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망국’(腐敗亡國), “조선의 ‘대간제도’에 준거 ‘적폐청산’을 선결하라!”

‘부정부패 척결’을 위하여 세계최고인 조선시대 대간제도의 ‘정신·방식’을 따라야 한다

권혁시 칼럼 | 입력 : 2017/12/20 [00:59]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권혁시 이사장

새벽부터 내린 눈이 온 누리를 순백의 세계로 탈바꿈시켰다. 흰 눈에 덮인 세상은 온갖 허물이 일순간에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고,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를 걷는 발걸음은 자못 가벼웠지만 적이 조심스럽다. 그러면서 문득 인간의 심성, 세상살이가 눈 같이 결백하고 눈 위의 걸음걸이처럼 유쾌하면서도 조신해질 수는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덮이고 싸여 자취를 감춘 듯 보이는 인간세의 허물, 그렇게 쌓이고 쌓인 적폐 가운데서도 ‘부정부패’(不淨腐敗)는 가장 심각한 증상이다 ㅡ 인간의 끊임없는 ‘탐욕·집착’이 부정부패를 낳는다. 


그리고 그것은 만악의 근원이므로 기필코 척결시켜야 한다. 그래서 먼저 결론적으로 말하건대 반드시 그리해야 하는 까닭은 ‘민생경제’의 안정 발전과, ‘사회정의와 평화’의 실현을 위해서는 무원칙과 부조리를 타파하여 원칙과 공정을 바로 세워야하기에 그렇다. 이는 동시에 ‘시민혁명’과, 그로써 수립된 ‘민주정부’가 성공의 길로 나아가는 발판이며 주춧돌인바 대한민국과 국민, 지도자·위정자들이 짊어진 역사적 사명인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문명, 사회 발전을 이룬 원동력은 인간의 한없는 욕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수시이중(隨時而中, 주위의 모든 상황·형편에 맞게 적절하게 대응하여 행위하다), 자막지중(子莫之中, 산술적으로 가운데를 취하다), 곧 ‘중용지도’(中庸之道)의 실천인 것이다. 이를 테면, 욕심을 적절히 하여 넘치지 않도록 ‘절제’(節制)하는 것(節 절)이다. 그러므로 자고이래로 ‘예절’(禮節, ‘예’는 곧 ‘절’이다. 예기), 그것이야말로 무릇 인간의 사고방식(정신)과 행동양식(태도)의 절대법칙으로 여겨왔다. 그래서 조선왕조는 ‘예치주의’(禮治主義)를 바른정치(政者 正也 정자정야, 논어)의 근본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공자가 인간의 한계와 인간세의 모순을 꿰뚫어 보고 단언한 바와 같이 ‘중용의 실천’이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ㅡ “공자께서 어찌 중용의 도를 하고 싶지 않았겠는가마는 반드시 얻을 수 없기에 그 다음을 생각하신 것이다” (孔子豈不欲中道哉 공자기불욕중도재 不可必得 불가필득 故思其次也 고사기차야. 맹자) 하여, 뭇사람을 이롭게 하는 정치,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준행해야 할 지도자·위정자들이 반드시 유념해 야 할 바는, “사람이 올바르지 않고서는 욕심을 억누를 길이 없다”, “마음이 옳지 않으면 법(法)만으로 부정부패를 막을 방도가 없다”는 불변의 경구, 그 진리인 것이다.

 

 

따라서 적폐청산을 부르짖으며 사정기관 중 사정기관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설립, 운용을 추진하면서 전범삼아야 할 것은 조선시대의 ‘대간제도’다. 왜냐하면 언론 삼사인 사헌부·사간원·홍문관, 특히 ‘감찰’(監察, 사헌부)은 신라, 고려(어사 御史)로부터 물려받아 대간·암행어사로 보완하는 3중 장치로써 조선이 만개시켰던 세계 최고수준의 ‘감사제도’로 후세의 전범이 되기에 전혀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그리고 우리나라의 반만년 역사에서 일대 전환점을 이룬 사태는 고구려·백제의 멸망이다. 이후에 중국은 동방불패, 동아(東亞)천지의 패권을 차지하였던 것이다. 이에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정책을 신라는 생존전략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고, 고려도 이를 바꾸지 못하였다. 요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권, 즉 황제의 절대 권력이 기반인 중국의 ‘문치주의’의 통치방식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충실하게 따랐던 것이다(문치주의는 칼이 아닌 붓을 든 유교적 소양과 지식을 길러 쌓은 문인·문관들이 정치를 주도하였다). 


그러나 조선은 그렇지 않았고 그와는 달랐다. 모든 제도·문물을 비판적으로 도입, 나름대로의 특유한 중앙집권적 문치주의의 국가경영을 실현하였다. 중기에 들어 ‘군약신강’(君弱신臣强)할뿐더러 풍문탄핵의 악용으로 붕당이 생기고 당쟁이 벌어지는 폐단이 있기는 했으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대학), 그 성리학의 사상과 이념을 정치철학과 현실정치에 철저하게 적용하고 치열하게 실천하여 실제로 국리민복, 국태민안을 이룩하였다. 


