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 지식인의 ‘지(知)의 의무’ 회피

지식인은 도덕성 견지, 비판의식 실천으로 부정부패 척결, 사회기강 확립을 실현해야 한다

권혁시 칼럼 | 입력 : 2018/01/27 [01:40]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권혁시 이사장

인간세에 인륜도덕이 없어지면 세상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결론부터 말하거니와, 지식인의 ‘비판의식’은 도덕의 존립 기반이며, ‘도덕성’의 견지는 이를 구현하는 지식인의 존재 근거다. 그런데도 비판의식이 없거나 비겁하게 바른말, 쓴 소리, 즉 비판하기를 마다하면 허울뿐인 사이비 지식인이며, 인간세 정립의 중추인 도덕성의 마비이고 특히, ‘지(知)의 의무’(지식인·학자의 본분과 책임)에 대한 명백한 부정이고 거부며 회피인 것이다.


그것은 직설컨대 곡학아세(曲學阿世)에 다름 아니다. 이는 현세의 모순과 부조리를 깨부수어 바로잡는 도덕의 재정립과, 나아가서 도덕적 가치를 일신하는 데 따른 극심한 고뇌와 고통을 부인하고 외면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존재이유를 망각한 행태다. 그러한 탓인지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할 것 없이 모두가 삼류다. 삼류 문화는 주체적이고 진취적으로 변화 발전을 주도하기는커녕 그 변화를 따라가지도 못하는 하등의 문화를 이른다. 


이 지경이 된 까닭은 인륜도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국정파탄·국기문란·정치파행, 그도 모자라 불공정경제·맹목교육·사회기강 붕괴 등등, 온갖 부정부패로 점철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무원칙과 부조리를 당연지사로 여겨 온통 더럽고 추잡한 술수와 반칙이 횡행한다. 전직대통령 독직비리(국정원 특활비수수 폭로, 친형 검찰소환), 사법파동(사법부 블랙리스, 판사사찰), 정치인 발언번복(북한 동계올림픽 참가반대) 등을 비롯하여 요 며칠 사이에도 사회적 이슈가가 된 불미한 사태가 끊일 새 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더욱 암담하고 걱정되는 것은 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인구절벽’ 현상이다(출산율이 2.08 미만으로 떨어지면 국가의 존립이 불가능해 진다). 그것은 의기소침해진 청년들의 ‘N포’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결혼·출산 포기의 암울한 결과다.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IMF(국제통화기금) 총재는 이러한 현상이 적이 충격적이어서 한탄스레 말했다 한다 ㅡ “집단자살 사회!” ㅡ 그 푸념처럼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출산율 세계최저의 오명을 지워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2016년, 한 해의 신생아 수는 역대 최저였다. 


반면에 사교육비는 증가를 거듭하여 역대 최고로 자녀양육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켜 한국 청년들로 하여금 딩크족(DINK, Double Income No Kids)이 되게 하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결혼과 출산 포기를 위시한 N포현상은 암울하다 못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보다 우리를 실망시켜 더 슬프게 하는 것은 교육의 주체, 사도(師道)가 되어야 마땅할 교육자들, 특히 대한민국 최고의 지식인 대학교수들이 남의 일인 듯, 강 건너 불구경하듯 수수방관하는 것이다.


‘일본인의 노벨상 수상(26인)이 이어지면서 남자 어린이들이 학자(한국은 공무원 및 대기업직원)를 꿈구게 되었다’ (일본 다이치생명보험, ‘유아·초등학생 장래희망 조사’).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국민의 교육열, 대학진학률은 세계최고 수준이지만 독립국가, 민주국가로 칠십 년이 넘게 뿌리내리는 긴 세월 동안 세계적인 석학을 단 한 명도 배출치 못하였다. 한국인들이 그토록 선망하는 대한민국 제일의 대학인 서울대가 세계 톱텐(top 10)은 언감생심, 백위를 오르내리며 턱걸이를 하는데도 부끄러운 기색이 보이질 않는다. 


