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행정부의 위상과 역할 재고(再考)

대통령은 ‘질문·경청과 판단·결정’에 힘쓰며 정부의 ‘헌법적 권한과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권혁시 칼럼 | 입력 : 2018/01/01 [19:23]

격동의 시대, 파란만장했던 2017년 한 해가 저물었다. ‘태양을 부르는 새’, 그 붉은 장닭이 고고한 울음소리로 여명을 알리며 시작한 정유년. 열화 같은 시민혁명으로 새로운 민주정부를 수립한 대한민국이 격랑을 헤치며 ‘민주시민혁명’의 완결을 향하여 힘차게 일로 전진한 한 해였다. 국정농단·국기문란·정치파행(정치적 요인), 그로 인한 민생불안·사회혼란·경제위기(사회경제적 요인)로 촉발된 시민혁명은 정권퇴진과 함께 신정부를 출범시켰던 것이다. 


이로써 1천7백만 민중이 봉기한 ‘11·12민주시민혁명’ 완결의 역사적 소명은 혁명의 리더(혁명의 개인심리적 요인)에게 귀착되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과, 그가 이끄는 민주정부의 소임과 역할은 막중·지대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은 혁명이란 지난하므로 불퇴전의 용기와 백절불굴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러시아혁명의 시발로부터 5년이나 지난 후인 1922년 12월 30일, 그 때야 비로소 소비에트사회주의 연방공화국(소련)이 건립된 사실이 이를 시사한다.


앞서 한국이 거센 파도를 넘어 앞으로 나아간다고 했듯이 흔히들 ‘국가 통치’를 항해술로 일컬어 왔다(플라톤, ‘국가’ :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통치의 기능이면서 그것을 실행하는 제도(institution)로써 정부, 즉 ‘통치와 정부’를 동시에 뜻하는 거버먼트(government)는 ‘배를 저어 나아가다’, ‘방향을 잡아 이끌다’(govern의 라틴어 governare, 그리스어 kybernan)가 어원인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혁명의 완수를 이끌어 나가는 혁명의 리더, 즉 혁명정부의 최고지도자·책임자인 대통령의 책무와 역할은 역사적 사명이고 시대정신의 구현이며, 민주시민의 절대적 ‘정언명령’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각별히 유념해야 할 것은 대통령의 권한과 임무에 대한 확실한 인식과 적확한 정의(定義)다.

 

 ▲ 작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로 거처 옮긴 후 첫 출근을 하고 있다.  

 

첫째, 대통령의 말뜻(어의)과 역사에 관하여;

 

대통령은 president(프레지던트)의 번역어인데, 우리나라가 최초로 이 낱말을 쓴 것은 ‘고종실록’이다. 1882년, 조미조약문을 수록하면서 프레지던트의 중국어(한문) 음역인 佰理爾天德(백리미천덕)으로 표기하였고(한자 음역인 까닭에 우리 식 발음인 백리미천덕이 아닌 ‘프레지던트’로 읽어야 옳다) 1889년, 주미 전권대신 박정양을 친견하는 내용에는 이를 ‘대통령’으로 명기하였다. 1895년, 유길준의 ‘서유견문록’ 가운데 제 5편 ‘정부의 시초, 종류 제도’에도 대통령이라는 번역어를 쓰고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국가원수·정부수반, 곧 국정 최고책임자를 지칭하는 ‘대통령’이 그 본류인 미국에서 행정부(집행부) 수장으로 확정되기 전에는 지배하거나 결정하는 지위의 뜻보다는 주관하여 판단하는 의미가 컸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용어의 채용은 초기 연방헌법 제정 과정에서 ‘강력한 연방정부의 집행권’을 명시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영국과는 다르게 정책결정 과정에 중추적 국가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국가권력을 여타의 기관에 분산시키는 것은 매우 중대한 실수(grievous mistake)였다”


그럴 정도로 정부의 정책 형성과 집행의 집중력, 행정 주도권의 중요성 대한 인식은, 많은 우려 속에서도 꺽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거론되어 왔던 것이다. 그런데도 19C 말까지 미국 프레지던트(대통령)가 의회의 강력한 견제를 받아 권력과 위상이 미약했다는 점은 대통령의 참모(백악관 비서)가 그랜트(18대, 1869~1877년) 재임시 6명으로 증원되었고, 매킨리(25대, 1897~1907년)에 이르러서야 27명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포레스트 맥도날드, ‘미국의 대통령제’). 


