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대오각성시킨 사회고발, ‘미투운동’

성차별·신분차별·인종차별 타파, 그리고 성폭행근절·완전평등실현

권혁시 칼럼 | 입력 : 2018/03/21 [14:49]

미투운동이 빗나간 ‘성의식’, 무너진 ‘도덕성’에 경종을 울리다.

이를 계기로 ‘의식혁명’을 실현, ‘성폭행’을 비롯한 부정부패를 척결한다.

 

 

엿새 전 3월 14일, 세계적인 석학 스티븐 호킹 박사가 서거하였고 엊그제 18일에는 성공적으로 끝난 패럴림픽의 폐회식이 치러졌다. 평생을 천체물리학 연구에 헌신했던 호킹 박사와 패럴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의 강인하고 투지 넘치는 건강한 정신은 신체장애마저 극복하며 인간다운 삶의 표상이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고 개탄스럽게도 기득권자를 위시한 수많은 사람들이 육신은 멀쩡한데도 ‘돈·권력·성(性)’의 독소에 극심한 정신장애를 일으켜 국가·사회 전체가 부정부패의 중병이 들었고, 급기야는 만연한 성적 병증이 ‘미투운동’(Me Too movement)의 수술대에 오르면서 극심한 병고에 신음하고 있다.

 

인간과 같은 동물인 뭇짐승들은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그래서 성도덕이 필요치 않고, 오직 자연법칙에 따라 종족번식만 할 뿐이다. 반면에 자칭 고등동물인 인간이 종족번식의 기본적인 욕망으로 ‘사회적 병리현상’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 까닭은 창조주는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했는데, 이는 인간에 대한 일체의 불간섭인 동시에 사람을 ‘영적존재’가 되게 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육신을 갖은 탓인지 인간의 영(영적능력)은 불완전하여 ‘감정’(정신작용)의 영향을 받아 자유의지가 최선을 지향(선의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유의지는 의식적(유의적 有意的) 행위(conduct)를 결정하거니와, 인간의 모든 행위는 예외 없이 특정한 동기에 의하며, 그로 인한 결과를 초래하므로 반드시 ‘도덕적 책임’이 따른다(행위가 순간적 충동이나 무의식적 상태에서 비롯되면 비도덕적(unmoral)이고, 도덕적 판단대상인 행위가 올바르지 못하면 부도덕적(immoral)인 것이다). 무릇 인간은 식욕, 성욕, 수면욕 등 생명유지와 종족번식의 육체적·기본적인 욕망과 소유욕, 권력욕, 명예욕 등 정신적·사회적 욕망이 가득 찬 그야말로 ‘욕망의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모두가 공감하다시피 욕망을 적절히 통제, 조절하지 않고 주체치 못하면 극한적으로는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근본적으로 영적존재이어서 이성에 의해 선(善)악(惡, 오), 즉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 등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며, 이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진선미(眞善美), 이를테면 도구(사물)적 가치, 지적(지성)가치, 심미적(예술)가치, 윤리적(도덕)가치를 추구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영적으로 불완전하여 잘못된 감정(정욕, 정신적 욕구)에 끌려 이에 반하는 결정을 하고 행위 하기가 다반사다. 따라서 윤리문제, 곧 가치판단의 갈등이 야기되는데, 근본원인은 두 가지 이상의 욕구의 대립, 충돌이며, 행위결정을 혼란에 빠뜨리거나 심지어는 결정불능 상태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불일치의 합리적인 해결책이 도덕률, 보편타당한 윤리규범이다.

