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선생 “촛불로 선 문대통령, 그 배짱 믿고 가보시오”

‘심장 수술’ 백기완 선생 남북정상회담 환영 메시지...평화·민주·해방 위해 소신껏 한번 일해보시길”

서울의소리 | 입력 : 2018/04/26 [19:05]

현재 심장 혈관이식 대수술 뒤 서울대 병원 중환자실에서 투병 중인 ‘재야의 거목’ 백기완(86·) 선생이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는 영상을 26일 한겨레에 보내왔다.

 

백기완 선생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노동자들의 병문안 받으며 남북 평화에 대한 소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겨레

 

한겨레에 따르면 백기완 선생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태도, 방법을 모두 환영한다”며 “민중적인 자부심과 배짱으로 소신대로 (정상회담에 임)하라”고 문재인 정부에 힘을 보탰다.

 

백 선생은 현재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에서 투병 중이다. 4월초부터 가슴이 답답한 증상을 겪은 백 선생은 병원을 찾아 심장에 있는 총 3개의 관상동맥 중 2개가 막혔다는 진단을 받았다.

 

백 선생은 12일께 응급 시술을 받은 뒤 23일 9시간에 걸쳐 5개의 혈관을 심장에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으나 이미 앓고 있던 호흡기 질환이 악화돼 우려로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다.

 

이날 백 선생이 한겨레에 보내온 영상은 대수술을 앞두고 병실에서 촬영한 것이다. 

 

백 선생은 지난 23일 심장 수술을 앞두고 촬영한 동영상에서 “요즘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문제에 관해서 다가서는 그 태도, 방법, 다 환영하고 싶다. 생각대로 잘되길 바란다”고 27일 열릴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이어서 “문재인 정부는 바로 이 땅의 민중들이 주도했던 한반도 평화운동의 그 맥락 위에 서있다는 깨우침을 가지길 바란다”고도 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민들의 노력이 문재인 정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된다는 뜻이다.


백 소장은 또 현재 한반도에 불어온 평화의 훈풍이 2016년 말 한국을 달궜던 ‘촛불’로부터 비롯된 결실이라고도 짚었다. 그는 “(지난 촛불시위는) 우리 한반도의 참된 평화요, 민주요, 자주통일, 민중이 주도하는 해방통일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그 맥락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 민중적인 자부심과 민중적인 배짱을 가지고 소신대로 해달라”고 당부했다.

 

“역사의 진보 위해 부딪치는 강물로 만나자

그게 진짜 만남 아니겠나. 우리 또 다시 만나자”

  


백 선생은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나처럼 살아온 사람은 짓밟힐수록 불씨가 이는 불꽃 ‘서덜’(불씨의 우리말)이 있다고 했다”라며 “나도 그 ‘서덜’로 캄캄한 어둠을 헤쳐볼까 한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여러분 다시 만날 날, 반드시 살아서 만난다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진보를 위해서 부딪치는 강물로 만나는 것이 진짜 만나는 것이 아니겠나. 우리 또 다시 만나자”라고도 덧붙였다.

 

백기완 선생은 1932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제 강점기 때 독립 운동을 지원하던 할아버지 백태주 선생을 통해 김구 선생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해방 이후 월남한 백 선생은 1960년대 한일협정반대운동 등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으며, 1974년 고 장준하 선생과 함께 유신헌법 철폐 100만명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대통령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백 선생은 징역 12년을 선고 받았으나 이듬해인 1975년 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1979년에는 박정희가 숨진 ‘10·26 사건’ 이후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뽑겠다는 계획을 막기 위해 서울 YMCA 회관에서 결혼식을 가장해 모인 뒤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다시 구속됐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는 ‘민중후보’로 출마했고, 당시 김대중·김영삼 후보의 단일화를 요구하며 사퇴했다. 1992년에는 민중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는 용산참사, 세월호 참사, 촛불 집회 등 소외된 민중, 고통받는 시민이 있는 자리에 늘 함께했다.


‘투사’ 보다 ‘시인’으로 불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이 노랫말의 바탕이 된 백 선생의 시 ‘묏비나리’는 서울 서빙고동에 자리한 군 보안사령부 대공분실에 수감 중이었던 1980년 지은 것이다. 그는 수감 생활 시절 혹독한 고문으로 후유증을 앓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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