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잃은 민족 미래가 없다“ 신채호 선생 82주기 추모식

"역사는 그나라 국민의 변천과 소멸성장의 실제발자취이니 역사가 있는 나라는 필히 흥하나니라"

양승훈 기자 | 입력 : 2018/02/21 [19:18]

“역사 잃은 민족 미래가 없다“는 말씀을 교훈으로 남기신 단재 신채호 선생 순국 82주기 추모식이 21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단재 신채호 선생 사당과 묘정에서 엄숙히 거행 되었다.

 

 

단재문화예술제추진위원회와 단재 신채호 기념사업회 통합 후 처음 열린 이 날 추모식에는 유인태 기념사업회 상임대표, 강윤진 대전지방보훈청장, 시민사회단체 관계자와 시민 20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추모제를 시작으로 단재 선생 약력 보고, 기념사, 추모사,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추모식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 많은 독립운동가 단체들이조화를 보내왔다.

 

유인태 상임대표는 추모시를 통해 "단재 선생은 어려운 시기 국권 수호와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면서 "그의 삶과 정신은 지금도 우리의 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넋을 기렸다.

 

청주여자고등학교 중창단은 '독립군가'와 '단재의 노래'를 제창했다.

 

 

'조선상고사'의 저자이자 언론인·독립운동가인 단재 선생은 1880년 대전시 중구 어남동에서 태어나 아버지 고향인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1898년 성균관에 입학한 후 개화사상을 접하고 독립협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관직 진출을 포기하고 황성신문에 논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양기탁의 요청으로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활약하며 일제의 침략과 친일파의 매국 행위를 비판하고 국권 회복에 민족이 힘쓸 것을 역설했다.

1907년에는 안창호, 이갑 등과 더불어 비밀결사 신민회의 창립에 참여해 신민회의 이념을 논설에 반영하는 등 대변인과 같은 역할을 했다. 

1910년 신민회 동지들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해 무관학교 설립, 교관 양성 등 독립운동 방안을 협의하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교민단체인 권업회를 조직하고 항일언론 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위해 대만으로 가다가 일제에 체포돼 뤼순 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1936년 감옥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신채호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 약력>

 

1880년  12월 8일 충청도 회덕현 사내면 어남리 도리미에서 출생

 

1887년  아버지 별세, 본향인 충북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로 이사 할아버지 사숙에서 형 재홍과 한학을 공부

 

1898년  성균관 입교(3년), 11월경 독립협회 운동에 참여 투옥

 

1901년  가덕 인차리에서 신규식, 신백우와 ‘문동학원’ 설립 애국계몽운동

 

1903년  일본이 황무지개간권을 빼앗자, 성균관생들과 항일성토문을 작성 친일매국대신 규탄

 

1905년  장지연의 초빙으로 ‘황성신문’ 논설위원에 위촉됨

 

1906년  양기탁의 요청으로 대한매일 신보 주필이 됨

 

1907년  번역서 이태리 건국삼걸전 발행. 항일 비밀결사 신민회 참가

 

1908년  국한문판<을지문덕>, ‘가뎡잡지’발간, 논설 <일본의 삼대충노>, <친구에게 주는 절교서>, 사론 <독사신론> 발표, <수군제일 위인 이순신전> 연재

 

1909년  대한매일신보에 동국거절 최동통전, 시론 <천희당시화> 연재

 

1910년  논설 <20세기 신국민>, <한일방병론자에게 고함> 발표, 4월 안창호 등과 망명길에 올라, 청도회의 후 블라디보스톡으로 감

 

1911년  블라디보스톡에서 윤세복, 이동휘, 이갑 등과 광복회를 조직하고, 권업신문 주필이 됨

 

1913년  신규식의 부름으로 상해로 가서 동제사에 가입활동

 

1914년  대종교에 입교하고 옛 고구려 땅 답사 이후 대고구려주의적인 역사의식을 갖게 됨

 

1915년  북경에서 ‘조선상고사’ 집필, 신한청년회 결성, 박은식, 문일평 등과 박달학원 설립

 

1918년  북경 보타암에서 <조선사> 집필, 중화보와 북경일보에 논설기고

 

1919년  2월 길림의 대한의군부 ‘대한독립선언서’(무오독립선언)참여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나섬, 한성임시 정부의 평정관, 신대한동맹단 결성(부단주), ‘신대한’ 창간(주필), 대동청년단 단장

 

1920년  북경, 제2보합단조직(내임장) 만주 독립군 조직들과 군사통일주비회 조직(이회영, 박용만, 신숙) 박자혜 여사와 북경에서 결혼

 

1921년  순한문잡지<天鼓>창간, 이승만, 정한경의 위임통치청원 규탄성토문 발표

 

1922년  의열단의 행동강령인 ‘조선혁명선언’을 작성

 

1925년  동아일보에 <낭객의 신년만필> 기고, ‘무정부주의 동방연맹’에 가입

 

1927년  “신간회”의 발기인으로 참여

 

1928년  소설 ‘용과 용의 대격전’ 발표, 운동자금 마련을 위한 무정부주의동방연맹 국제위폐 사건으로 체포 치안유지법 위반, 유가증권 사기 위조, 동행사 등으로 재판

 

1930년  대련법정에서 10년형을 선고받음, 여순감옥에 수감됨

 

1931년  조선일본에 <조선사>와 <조선상고문화사> 연재 기고

 

1935년  건강악화로 친일인사 보증조건으로 병보석을 종용하였으나 거절

 

1936년  2월 21일 여순감옥에서 순국함

 

<단재 신채호 선생 어록>

 

역사가 무엇이관대 그 공효의 신성함이 이와 같은가.

 

가로되, 역사는 그나라 국민의 변천과 소멸성장의 실제발자취이니 역사가 있는 나라는 필히 흥하나니라.

 

나라가 있으매 역사가 있으리니 강한 국가뿐만 아니라, 약한 국가도 역사가 있을지며, 발전하는 국가뿐만 아니라 쇠퇴하는 국가도 역사가 있을 지며 문명국뿐만 아니라 야만국가도 역사가 있을 것이어늘 오늘에 이르되 역사가 있으면 그나라가 필경 부흥한다 함은 무슨 까닭이뇨.

 

그 나라에 시저 같은 영웅이 있어도 국민이 알지 못하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며, 그 나라에 나폴레옹 같은 인물이 있어도 국민이 알지 못하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니 역사가 없으면 필경 나라가 망하게 되리니,

 

오호라, 망망한 수천리 땅과 육대양 넓은 바다에 별들처럼 늘어선 나라가 부지기수이건만 지금까지 존재하며 지금까지 강대한 나라로 지칭하는 나라는 모두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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