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탄생 2백주년, 사회주의의 실패와 자본주의의 파행

사회주의·자본주의 문제의 해결책은 ‘연대의 정신’으로 장점을 ‘상호융화’시키는 것이다

권혁시 칼럼 | 입력 : 2018/05/16 [02:16]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년)는 독일의 대사상가 칼 마르크스(1818~1883년) 보다 3년 늦게 출생하여 2년 먼저 타계하였다. 그는 세상을 뜨기 한 해 전인 1880년 6월 8일, 삼천여 청중이 발 디딜 틈 없이 운집한 모스크바 귀족회관의 뮤직홀에서 희대미문의 명강연을 시작하였다. 청중들은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그의 강연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연이어 쏟아지는 박수갈채와 탄성에 사십분 여밖에 걸리지 않을 강연이 한 시간이 넘어서야 끝났다. 


그리고 일순간 침묵이 흘렀으나, 감격에 북받쳐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 아우성과 울음소리가 장내를 진동시켰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연사를 향해 달려 나갔고, 심지어 한 젊은이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도 했다. 이렇게 말로는 이루다 표현할 수 없는 미증유의 광란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도스토예프스키의 강연은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회적) 사랑에서 발로한 사명감과 열정으로 며칠 동안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푸시킨에 대한 평론을 낭독한 것이었다.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초상화

 

반목하는 러시아인을 ‘일치·단결’시킨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
그 ‘연대의 정신’을 본받아 ‘민주시민혁명·남북화해교린’을 성공시킨다

 

그러면 그의 연설에 청중들이 열광했던 까닭은 무엇인가, 과연 무슨 말을 했기에 그토록 가슴 벅차 주체치 못할 정도로 감명을 받았던 것인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흘 전에 시작한 러시아인들이 ‘민중의 스승’으로 추앙하는 시인 푸시킨의 동상 제막식 축제에서 초청 강연을 했던 것인데, 러시아인들은 차르지배에 저항하여 러시아혁명의 맹아가 되었던 ‘데카브리스트’(12월당)와 가까웠던 푸시킨을 제정러시아에 대한 반체제인사로 여겼다. 그러므로 이 특별한 이벤트는 국가(제국)와 민중의 지난한 반목과 대결 끝에 마침내 민중이 승리를 쟁취한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러한 사태의 기류와는 전혀 다른 극히 전통적이고 민족주의적이며 그리스도적인 성향이 대단히 강했고, 이를 대표·대변하는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그보다 먼저 강연한 급진적이고 사회주의적이며, 그래서 무신론적이기까지 한 투르게네프는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푸시킨의 면모를 평가한 데 반해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인의 화해와 일치, 단결과 연대, 그리고 공생공존과 상부상조를 부르짖었다. 


오랜 세월 동안 갈등과 반목, 분열과 대립의 골이 깊어 질대로 깊어져 극도의 불안에 휩싸여 있던 러시아인 전체가 전적으로 공감하고 간절히 열망하던 바를 포효하듯 설파하였다. “서유럽파도 옳고 슬라브파도 옳다. 양 진영이 반목하는 것은 오해 때문이다. 러시아는 양측 모두를 필요로 한다. 완전히 러시아인이 된다는 것은 곧 모든 사람의 동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푸시킨이야말로 이를 문학을 통해 입증하였으며, 그런 까닭에 그는 러시아의 위대한 선지자, 예언자라고 열변을 토했던 것이다. 사상과 이념, 정파와 이해, 신분과 세대 등 모든 차이를 초월하여 전 러시아인의 화합과 상생, 나아가서 인본주의(휴머니즘)의 실현을 리얼하게 호소함으로써 러시아인들은 큰 감동을 받았고 급소를 찔린 듯 전율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도스토예프스키는 민족의 화해와 단결, 일치와 연대로 이끈 러시아 민중의 정신적 지도자이며, 진정으로 위대한 선지자였다. 그러한 연유로 ‘연대·단결’한 민중이 주도했던 러시아혁명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연관성은 자못 크다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과도 연결된다. 그렇게 역사의 대변화를 추동했던 화합·일치와 단결·협력을 이룬 ‘연대의 정신’(solidarity consciousness)을 민주시민혁명이 현재진행이며, 남북한의 화해교린을 이제 막 시작한 우리가 반드시 본받아야 할 바다.

