해, 내란 수괴, 내란모의 참여, 내란목적 살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 당시 대통령 김영삼이 임기 말인 1997년 12월에 사면 조치를 내림으로써 ‘국사범 전두환’은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만약 그때 김영삼이 자의적으로 사면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면 전두환은 지금 박근혜처럼 옥살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김수영은 ‘푸른 하늘을’이라는 시에서 “자유를 위해서 /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 사람이면 알지 /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 노래하는가를 /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이라고 노래했다. 2016년 10월 말에 불이 붙기 시작한 촛불혁명은 ‘피의 냄새’가 전혀 없이 주권자들에게 ‘자유’를 안겨주었다. 

 

이제 남은 과업은 박정희 유신독재 이래의 온갖 적폐를 청산하는 일이다. ‘적폐 중의 적폐’인 전두환은 이제라도 역사의 심판을 조용히 받을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다.

 

자유언론실천재단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ㆍ동아투위 위원장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