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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민주시민혁명과 올림픽 정신, “껍데기는 가라!”

적폐 수구세력은 ‘허위의식’을 탈피하여 ‘혁명정신·올림픽정신’에 따라 정의와 평화, 단결과 친선, 개혁과 도약에 동참하라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8/02/08 [21:55]

동학농민혁명·민주시민혁명과 올림픽 정신, “껍데기는 가라!”

적폐 수구세력은 ‘허위의식’을 탈피하여 ‘혁명정신·올림픽정신’에 따라 정의와 평화, 단결과 친선, 개혁과 도약에 동참하라

서울의소리 | 입력 : 2018/02/08 [21:55]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 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시인 신동엽(申東曄, 1930~1968년)은 냉철한 현실인식과 치열한 문제의식, 그리고 투철한 역사의식 속에서 시를 지었으며, 특히 열절하게 민족화합과 평화통일을 갈망하여 읊었던 시들은 한국시사(詩史)에 하나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껍데기는 가라!” ㅡ 자유, 평화, 통일과 한겨레의 번영을 염원하며, 불우한 민족적 현실과 불의한 부정적 세력에 대한 저항의식을 그렇게 직설적으로 포효하였다.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 ㅡ 울부짖는 소리, 이 피맺힌 절규에 어찌 핍박과 능욕과 수모와 고통에 짓눌려 살아가던 민초(民草)들을 생각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인간 전봉준(全琫準, 자 명좌 明佐, 호 해몽 海夢, 1855~1895년)이 더불어 떠오르는 것은, 평창동계올림픽이 며칠 앞으로 다가온 이즈음, 그 절정에 이를 개막일 닷새 후인 15일이 ‘동학농민혁명’ 124주년이어서 그렇거니와, 의인(義人)인 그가 현세를 사는 우리를 꾸짖고 나무라는 듯해서다. ‘아무 죄도 없는 민중을 위하여, 그 폐해를 없애고자’ 분연히 들고일어난 의롭고 용감한 선비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체구가 작아서) ‘녹두장군’으로 일컫는 전봉준이다.

 

사상최초의 ‘민중지도자·혁명가’ 전봉준, 세계사적인 ‘민중혁명’ 동학농민혁명
-정치·경제의 부정부패 타파, 민간중심(민주적) 자치행정 실행, 외세침략에 결사항쟁


부패망국(腐敗亡國)의 근원인 조선말기의 ‘세도정치’가 마침내 뿌리 뽑혔다.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이 어린 아들 고종이 왕위에 오르자 섭정을 하면서 육십년 동안 나는 새도 떨어뜨렸던 안동 김씨의 세도를 무너뜨렸던 것이다. 그러나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썩을 대로 썩은 조선은 이미 회복, 복구 불능의 상태였다. 이렇게 말기적 증상이 극한에 달한 혼란과 불안 지경에서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는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고, 이를 묵과치 않은 전봉준이 민중봉기를 주도하였던 것이다.


그는 전라도 태인의 동곡마을이라는 곳에서 가난하고 청렴한 선비(향교 장의) 전창혁(全彰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가학과 독학으로 정학(正學, 유학·爲聖之學 위성지학)에 힘써 ‘성인지도’(聖人之道), 곧 선비정신이 남달리 충일하였다. 그런 전봉준이었기에 서슴지 않고 기꺼이 고통 받는 민초들의 대변자가 되고, 국권을 침탈하는 외적에 맞서 싸우는 전사가 되어 죽음을 마다 않고 투쟁에 앞장섰다. 


