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데이(May-day), 피어린 ‘노동절’(Labour day)의 역사

노사화합의 ‘노사공동 경영’, 노동자연대의 ‘임금·노동조건 표준화’가 실현되는 ‘노사·노노관계’를 확립한다.

권혁시 칼럼 | 입력 : 2018/05/02 [22:00]

세월이 쏜살같다더니 그보다 오히려 더 빠른 것 같다. 바람이 스치듯 4월은 지나가고 어느새 5월이 다가왔다. ‘계절의 여왕 5월’의 첫날 5월 1일은 ‘메이데이’(May-day, 노동절), 어제는 구미(歐美) 각국에서 노동자들이 연대의식을 다지며 비장하고 결연히 집회, 의례를 거행하였던 ‘국제 노동절’ 128주년이다. 이날은 노동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고, 노동권 보장의 구현을 위한 투쟁의 역사를 기리는 법정 기념일이다. 하지만 공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쉽게도 교사, 경찰, 군인을 비롯한 공무원들을 제외하고 노동자들만 휴무다. 

 

1890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 역사상 첫 번째 메이데이 행사가 열렸다.


게다가 정식 명칭 또한 ‘노동절’이 아닌 근로자의 날이어서 자못 안타깝다. ‘노동’(勞動, labour)이라는 용어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 탓이겠으나, 지나치다 못해 부질없는 ‘이념경도’의 편견, 강박관념이 아닐 수 없다. 그런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우리나라는 지도자·위정자들은 말할 나위없고, 범국민적인 ‘개혁·개방’의 의식전환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친다(기실, 인류공영을 위해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서로의 장점을 ‘상호융화(融化)’시켜야 할 인간이 창출한 귀중한 의식적 가치이며 실용적 방편인 것이다).


그래서 말하건대, 끊임없이 자행되는 악덕 기업주들의 만행(갑질)이 곳곳에서 지금도 간단없이 부지불식간에 자행되고 있을 것이다. 만연한 그런 행태가 크게 불거지며 또다시 큰 파동을 일으킨 것이 삼성의 노조결성 저지, 한진의 직원인권 침해 사태다. 사업주의 인권유린, 노동권침해는 물론, 그토록 횡포를 일삼는 기득권자들에게 아부맹종, 부화뇌동하는 적잖은 노동자들 역시 각성해야 한다. 하여, 매사가 다 그렇듯 ‘경제민주화’를 개념 없이 말로만 떠들며 강압만 해서는 쉽사리 될 일이 아니다. 사고방식의 일대 전환을 통하여 패러다임을 변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1886년 5월 1일, 미국의 노동자들은 노동착취, 인권유린에 대항하여 ‘8시간 노동제’(노동시간 단축)의 실현을 주장하며 연대·항거했고, 이에 대한 경찰의 과격한 진압, 유혈탄압에 격분하여 강력히 대항, 격렬하게 투쟁하였다. 당시, 미국의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뿐 아니라 저임금으로 인해 극심한 민생고에 시달렸다. 그런 가운데 1884년, 미국의 노동단체들은 1일 8시간, 단축 노동의 실현을 요구하며 총파업(general strike)을 결의하고 동시에 1886년 5월 1일에 전국적인 제 1차 집회·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바로 그날, 미국 전역에서 노동자들이 스트라이크(파업)를 결행하였는데 이틀 후인 5월 3일, 시카고에서는 21만의 노동자들이 경찰과 충돌하여 유혈사태가 발생했던 것이다. 그 후 1889년 7월, 파리에서 개최된 ‘제2 인터내셔널’의 결성을 위한 창립대회에 참가한 세계의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이 역사적인 거사를 기념하는 메이데이(노동절, Labour day)를 결정하였으며, 여기서 성안, 채택한 ‘3대 연대결의’를 실천하는 날로 선언하였다. “기계를 멈추자,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투쟁을 조직하자,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여 노동자의 권리 쟁취를 위해 동맹파업을 행동하자”


그렇게 노동자들의 권리 쟁취를 향한 역사는 피맺히도록 멀고도 험난한 대장정이었다. 그런 끝에 1890년 5월 1일, 제 1회 메이데이 대회가 개최되었고, 이후 전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매년 5월 1일에 메이데이를 기념하여 왔다. 그러나 미국, 캐나다 등, 일부 국가는 메이데이 시기에 즈음하여 그치지 않고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를 문제 삼아 5월 1일을 ‘법의 날’로 변경하고 다른 날을 노동절로 정하기도 하였다(미국과 캐나다는 9월 제 1주 월요일, 뉴질랜드는 10월 제 4주 월요일, 일본은 11월 23일을 노동절로 지정하였다).

 

1923년 5월 1일, 일제 강점기에 ‘조선노동총연맹’이 주도하는 행사에 노동자 2천여 명이 참가하여 ‘노동시간단축, 임금인상, 실업방지’를 주장하였으며, 그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노동자집회였다. 해방 이후의 노동절 기념행사는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가 주도하여 개최했으나, 정부가 ‘대한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의 전신) 창립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변경, 지정하여 1958년부터는 그날 기념행사를 치러왔다. 그리고 1963년, 노동법을 개정하면서 명칭을 ‘근로자의 날’로 변경하였으며, 1964년에는 미국, 캐나다를 모방하여 5월 1일을 ‘법의 날’로 정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노동단체들은 노동의 가치와 노동권의 중요성을 실추시키고, 노동절의 의미를 왜곡, 폄훼하여 명칭마저 변경한 사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고, 따라서 강한 불만과 깊은 우려를 표출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5월 1일, ‘노동절 회복’을 강력히 주장하며 치열한 투쟁을 계속했고, 이런 대립과 갈등은 그치지 않고 날로 격화되어 갔다. 그러한 가운데 문민정부(김영삼 정권)에 의해 1994년, 기념일 날짜를 3월 10일에서 다시 5월 1일로 변경, 회복시켰다. 하지만 명칭은 노동절로 환원하지 않은 채 여전히 근로자의 날을 고집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래서 다시금 절절히 통감하는 바는, 노동절의 명칭 회복뿐만 아니라, 인간세의 기반이고 세상살이의 원동력인 노동의 신성한 가치와, 그로부터 시현되는 노동권의 보장, 강화는 국민(주권)이 명하는 제1 강령이라는 엄연한 사실이다. 아울러 국리민복과 사회 정의·평화의 실현,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인권)이 지켜지는 명실상부한 민주공화국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식혁명’을 선결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듭 단언하거니와 어느 나라, 어떤 민족이든 결코 미래가 없다는 진리를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노사관계의 관점(topos)에서 그 핵심은 노사(勞使) 간에 대등하고 노노(勞勞)는 평등한 관계를 이룩하는 것이다. 


그것은 ‘노동절의 역사’가 말해주듯 쉽지는 않겠지만 기필코, 인권과 노동권이 존중되고, 나아가서 노사화합을 통한 ‘노사 공동경영’(노동자대표 경영참여)과 노동자연대에 의한 ‘임금 및 노동 제 조건의 사회적 표준화’가 보장되는 최선의 ‘노사·노노관계’를 정립하여 경제민주화의 기본, 기초를 튼튼히 다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경영과 복지경제의 최대 현안으로써 구조적 문제인 ‘1 대 99의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 즉 ‘중소기업 부실, 고용불안·소득격차 및 가계부채 급증’으로 인한 대기업과 중소기업(대기업중심 경제), 수출과 내수(수출위주 경제), 부유층과 빈곤층(중산층부재 경제)의 ‘3대 양극화’를 극복, 타개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권혁시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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