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의 고금소통(古今疏通)-정인매리(鄭人買履)

"위정자가 현실을 똑바로 보고 대비하지 않는다면 늘 과거를 읊조리는 자에 의해 상처투성이가 될 것"

이정량 | 입력 : 2018/05/02 [20:06]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

길은 사람이 왕래하여 생겨난다. 길이 없는 곳에 새로운 길을 만들려면 가시덩굴이나 어려운 난관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이미 있던 길을 걷는 것이 훨씬 편하다.

 

그러나 최고의 통치권자는 있던 길이 쓸모가 없다면 가감하게 포기하고 현실에 맞게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한다. 길이란 현실적인 통로가 되어야 한다. 남한과 북한 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의 길 또한 마찬가지다.

 

통치자는 현재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선왕을 칭찬하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선왕의 덕과 치국의 방법은 그들 시대의 특수한 환경과 능력에 따라 정해진 것이다. 그것을 사용하려고 한다면 당연히 현실에 맞게 바꿔야 한다.

 

역사의 경험은 귀중하지만 현실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은 바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출발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역사적인 4. 27의 판문점 정상회담은 새 역사 창조의 출발을 알리는 중차대한 신호가 된 것이다.

 

정(鄭)나라 사람 하나가 신발을 사려고 했다. 그는 집에서 미리 발치수를 쟀지만 적어놓은 걸 놔두고 시장에 나왔다. 신발가게에 들어가 적당한 신발을 골랐는데 문득 발치수를 적은 종이를 가져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는 급히 집에 돌아가 그것을 챙겼다. 하지만 시장으로 돌아왔을 때 신발가게의 문은 이미 닫혀 있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왜 직접 신발을 신어보고 사지 않았습니까?”

 

그가 대답했다.

 

“저는 발을 잰 치수를 믿지 발을 믿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교조적(敎條的)인 사람의 어리석음을 풍자한다. 정나라 사람은 자기가 잰 발치수가 사실 자기 발에 의거한 치수라는 사실을 잊고 오직 발 치수만 믿었다. 지금 자유한국당이 벌리고 있는 혹세무민의 쇼와 맞먹는 수준이다.

 

자기 발을 잰 치수는 믿으면서 어째서 자기 발은 믿지 못하는가? 차라리 치수를 믿지 자신의 발은 믿지 않는다는 정나라 사람은, 현실 사회에서 자가당착의 도에 빠져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인 자유한국당의 홍준표에 비유할 만하다.

 

 

현명한 위정자는 현실에 주목하여 자신을 기점으로 삼고 객관적 환경과 주관적 정세에 근거하여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 정나라 사람처럼 실제와 동떨어진 행위를 결코 본받아서는 안 된다.

 

천하를 다스리려면 어디까지나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역사의 예로 현실을 재단하는 것은 현실을 역사에서 끌어오려는 것이니 가능할 리 없다. 위정자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을 믿는 것이며 객관적 환경과 주관적 정세에 근거해 행동을 결정하고 현실 위에 바로 서는 것이다. 치수만 믿고 신발을 사려던 정나라 사람을 본받으면 안 된다.

 

자신을 믿지 않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은혜에 의지하면 원망이 생기기 쉽다. 어린 자녀를 부모가 대충대충 키우면 자녀가 성장해서 부모를 원망하게 되고,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에게 봉양을 소홀히 하면 부모가 자녀를 꾸짖게 된다. 부모와 자녀 사이도 이러한데, 다른 경우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지주(地主)가 일꾼에게 좋은 음식을 주고 좋은 베로 옷을 만들어 주는 것은 결코 일꾼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은 일꾼들이 자신의 은덕에 감격해 더 열심히 논과 밭을 갈게 하기 위해서이다. 일꾼이 논과 밭을 경작하면서 머리를 써가며 씨를 심는 것도 지주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그렇게 해야 더 좋은 음식을 먹고 더 좋은 옷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자신을 위한 일이다.

 

모든 일은 실제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린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할 때는 흙으로 밥을 짓고 흙탕물로 국을 끓이고 나뭇가지로 고기를 만든다. 그러나 식사 때가 되면 모두 집에 돌아가 밥을 먹는다. 흙, 흙탕물, 나뭇가지는 단지 유희에 사용된 것일 뿐 실제가 될 수 없다. 언제나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신빙성 없는 옛 전통의 포승줄로 자신을 옭아매면 안 된다.

 

다스린다는 것은 이상을 현실에 실현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이상은 현실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상의 현실화가 종종 ‘과거의 미화’나 ’이상론‘으로 빠져드는 경우가 있다.

 

역사에서 배우고 역사를 병풍으로 삼는 것은 다만 사람들에게 안정감과 믿음을 주기 위함이지 그 출발이 과거에 있기 때문은 아니다. 현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위정자는 늘 과거와 비교 당한다. 하지만 이는 무가치한 비교이다. 이미 흘러가버린 것이 현재의 상황을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정권의 아류요 잔당이라 할 자한당의 큰 잘못은 전비(前非)에 대한 사과는커녕, 지금도 시대에 역행하고 인심을 거역하고 있을 뿐 아니라, 60여 년 동안이나 지속된 악습과 적패의 공범으로 사실을 호도하고 혹세무민하면서 박정희 유신정권의 말기적 현상을 오늘에 체현(體現)하려는 수구회귀(守舊回歸)의 미망(迷妄)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착오적이요 반민주 반역사적인 세력은 역사발전의 필연적인 법칙에 의해 금명간 허무하게 도태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고단함을 옛것과의 비교를 통해 풀어가고자 하는 위정자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다. 지금의 문제는 지금의 가치로 풀어야 하며, 지금의 사람은 지금의 정책으로 만족시켜야 한다. 위정자가 현실을 똑바로 보고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다면 늘 과거를 읊조리는 사람들에 의해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다.

 

비전을 가진 통치자란 곧 현실의 문제에 철저하게 대응하며 미래를 차분하게 준비한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라 하겠다. 즉, 국난극복과 애민애족의 철학과 신념을 갖고 시대와 역사의 부름 앞에 언제라도 당당하게 나서서 활연하고 대범하게 능동적으로 난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두 지도자가 전개하는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역동적 진취적 대과업들은 천지개벽(天地開闢)을 이룰 것 이며, 우리 7천6백만 겨레가 응원하고 함께할 것이다! 분단의 역사를 청산하고 통일의 새로운 역사로 바꾸는데 혼연일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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