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협상 성공과 세계평화 실현, ‘그리스도교 원리주의’ 극복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권혁시 칼럼 | 입력 : 2018/06/07 [16:58]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2절) 

 

 

역사적인 ‘6·12북미정상회담’이 닷새 앞으로 다가 왔다. 그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은 연속적인 회담 추진을 공표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다수의 전문가들은 북한과 미국 간의 ‘비핵화 해법’에 관한 실질적인 의견 접근을 시사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기대가 크고 적이 고무적이지만, 예상대로 미국 의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권 일각에서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우려스럽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냉전체제가 시작된 이래 끊임없었던 정치·군사적 대립, 분쟁과 전쟁의 주된 요인은 아이러니하게도 ‘평화주의’를 강력히 표방해온 미국이 국제관계의 상호 신뢰와 호혜의 기본원칙에 충실치 못했던 측면이 적잖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그런 부조리하고 이율배반적인 결과를 초래한 핵심적이고 대표적인 두 가지 원인이 있다. 


그 중에 첫째가 (이미 실상에 대해 개관한바 있는) ‘군산복합체’의 암약이고, 둘째는 ‘종교적 근본주의’에 경도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한 관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과격한 종교적 신조(도그마)에 함몰된 정치이데올로기다. 이는 정상의 전통종교가 추구하는 핵심적 교의가 결코 아니며, 그 지고지선한 세계관을 준행하는 것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그것은 극도로 단순화시킨 슬로건을 부르짖고 맹목적 이타주의, 극단적 완전성·정당성을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이런 신앙(종교) ‘근본주의·원리주의’의 이분법적 단순논리(흑백논리)는, 종교의 숭고한 가치와 거룩한 실천의 지향 발현치 못한 채 배척 당한 나머지 언제나 변두리로 밀려나 끝내는 사라지고 말았다.


예컨대 AD 3세기 중엽, 로마 황제 데시우스의 그리스도교 박해에 굴복하여 ‘이탈자’로 불렸던 무리가 교회에 복귀를 간절히 청원하였다. 하지만 이를 거세게 거부, 배격하여 근본주의 ‘순수파’(청정파) 운동을 주도한 ‘노바티아누스주의’는 그 세력이 복귀 허용을 주장한 반대파는 비교가 안 될만큼 강력했음에도 종국에는 이단설로 파문 당하였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은 4세기 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치세에도 박해가 있었는데, 배교했던 성직자(사제)들의 복직 희망으로 문제가 한층 더 심각했다. 찬성파와 반대파가 첨예하게 대립하였는데, 원리주의 강경파의 지도자 도나투스는 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이후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로 백년 동안 존속했지만 ‘도나투스파’라는 이단설로 귀결되었다). 그런 그리스도교 원리주의는 이후에도 여러 가지 양태로 생멸을 거듭하여 왔다. 


오늘날, 이렇게 극단적인 근본주의의 발호를 조장한 전근대 이후의 역사적 배경이 있다. 첫째, 근대 직전의 중상주의 시대에 유럽의 강대국들은 세계 도처에 식민지를 개척하여 자국의 영역을 확장하였다. 이러한 식민지화는 선교사, 군인, 상인들의 협조·협력으로 완료되었고, 그로 인하여 정교분리와는 상관 없이 종교와 정치의 제휴, 결탁관계가 형성, 강화되었다. 


둘째, 종교적 정체성, 교의·교리(이데올로기), 신조(도그마)에 기초한 근대 국가의 성립이다. 멀리로는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백인·앵글로색슨족·신교도)가 주축이 되었던 미국의 건국이 그렇다. 가까이로는 와하비사상이 근간을 이룬 사우디아라비아 왕국(1920년)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파키스탄(1947년), 이스라엘(1948년), '벨라야테파키'를 형성, 시아파 성직자가 감시·감독하는 정치(신정)체제로 변환한 이란 등이 있다. 


셋째, 9·11테러 사태, 곧 세계무역센터(WTC) 폭파사건의 역작용이다. 원래는 아랍·이슬람 국가들의 지원과 미국정부의 옹호로 소련 ‘공산주의 분쇄’ ㅡ 이념경도 이상으로 경직된 그리스도교 근본주의의 실천강령 ㅡ 여기에 가담했던 알카에다(198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이 이슬람 근본주의 수니파로 조직한 무장단체)가 세계의 ‘공공의 적’으로 낙인 찍힌 것이다. 


이를 기화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은 이른바 ‘신십자군 전쟁’의 참화를 당했으며, 이 싸움에서 ‘악의 제국’에 완승한 미국 중심의 서구 각국은 ‘유대·그리스도교 세계’로 규정되기에 이른다. 문제의 심각성은 세계의 곳곳에서 자행되는 분쟁, 폭력, 전쟁의 원인과 배후에 종교가 있다고 인구에 회자되는 것이다. 이는 결코 과장이거나 허언이 아니라는 점에서 통렬한 반성과 진정한 회개를 촉구케 한다.