미국의 대통령(중심)제는 치열한 쟁론 끝에 승리한 연방주의자(제퍼슨)들과 반연방주의자(해밀턴)들의 타협적 소산이다. 그 결과 강력하면서도 수동적인 극히 신중한 권한행사로 일관하였다. “행정권 독재에 대한 두려움이 미국의 정치적 전통의 일부”(아놀드 래스키, ‘미국의 대통령제’) 그러한 인식으로 인하여 실제로 아메리카합중국(미국)이 건국된 이후 19C 말까지 아주 오랫동안 주정부와 연방의회로부터 견제를 당한 탓에 강력한 행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던 것도 실재한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은 시대 상황의 변화와 발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적극적으로 부응함으로써 헌법 제개정 없이 의미해석의 변화에 의하여 정부의 위상이 커지고 권한이 강화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둘째, 정부의 집행권, 즉 행정권의 본질에 관하여;

 

정부는 행정권을 집행한다 ㅡ 이 점은 일반행정과, 집정자의 보편적 자질과 대통령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본질의 문제다. 미국에서 시발한 ‘대통령(중심)제’가 유럽이나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에 전파되었다. 그가운데서도 중·남미 국가들과 우리나라는 식민지 상태에서 삼권분립의 정치(체제)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던 연유로 왕조시대를 잇는 통치방식의 전이현상이 적잖게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대통령제는 국가경영(국정수행)의 목적과, 이를 실행하기 위한 시스템·제도적 장치, 그리고 그 실효성에 관한 역사적, 현실적 맥락의 관점에서 바르게 ‘정의’하고 제대로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요컨대 그것은 정치철학으로의 귀결인 바, 대한민국 헌법(국헌)이 이를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제4장 정부 ㅡ 제1절 대통령 ㅡ 제66조 ①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 ②대통령은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존,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 ③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 ④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 그 외에도대통령의 외교권(제73조), 국군통수권(74조), 비상조치권(76조), 계엄선포권(77조), 공무원인사권(78조) 등을 규정하였다. 


이렇게 우리나라 헌법은 행정권 귀속(헌법 제66조 제4항 및 관련 조항) 이상으로 대통령의 권한과 의무(동조 제1항 내지 3항)를 확정하여 국가원수이며, (국회의원 선임, 법률제정 이외의) 국정최고책임자인 ‘통치권자’로서의 실로 막중·막강한 지위를 부여한 것이다. 이렇게 막강한 권한과 막중한 책무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나 민주국가, 민주정치의 주체는 국민이다(헌법 제1조, 국민이 객체인 헌법이나, 국민주권의 위임자인데도 대리인인 위정자에게 종속된다면 민주국가의 주권자, 곧 주체일 수 없다. 따라서 대통령은 이 점을 상기하여 국정수행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국민의사(민의)는 분리될 수 없는 ‘통일성 원칙’에 의하여 대통령은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판단(의사결정)과 의지(실천행위)를 일관하여 관철함으로써 민의(국민의 뜻)를 실현시켜야 하는 것이다.

 

셋째, 대통령의 자질에 관하여;

 

모든 지도자·책임자가 그래야 하거니와 특히, 대통령은 민주국가, 민주정치의 주권자 국민으로부터 최고권력을 위임을 받은 대리인으로서 국가통치, 행정집행의 인격적 주체인바, 인격·능력·비전의 남달리 뛰어난 ‘자질’과 그와 상통하는 ‘리더십’(인식; 판단력·문제의식·성찰, 경청; 소통·겸손·포용력, 선견지명; 통찰력·방책·비전 제시)이 필요 불가결의 조건이다. 그러므로 첫째로 도덕성, 역사의식, 시대정신, 정치사상, 국정철학, 사명의식이 정대하고 투철해야 한다. 


둘째로 ‘인사가 만사’이므로 정부수반으로서 행정집행을 직접 보좌하는 최고 정무고위직에 대한 인사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국무위원, 즉 국무총리를 필두로 행정 각 부처의 수장(장관)을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이른바 ‘용인술’은 특히 중요하다. 그것은 최고 공직자로서 인성과 능력을 두루 갖추고 국정수행을 주도해 나가는 ‘맨파워·싱크탱크’의 조직과 활동인 것이다. 요는 국가 정책의 형성·집행, 다시 말하면 이들 청렴하고 유능한 정부각료, 헌법기관인 정부, 곧 ‘행정부 주도’의 국가경영, 국정운영이 되도록 해야 한다.


