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민족, 이런 건 모르겠고, 나에게는 불리하니 싫다”

[기고] 북핵문제의 논리구조에 대한 무지 또는 억지

안문석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입력 : 2018/05/02 [00:22]
   사진출처 / 뉴시스

 

11년 만에 열린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봄을 알리기에 충분한 반가운 전령이었다. 종전선언을 하기로 하고, 평화체제 회담도 열기로 하고, 완전한 비핵화 목표도 확인했다. 실행으로 가는 길이 남아 있다. 남북의 지속적인 한반도문제 해결 의지가 관건일 것이다. 남북의 국민적 지지가 앞으로 나아가는 힘의 원천이 됨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남북정상회담 합의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적나라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판문점 선언의 비핵화 부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학자들도 있고, 정치하는 사람들도 있다.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확인하고, 남북이 비핵화와 관련한 책임과 역할을 다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을 위해 노력하기로 한 것인데, 이것이 형편없다는 비판이다.  

비판의 핵심은 비핵화의 구체적인 과정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북핵 문제 자체가 민감한 사안인 만큼 반대의 의견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북한 핵의 논리 구조에 대한 이해의 부족, 아니면 구조를 알면서도 이를 무시하면서 보수의 지지를 확보해보려는 정치적 의도, 아니면 부드러워지는 북한을 거부하고 북한을 끝까지 악마로 남게 하려는 철저한 보수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북핵 문제의 논리 구조를 보자. 북한은 왜 핵무기를 만들었을까? 국제사회에서 웬만한 나라는 '핵을 가지려는 야망'(nuclear ambition)을 가지고 있다. 네 가지 이유에서다.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 정권 안보(regime security), 현대성의 상징(symbol of modernity), 협상수단(bargaining chip)이 그것이다.  

어떤 나라는 이 중 한 가지, 어떤 나라는 네 가지 모두를 위해서 핵을 만든다. 북한의 경우는 네 가지 이유가 모두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국가안보이다. 위부의 위협에 나름의 수단으로 대항하려 한 것이다. 그 위부의 위협이라는 것이 미국의 핵 공격 가능성이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미국이 왜 북한을 핵무기로 공격하냐?'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인식은 다르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은 핵무기 사용을 구체적으로 고려했다. 공격지점까지 상정해 놓고 있었다. 북한도 이를 알았다. 그때부터 북한에게 미국은 '언제든 핵무기로 공격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그야말로 융단을 깔고 그 위를 밟는 것처럼 폭격기 공격을 계속하면서 핵공격까지 하려 했으니 북한이 체감한 공포는 매우 클 수밖에 없었다. 

전쟁 이후에도 미국은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을 계속했다. 북한은 이를 공격훈련으로 인식해왔다. 1980년대 후반 유럽의 냉전이 해체되고 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북한은 체제 위협의 상황을 맞았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소량의 플루토늄을 만들었다. 그것이 1차 북핵 위기가 되었다. 미국은 이를 NPT(핵확산금지조약)의 완전성을 해치고, 핵 우위를 통한 세계관리의 전략에 대한 위협으로 판단해 북한과 협상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다.  

그것이 잘 지켜졌으면 지금과 같은 북핵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2002년 부시(George W. Bush) 행정부는 북한이 HEU(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면서 북미 제네바 합의를 폐기했다. 이후 부시 행정부는 핵 태세검토 보고서(NPR)을 수정해 핵을 공격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국가안보전략(NSS)을 수정해 필요하면 선제공격도 할 수 있도록 했다. 불량국가에 대해서는 핵무기로 선제공격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오른쪽)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판문점 공동 취재단


이러한 미국의 군사안보전략은 북한에게는 한국전쟁 당시 핵 위협을 그대로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6자회담이 진행되면서 9.19 공동성명이 나오기도 했지만, 곧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가 시작되고 공동성명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2006년 북한은 핵실험까지 하게 되었다. 

이처럼 북한 핵은 논리적으로, 역사적으로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핵을 계속 보유할 것인지 폐기할 것인지도 미국과의 담판을 통해서만 결정할 수 있다고 여긴다. 핵 문제의 유일한 협상 상대는 미국인 것이다. 남한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우리하고 협상하자. 우리가 해결해 줄게" 아무리 외쳐보아야 북한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비핵화의 구체적 일정까지 합의 못하고, '북핵폐기'를 명시하지 못했으니 '핵심에 접근하지 못한 협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런 과정과 논리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진보 정부가 북한의 시간벌기에 이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근저에는 '북한의 첫 번째 목표는 여전히 남한의 공산화이다'라는 인식이 짙게 깔려있다. 흘러간 레코드판에 아직도 귀를 바싹 대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초 소련과 동구의 붕괴, 이후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리는 대기근의 과정을 거치면서 북한의 가장 큰 정책목표가 '생존'으로 바뀌었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북한의 군사·경제정책도 운영되고 있으며, 북한 정권의 공고화 차원에서도 인민 생활의 향상이 필수불가결의 과제가 되었다는 사실에도 눈을 감는다.

남북 간, 북미 간 문제가 잘 풀려 남북교류가 활성화되고,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대접받는 모습이 이들에겐 달갑지 않을 것이다. 문제적 북한이 계속 존재하고, 그런 북한을 욕하고 비난하면서 세력을 모으고 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훨씬 유리한 환경이다.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북한이 대접받는 상황은 진보세력에게만 좋은 것이고, 자신들의 입지는 약화된다고 본다. 나라, 민족, 이런 건 모르겠고, 나에게는 불리하니 싫다는 인식이다. 

진즉 이들은 북핵 문제 해결 가능성과 관련해서도 '불가'를 얘기해 왔다. 북한은 핵보유국을 하나의 주요 정책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 중요한 근거로 핵보유국을 헌법에 명시했고, 핵보유국 지위 공고화법을 제정했으며, 당규약에도 경제건설과 핵 무력 건설의 병진로선을 명기했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잘 알려진 대로 전제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다. 최고지도자 1인이 주요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보수 학자나 정객들은 심하게 비난해 왔다. 그런데 그런 체제인 만큼 헌법에 명시되고 법으로 만들어진 핵보유국 규정도 최고지도자의 결심으로 쉽게 변경될 수 있음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보고 싶은 대로 북한을 관찰하고, 편리한 대로 북한을 분석해 온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 목표와 의지를 천명하고, 북미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비핵화의 방안을 논의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일정한 시한 내에 북한이 핵 폐기를 하고, 미국은 그 사이에 군사적 위협 해소, 경제제재 해제, 경수로 건설 지원, 북미관계 정상화를 실행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더 없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남한은 북미의 비핵화 협상이 진전될 수 있도록 추동하고, 합의가 원활히 이행될 수 있도록 공조하면 된다. 이런 단계가 되었을 때 북핵폐기 불가론을 말하던 사람들이 어떤 얘기를 할지 궁금하다. 근거 없이 암울한 전망을 내던져 민족구성원에게 큰 실망을 준 데 대해 석고대죄를 할까? 아니면 그때 가서도 북한은 언제 변심할지 모르고 북미 합의도 언제 깨질지 모른다고 다시 강변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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