 

 

남북미 정상, 세계평화·인류공영의 ‘대의명분’(진리) 천명 실천

 

 

북한 ‘핵·미사일’ 문제의 해결과, 이와 불가분의 관계인 한반도의 평화정착, 세계의 평화공영의 관점에서 이러한 종교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유의해야 할 점은 ‘과격한 전통주의’(rad trads)가 화근인 정치·종교적 과열현상은 앞서 살펴본 바처럼 이란, 이라크,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에서 긴장상태, 대립·분쟁을 촉발시켜 왔던 사실이다. 


특히 현재, 국제정세의 핫이슈가 되고 있는 한반도 주변과 미국의 상황도 이와 무관치 않다. 왜냐하면 미국에서는 성경의 자구해석과, 창조론 및 새뮤얼 헌팅턴의 이론(서구문화중심주의, 저서 ‘문명의 충돌’)을 맹신하는 그리스도교(개신교) 근본주의·원리주의가 정치를 비롯한 국가·사회 전 분야를 주도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9·11테러 사태 이후, ‘악의 제국’에 승리를 거두는 동시에 ‘악의 축’(이란·이라크·북한)을 새로운 타깃으로 삼았던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런 종교적 경향은 국제문제의 근본, 핵심과는 거리가 멀고, 더구나 종교적 이데올로기, 영적 상관성·정당성과 계시에 전적으로 반동, 역행한다. 


직설컨대 이슬람 근본주의는 교의와 신조와는 관계 없는 민족주의적 감정, 저항에서 발로하였다. 미국의 주류·기득권 세력은 그리스도교 원리주의에 경도되어 (평화를 파괴하는) 군산복합체의 ‘평화수호’의 미명에 동조하고, 게다가 종교적으로는 ‘악의 세력’ 퇴치에 집착함으로써 북한(체제)의 인정을 불온시하여 북미정상회담을 암암리에 방해, 저지하려 들 수도 있는 것이다. 


“핵은 물론 생화학무기, 탄도미사일도 폐기해야 한다” “검증 전에는 제재 해제는 안 된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특검과 탄핵의 방어를 위해) “김정은과의 회담을 역사상 가장 중요한 회담으로 만들어야 하므로 성공을 주장하기 위한 어떠한 합의라도 얻으려고 미국의 이익을 팔아넘길지도 모른다” (코리샤케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부소장) 


그러나 북한의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확실히 실현하여 ‘냉전체제의 분기선’으로 남아 있는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통하여 냉전의 잔재를 완전히 걷어냄으로써 기필코 세계평화 실현의 역사적 사명, 위업을 이루어야 한다. 따라서 이와 무관한 주장이나 방해를 의도한 모든 언설은 사족에 불과할 뿐이므로 삼가고, 일축해야 마땅하다.


필연코 ‘진리’(대의명분) 앞에서는 군산복합체든 근본주의든, 또 다른 어떤 세력과 주의주장이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법이다. 북미정상회담은 진리의 확약이고 실천이며, “진리는 간단하다” 그것은 오로지 ‘세계평화·인류공영’이거니와 이를 실현하는 방편은, 모든 잡다한 주장과 언설을 물리치고 다만 완전한 ‘CVID & CVIG' (영구적이고 불가역적이며 검증 가능한 비핵화 및 체제안전보장)에 관한 대타협(big deal)을 끌어내는 것이며, 이는 만인주지의 사실이 아닌가.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권혁시 이사장

그러므로 북한과 미국의 정상들은 먼저 세계평화·인류공영의 ‘대의명분’을 공언하고, ‘상호 신뢰·호혜’의 정신으로 인류역사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북미협상을 성공시켜야만 한다. 또한 6·12북미정상회담을 탐탁하게 생각지 않는 정치인, 관료, 언론인 등은 발상을 전환, 진리에 순응해야 한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복음 8장 32절)


여하튼 지극히 다행스럽고 천우신조가 아닐 수 없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는 외교정책의 기본이 국익 우선(현실주의)이므로 도덕관념과 종교관을 초월한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은 파격적인 동시에 유연한 행동양식과 강경(fightback)한 반면에 대범한 사고(think big)방식이 특출나다. 그래서 대다수의 역대 대통령과 주류 정치인들과는 달리 (군산복합체의 커넥션은 물론) 편협하고 일방적이며 이분법적 단순논리의 그리스도교 근본주의를 극복할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고군분투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방책을 찾아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정부는 기민하고 유효적절히 대처해야 한다. 이를 테면 신중한 관망세로 일관치 말고 남북정상회담으로부터 이어지는 ‘북미정상회담 성공’의 세계사적 필연성과 당위성, 그 대의명분의 실현을 희망하는 엄정한 메시지를 시의 적절하게 전 세계, 만방에 천명하는 것이다. 아울러 대북협상에 의한 모든 협정에 대해 ‘국회비준’을 추진하여 반드시 법적 기속력을 확보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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