 
근대 이후에 윤리에 관하여 강하게 제기되는, 시대와 사회 환경, 문화의 차이 등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는 주장(‘윤리적 상대주의’)에도 불구하고 (이를 일정부분 인정하더라도) 사람과 인간세의 불변하는 기초적 본질로써 인간행위의 기본규범인 윤리가 확립되어야 하며 그것이 상식, 곧 진리인 것이다(플라톤, 공자 孔子, 아우구스티누스, 맹자 孟子, 토마스 아퀴나스, 주자 朱子, 칸트 등, ‘윤리적 절대주의’)

 

‘인간이란 무엇인가?’ ㅡ 평등하고 존귀한 인간, 
성차별·신분차별·인종차별 타파, 그리고 성폭행근절·완전평등실현

 

존귀한 영적존재인 인간의 잠재력(인간본성)은, ①언어능력(고도의 의사표현, 소통), ②지적능력(이성적 능력, 추리력) ㅡ 이성적 추론능력, 근대 합리주의 철학이 규명한 인간의 본유적 자질, ③도덕적 이성능력(이성적 욕구통제력), ④자각능력(존재인식적 문제의식)이다. 그러므로 합리적인 인간행위에 대한 기준인 윤리규범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잠재력, 곧 도덕적 이성능력을 최대한 발출(attractors)시켜야 한다. 이것을 프로이트(‘정신분석학’)의 이론은 식욕, 성욕, 소유욕, 권력욕 등, 본능적 욕구(Id, 이드)를 적절히 컨트롤하는 능력인 자아(Ego, 에고)라 한다.


미투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면서 ‘명예혁명’, ‘제2의 촛불혁명’, ‘민주혁명’ 등등을 헤드라인삼아 이를 역설하며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보도되고, 이를 논평하는 신문기사들을 세세히 읽으며 이런저런 생각 중에 어느 가해자의 자살, 그리고 진보적으로 여겨졌던 유명 정치인의 성폭행 소식은 충격을 더하였다. 게다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가해자 가족의 피해 등이 우려되는 와중에 밑도 끝도 없이 ‘좌파음모론’, ‘정치공작설’ 운운하며 본질을 왜곡, 호도하려는 듯한 몰지각하고 분별 없는 망발을 서슴지 않으니 통분을 금치 못할 노릇이다. 


더욱이 우려치 않을 수 없는 행태는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 절대 단둘이 식사를 하지 않는다”, 그 ‘펜스 룰’(Pence Rule)을 거론하며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 남존여비(男尊女卑 )를 빗대어 함부로(근거도 없이 자의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잘못된 성의식을 바로잡을 생각은 커녕 ‘가부장제’(patriarchy)의 폐단인 여성소외, 남성우위의 답습이기 십상인 이런 고루한 발상은 ‘개혁·개방’이 모토가 되어야 할 21세기의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은 성적문란 경계의 함의가 담긴 메타포이고 아포리즘이며, ‘남존여비’라는 그릇된 관념은 부부유별(夫婦有別, 삼강오륜)로써 성적 차이에 의한 역할 분담을 강조하는 동시에 상호존중의 미덕을 구현하고자 했던 ‘위성지학’(爲聖之學, 유학·성리학)의 실천강령에 대한 무지의 소치다. 그도 아니라면 이를 남녀유별(男女有別)로 왜곡하고 또다시 남존여비로 폄훼한 일제의 식민사관의 농간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견강부회한 것이다. 

 

조선의 선비정신과, 특히 통치이념은 ‘인본주의’(人本主義, humanism)가 기본이거니와, 한 남성이 관직을 받아 품계가 정해지면 아내에게도 관작을 부여하였을 정도로 여성을 동등하게 예우하여 존중하였다. 예컨대 남편이 숭록대부(崇祿大夫 , 정1품 정승)가 되면 그의 처는 정경부인(貞敬夫人)으로 대우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로써 ‘성차별’을 유발하는 가부장제의 폐단까지도 해소하여 민본주의(사상)를 철저하게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우리 선조들의 정명한 정신과 의식을 비교(yardstick)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지금까지 미투운동을 통해서 드러난 성적 피해의 원인은 거의가 공적권한과 사적재력에 의한 ‘권력형 폭력’인데 극단적으로 말하면, 약자의 목을 조르는 것(생존권 위협)과 다름없는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가증할 인권유린 행위다. 그것이 더할 나위 없는 ‘미투이슈’의 핵심인지만, 일반적으로는 전통적 관습에 의한 차별의 문제로 보는 인식이 지배적인 점 또한 부인 할 수 없는 사회현상이다. 기실 ‘성차별’은 신분차별, 인종차별과 더불어 인간세의 대표적인 불평등체계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단적으로 성적인 차이 자체가 차별 또는 불평등의 원인이 될 수는 없지만, 그것은 고래로부터 인류사회에서 형성된 고정관념의 결과다. 특히, 수렵에서 농경에 의한 생존방식을 이어오면서 체력(신체)과 생산력(경제)의 면에서 월등한 남성이 중심역할을 하는 사회전통이 형성, 고착화되면서 남성의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당연시했던 것이다. 이른바 ‘가부장제’가 다름 아닌 남성중심의 지배질서이다. 그래서 미투운동의 확산, 진전을 통해 이렇듯 부당하고 불합리한 여성에 대한 남성우위의 인식과 사회질서를 변혁함으로써 성차별을 타파하고 성폭행을 근절해야 할 것이다.

