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 ”장준하선생 죽음 진상규명은 역사적 과제” 추모사

민족지도자 장준하 선생 42주기 추도식이 8월 17일 파주 장준하 공원에서 거행 되었다.

서울의소리 | 입력 : 2017/08/18 [00:28]

독립운동가이자 민주투사였던 민족지도자 장준하 선생 42주기를 맞아 문재인 대통령은 "선생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은 정파와 이념을 초월해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역사적 과제이다"라는 내용의 추모사를 보냈다.  

현직 대통령이 장준하 선생  추모식에 추모사를 보낸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이다. 문대통령은 이날 취임 100일 기자회견과 겹쳐 참석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조화를 보냈다.

 

17일 오전 11시 경기도 파주시 장준하 공원에서 장준하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추모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대신 낭독한 추모사를 통해 “장준하 선생 서거 42주기를 맞는 오늘 이 자리가 조국의 광복과 민주주의를 위해 신명을 바친 선생의 위업을 받들고 고귀한 정신을 계승해 국민통합을 이루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정희에 의해 죽임을 당하신 민족 지도자 고 장준하 선생 42주기 추모식이 8월 17일 오전 11시 파주 장준하 공원에서 거행 되었다. 이날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돌베개를 베고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았던 선생의 전 생애는 애국을 향한 대장정이었다”고 평가한 문 대통령은 “42년전 오늘, 국민은 가슴 치는 비통함을 딛고 선생의 길을 잇자는 각오를 다졌다. 그렇게 장준하 선생은 정의와 평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모두에게 꺾을 수 없는 자긍심이자 지표가 됐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국민은 장준하와 함께 승리했다. 친일과 독재세력이 그토록 감추고 없애려 했던 평화와 정의, 민주주의를 향한 선생의 의지와 충정은 87년 6월 항쟁의 함성으로, 2016년 촛불혁명의 불꽃으로 기어이 다시 살아났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하지만 우리에겐 선생에 대한 죄송함과 부끄러움이 남아있다. 서거하신 지 42년이 흐른 지금도 선생을 우리 곁에서 빼앗아간 죽음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어 “저는 2015년 서거 40주기를 맞아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은 정파와 이념을 초월해 모두가 함께 풀어야할 역사적 과제’라고 말씀드렸다. 그와 함께 ‘장준하특별법’ 제정을 추진했다”며 “진상을 규명하지 않고서는 선생이 꿈꿨던 평화로운 나라, 진정한 국민통합의 시대로 나아가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선생이 평생을 바쳐온 애국의 가치도 바르게 세워야 한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친일과 독재 세력이 왜곡하고 점유해온 애국의 가치를 재정립해야 한다”며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향한 길은, 장준하 선생을 비롯한 애국선열들, 국가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헌신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온전히 기릴 때 더욱 굳건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선생께서도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을 밝혀 주시고, 어려움을 헤쳐 나갈 지혜와 용기를 주시리라 믿는다”고 밝힌 문 대통령은 “한없는 존경과 추모의 마음을 바치며 평안한 안식을 기원한다”며 추모사를 마무리했다. 


추모식을 주관한 장준하 기념사업회 유광언 회장은 인사말에서 "42회째 열어온 추모식에서 올해 처음 문재인 대통령께서 추모사를 보내주셨다"면서 "긴 세월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장 선생의 삶이 올바로 평가받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 했다.

 

박정희에 의해 죽임을 당하신 민족 지도자 고 장준하 선생 42주기 추모식이 8월 17일 오전 11시 파주 장준하 공원에서 거행 되었다. 장준하 선생 사진 옆에선  부인 김희숙 여사 모습


유족을 대표해 장남 장호권씨는 "대통령의 추도사는 장 선생이 생전에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던 뜻과 같았다"면서 "이런 역사 인식을 가진 대통령이라면 안도해도 되겠고, 감사함과 함께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난 장준하 선생은 광복군 제3 지대에 입대해 간부훈련반에서 훈련을 받고 광복군 제2지대에 배속돼 활동했다. 1945년 한미 합작특수훈련인 OSS훈련 정보·파괴반에 배속돼 훈련을 받고 국내 침투공작을 벌이려고 대기하던 중 광복을 맞이했다.

 

장 선생은 지난 1975년 경기도 포천 약사봉 등반 도중 시신으로 발견 되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실족사라고 발표 했지만, 장준하 선생이 박정희에 의해 죽임을 당한것 아니냐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이 후 서거 37년만인 2012년, 이장 과정에서 함몰로 보이는 원형의 흔적이 고인의 두개골에서 발견돼 시신을 서울대 의대에서 검시한 결과 타살로 밝혀지자 박정희 정권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으로 보고 관련단체에서는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아래는 문재인 대통령 추도사 전문
 

오늘은 장준하 선생이 우리곁을 떠난 지 마흔두 해가 되는 날입니다.

42년 전 오늘, 우리민족은 위대한 지도자를 잃었고,

민주주의는 독재의 어둠 속에 숨죽여 울어야 했습니다.

 

돌베개를 품고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았던 선생의 전 생에는 애국을 향한 대장정이었습니다. 42년 전 오늘, 국민은 가슴 치는 비통함을 딛고 선생의 길을 잇자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그렇게 장준하 선생은 정의와 평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모두에게 꺾을 수 없는 자긍심이자 지표가 되었습니다.

 

국민은 선생과 함께 절망을 이겨냈습니다. 일제 식민지 야만의 역사를 온몸으로 돌파한 스물여섯살 청년 장준하가 가슴에 살아 있는 한, 독재에 맞서 정의와 양심을 수호한 언론인이자 민주주의자인 장준하가 역사에 새겨져 있는 한, 이땅의 민주주의는 반드시 전진할 것이라 확샌했습니다.

 

국민은 장준하와 함께 승리했습니다. 친일과 독재 세력이 그토록 감추고 없애려 했던 평화와 정의,

민주주의를 향한 선생의 의지와 충정은 87년6월항쟁의 함성으로, 

2016년 촛불혁명의 불꽃으로 기어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선생에 대한 죄송함과 부끄러움이 남아 있습니다.

서거하신 지 42년이 흐른 지금도 선생을 우리 곁에서 빼앗아간 죽음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2015년 서거 40주기를 맞아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은 정파와 이념을 초월해 모두가 함께 풀어야할 역사적 과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와 함께 ‘장준하특별법’ 제정을 추진했습니다.

 

진상을 규명하지 않고서는 선생이 꿈꿨던 평화로운 나라,

진정한 국민통합의 시대로 나아가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선생이 평생을 바쳐온 애국의 가치도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친일과 독재 세력이 왜곡하고 점유해온 애국의 가치를 재정립해야 합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향한 길은, 장준하 선생을 비롯한 애국선열들,국가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헌신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온전히 기릴 때 더욱 굳건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오늘 민족의 자주독립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온 생애를 불태운 선생의 영전 앞에서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오직 국민을 위한 나라, 남과 북이 평화롭게 화합하는 한반도를 이루는것이야말로 선생의 후손으로서 감당해야 할 소명임을 깊이 되새깁니다.

 

장준하가 서거 42주기를 맞는 오늘 이 자리가 조국의 광복과 민주주의를 위해 신명을 바친 선생의 위업을 받들고, 고귀한 정신을 계승하여 국민통합을 이루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선생께서도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을 밝혀 주시고, 어려움을 헤쳐 나갈 지혜와 용기를 주시리라 믿습니다.

 

한없는 존경과 추모의 마음을 바치며, 평안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2017년 8월 17일

대통령 문 재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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