 

그런데 도스토예프스키와 동시대에 살았던 마르크스는 어떠했던가. 그는 러시아 민중의 마음속 깊이 파묻혀 있던 공감대를 분출(끌어냄)시켜 화합과 연대를 이루게 했던 도스토예프스키와는 달리 일체의 타협을 불허하는 해박하고 박식한 치열하기 이를 데 없는 논쟁가였다. 마르크스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화합보다는 분쟁이 불붙었고, 박학다식한 지식과 촘촘하기 그지없는 논리로 빈틈없이 짜여 진 저작들은 거의 모두 외면당하다시피 했다.


그런 그를 유대인들은 아인슈타인, 프로이트와 함께 오늘의 세계가 이루어지는 데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3인으로 내세우며 민족적 자부심으로 삼는다. 그가 이토록 드높은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사후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자본가의 횡포에 대항하여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던 혁명적 ‘노동운동’과 1917년, ‘러시아혁명’(공산주의혁명·10월혁명)이다. 이로써 마르크스는 그의 맹우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함께 ‘공산주의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세계사에 있어 몇 안 되는 위대한 인물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지난 4일 칼 마르크스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벽 중앙에 마르크스 초상화가 걸려 있다. / 신화뉴시스


마르크스는 지금으로부터 2백년 전인 1818년 5월 5일,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접경지역 라인란트트리어에서 태어나 평생토록 오로지 ‘노동자와 역사’에 관한 연구에 몰두, 투신하였다. 그러한 결과, 20세기는 가히 마르크스의 시대였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한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던 것이다. 하여, 만일 불철주야 끊임없었던 그의 치열한 노력이 없었던들 자본주의의 문제와 폐단에 대한 적확한 지적과 가차 없는 비판을 어느 누가 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의문과 더불어 ‘마르크스주의’(marxism, communism)의 가치와 기여를 제대로 알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파행적 ‘신자유주의’의 극심한 폐해·문제의 해결책, 
마르크스·사회주의 보완의 ‘복지자본주의’(케인스주의)

 

마르크스는 “전체와 개인의 모순이 사라지고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의 통합을 통하여 모든 소외(차별)가 극복된 사회, 노동조합의 분파적 이익과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에 갇혀버린 노동운동을 넘어서는 단결과 연대의 단위, 자본주의적 세계시장의 온갖 참화를 방지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촌락공동체에 희망을 걸었다”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 ‘카를 마르크스’ ㅡ 여기서 촌락공동체는 러시아 전통의 ‘미르’를 전범 삼는 것이며, 평등을 기초로 한 ‘원시공산사회’의 전형일 수 있다.)


러시아혁명 얼마 전, 19세기 말엽에 유럽 전역에 휘몰아쳤던 인간차별과 노동착취의 자본구조에 의한 비인간적인 행태의 광풍과, 그렇게 인간의 삶을 휩쓸어버린 천민자본주의 횡포, 파행을 목도하면서 마르크스는 비분강개한 심정으로 자신의 이론 정립에 골몰했을 터이고, 실제로 이를 거침없이 펼쳐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는 자기모순을 극복치 못했을 뿐더러 ‘사상과 이념’에 반하는 노멘크라투라(공산당귀족)로 대표되는 기득권세력의 변질된 지배이데올로기(이념)와 시스템(체제)의 역행, 반동으로 몰락을 자초한 것은 만인주지의 오래지 않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 탓에 서유럽에서는 이미 1980년대 중반 경부터 퇴조하였던 정통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사회주의)를 계승한 국가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이제는 어느 정도의 식견과 지각 있는 자유(시장)주의자들도 대개가 “자본주의가 분열적인 계급 간의 충돌에 의해 작동하며, 소수의 자본가(부르주아)가 다수의 노동자(프롤레타리아)의 잉여노동을 이윤으로 전유하는 것으로부터 연유한다” 그렇게 주장한 마르크스의 이론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처럼 세계경제가 자본주의에 종속하는 한 마르크스이론은 타당성을 잃을 수 없는 것이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공산주의를 정립한 사상가·혁명가로 인식되는 마르크스의 수많은 저작들 가운데 그것에 관한 글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자본론’은 대표작인데도 더욱 그렇다. ‘공산주의의 아버지’로 일컬어질 만한 대목이 전혀 없거니와 자본주의경제에 대한 문제제기가 주제인 것이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의 핵심적 논지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정당화시키고, 혁명적 노동운동을 추동하는 원동력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목하, 자본주의의 딜레마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1 대 99의 양극화’가 바로 그것이다. 이를 유발한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모든 요소를 망라한 과격한 전통주의(rad trads)와 전혀 다르지 않은데, 그렇다고 그 책임이 전적으로 자본주의자, 자본가들에게만 있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마르크스주의자를 필두로 한 사회주의자들은 이론적 겉치레에만 급급하고 연연하여 자본주의의 현실적 폐단에 대응하여 지속적이고 전폭적으로 이를 시정·보완시킬 노동세력의 확장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경제의 최대딜레마 ‘양극화’ 해소 ㅡ 중소기업육성과 소득평준화,
소수 기득권집단의 ‘이기주의적 ‘노동자주의’ 타파와 정부의 ‘적극적 재정정책’ 추진