 

“도덕이란 다른 사람을 생각해주는 마음이다” 
‘의식혁명’ 실현, 도덕성 회복의 ‘윤리적 절대주의’ 실천

 

개명한 민주시민 사회에서는 여성을 차별하여 소외시키는 사회제도, 관습이 타파되어야 마땅한데, 이렇게 부당하고 부조리한 전통적 성차별 현상을 고착시킨 요인이 ‘성별분업’이다. 그것은 주로 여성들이 담당하는 가사가 ‘부불노동’(不佛勞動, unpaid labour)인 것을 기화로 여성에 대한 불공평과 불평등이 사회적으로 일반화하는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적극적 재정정책의 일환으로 나라에서 ‘가사노동’에 대하여 임금을 지불함으로써 차별해소와 고용창출의 재고, 확대를 모색하는 획기적인 정책 대안은 실행 불가능한 것인가?).


그런 여성에 대한 임금(보수) 지급의 차별은 물론, 인사를 비롯한 노동 제조건의 차별, 불평등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사회 전 분야에서 크게 다르지 않게 적용된다. 이 부당하기 이를 데 없는 공공연한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반적인 사회현상이다. 요컨대 삶 자체인 동시에 그 기반인 일(직업)에 있어서 남성이 주도하고 지배하는 의식과 구조는 오늘날, 성차별에 관한 인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견고하기만 하다. 이렇듯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지는 것이다”(보부아르 S. Beauvoir)


이러한 고정관념과 전통적 관습과는 달리 성적 특성은 유전적, 신체적(생물학적)으로 부여될 뿐 아니라, 문화적, 환경적(사회적)인 여건 속에서 형성된다. 그러므로 사회적 성(gender)과 생물학적 성(sex), 즉 기질적 성, 법·제도적 성이 엄연히 다르고 구분되어야 함을 명확히 인식하는 현대의 민주사회일진대, 그러한 관점(topos)에서 미투운동을 계기로 ‘여성주의’(feminism)는 보다 확산, 진전되어야 하며, 그 일은 결코 여성들만의 몫은 아닌 것이다.

 

그런 한편, 우리는 흔히 성문제(성·사랑·에로티시즘)를 극히 개인적인 것(영역)으로 한정지어 사회적 공론화에 무관심 내지 소극적으로 일관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성담론’에는 귀를 기울이지도 깊이 생각지도 않았고, 기본적이며 상식적인 개념밖에는 깊이 알지도 못한다(그것이 사회일반의 성의식이고 수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고발, ‘미투운동’을 통하여 적나라하게 드러난 많은 여성들의 성적 피해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반성하며, 성문제에 대한 사고의 전환, 인식의 확대와 함께 통렬한 자각이 절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울러 최미의 관심사가 되면서 깊이 성찰하고 각성케 하였으니 수많은 언설은 차치하고 미투운동은 빗나간 성의식, 그리고 무너진 도덕성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그렇다면, 성폭력을 어떻게 ‘정의’(定義 )할 것인가. 생각할수록 간단치 않지만, 상대의 의사를 무시한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모든 행위가 해당될 것이다(특히,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행위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는 성희롱(sexual harassment)에서부터 성적학대, 성추행, 그리고 강간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행태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성적 피해의 방지는 물론 피해자에게 실제로 유효한 보다 강화된 법적·제도적 방책을 조속히 적극적으로 강구해야만 한다. 나아가서 관련한 교육을 실시하여 일그러지고 빗나간 ‘성의식’을 고쳐서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서두에서 이미 성적 병증을 포함한 부정부패의 중병이 들게 한 독소가 ‘돈·권력·성’(탐닉)인 것을 지목했는 바, 이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성도덕을 비롯한 조기 인성교육을 통한 ‘의식혁명’의 실현이 필수불가결하며, 이는 더없이 중요한 국가·사회의 당면과제인 것이다. 실로, “도덕이란 다른 사람을 생각해주는 마음이다” (마빈 토케이어, ‘탈무드적 처세술’)


