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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명박·한상률의 그해

당시 국세청장 한상률은 태광실업 세무조사 결과를 이명박에게 직보했다.

경향신문 박구재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7/11/21 [20:49]

노무현·이명박·한상률의 그해

당시 국세청장 한상률은 태광실업 세무조사 결과를 이명박에게 직보했다.

경향신문 박구재 논설위원 | 입력 : 2017/11/21 [20:49]

#장면 1. 2008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했다. KTX를 타고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귀향 초기엔 화포천을 둘러보고,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방문객을 맞았다. 친환경 벼농사에 관심을 쏟으면서 지역주민들과 논두렁에서 막걸리 잔을 주고받는 일이 잦았다. 건배사는 “봉하마을 친환경 오리농법을 위하여!”였다. 짬이 나면 손녀를 태운 자전거의 페달을 밟았다. 그렇게 ‘바보 노무현’은 ‘농부 노무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해 7월30일.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직원들이 45인승 전세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4시간 넘게 달려 경남 김해에 있는 태광실업에 닿았다. 조사4국 직원들은 태광실업에 들이닥쳐 회계장부와 재무 관련 자료를 압수했다. 회사 관할은 부산지방국세청인데 서울에서 특별 세무조사를 전담하는 조사4국 직원들이 내려와 재계 서열 600위권의 지방 신발업체를 샅샅이 뒤진 데는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었다. 넉 달간 진행된 먼지털이식 고강도 세무조사의 타깃은 마당발 인맥과 통 큰 로비로 유명했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아니었다. 박 회장이 후원했다고 알려진 전직 대통령 노무현이었다. 

 

#장면 2. 2008년 봄. 취임 첫해를 맞은 이명박에겐 ‘시련의 계절’이었다. 그해 4월 이명박은 굴욕적인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을 선언했다. 민심은 들끓었다. 광장을 메운 촛불시민들은 “MB 즉각 하야” “이명박 OUT” 등의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명박산성’을 쌓으며 촛불집회를 원천봉쇄하려 했지만 허사였다. 이명박 지지율은 10%대로 떨어졌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아침 이슬’을 읊조렸지만 성난 민심은 가라앉지 않았다.

 

당시 이명박은 사이버 세상의 뒷공간을 이른바 ‘노빠’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여겼다. 노무현 후원자들이 운영하는 업체에 대한 세무조사를 지시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우리들병원, 토속촌, 제피로스 등이 세무조사를 받았지만 의심할 만한 자금의 흐름이 포착되지 않았다. 그러자 불똥이 태광실업으로 튀었다. ‘보복성 표적 세무조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명박은 물불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지 않으면 자신이 몰락할 판이었다.

 

#장면 3.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국세청장이었던 한상률은 2008년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정권이 바뀌면 국세청장도 교체되는 게 관례다. 하지만 이명박은 신임 국세청장을 임명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킬레스건인 서울 도곡동 땅의 실체와 BBK 관련 의혹을 파악하고 있던 한상률을 내치면 뒷감당을 할 수 없을 것이란 얘기가 파다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한상률은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유임된 최초의 국세청장이 됐다. 하지만 충남 서산 출신인 한상률은 이명박 정권과 ‘끈’이 닿지 않았다.

 

그는 안원구 서울청 세원관리국장을 불러 “이명박 정권과 지연, 학연, 혈연이 닿지 않는다. TK 출신인 안 국장이 MB 쪽에 아는 사람이 많을 테니 도와달라”(안원구·구영식, <국세청은 정의로운가>)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실패했다. 그러자 자신을 국세청장으로 임명한 노무현을 타깃으로 한 세무조사에 나선 것이다. 당시 한상률은 태광실업 세무조사 결과를 이명박에게 직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8년 벌어진 세 개 장면은 이듬해 5월 노무현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마무리됐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명박과 한상률만큼은 헌정사상 초유의 비극이 왜 빚어졌는지를 짐작하고 있을 터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입을 닫고 있다. 시간에 묻히고, 세인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은 노무현을 현실정치에 끊임없이 소환하고 있다.

 

정진석 의원은 노무현의 죽음을 “부부싸움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홍준표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유족들도 (뇌물사건의) 공범”이라고 했고, 강효상 대변인은 “뇌물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적폐청산의 칼끝이 이명박에게 겨눠지자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을 끌어들여 물타기하려는 저열한 행태다.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조차 갖추지 못한 한국당 의원들의 막말과 추태에 진저리가 쳐진다. 

 

인간 삶이 제각기 다르듯 죽음도 천차만별이다. 사마천은 ‘보임안서(報任安書)’에서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처럼 가볍다”고 했다. 노무현이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을 선택한 지 8년5개월이 흘렀다. 2008년 배신과 음모로 점철된 세 장면을 목격했던 시민들은 안다. 노무현을 죽음으로 내몬 것도 모자라 ‘새털처럼 가벼운 죽음’으로 폄훼하려는 ‘미필적 고의범’이 누구인지를…. 시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경향신문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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