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무서운가

벗어야 할 '기레기 왕관'

이기명 칼럼 | 입력 : 2018/06/25 [20:54]
한 가지 물어보자. 한국과 미국 중 언론자유가 더 보장된 나라가 어느 국가인가. 웃을 것이다. 감히 미국과 비교를 하다니 말이 되느냐고. 과연 그런가.
 

‘국경 없는 기자회’라는 것이 있다. 국경이 없으니 자유스러운 조직이다. 여기서 각국의 언론자유를 평가했다. 1위는 노르웨이, 2위는 스웨덴, 3위는 네덜란드. 그럼 한국은? 순위를 매긴 180개국 중에서 43위에 올랐다. 미국은 45위다. 만세! 우리가 미국을 눌렀다. 일본이 67위. 중국이 176위. 북한은 꼴등이다. 기분 좋은가.
 
"한국이 언론자유 지수에서 미국보다 높은 순위에 오른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7년 이후 11년 만이다"
 
2016년 70위를 기록하며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발전이다. 그럼 한국 언론의 뉴스 신뢰도는 어떨까. 언론에서 뉴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한국언론진흥 재단에서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뉴스 리포트 2018' 데이터를 분석했다. 결과는 어떤가. 한국 언론의 뉴스 신뢰도는 25%, 조사 대상 37개국 중 꼴찌였다고 밝혔다. 얼굴이 화끈 단다. 아니라고 할 자신이 있는가.
 

2018년 한국의 뉴스 신뢰도. 자료: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언론은 왜 정직해야 하는가
 
의사를 믿지 못하면 병원에 못 간다. 운전자 못 믿으면 택시 못 탄다. 마누라 못 믿으면 어쩌나. 그건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고. 나라를 못 믿으면 어떻게 되는가. 끔찍한 일이다.
 
오늘 쓸 주제는 언론이다. 뉴스다. 왜 언론이 중요하고 뉴스가 중요한가. 바로 신경이기 때문이다. 신경이 망가지면 몸이 제대로 작동이 안 된다. 우리 몸에 신경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살아 있어도 산 게 아니다. 몸에 병이 들어서 그렇게 됐다면 내 탓이나 하지만 외부작용으로 그 지경이 됐다면 참 억울한 일이다.
 
미국의 언론자유가 처음으로 헌법에 명문화로 보장된 것은 1791년 제정된 미국 헌법 개정 제1조(The First Amendment)였는데, 이 조항은 “연방의회는…언론·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예 언론자유를 제한하지 못하도록 헌법에 못을 박았다.
 
한국의 언론자유는 어떻게 보장되어 있는가. 헌법 제21조.
 
①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이 밖에 조항은 생략하자. 
한국 기자들에게는 다시는 꿈도 꾸기 싫은 악몽이 있다. 젊은 기자들은 모를 것이다. 그러나 선배 기자들에게 들어서 알 것이다. 군사독재 시절이다. 그들은 펜은 들고 있었지만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아니 쓸 수는 있었다. 그다음은 말을 말자.
 
흔히들 ‘순치(馴致)’라는 말을 한다. 잘 길들여졌다는 뜻이다. 기자들이 길들여졌고 국민들은 길들여진 기자들이 쓴 기사를 읽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불신이다. 기사가 어떻게 쓰였던 국민들은 눈이 있고 눈으로 본 사실과 기사와의 차이는 바로 불신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기자의 자존심이 사라진 시절이다.
 
권력에 영합하는 언론이 생겨났다. 강요된 영합도 있었고 자발적 영합도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른다면 그건 기자도 아니다. 그 얘기도 줄이자.
 
경고. 조선과 싸우면 죽어
 
 
언론과 싸우면 손해라는 것을 가장 잘 인식하고 있는 부류가 바로 정치인이다. 특히 조선일보에 찍히면 죽는다는 인식을 정치인들은 갖고 있었다. 말이 험하지만 사실이다. 기자들이 버릇처럼 하는 말은 ‘까불면 죽어’다. 그럼 누가 까부는가. 그들 말대로 누가 까불었나. 노무현이다.
 
노무현 변호사는 당선된 후 이른바 ‘스타’가 됐다. 청문회에서 의원들이 증인 대신 회장님이라는 존칭으로 부르는 정주영의 말문을 막히게 했고 전두환은 진땀을 뺐다. 언론은 그를 주목했다. 언론은 ‘청문회 스타’라는 호칭을 노무현에게 달아 주었다. 노무현은 언론이 만들어 낸 스타인가. 국민들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국민의 대표로 평가했다.
 
그는 언론에 고개 숙이지 않았다. 문제가 터졌다. 조선일보 종로지국 배달원들이 청원했다. 지국장의 갑질을 호소한 것이다. 배달원들을 만나고 있는 노무현에게 전화가 왔다. 정치나 잘해라. 왜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 노무현이 대답했다. 기사나 잘 써라. 노무현의 자전적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에 자세히 나와 있다.
 
노무현이 찍혔다. ‘노무현 죽어’ 이제 그는 죽어야 할 대상이 된 것이다. 주간조선에 표지와 함께 기사가 실렸다. ‘노무현 의원은 과연 재산가인가’ 우종창 기자의 기사다. 노무현은 거의 벌거벗은 채 실린다. 천하에 부도덕한 정치인이다. 청문회 스타가 아니라 정치 쓰레기다. 노무현이 고소를 했다. 법정 구석에 있던 우종창 기자의 얼굴이 선하다. 당연히 승소다. 조선일보가 사과했다. 아는 언론인들이 충고했다. 어쩌자고 조선일보와 맞붙느냐고. 대답은 명료했다. 정치 안 하면 된다. 조선일보가 이를 갈았으리라. 이제 노무현은 없다. 조선일보가 이겼는가. 시원한가.
 