셋째로는, 적재적소의 인재기용을 비롯한 대통령의 ‘판단력’은 국가·사회 전체, 전반에 관한 인식과 정의(定義, 해석)의 능력과 아울러 인격(인간성)이 융합된 고도의 정신력의 발출이다. 그러므로 국정 최고책임자, 대통령은 끊임없이, 열심히 공부하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정부 각 부처의 보고서를 일일이 검토고 결재하는 것은 시간적, 물리적으로 불가능할뿐더러 그리하는 것을 성실한 직무수행으로 안다면 대통령의 자질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대통령은 모름지기 치열한 ‘문제의식’을 통한 명료한 ‘질문’으로써 부하의 능력을 평가하고, 모든 현상과 현안들을 적확하게 인식하고 파악하며, 유효적절한 해결책·방책과 비전 제시, 곧 정확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모들(청와대 비서진) 이상으로 국가정책을 심의, 결정하는 국무위원·장관들과 자주 만나서 소통해야 한다. 


넷째는, 엄연히 헌법이 명시한 ‘행정부’(헌법 제86조 내지100조), 즉 총리와 장관의 권한과 역할 강화이며, 달리 말하면 국정의 주도권을 정부가 실질적으로 행사케 하는 것이니 일견, 이보다 중요한 시책이 달리 없을 듯하다. 그 핵심은 일반행정은 국무총리와 장관에게 전적으로 일임(위임)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자칫 열심히 일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그런 가운데 부지런히 학습하고 끊임없이 사색한 결과가 역설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학습과 경청, 사색과 궁리라는 특별한 능력과 더불어 ‘통치권자’(제1 집정자)로서의 대통령은 ‘치열성’, ‘엄격성’이 남달라야 하며, 혼란기·혁명적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대통령을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닐진대, 자신이 숙명적으로 국가·국민과 동일체(one flesh)라는 자각과 인식을 통하여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읍참마속(泣斬馬謖)을 능가할 만큼 엄정해야만 한다. 이는 멸사봉공·살신성인, 공평무사·공명정대를 신념으로 삼고 실천하는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국가의 최고지도자·집정자인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출중한 자질, 탁월한 리더십은 겸비해야 함은 더 말할 나위 없다. 더욱이 현대사회는 복잡다기, 다사다난, 변화무쌍하기 그지 없다. 수많은 국정현안과 국민여론, 그리고 국가적 딜레마에 대한 쟁점이 생겨나며, 그에 대하여 참모들 간에도 다양한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의견상충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결국에 통치력의 관건은 먼저 말한 바와 같이 대통령의 ‘판단과 결정’, 그 탁월한 능력에 귀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참모를 늘려 국정을 직접 관장하고 행동하며, 그런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 주는 게 결코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닌 것이다. “대통령은 국가 중대사안의 결정 발표, 또는 긴요한 국민계몽의 메시지 전달 외에는 국무총리(국무장관), 소관 부처의 장관에게 맡겨야 한다”(미국의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이와 비슷한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권혁시 이사장

결론적으로 대통령은 가능하면, 경청하고 학습하며 사고하고 연구함으로써 국정 전반에 대해 적확하게 인식, 판단하여 시의적절하게 방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으로 충분히 책무를 다하는 것이고, 이에 더하여 신상필벌의 엄정한 인사관리로써 권한을 행사하면 국민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터이다. 그런데, 정부역할과 관련하여 지금까지는 자화자찬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비서진(청와대)의 맹활약이 단연 돋보인 듯했다. 


그러나 새해에는, 헌법은 말할 나위 없고 정부조직에서 조차 대통령 ‘비서실’일뿐 중앙행정기관이 아닌 청와대(참모진)는 반드시 그 권한과 규모를 (대선공약을 지켜) 대폭 축소하고 본연의 역할만 충실히 수행토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 까닭은 ‘대통령의 독재’를 우려하여 비서진을 최소화했던 미국의 역사적 사례뿐 아니라, 집정자와 정부의 국정수행에 유효적절하게 기여하여 세계 역사상 가장 모범적으로 평가받는 조선시대 ‘승정원’의 기능과 역할을 전범삼기를 바라서다.


반면에 앞서 강조했듯이 국정수행의 중추인 행정부(집행부, 정부)의 권능과 역할을 확대, 강화함으로써 ‘헌법기관’인 정부가 주도하는 집중적이고 효율적인 국가경영을 실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민주정부, 문재인 정부가 성공의 길로 나아가고, 종국에는 ‘민주시민혁명’이 성공적으로 완결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끝으로, 새해에는 부디 국가발전으로 국태민안과 국리민복을 이루기를 바라며, “온 국민이 모두 평강하고 만사형통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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