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세청 간부 ”태광실업 세무조사, 본청이 사실상 주도”

"서울국세청 조사4국은 ‘행동대’에 불과하고 사전 조사를 비밀리에 본청 국제조사과가 맡아”

서울의소리 | 입력 : 2017/11/21 [21:07]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이어진 태광실업 세무조사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숨은 또 다른 주역들’이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며, 한승희 국세청장과 전 국세청장 한성률이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8년 12월10일 세종증권 매각 비리 의혹과 관련해 소환된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대검청사를 나서고 있다. ©경향신문

 

태광실업 세무조사는 2008년 7월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이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에 지시해 전격적으로 10여명의 조사반원이 투입되면서 시작됐다는 게 지금까지 알려진 윤곽이었다. 하지만 정작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겨냥한 세무정보를 누가 수집하고 분석해서 서울국세청에 넘겨줬는지는 그동안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전직 국세청 고위간부 ㄱ씨는 20일 “공식 세무조사는 행동대나 꼭두각시 역할에 불과하고 보통 조사 착수 전 1~2개월 심리분석(특별조사) 절차를 거친다”며 “태광실업 세무조사는 본청 조사국 국제조사과에서 태광실업을 조사대상으로 찍어 심리분석을 진행한 후 서울국세청 조사4국에 넘긴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세무조사’ 도마에 오른 태광실업 세무조사의 경우 서울국세청 조사4국은 ‘행동대’에 불과하고 사전 조사를 비밀리에 본청 국제조사과에서 맡았다는 것이다. 당시 본청 국제조사과장은 한승희 현 국세청장이다. 한 청장이 태광실업 세무조사와 관련해 지난달 말 직권남용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것도 이 때문이다. 

 

2008년 한 청장이 과장으로 있던 국제조사과가 태광실업에 대한 사전조사를 주도했다는 ㄱ씨 증언은 당시 국세청의 세무조사 정황과도 맞아떨어진다. 본청 국제조사과는 2008년 6월 역외탈세자 기획조사에 착수해 다음해 2월 조세도피처나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탈세한 45명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국제조사과가 역외조사에 착수한 2008년 6월은 서울국세청이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하기 한 달 전이다. 물론 당시 국제조사과가 태광실업 박 회장을 표적으로 했는지, 역외탈세 조사를 하다 박 회장이 우연히 걸려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국제조사과는 2008년 6월 역외탈세 조사를 시작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태광실업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당시 한상률 국세청장으로부터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고 서울국세청 세원관리국장으로 있던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은 “한 청장이 나한테까지 태광실업 베트남 계좌를 찾는 걸 도와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한 청장이 ‘부산의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자금줄인데 그쪽을 치려면 태광실업 베트남 신발공장 계좌를 까는 게 관건’이라며 협조를 부탁했다”고 소개했다. 당시 국제조사과의 역외조사는 사실상 박 회장을 겨냥한 표적 세무조사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ㄱ씨는 다른 얘기를 했다. 그는 “2008년 6월 국제조사과에서 시작한 역외탈세조사는 박 회장을 겨냥한 것이 아니고 태광실업 조사는 그 이전에 심리분석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두 사람 간에 시기 차이가 있긴 하지만 국제조사과에서 태광실업에 대한 사전조사를 진행했다는 것은 일치하는 셈이다. 결국 박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 정당성은 국제조사과에서 왜 박 회장을 조사대상으로 찍었는지에 달린 셈이다. 현행 국세기본법 81조4항은 ‘세무공무원은 적정하고 공평한 과세 실현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 범위에서 세무조사를 해야 하고 다른 목적을 위해 조사권을 남용해서는 안된다’고 명시돼 있다. 

 

당시 본청 국제조사과가 정치적 목적을 갖고 노 전 대통령과 특수관계에 있는 태광실업을 조사 대상으로 찍었다면 관련자들은 직권남용과 공무원법 위반이 된다. 이 점에서 2008년 박 회장에 대한 최초 역외조사가 진행될 때 본청 국제조사과장이었고, 서울국세청이 태광실업에 대한 조사에 착수할 때 본청 조사기획과장이었던 한 청장에 대한 조사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과거 정치적 세무조사 의혹을 밝히기 위해 국세청에서 발족한 국세행정개혁 태스크포스(TF)에서는 한 청장 등 당시 관련 조사자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강병구 TF위원장(인하대 교수)은 “개인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파악할 수 없는 것은 TF의 한계”라며 “필요하면 관련자들에 대한 대면조사도 해야 하는데 그걸 못했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우리는 조사를 못하지만 국세청이 검찰에 조사를 의뢰하면 개인에 대한 조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당시 본청 국제조사과와 한 청장의 역할에 대한 조사 착수 여부는 검찰로 공이 넘어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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