“고부군의 폐정이 조선팔도의 그것과 같다” “일본의 조선 침략은 다른 나라의 그것과는 다르다” 선비정신이 강고하여 비판·문제의식이 투철했던 그는 이러한 사태의 폐단를 직시하고 소리쳐 질타하며, 악폐의 시정을 위하여 용감하게 행동에 나섰다. 이렇게 전봉준의 일관되고 확고한 정신(사고방식)과 태도(행동양식)야말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민중지도자·혁명가’로서 험난한 길을 걷게 했다하여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전봉준은 서른 살이 넘어 뒤늦게 ‘守心敬天’(수심경천) ‘輔國安民’(보국안민, 외세침략 배격, 악폐척결)을 추구하는 동학에 입문, 정신함으로써 고부 접주가 되었는데, 이는 뛰어난 자질을 인정받은 결과였을 것이다. 그런데 1892년, 신임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이 가렴주구를 일삼았다(수세 과다징수, 면세 진전(유휴지)경작세 징수, 부친 송덕비건립비용 강제모금, 대동미 초과징발 착복 등등). 그토록 학정에 시달리던 농민들의 원성에 전봉준은 유학자·동학지도자, 곧 지식인으로서의 본분과 사명을 다하고자 세수절감을 탄원하는 연판장 작성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조병갑은 고통을 견디다 못한 농민들의 호소를 묵살하고, 오히려 강제 투옥시키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그로 인해 전봉준은 옥살이를 하게 되었고, 그러던 끝에 1894년 2월 15일(음력 갑오년 1월 10일), 고부군수의 학정에 더 이상 참지 못한 농민들이 봉기하였다. 이때에 전봉준은 1천여 농민들을 앞장서서 이끌고 고부 관아를 습격, 역사적인 ‘동학농민혁명’이 불붙었던 것이다. 


• 고부성을 격파하고, 조병갑을 효수한다. • 군기창과 화약고를 점령한다. • 군수에게 빌붙어 농민을 침탈한 아전들을 징치한다. • 전주성을 함락하고 한성으로 진격한다(1차봉기 사발통문). • 사람을 죽이거나 재물을 손상치 말라. • 충효를 다하여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라. • 일본 오랑캐를 내쫒아 성도(聖道, 성인지도)를 밝히도록 하라. • 한성까지 진격하여 권귀(權貴, 권문귀족)를 진멸하라(농민을 위해 싸우는 정의의 봉기군 실천강령).


이렇게 되자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한 조정은 현직 군수를 체포, 해임하였고 신임 군수 박원명이 민원을 반영하는 노력을 다하므로 농민들은 자진 해산하게 된다. 하지만 저항의 진정과 사태의 수습을 수행할 안핵사로 임명된 장흥부사 이용태가 소임을 외면한 채 농민과 동학교도들에게 일방적으로 봉기의 책임을 전가함과 동시에 주동자를 체포하려 들어 다시 상황을 악화시켰다. 전봉준은 사태가 돌변하자 전라도 일원의 동학접주들에게 격문을 띄웠고, 이에 호응한 1만 3천여 농민과 동학교도들이 고부로 모여들었다.

 

탁월한 전략·전술가였던 녹두장군 전봉준은 봉기의 주력인 농민군을 이끌고 황토현과 장성 싸움에서 관군을 쳐부수고 여세를 몰아 정읍, 태인, 금주를 공략하면서 전주성를 점령, 호남 일대를 장악하였다. 이후 황룡천 전투에서 승리하여 승세를 굳혔으나, 청군과 왜군이 출병하여 중과부적으로 판단, 관군과 휴전 협상을 맺고 농민혁명군의 폐정개혁 제안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자진 해산하였다.


그리하여 제2차 봉기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결과, 농민대표가 지방자치 행정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이는 관치주도의 행정이 (극히 일시적이었으나) 민간중심으로 변환된 조선의 역사 이래 전무후무한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행정체제였다. 이로써 전봉준은 지방행정의 보다 효율적인 실행을 위하여 폐정 개혁방안 ‘12조’를 수립하여 민관 합동행정을 실시하였는바, 적폐청산에 나선 후세의 우리가 전범삼아야 할 일이다.


①동학교도와 관리들은 원한관계를 버리고 서로 협력한다. ②탐관오리는 죄목을 조사하여 엄격히 징벌한다. ③횡포를 부렸던 부호를 징계한다. ④불량한 양반과 유림들을 징벌한다. ⑤노비문서는 불태워 버린다. ⑥천민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고, 백정이 머리에 쓰는 평양립을 벗게 해 준다. ⑦청상과부는 개가를 허용한다. ⑧무명잡세는 모두 없애 버린다. ⑨관리의 채용에 신분과 문벌을 타파하고, 인재등용에 주력한다. ⑩외적과 내통하는 자는 엄하게 징벌한다. ⑪지금까지의 모든 공사채는 무효로 한다. ⑫토지는 균등하게 나누어 경작하게 한다.


