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 위에 미국법 아래 있는 한미FTA...불공정 대표적 이유

FTA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차분히 대응할 때다

한상범 국회 FTA연구모임 대표 | 입력 : 2018/02/25 [14:10]

"자유무역지대의 창설을 통하여 무역에 대한 장벽을 제거함으로써 세계무역의 조화로운 발전과 확장에 기여하고, (중략) 특히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무역 및 투자에 대한 장벽 축소를 추구함으로써 이 지역에서의 경제적 지도력을 증진하기를 결의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지난 2012년 3월 발효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이같은 서문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작년부터 불어 닥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장벽'은 높고도 두텁다. 올해 취해진 미국의 무역보복에 노출된 수출액만도 세탁기(1조원), 태양광 모듈(1조 4천억원), 철강(3조 5천억원) 등 무려 연간 6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철강 관련 미국의 보호무역조치 대상국 중 하나인 중국이나 브라질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 바 없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과의 '자유, 무역, 협정'이 이미 체결된 만큼 FTA를 통해 우리나라의 이익을 지킬 수 있지는 않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는 신법이요, 특별법으로서 기존의 모든 법률보다 우선하는 효력을 지닌 한미FTA가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법 > 한미FTA > 한국법

▲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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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는 미국법 아래, 한국법 위에 있다' 

미국의 한미FTA 이행법률 제102조는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동조 제1항은 "충돌 시의 미국 법령의 우선적용 – 미국의 여하한 법령에 불합치하는 (한미FTA) 협정의 규정 또는 어떠한 사람이나 상황에 대한 동 규정의 적용은 효력을 가지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한미FTA가 불공정하다는 지적을 받는 대표적 이유가 바로 이 조항에 있다. 

만약 한미FTA의 법적 효력이 한국과 미국에 동일하다면,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일련의 보호무역조치들은 한미FTA 위반 등을 이유로,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에 따라 천문학적 배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법 아래'에 있는 한미FTA는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를 뛰어넘을 수 없다.

한미FTA, 미국발 무역장벽 넘을 지렛대 되나?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한미FTA 위반 여부 검토 등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하고 한미FTA 개정 협상을 통해서도 부당함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우선 일부에서 주장하는 한미FTA 제10.5조 위반 가능성은 낮다. 동조는 협정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자국 산업에 대한 심각한 피해의 중대한 원인이 아닐 경우 해당 협정국의 품목은 글로벌 세이프가드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당사국의 재량사항이지, 의무사항을 규정한 것이 아니기에 위반 여부를 논할 계제도 못 된다.

그렇다면 이번 한미FTA 개정협상에서 '부당한 미국의 무역장벽'을 넘을 지렛대를 확보할 수 있을까? 이 역시 부정적이다. 원래부터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미국 의회로부터 부여받은 무역촉진권한(TPA)에는 수입규제 조치에 대한 협상권한이 없다. 심지어 한미FTA 개정협상은 TPA조차 없이 진행 중이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는 <2017 Trade Agenda>에서 수입규제조치를 자국의 주권사항으로 간주, FTA나 WTO 등 협상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고 기존 협정에서도 관련조항 폐지를 압박해 왔다. 

특히 작년 7월 USTR이 의회에 보고한 'NAFTA 재협상 목표(Summary of Objectives for the NAFTA Renegotiation)'에서는 협상팀의 무역구제조치 관련 목표로 ① 수입규제조치를 강제할 수 있는 미국의 능력 보호 ②NAFTA 세이프가드 배제조항 삭제 ③제19장 분쟁해결메카니즘 조항 삭제 등이라고 밝힌 바 있다.(전경련, <한미FTA 개정협상과 한국의 대응전략> 14면, 2018년 1월 29일)

트럼프발 보호무역 대응, 미국 내 법원에 제소하자고? 

우리나라의 경제영토를 세계 경제규모 대비 61%(세계 3위)로 넓혔다고 자화자찬했던 한미FTA도, 현재 진행 중인 한미FTA 개정협상도 미국발 보호무역의 장벽을 넘을 카드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트럼프 발 무역장벽을 넘을 카드는 과연 무엇일까? 현재 국내에는 2가지 주장이 대립한다.

먼저 송기호 변호사(민변 국제통상위원장)는 국제공조와 보복관세를 주장한다. "단순한 '미국 우선주의 반대' 목소리를 넘어 12개 나라가 공조해 트럼프의 행동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실질적 보복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한겨레, 2/22).

반면,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을 비롯한 소위 '관변학자'들은 국제통상법이 보장한 보복관세 등의 조치가 아니라 미국 내 법원 제소 카드를 제시한다.(중앙일보, 2/22)

"WTO 제소나 보복관세로 미국이 여론의 압박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기존 국제무역 질서를 포기한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를 바꾸긴 어려울 것"(김종훈)

"철강 등에 대한 무역확장법 제232조가 의회에서 대통령에게 준 권한의 위임 범위를 벗어난 재량권 남용이 아닌지 한번 미국 법정에서 다퉈볼 만하다"(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제질서에서 벗어나 미국법에 의한 판단을 받기 위해 ISD 조항 폐기를 주장하는 미국에 선제적으로 엎드리자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주장이다. "미국은 ISD 소송으로 제3자에게 판단을 맡기기보다 미국 국내법을 적용하는 것이 미국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전경련, 같은 보고서, 17면)

그간 우리 정부에서 일했거나, 정부의 연구용역을 맡아왔던 학자들이 미국의 입장을 앞장서 주창하면서 대응방안이라 제안하는 형국이다. 

FTA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차분히 대응할 때다

 

▲  우리 협상단을 찾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위한 2차 협상 둘째 날 일정이 끝난 1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협상장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FTA는 무역장벽을 돌파하는 '만능열쇠'가 아님이 분명해졌다. 또한 힘의 무대인 외교의 특성은 FTA라는 장치를 뛰어넘어 여실히 작동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 진행 중인 한미FTA 개정협상에서 마치 무엇인가를 얻어낼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희망고문'에 다름 아니다. 

지금은 미국에 머리를 수그릴 때도, 그렇다고 '희망고문'으로 국민들을 기망할 때도 아니다. 차분하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다함께 힘을 모아 우리나라의 국익을 도모해야 한다. 

그 시작은 한미FTA 5년간의 이행평가 보고서를 공개하고, 한미FTA 개정협상에서 미국의 주장을 상세히 알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2월 28일 완료키로 했던 이행평가 보고서의 즉각 공개를 다시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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