오로지 돈벌이에 혈안이 된 한참 빗나간 사교육이 ‘성적제일·입시위주’의 학습을 부추기고 공공연하게 ‘선행학습’을 자행하여 공교육을 무너뜨리고 국민가계를 주름지게 하는데도 한 사람도 사교육쇄신과 교육개혁을 말하지 않는다. 망국적 선행학습, ‘학원예습·예습과외’가 보편교육의 반칙이기에 금지시켜야 한다고 어느 누가 신랄하게 비판하며 문제제기를 한 적이 있는가?  ‘인륜도덕의 근원’이기도 하여 더없이 중요한 교육의 국가 백년대계를 선문답처럼 말로만 주고받을 뿐, 전인교육·인재양성을 위한 ‘교육혁명’을 통렬하게 부르짖은 지식인이 과연 한 사람이라도 있었는가? 


대학교수는 대다수가 유학하며 선진교육제도를 체험했을 터인데도 어찌하여 망국적 교육풍토의 일대혁신을 요구하지 않는가? 독일, 영국, 미국 등의 선진교육 시스템을 도입하여 세계적인 석학배출, 우수한 인재양성을 강력히 주장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더구나 너나없이 경쟁하듯 세계의 모든 나라가 금지하는 교육적 반칙을 일삼는데도 최고 지식인, 교육자로서 누구 하나 서슬 퍼렇게 비판, 질책하며 나서지 않는다(지금이라도 교육을 비롯하여 무엇보다 선결해야 할 민생의 기본인 주거와 의료의 ‘공개념(제도)’에 관한 이론과 방책을 제시하고 실행을 촉구해야 할 것이다). 


하여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교육혁명·의식혁명’을 통하여 전인적 인간, 인재를 길러서 부강한 대한민국, 자유·평등과 평화·안전의 보장이 실현되는 ‘민주공화국·복지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강변, 강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국가·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대한민국 최고의 지식인 교수들에게 있는 것이지 삼류의 정치인, 위정자들, 삼류의 경제인, 경영자들이 아닐 수도 있다. 요는 대학교수들이 청출어람(靑出於藍)의 교육성과를 거두지 못한 탓으로 단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혜의 원천, 만인의 사표인 지식인의 사명, ‘지(知)의 의무‘ 실천

 

▲  4,19 당시 시위하는 교수들 © 인터넷

 

대학교수는 모름지기 온 인류의 사도가 되어야 하고 국민의 스승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한 국가의 ‘지혜‘(intelligence, wisdom)의 원천인 대표적인 인물로서 그 지혜가 부국의 원동력이며, 그 도덕성이 국민의 ‘사표‘(師表)로써 국가·사회의 부정부패를 막고 기강을 바로잡는 비판의식, 곧 문제의식의 보루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놀랍고도 슬프기 그지없는 것은, 한국의 대학교가 도덕성과 비판의식의 발원(發源)은 고사하고 오히려 적폐의 온상이라는 세간의 부정적인 인식이다. 


예컨대 연구비 부당청구, 각종논저 표절, 특례 부정입학, 횡령배임, 뇌물수수 등등, 게다가 정·학(政學)유착, 학문(지식)권력화를 꾀하는 대학교수들, ‘폴리페서(polifessor)가 판치는 나라’라는 비난과 개탄의 소리도 적잖은 것이 사실이 아닌가. 이런 지경에서 어떻게 진정한 학문과 치열한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그래서 부연하여 강조컨대 학자, 곧 대학교수는 나라의 최고 지성, 지식인이므로 지혜의 원천이고 인륜도덕의 산실이어야 한다. 


그럴진대 대한민국의 대학교수들도 가장 뛰어난 사람이지 않고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모범적인 가르침이 인간본성(인성)의 발출(attractors), 이를 테면 도덕성과 실력을 길러 전인적 인간, 인재를 양성하는 사회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 그들의 부단한 학문·연구가 국가부강의 결실을 맺어야 하고, 그들의 치열한 도덕적 비판의식이 부패하고 타락하기 십상인 인간세, 국가·사회의 이른바 빛과 소금, 이정표와 나침판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최고의 지식인·교수들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고 한국국민이 문화인이 되어 자유민주주의를 꽃피워 진정한 민주국가를 이루고, 명실상부한 민주공화국을 세우는 ‘주체적 민주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큰 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사상과 이념’은 인간이나 그들 공동체의 정신적 동력, 가치관이자 목표설정, 지표인데도 이를 바로 세워야 하는 당위성과 지향점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부정부패를 척결하여 정의와 순수를, 무원칙과 부조리를 타파하여 원칙과 공정을 되찾아 ‘도덕적 인간본성’을 회복해야만 나라가 잘 되고,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는 천리(天理)를 말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톨레랑스(tolerance, 관용)를 운운하면서도 순수한 ‘민족주의’를 혈통중시의 시대착오적 폐단으로 몰아붙여 한겨레의 주체성, 이를 승화 발전시킬 사상과 이념을 정립치 못하여 미국, 중국, 일본, 유럽의 열강이 한국인을 질시한다. 게다가 열등의식, 패배주의에 젖어서인지 한국인 스스로 그에 장단을 맞추듯 원정출산, 조기유학, 유학이민, 국적포기 등을 우월성의 바로미터로 여겨 이를 경계치는 못할망정 오히려 선망하고 있으니 개탄을 금치 못할 노릇이다.