 

부연컨대, 사회주의(마르크스주의) 사상이 지금도 변함없이 현세의 지식인들로 하여금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그 이유는 양극화의 심화, 외환위기의 반복, 경제침체, 인간차별, 노동착취 등등, 현대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의 문제와 폐단에 대한 ‘마르크스의 지적·비판’이 적절하고 유효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자유주의 최대의 문제점인 양극화를 해소하고 경제활성화를 통하여 지속적인 발전을 실현하고자 하면, 수많은 국정과제 중에서도 무엇보다 (누누이 말했듯이) ‘중소기업 지원·육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해당 기업의 발전가능성을 정확히 판별(이는 여신을 담당하는 금융기관 본연의 역할이고 책무이므로 그럴 수 있는 역량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적극적 재정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특히, 그 일환으로써 ‘차별적 고용보조금제’(에드먼드 펠프스, ‘반필립스곡선’이론)과 아울러 (거액의 유보금을 보유한) 대기업의 사회중시경영(socially responsible management, 사회적 책임)의 차원에서 ‘초과수익공유제’(이익의 사회환원)를 조속히 도입해야 할 것이다.

 

안타깝고 답답하게도 양극화 현상의 거의 결정적 원인인 ‘사회적 차별’에 의한 임금격차가 극한에 이르는데도 30년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대한민국의 노동운동을 주도하는 고임금 노동자집단(대기업노동조합)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듯 임금차별(격차)이 심해지고 고착화된 주된 요인은 특혜적 재벌기업 위주의 경제정책과 대기업의 착취(갑질, 불공정거래), 사업영역 잠식 등으로 인한 중소기업의 경영위축, 지불능력저하다. 게다가 1980년대 ‘노동자 대투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노동조합이 견고하게 결성된 대기업과 공기업(정부투자기관)의 임금이 과도하고 급속하게 인상 된 데서 기인하였다. 


그것은 단적으로 말해서 소수 노동자(노조)들의 사회공동체의 이해를 도외시한 개인의 이해에 대한 집착이었다. 즉 노동운동의 사회주의적 지향성(평등원리)을 무시한 채 자신의 욕심만 채우는 ‘지대추구적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사회적 평등’에 관한 사상과 이념의 부재, 노동윤리와 특히 ‘노동자연대’에 대한 확고한 의식의 결여가 근본원인이며, 이는 단적으로 말해서 편협한 노동자(이기)주의에 급급하여 ‘임금 및 노동 제 조건의 사회적 표준화’의 실현에 역행함으로써 극도의 불평등을 야기한 집단이기주의적 노동운동의 과오가 분명하다. 


그럴진대 세칭 귀족노조로 비판받는 일단의 노동단체(양대노총)는 이제라도 대오각성하여 임금인상의 자발적인 제한·조정을 통하여 대기업의 초과수익공유제의 원활한 실행에 적극적으로 기여해야할 줄 안다. 전 노동자들의 노동력의 생산성이 기여하는 사회전체의 경영성과의 공정한 분배(분배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경영인(기업)과 노동자(노조)의 ‘사회적 정당성’(justification)을 바로 세우는 길이다. 그리하여 양극화의 대표적 현상인 임금차별로 인한 (청년실업을 위시한) 고용불안을 해소하여 고용안정(job stability)을 이룩함으로써 구직난과 구인난이 상존하는 한국경제의 최대딜레마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권혁시 이사장

결론적으로 이러한 모든 방책은 사회주의의 특장을 적용한 ‘자유주의적 진보주의’(케인스주의, 수정·복지자본주의) 경제정책이며, 따라서 마르크스주의는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즉 신자유주의가 조장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밝힌 도스토예프스키의 명연설이 제시한 ‘연대의 정신’을 전범삼아 이념경도의 편협한 이분법적 사고, 고정관념을 타파, 일신하여 ‘개혁·개방’의 마인드를 확립해 나아가야 한다. 이는 또한 경제협력, 문화교류 등을 기반으로 우리 한겨레의 미래와 명운이 달린 ‘평화통일’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
권혁시 관련기사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