이를 가능케 했던 것은 중추적 역할을 맡은, 앞서 말한 고려시대(어사대)로부터 이어진 조선의 사헌부로 대표되는 ‘대간’(臺諫)이다. 이는 모든 위정자·관료의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여 타파, 척결하는 대관(臺官)이었으며, (역사적으로) 조선왕조의 흥망성쇠는 ‘대간제도’와 운명을 같이 했을 만큼 조선의 국정운영, 정치·행정의 향방에 결정적인, 실로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서릿발 같은 사헌부(司憲府, 오부)의 영웅호걸과 한 시대의 뛰어난 인재” 秋霜烏府 추상오부, 英雄豪傑 一時人才 영웅호걸 일시인재, “임금은 현명하고 신하는 직언하니 태평성대라” 君明臣直 太平聖代 군명신직 태평성대, “도를 바로잡고 의를 밝히다” 正其道 明其義 정기도 명기의(권근, ‘상대별곡’) “사헌부 관헌이 정색하고 조정에 서면 모든 관료가 떨고 두려워한다”, “사헌부는 심히 맑아서 물욕이 없다”, (‘사헌부의 칼’로 불린 감찰들은) “남루한 옷에 좋지 않은 말과 찢어진 안장, 짧은 사모에 닳아 해진 띠를 걸치고 있다”(이긍익, ‘연려실기술’)


이렇게 엄정하고 청렴한 사헌부와 더불어 군왕의 독선·독주를 간쟁을 통하여 견제하는 간관(諫官, 대간; 독립된 관서로 자리 잡기는 조선 태종조에서 비롯하였다), 그 사간원은 귀족정치라 할 수 있는 조선의 사대부(좁은 의미에서는 ‘사림’) 정치에서 언관으로서 공론·공리를 주도하였고, 감찰(사헌부, 오대(부)·상대 霜臺)은 사정관으로서의 소명과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였다. 조선시대는 권력구조가 바로 이들 대간과, 삼공육경(三公六卿, 삼정승·육판서), 전랑(銓郞)의 철두철미한 삼두체제를 이루었다.

 

사정·감사기관의 ‘권한과 역할’ 강화 
적재적소의 인사, 독립적 권한부여, 상호견제 및 균형유지의 운용시스템 개선보완

 

조선왕조는 이렇게 완비된 제도와 운영방식을 통하여 대간은 삼공육경(정부)에 대한 시시비비를 밝혀 가려내고, 직속상관으로서 삼공육경은 전랑을 거느리며, 전랑은 비록 하위직이지만 대간을 천거하는 권한(堂下通淸權 당하통청권)을 가졌다. 그리하여 핵심적 국가권력이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즉 서로가 물고 물리는 삼각관계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러한 시스템과 아울러 사정(감사)기관의 목적을 달성하고 역할을 수행하고자 하면 이를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인력(manpower, 인적자원)이 무엇보다 중요하거니와, 인사관리에 있어서도 조선시대 대간의 자격요건을 준거해야 할 것이다.

 


이는 앞서의 ‘상대별곡’에서 읊었듯이 추상, 곧 서릿발 같은 엄정한 ‘감찰·사정’을 한 치도 착오 없이 실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하여 선결해야 할 조건이 틀림없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대간은 누구도 부인치 못할 당대의 최고 인물이고, 전통적으로 엄격한 가풍의 문중 출신이며, 대다수가 과거시험에 합격(문과급제)한 청렴결백하고 강직한 성품의 스무 살부터 서른 남짓한 나이의 청년들이었다.


젊은 그들은 시속에 빠지거나 세파에 길들여지지 않았고, 출중한 인격과 탁월한 학식, 그리고 예리한 판단력을 가진데다가 사대부의 책임의식과 자부심이 남다른 군자도(君子道), 곧 ‘선비정신’을 일관하여 추구하고 맹렬하게 실천하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목숨을 내놓고 직언(바른말)하며 가차 없이 탄핵(쓴 소리)하였다” 언필칭 뇌물을 받는다든지 권한을 악용하여 이권을 챙겨서는 안 되고, 친척친지와는 대간을 같이 할 수 없었다(이는 상피 相避에 걸린다). 그래야만 정치·행정의 모든 부조리와 폐단, 부정부패를 명확하게 가려 찾아내고, 준엄하게 탄핵하여 온갖 적폐를 타파, 척결할 수 있는 것이다.