그런 가운데 일본이 민씨 세력을 축출하여 친일정부가 들어서자 9월 중순, 전봉준은 농민군을 재집결시켜 공주(곰나루)를 거점으로 전투를 벌이며 일진일퇴를 거듭하였다. 그러다 최대의 결전인 우금치 전투에서 7일간의 공방 속에 사투하였으나, 결국에는 신병기로 무장한 일본군의 화력을 당해내지 못하여 끝내는 패퇴하고 말았다. 결정적 타격을 입고 후퇴하던 전봉준은 관군과 일본군의 추격을 받으며 수차례 격전을 치렀고 최후의 태인 전투에서 패배해 산속 깊이 피신하면서 재차 봉기하고자 계획하던 중 밀고로 순창에서 체포되어 교수형을 당하였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이 되기 위하여
-사상·이념, 정파·지역, 신분·세대를 초월한 ‘혁명정신·올림픽정신’의 실천

 

2004년 아테네 여름올림픽 당시 남북한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하고 있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멸시당하고 핍박받던 백성들을 일깨워 무도불의한 세태, 부정부패를 일삼는 봉건적 기득권 세력에 저항하는 시대의 주역, 주체로 이끌었던 위대한 선각자, 혁명의 리더(메시아 messiah, 열정적 지도자)였다. 그 후에 들불처럼 일어난 항일 의병투쟁의 표상이 되었던, 목숨을 걸고 그가 앞장서서 이끈 ‘2·15동학농민혁명’은 부정부패한 정치와 약육강식의 외세에 용감하게 맞서 싸운 민중의 항거였다. 


더욱 의미심장하기는, 농민대중이 단결하여 일으킨 이 봉기는 농민항쟁, 민족투쟁으로써 세계사적으로 더없이 중요한 가치를 발한 ‘민중혁명’인 것이다. 11·12민주시민혁명은 우리 선열들의 이러한 정신과 전통을 이어받아 3·1독립운동,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에 이르는 도도(滔滔)창창(蒼蒼)한 역사의 물줄기로부터 연원한 ‘주체적 민주시민’으로서 사명의식과 실천의지의 발로인 것이다. 


오는 10일 개막하는 동계올림픽이 이렇게 면면히 이어져온 우리 한겨레의 불의를 용납지 않는 ‘혁명정신’과 상당한 연관성은 없을지라도 의미상의 관계는 대단히 크다 할 수 있다. 시민혁명을 통하여 세워진 민주정부에 의해 북한이 이번 동계올림픽의 각종 행사와 경기에 참여하고 단일 팀까지 구성하게 된 것은 의미심장한 결과이고, 시민혁명의 주체인 국민의 염원과 불가분의 관계가 성립된다. 왜냐하면 ‘민주시민혁명’의 목적이 자유와 평등,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고 나아가서 통일과 번영을 구가하는 진정한 민주국가 명실상부한 공화국을 이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 핵·미사일에 관한 북미의 극한 대립으로 긴장이 고조되던 상황에서 열리는 올림픽은 북한의 적극적인 참가로 가까스로 위기를 넘기고, 대화의 실마리를 푸는 호기를 가져다주었으니 그 의미가 지대한 것이다. 예의 수구 정권은 생각 조차 하지 않았을 터이나, 민주시민의 열망으로 힘을 받은 민주정부이기에 어떻게 해서든 남북대화의 불씨를 되살려 북미협상의 교두보를 놓기 위해 진력하는 것이다. 아울러 혁명정신과 올림픽정신은 일맥상통한다는 점을 적확하게 인식하여 그 정신을 따라 ‘정의·평화, 단결·친선, 개혁·도약’에 매진하여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기득권 세력이 주력인 정치, 언론을 필두로 한 수구 패거리가 ‘북핵경계론’을 빌미로 온갖 시비를 일삼아 어렵게 되살린 불씨를 끄려는 데 급급해 있다. 예컨대 “북왕조 선전장 만들어주려 2전3기 올림픽을 유치했나” “독 든 만두” “죽 쒀서 개 주네” (조선일보) 이런 저열한 언설을 함부로(자의적으로) 내뱉는 행태는 달은 보지 못하고 손끝만 쳐다보는 우매한 짓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이를 모를 리가 만무하므로 그 저의는 과오의 면피와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반북’몰이 내지 분단 고착화 기도가 분명해 보인다.