바로 이런 ‘일그러진 영웅들’(엘리트주의·우월주의자들)의 뒤틀린 행태가 국가·사회의 도덕성과 기강의 훼손을 조장한다. 현세의 그 소인배들이 탐욕과 집착, 교만과 이기심에 사로잡혀 정의와 원칙을 짓밟는다. 그렇게 사적명리와 당리당략을 앞세우는 정치인, 투기를 부추기고 폭리를 밥 먹듯 하는 금융업자, 주택사업자, 조기학습·선행학습을 일삼아 공교육을 망친 학원경영자, 불공정거래와 갑질을 서슴지 않는 기업인, 무사안일에 빠져 복지부동하고 영달에 눈멀어 아부맹종을 마다 않는 공직자.


그토록 질펀하게 부정부패의 난장판을 벌이는데도 한국의 지식인들은 격노하여 한목소리로 맹렬히 질타하지 못했다. 아니 못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뿐만 아니라, 근래에 부동산가격 양극화, 암호화폐(비트코인)투자 광풍, 최저임금 인상 등, 휘발성이 강한 경제현안들이 핫이슈가 되고 있다. 진정한 경제학자, 지식인이라면 진작에 이에 대해서도 면밀히 분석, 지적하고 보완책을 제시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또한 ‘헌법개정’은 민주시민혁명의 성패와, 그로써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명운이 달린 국가 중대현안으로 정치적 화두가 되고 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정치적 이해타산과 정치공학적 술책으로 ‘삼권분립’(대통령중심제)의 헌법정신을 무시하고 ‘이권분립’의 정치체계인 의원내각제·이원집정제 개헌에 치중하고 있다. 현재진행의 시민혁명의 성공의 길은 ‘국민주권’ 회복과 ‘책임정치’ 강화이고 이를 위해서는 국민소환, 국민발안 등, ‘직접민주제’를 보완하는 개헌이 필수인데도 정치권은 말할 나위없고, 대한민국 최고의 지식인 대학교수들 마저 이론적으로 명확하게 분석, 평가한 결과의 정립된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

 

지식인의 ‘지의 의무’ 실천; ‘민족사상·국가이념’의 이론정립,

‘국헌개정·국정현안’의 대안제시, 허구적 ‘이념대립’ 불식 타파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앞서 지적했듯이 한겨레의 ‘민족사상’과 대한민국의 ‘건국이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가치와 원리, 그리고 당위성과 지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확고한 이념정당, 실질적 정책정당을 정립하지 못하여 수많은 정당들이 생멸을 되풀이하여 왔다. 기실, 학생회 선거판에서 보던 이념논쟁 보다 나아진 게 없다는 자조가 이를 말해 준다. 그런 걸 보면 사상과 이념, 그 이론과 정책을 확립하고 창출해낼 수 있는 브레인, 싱크탱크가 없는 게 확실한 것 같다. 


그 이유 역시 한국의 대학교수들이 독자적인 정대한 사상과 진전된 이념의 ‘이론 정립’에 분연히 도전하고 치열하게 투신하지 않은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밤낮없이 무개념한 이념대립을 일삼아 국론분열이 심각한 상태이건만 부질없는 대거리, 싸움질을 그만두지 못하겠느냐고 호통치며, 좌파가 진보, 우익은 보수, 통일·평화론이 종북·친북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명확한 논리로 가르쳐 일깨우지 못하는 게 아니겠는가?


