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률, 노무현 겨냥 세무조사 후 ‘DJ 비자금’도 캐려고 했다

이명박에 보고 뒤 독일로 출국…‘DJ 겨냥 자료’ 요청 거절한 독일 국세청장에 편지

서울의소리 | 입력 : 2017/11/24 [09:43]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2008년 독일 국세청장을 만나 당시 여권과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 비자금’의 은닉처로 의심한 리히텐슈타인 공국의 한국 기업 관련 계좌 정보를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리히텐슈타인은 독일연방에서 독립한 조세회피처로 분류된다.

 

당시 국세청 고위 간부들 사이에서는 “한 청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한 태광실업 조사에 이어 ‘DJ 비자금’도 캐려 한다”는 관측이 이어졌다. 

 

24일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23일 “2008년 9월3~5일 한·독 국세청장 회의라는 명목으로 한상률이 독일로 건너가 독일 국세청장을 만났지만 진짜 목적은 조세회피처의 한국인 계좌정보를 넘겨받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2008년 9월4일 한상률 국세청장이 사상 첫 한·독 국세청장 회의를 하기 전 플로리언 쇼이얼레 독일 국세청장과 악수하고 있다. 국세청 제공 /경향신문

 

그는 “당시 한 청장의 요구에 대해 독일 국세청장은 (계좌정보를 얻고자 하는) 한국인들의 혐의 내용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거나 법원 판결을 가져오라며 거절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 청장의 독일 방문에는 국세청 국제조사과의 역외탈세추적 전담 직원 1명이 동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국세청은 한 청장의 독일 방문 후 국내 한 중앙일간지에 ‘유럽 조세회피처에 회사 자금을 은닉한 5개 한국 기업의 계좌를 추적 중’이라는 내용을 흘리며 정치인 자금도 조사대상임을 암시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9월4일 한상률 국세청장은 돌연 독일로 날아갔다.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때였다. 청와대가 국세청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는 때라 국세청장이 홀연히 자리를 비운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당시 한 청장은 독일 국세청장의 호의에 응대해 한가롭게 해외출장을 갈 상황이 아니었다.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한 태광실업 세무조사 외에도 한 청장은 온갖 정치적 세무조사 의혹의 한가운데 있었다. 출국 이틀 전인 2008년 9월2일 국회에서도 포털사이트 다음과 KBS 정연주 사장 사퇴 압력과 맞물린 표적 세무조사 의혹과 관련해 야당 의원의 날선 공세가 이어졌다. 

 

한 청장이 이런 상황에서 비서관도 없이 2박3일 동안 독일 국세청장을 만나러 간 것은 뭔가 절박한 목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의심하기 충분했다. 

 

국세청의 한 전직 고위간부는 좀 더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당시 리히텐슈타인 등 유럽의 조세회피처에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비자금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한 청장이 DJ 비자금을 찾기 위해 독일 국세청장을 만나고 오겠다고 이명박에게 보고를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청장은 독일 정부가 완강하게 거절해 빈손으로 귀국한 후에도 독일 국세청장에게 편지까지 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 청장이 독일 출장을 다녀온 후 국내 정치적 상황은 DJ 비자금 정국으로 급변했다. 2008년 10월20일 국정감사에서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100억원짜리 양도성 예금증서(CD) 사본을 꺼내 보이며 DJ 비자금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신한은행 창업과정에서 수조원이 DJ 계좌로 흘러들어간 것을 봤다는 ‘박씨 남매’ 사건도 터졌다. 한 청장 입장에서는 여권이 ‘노무현 비자금’에 이어 ‘DJ 비자금’ 의혹 제기를 준비하는 상황이어서 공조 필요성이 있었던 셈이다.

 

국세청은 여권이 DJ 비자금 의혹을 제기한 후 고비마다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한 카드를 꺼냈다. 주 의원이 의혹을 제기한 뒤 김 전 대통령 측이 고소하자 한 보수언론은 “국세청이 리히텐슈타인의 은행 비밀계좌 정보를 입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를 내놨다. 국세청의 칼끝이 사실상 DJ 비자금을 겨누고 있다는 보도였다.

 

 

 

12월3일 또 다른 보수언론은 ‘국세청이 리히텐슈타인 등에 자금을 숨긴 것으로 확인된 5개 한국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에 나섰다’며 국세청 조사가 정치인 비자금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이 보도는 DJ 비자금 의혹의 출처를 내놓지 못해 여권이 정치적으로 궁지에 내몰린 상황에서 나왔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국세청 국제조사과에서 관련 정보를 흘려줬고 기사에서 정치인 비자금을 언급한 것은 당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있었다”고 말했다.

 

국세청의 한 전직 간부는 “당시 이 정도의 언론플레이를 할 사람은 한 청장밖에는 없다”고 했다. 9월4일 한 청장이 급하게 독일로 출국해 독일 국세청장을 만난 진짜 이유가 사실상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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