TV조선의 보도
 
자랑할 것도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못된 정치인들이 왜 기자들을 귀신 보듯 두려워하는가. 자신들의 비리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설설 긴다. 정치인들이 저지른 비리는 국민의 행복을 파괴한다. 이를 세상에 알리는 것은 언론의 의무이자 국민을 위하는 것이다.
 
한국 언론에 국민이 주는 점수는 몇 점인가. 솔직히 그들 자신이 잘 알 것이다. 굳이 '디지털뉴스 리포트 2018' 데이터를 인용할 필요도 없다. 신뢰도 25%다. 조사 대상 37개국 중 꼴찌라는 잔인한 평가다. 아니라고 할 자신이 있는가. 그런데도 그런 기자들 앞에서 정치인은 고양이 앞에 쥐다. 왜일까. 정치인이 대답해야 할 것이다. 신뢰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천금의 무게를 지닌다. 신문에 전면을 도배한다고 해도 신뢰가 없으면 이건 낙서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실수다. 아무리 훌륭한 기자라도 실수를 할 수 있다. 오보를 낼 수 있다. 문제는 다음이다. 인정하고 사과하면 된다. 인정하지 않고 사과 안 하면 국민들이 모르는가. 오만이다. 누가 감히 우리한테 시비를 걸 것이냐고 자신한다면 바보다. 등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국민의 시선을 견디며 산다는 것은 기자로서 수치를 넘어 파렴치다.
 
한국에서 조·중·동이라고 하면 언론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무슨 기준이냐고 묻지 말라. 신뢰도다. 신뢰도 1위의 한겨레나 시청률 1위의 JTBC가 얼마나 부러우랴. JTBC가 출발할 때 걱정하던 국민들이 지금 가장 많은 시청을 한다. 이유는 국민이 알고 JTBC도 알고 조선도 알 것이다.
 
최근 ‘TV조선의 종편 허가 취소 청원’이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에 23일 현재 20만600여 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TV조선은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TV조선이 관련된 심사에서 5대3으로 주의 결정을 내렸다. 주의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 것이다.
 
TV조선의 기사가 왜 문제인가
 
최근 문제가 된 조선일보 기사를 보자.
 
韓美정상회담 끝난 날 국정원 팀이 평양으로 달려갔다 (5월 28일 조선일보)
 
풍계리 갱도 폭파 안 해…연막탄 피운 흔적 발견 (5월 24일 TV조선)
 
北, 美 언론에 ‘풍계리 폭파’ 취재비 1만달러 요구 (5월 19일 TV조선)
 
‘실제로 풍계리 연막탄’ 보도는 오보로 판명됐고, 1만 달러 보도와 국정원 평양행 보도는 오보 논란이 불거졌다.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 강효상 의원은 “(이 보도가) 지금은 오보지만 나중에는 오보가 아닐 수 있다”며 옹호했고 청와대 논평을 가리켜 “최고 권력기관으로서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미디어오늘) 청와대는 무슨 소리든 입 다물고 있으라는 요구다. 이것이 언론의 자유인가. 언제까지 기다려 달라는가. 그냥 웃고 말자.
 
언론의 제 자리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미국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북미회담을 두고 미국의 일부 언론은 트럼프를 호되게 비판한다. 비판하는 언론은 누구인가. 민주당을 지지하는 CNN, NYT, WP, ABC, NBC 등 진보언론이며 이들은 자신들이 지지하지 않는 트럼프의 한국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비판은 하되 사설과 칼럼과 통해서다. 의도적인 불공정과 비난은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한반도 전문가 ‘도널드 그로스’는 미국의 의회전문지 ‘더힐’에 기고한 글에서 "비판적 반응은 늘 있었던 것"이며 대통령은 이를 이겨 낼 용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북미 외교를 망치려는 ‘부정론자들을 무시하라’고 까지 충고했다. 이는 북미회담을 의도적으로 폄훼한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한국의 일부 언론들에 대한 충고로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북미회담에 대해 한국 국민은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 있고 한국의 대통령은 불퇴전의 용기가 있다.
 
언론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견제 역시 있어야 한다. 미국의 언론이 재판에 패소하고 징벌적 배상판결을 받으면 그 언론사는 문을 닫아야 한다. 언론으로서 가치와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다. 당연한 결과다.
 
한국은 지금 특수한 의미에서 세계정치의 중심에 있다. 부산에서 베를린까지 기차여행을 하는 것이 꿈만이 아니다. 남과 북이 서로 만나 증오에 불길을 끄고 손을 잡는 모습은 세계가 주목하는 평화의 메시지다. 어느 누구도 이를 거부할 수 없다.
 
이제 우리 언론이 해야 할 일이 있다. 평화통일의 앞장을 서야 한다는 것이다. 걸어 온 발자취는 바로 자신의 역사다. 잘못된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언론이 앞장서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불신으로 도태되는 불행한 언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언론의 오만이 문제다. 특히 조선의 오만이 문제다. 조선이 앞장 서자.
 
존경받는 언론. 존경받는 언론인은 모두가 바라는 소망이다. 무서워하는 언론이 아닌 존경받는 언론이 되자.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