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때 10만명 학살당한 '항일무장독립운동 총본산 대종교'

대종교 유지재단 나도숙 이사(홍암 나철 선생 증손녀) 인터뷰

서울의소리 | 입력 : 2018/03/13 [09:52]

제 99주년 3.1일절을 맞아 지난 3월 1일 서울의 소리는 항일독립투쟁 본산지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대종교 총본산을 찿아 대종교 유지재단 나도숙 이사(홍암 나철선생 증손녀)와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때 대종교는 독립투쟁의 총본산으로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적지 않은 업적을 남겼다. 이것은 우연히 얻어진 승리와 영광의 기록이 아니었다. 독립운동의 정신적 토대를 제공했다는 점은 물론 주요 거점 개척과 참여는 어느 집단보다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가능했다. 또한 10만여 명이라는 고귀한 희생을 치른 피의 역사로 얻어진 결과였다.

 

일찍이 홍암 나철은 1907년 을사오적 처단의거를 주도하여 국권회복의 의지를 내외에 천명했다. 그가 1909년 ‘국수망이도가존’(國雖亡而道可存, 나라는 망했으나 정신은 존재한다)이란 명분을 앞세워 부활시킨 대종교의 등장은 구국운동의 일대 전기를 가져온 사건이었다.

 

대종교는 출발 당시부터 당대 지식인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단군교포명서에 의한 단군신앙의 재천명은 망국의 원인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더불어 민족이 재생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확인시켜준 중차대한 선언이었다. 또한 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경남일보등을 통해 발표된 대종교 중심인물들의 민족의식 고양의 글도 단군과 관련된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는 일제의 침략에 대한 경각심과 함께 조직적 저항의 끈을 묵는 지침 역할을 한 것이다.대종교는 국내의 기반뿐만이 아니라 1910년 북간도에 교당을 마련하여 독립운동의 거점을 확보하였다.

 

1911년에는 나철에 의해 파견된 신규식은 중국 상해에 독립운동의 발판을 구축했다. 나철은 1911년 5월 백두산 기슭 화룡현 청파호의 총본사를 중심으로, 동만주 일대와 노령·연해주 지방을 관할하는 동도교구, 남만주로부터 중국 산해관까지 관할하는 서도교구, 한반도 전체를 관할하는 남도교구, 북만주 일대를 관할하는 북도교구, 중국·일본 및 구미지역을 관할하는 해외교구 등의 5개 교구를 획정하는 등 항일독립운동의 본산으로서 위상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특히 만주 무장독립운동에서는 이동녕·현천묵·계화·윤정현·황학수·김승학·홍범도·김혁·김좌진·윤복영·이범석·여준·이홍래·정신·이동하·한기욱 등 실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대종교인들이 무장독립운동의 지도자급으로 활동했다.

 

촬영 : 이명수 기자
편집 : 심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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