그처럼 의식혁명을 반드시 실현해야 하는 까닭은 사물에 관한 인식의 일대 변화(발상의 대전환)를 위해서는, 그것의 본질을 바로 알고, 이에 대한 왜곡된 현상을 제대로 보고 찾아내려 고심하는 투철한 정신(문제의식, 비판적사고)과 실천의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의식혁명)이야말로 개인과 사회 전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 최선책이 될 것이다. 이는 부연컨대, 앞서 제시한 ‘윤리적 절대주의’의 실천이며, 우리 선조들의 전통적 교육방식을 온고지신·법고창신하는 것이다.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권혁시 이사장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유학을 비판적으로 연구하여 정자(程子)·주자가 발전시킨 주자학(정주학 程朱學)의 차원을 넘어서는 조선 성리학의 독창적 이론화를 통하여 독자적 영역을 확보하고 교육제도를 구축, 확립한 양촌 권근(陽村 權近)을 필두로 퇴계 이황(退溪 李滉), 율곡 이이(栗谷 李珥) 등 ㅡ 모든 조선의 석학들은 앞서 말했듯이 위성지학을 바탕으로 인본주의를 추구하였다. 조선왕조는 이를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예치주의’(禮治主義)를 정치의 근본으로 삼았으며, 인간의 사고방식(정신)과 행동양식(태도)의 절대법칙으로 여겼다. 


그 핵심은 ‘예의범절’(禮儀凡節, 예절)이며, 욕구·욕망을 분에 넘치지 않도록 적절히 절제하여 절도를 지키는 것이다(‘예’(禮)는 곧 절(節)이고 읍(揖)이다. ‘예기'). 인간정신(의식)이 쇠락하고 도덕성이 실추된 현세의 세태에서 이를 실행하고자 하면, 예절를 비롯하여 조선의 유학자들이 몸소 행하였던 ‘선비정신’을 배워서 깨닫고 실천하기를 굳게 결심해야 할 것이다. 그와 더불어 ‘미투운동’을 더욱더 확장하여 성폭행 근절과, 성차별 타파로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운동을 확대재생산함으로써 ‘의식혁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뜻을 세우고 아는 바를 밝게 하며 행실을 독실히 하는 것은 모두가 나에게 달린 것이다” (志之立 지지립 知之明 지지명 行之篤 행지독 皆在我耳 개재아이) “간사한 소리와 음란한 색정이 나에게 침범치 않도록 해야 한다” (不可使奸聲亂色 불가사간성란색 有干於我 유간어아) “날마다 자주 스스로 점검하되 마음을 보존하지 않았는가, 배움이 진전되지 않았는가, 행실을 바로 하기에 힘쓰지 않았는가. 그리하여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더욱 부지런히 하고, 힘쓰고 힘을 다하며 게을리 하지 말아 죽은 후에야 그칠 것이다” (每日 매일 頻自點檢 빈자점검 必不存乎 필부존호 學不進乎 학불진호 行不力乎 행불력호 有則改之 유칙개지 無則加勉 무칙가면 孜孜毋怠 자자무태 斃而後已 폐이후이. 율곡 이이, ‘격몽요결 擊蒙要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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