더없이 실망스럽기는, 절망하다 못해 분노하여 들고일어난 대한민국 국민들이 추위를 무릅쓰고 몇 달 간 사상최대의 평화적 시민혁명을 계속했지만, 지식인들 대다수는 이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앞장서지 않았다. 더욱더 개탄할바는, 어느 한 사람도 루소나 로크처럼 시민혁명의 사상과 이념의 지표를 제시하고 그 엄중·장엄한 케리그마(kerygma, 선포·선언), 위대한 ‘민주시민혁명’이 부르짖는 사자후, 포효를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다.


영국 명예혁명의 이념과 사상은 ‘천부인권설’(자연법사상), 미국 독립혁명은 ‘시민정부론’(존 로크), 프랑스 대혁명은 ‘사회계약설’(장 자크 루소)이 정명하고 확고한 이론을 뒷받침하였다. 이를 기초로 각각 권리장전(영국), 독립선언(미국), 인권선언(프랑스)을 작성하여 만방에 선포했다. 이 역사적 사실을 교훈삼아 판단할 때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이 민주주의 국가·사회를 위하여 투신하고 정진하지 못하는 것은 ‘지의 의무’ ㅡ 지식인으로서의 역할과 책임감 내지 사명의식의 결여이고, 그게 아니라면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無知)무상(無想)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라도, 대학교수는 국가의 최고 지식인이므로 서두에서 언명한 도덕성 견지를 통한 실천철학을 정립하고 행동함으로써 본연의 사명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 그 정신과 실천이 언제나 변함없이 진리와 정의를 향해야 하고, 따라서 치열하게 ‘사회성’(sociality)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학문과 연구를 실행하여야 한다. 전공분야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문(文)사(史)철(哲)의 인문학적 통달은 상식이며, 그리하여 도덕적 실천철학을 명명(明明)하게 인식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정언명령’을 저버리고 권력과 재력과 명성만을 쫒아 도덕의 타락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지식인이 아닌 단순한 직업인으로서 지식판매자에 불과한 것이다. 만일 이와는 반대로 대한민국의 지식인들이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존 로크의 ‘시민정부론‘’을 적확하게 이해하고 철저하게 인식하여 이를 실천할 정도로 ‘사상과 의식’이 명정(明正)하고 투철했다면 무도불의·부정부패가 얼씬거리지도 못했을 테고, 대한민국이 세계 제일의 민주국가, 사상 최고의 문화선진국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안타깝고 개탄스러운 바는 대학교수 대다수의 학문·연구가 사상과 의식의 지평의 확장, 확대인 ‘인문학적 소양’이 턱없이 부족하여 사회성이 박약한 것이다. 학자의 정신·의식이 사회(문제)로 관통하지 못한 것은 비판의식의 결여 내지 마비를 뜻한다. 지식인이면서도 비판과 문제의식의 결핍은 도덕성의 상실이며, 그리하여 ‘지식의 역작용’에 의한 악폐의 주인(主因)이 될 수도 있는 무서운 역설이 성립하므로 대오각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함께 영남학파의 양대 거봉이었던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은 여러 번 상소를 올렸다. 모든 출사 요구를 거부하고 운둔하면서 침묵으로 일관했으나, 언제나 변함없이 진정으로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며 염려하였던 것이다. “궁중에 늙은 과부가 있어 임금의 총명을 흐리게 한다!” 조선의 대학자 조식은 문정왕후(文貞王后)의 수렴청정이 심히 잘못됐으며, 극히 부당하다는 생각 끝에 ‘단성소’(丹誠疏)를 올려 섬뜩하리만치 무섭게 몰아붙였다. 이렇듯 진정한 지식인의 비판의식은 추상, 가을 서릿발 같다..


아울러 채근담(菜根譚, 제27장)은 지식인으로서 반드시 견지해야 할 ‘선비정신’과 그에 따른 사명의식, 곧 실천의지를 주지시킨다. “높은 벼슬에 있더라도 자연과 더불어 사는 기상과 뜻이 없어서는 안 되며, 시골에 묻혀 살지라도 마땅히 나라를 위하여 경륜을 품어야 할 것이다” (居軒冕之中 거헌면지중 不可無山林的氣味 불가무산림적기미 處林泉之下 처림천지하 須要懷廊廟的經綸 수요회낭묘적경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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