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란 이름의 비수

한국언론, 천사와 악마

이기명 칼럼 | 입력 : 2018/05/31 [22:02]

정규 TV가 갑자기 중단됐다. 긴급뉴스가 나왔다. ‘서해에서 남북 해군 충돌, 전투기 출동’ 전군 비상. TV를 보던 국민들은 기절초풍했을 것이다. 결국, 전쟁이 터졌구나. 어디로 가야 살지. 갈 곳이 없다. 절망이다. 이런 방송은 거짓말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생각만 해도 숨이 멎는다.

1938년 미국에서 오손 웰스 감독의 ‘우주전쟁(The War of the Worlds)’이란 라디오 드라마가 방송됐는데 정규방송 중 긴급뉴스로 ‘화성인의 침공’이 보도되었고 이에 놀란 시민들이 집을 뛰쳐나왔다. 대 혼란이 일어났다. 무려 백만 명이었다. 언론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방송은 나가면 끝이다. 아무리 취소를 해도 소용이 없다.

 

TV조선은 무슨 연유인지 북한이 풍계리 갱도 폭파를 안하고, 연막탄 피운 흔적을 발견했다는 내용을 잠시 올렸다가 사과하기도 했다.(이미지 출처 - 인터넷 커뮤니티)


오보란 이름의 비수

세상을 살다 보면 자기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거짓을 말할 수 있다. 자신은 진실로 알았지만 실은 거짓일 때가 있다. 그러나 거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거짓을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범죄다. 6·25 전쟁이 났을 때 대통령 이승만은 도망을 치면서 국민들에게는 ‘서울 사수’를 약속하며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믿고 피난을 안 간 서울시민들은 ‘비도강파(非渡江派)’란 빨갱이가 되어 수도 없이 죽었다.

정의와 애국이란 이름으로 권력자가 국민을 속여먹은 일은 하나둘이 아니다. 일일이 지적하기도 지겹다. 불쌍한 건 국민뿐이다. 국민 세금 꼬박꼬박 받아먹으면서 놀고먹는 국회의원, 수백억 수천억을 탈세하면서도 멀쩡하게 사는 재벌, 사법부를 농단한 대법원장을 보면서도 국민이 할 수 있는 것은 욕이나 하는 것이다. 천사 같은 국민이다.

이 모든 행위가 결함 많은 인간이 하는 일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관대하게 넘길 것인가. 그러나 한 가지 용서 못 할 일이 있다. 언론이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우주인이 공격한다는 황당한 뉴스를 듣고 100만 명이 거리로 뛰쳐나오는 판이다. 라디오만 있던 시절 날리던 아나운서는 자기에게 10분만 마이크를 주면 세상을 뒤집어 놓을 자신이 있다고 했다. 언론이 무섭다. 왜 기자를 무관의 제왕이라고 하는지 알겠는가. 신뢰다. 그러나 비수를 감춘 악마가 될 수도 있다.

악마와 천사. 그들은 누구인가.

국민은 왜 기자를 사랑하고 존경하는가. 기자는 정의에 편에서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불의한 권력과 싸우기 때문이다. 이 말을 부정하는 기자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부정한다면 기자 아니 언론의 존재의미를 부인하는 악마가 되기 때문이다.

나라를 송두리째 들어먹은 국정농단의 주인공인 최순실을 가장 먼저 세상에 드러나게 한 것도 기자다. 최순실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면 국정농단은 그저 그렇게 있던 사건으로 묻히고 촛불은 타오르지 않고 지금 국민은 어떤 모습으로 이 땅에서 살고 있을까.

언론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지금 왜 이런 너무나도 당연한 말을 꼭두새벽에 쓰고 있을까. 지금 바로 이 시대가 언론 스스로 자신들의 사명을 가장 심각하게 자각해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대변인과 조선일보·TV조선

청와대는 29일 최근 남북미 상황과 관련한 일부 언론 보도를 언급하고 이 보도는 사실이 아닐뿐더러 국익을 해칠 수 있어 해당 보도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여기서 말한 일부 언론이란 조선일보와 TV조선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밝힌 국익을 해치는 보도란 무엇인가.

“한미 정상회담 끝난 날, 국정원 팀이 평양으로 달려갔다” (조선일보 5월 28일)
“풍계리 갱도 폭파 안 해...연막탄 피운 흔적 발견” (TV조선 5월 24일)
“북, 미 언론에 ‘풍계리 폭파’ 취재비 1만 달러 요구” (TV조선 5월 19일)

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미 알 국민은 다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TV조선이 입장문이라는 것을 냈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이 문제 삼은 TV조선의 ‘北, 미 언론에 취재비 1만 달러 요구‘ 기사는 복수의 외신기자를 상대로 취재해 보도했다. 이 같은 내용을 구체적으로 증언한 취재원과 대화 녹취록과 이메일도 보관하고 있다”

“민감한 상황인 점을 감안하고 취재원 보호를 위해 현재로선 공개하지 않을 뿐” “진실은 밝혀질 것”

“김 대변인은 또 ‘풍계리 갱도 폭파 안해...연막탄 피운 흔적 발견’을 마치 TV조선이 정규 뉴스 프로그램에서 내보낸 정식 리포트인 것처럼 인용했지만 그렇지 않다”

“당시는 5월24일 늦은 밤 트럼프 대통령의 미북 정상회담 취소 서한 발표로 TV조선 보도본부가 특보 준비를 위해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각종 미확인 첩보와 정보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온라인 뉴스 팀 착오로 그 같은 문구가 온라인에 10여 분 간 노출됐다가 발견 즉시 삭제됐다”

“(관련 속보에 대해) 즉각 사과했다. 청와대 대변인의 이번 성명은 지극히 이례적이다”

불편한 모양이다. 왜 불편한가. ‘풍계리 갱도 폭파 안 해…연막탄 피운 흔적 발견’ 실수라고 했다. 10여 분 만에 삭제했다고 했는가. 치사하다. 그 설명은 그만두자.

조·중·동, 왜 이러는가

세상이 달라졌다. 기레기 안 무섭다. 왜 ‘기레기’가 고유명사가 되었는지 잘 알 것이다. 기레기라고 불러도 화도 안 낸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다. 등 뒤에 꽂힌 비수는 뽑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비수를 억울한 사람의 등에 꽂았는가.

지금은 이 땅에 평화를 생각할 때다. 눈 크게 뜨고 귀 활짝 열고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존경받는 언론, 존경받는 기자가 돼라.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
조선일보 관련기사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