 

북한의 핵·미사일과 관련한 제재는 필요한 처방이지만, 결코 만병통치약(panacea)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10년 가까이 이를 부단하게 고수했으나, 북한은 핵실험을 중단하지 않았고 핵 폭발력과 미사일 사거리가 위협적으로 증대하여 그만큼 협상의 벽만 더 높아진 게 아닌가싶다. 따라서 북핵 위협에 대한 융통성 없는 강경 일변도의 일방적인 압박, 제재만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렇게 협상하지 않고서는 결코 안 된다는 점을 한국은 물론, 강경파가 득세하는 미국,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명확히 공감하여야 할 것이다. 더욱이 간과치 말아야 할 대목은 북한에 대한 제재와 협상을 저울질하는 미국, 일본과 우리나라의 이해관계는 상반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일본은 한일정상회담에서 한미합동 군사훈련의 재개를 주문할 것으로 알려졌거니와, 진부한 진영논리, 반공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중언부언하고 싶지 않아 간단히 직설하면) 북핵문제로 무슨 장사를 해보겠다는 심산이 훤히 들여다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더없이 중요므로 상기하여 실천해야 할 명제는 ‘세계의 평화안정, 인류의 공존번영’인 바, 이는 또한 북한의 핵 도발의 위험에 직면한 대한민국과 온 인류를 위한 공동선이며 ‘올림픽정신’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남북한의 공멸이 불 보듯 뻔한 핵 도발과 전쟁을 기필코 방지하기 위해서는 평화적 협상이 제재 이상으로 반드시 필요하며, 북한의 과거 행적으로 볼 때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 역시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협상 성공의 비결은 (설령 손해를 보는 것 같더라도) 요구하는 당사자의 입장에 비추어 부당하지 않다면 다 들어 주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협상의 원리’, 그런 관점에서 지금까지 체제유지의 보장을 원하는 북한의 제안들이 극히 부당한 적이 있었던가?). “장차에 갖고자한다면 반드시 잠시 주도록 하라” 將欲取之 장욕취지 必姑予之 필고여지 (한비자) “주는 것이 받는 것임을 아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다” 知予之爲取者 지여지위취자 政之寶也 정지보야 (관중, 사마천의 ‘사기’)


이러한 협상원리에 입각하여 한국의 정치, 언론을 위시한 수구세력, 특히 반민족적 친일의 부류들은 위선과 아집을 정직과 선견지명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지금껏 과거의 죄과에 대하여 ‘반공’의 냉전논리로 방패삼고 일신의 영달만 꾀하여 왔던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에 반하는, 그런 독선적이고 편협한 생각과 행태를 불식해야 마땅하다. “껍데기는 가라!”, 그렇게 ‘허위의식’을 벗어 버리고 대오각성, 환골탈태하지 않는다면 끝내는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권혁시 이사장

결론적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치러지는 전 세계인의 대축제 평창동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인류의 ‘평화·친선·도약’, 그 원대한 올림픽정신이 한반도에서 구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럴진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지금이라도 회심과 발상의 대전환을 통하여 사상과 이념, 정파와 지역, 신분과 세대 등등, 그 무엇도 가릴 것 없이 역사적 사명인 ‘혁명정신·올림픽정신’을 실천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세계평화, 인류공영과 대한민국의 국위선양에 기여할 뿐 아니라, 평창올림픽을 북한 핵문제 협상의 진전을 이루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 민족화합과 평화통일의 문을 여는 ‘평화올림픽’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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