 

“풍문으로 들었소”, 이를 패러디(parody)한 노래, 민중가요가 ‘11·12시민혁명’이 본격화되기 전, 국정원의 대통령선거 개입을 추궁·규탄하는 집회에서 신랄한 풍자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는 속담, 그 경구를 철저히 따랐던 것인가. 조선시대의 감찰은 ‘풍문’만 들려도 이를 근거로 거침없이 탄핵했고, 당사자는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즉각 사직해야만 하였다. 그렇게 풍문탄핵을 당한 공직자는 무혐의가 확인된 후에야 복직할 수 있었는바 현재,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진 ‘적폐수사’를 생각게 하는 대목이다.


그럴진대 대간을 정권·정부의 파수꾼이요, 지킴이로 여긴 것은 너무도 당연하였다. 하지만 못내 안타깝고 아쉽게도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오백년의 긴 세월동안 건재했던 조선이 그 말기에 이르러 정체성을 잃고 크게 흔들리던 끝에 서세동점(西勢東占), 열강의 침노에 힘없이 무너진 근본원인은 과연 무엇인가? 요컨대 그것은 이조 전랑의 인사권 약화, 즉 자대권(自代權, 후임자 추천권), 당하통청권(당하관 추천권) 박탈과, 내부 인사권을 이조판서에게 넘겨주어 견제와 균형의 삼각관계를 깨뜨리고 대간의 (독자적) 언론권의 제약을 자초한 사실이다. 


그 결과, 권신의 출현, 발호가 유발되었고, 이를 기화로 부패 극치의 ‘세도정치’가 기승을 부리게 되었던 것이다(이때에 대간은 이미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해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만연한 ‘부정부패’로 점철하였던 것이다. 베스트셀러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가 멸망한 원인으로 가장 지배적인 생각인 ‘타락과 악덕’이 결코 아니었다는 주장을 피력하여 역설적으로 이를 반증하고 있다. 


물론 그 반론과 같이 로마인의 기력 쇠퇴, 패기·자신감 상실이 한 가지의 원인일 수는 있을 것이다(시오노 나나미, ‘로마인에게 묻는 20가지 질문’). 그러나 단언컨대 로마의 타락을 부인한 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간단히 말해서 '팍스 로마나’(로마가 이룩한 평화)를 구가하였던 로마제국이 무너지던 시기에 부패와 타락, 향락과 나태, 그로 인한 혼돈과 불안이 극심했던 사실은 대다수의 역사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공언한 사실이다. 비단 로마제국(서로마)의 멸망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거의 모든 나라들이 쇠망한 주된 원인은 하나 같이 ‘부정부패’다. 


하지만 심히 우려스럽게도 현재,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비롯하여 한국이 국가적으로 봉착한 여러 가지 현안에 가려 ‘적폐청산’이 뒤로 밀려난 듯 한대다가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공수처의 역할마저 약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부정부패의 척결은 정권 초기에 만사 제쳐놓고 처결해야 할 국정 과제의 급선무이며, 이를 선결치 못하면 모든 국가정책이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되풀이 하여 말하건대, 부정부패는 만악의 뿌리이고, 그래서 ‘부패망국’(腐敗亡國)이 필연적인 까닭이다.

 

따라서 ‘민주시민혁명’에 나선 대한민국의 국민과 지도자·위정자들은 이 엄연한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하여 상기해야만 한다. “견제되지 않는 모든 권력은 부패한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하여 확인되는 이 진리는 과거·현재·미래, 어느 시대에도 변함없이 관통하며, 요컨대 ‘부패망국’인 것이다. 따라서 조선후기에 적잖게 제기되기도 했던 ‘대간제폐지론’(대간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된 근본원인은, 그 권한의 약화다), 이를 테면 “남의 눈치만 살피면서 관리들을 논박치 못하거늘 하물며 군주에게 감히 간언할 수 있겠는가”(정약용, ‘경세유표’) 


그러면서 모든 관리들에게로 언로를 넓히는, 즉 언론의 역할 확대와 활성화를 바라는 자못 역설적인 대안제시일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에 완성된 대간의 ‘정신(취지)과 제도(방식)’를 적극적으로 원용하기 바란다. 예컨대 사정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①적재적소의 인사관리, ②독립적 권한과 역할 부여, ③상호견제 기능과 균형유지의 핵심적 운용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고, ④공명정대·공평무사를 지향 추구하며, ⑤멸사봉공·살신성인을 실천하였던 그 ‘정신’을 롤 모텔삼아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현행의 정치체제에서 조선시대의 대간제도와 동일한 방식으로 사정(감사)기관이 유관기관과 대등한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지금은 민주주의 시대이므로 최고책임자를 국민이 직접선출(또는 추천), 불가침한 고유권한을 행사하도록 ‘독립성 보장’은 물론, 감사원에 ‘간쟁기능’을 부여하여 이를 보완했으면 한다. 아울러 같은 맥락에서 감사원과 경찰의 권한과 역할을 보다 강화함으로써 부정부패 척결을 차질 없이 실행하여 국정성공의 주춧돌이 될 ‘적폐청산'의 역사적 사명을 완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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