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접공에서 진보정치의 대표 아이콘 '노회찬' 떠나다

"오늘 대법원은 저에게 유죄를 선고했지만 국민의 심판대 앞에선 대법원이 뇌물을 주고받은 자들과 함께 피고석에 서게 될 것이다." [2013년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의원직 박탈 직후 낸 성명]

서울의소리 | 입력 : 2018/07/24 [07:36]

"저는 오늘 대법원의 판결로 10개월 만에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고 다시 광야에 서게 됐다.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서도 뜨거운 지지로 당선시켜주신 노원구 상계동 유권자들께 죄송하고 또 죄송할 뿐이다. 그러나 8년 전 그날 그 순간이 다시 온다 하더라도 저는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국민들이 저를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것은 바로 그런 거대 권력의 비리에 맞서 이 땅의 정의를 바로 세우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대법원 판결은 최종심이 아니다. 국민의 심판, 역사의 판결이 아직 남아 있다. 오늘 대법원은 저에게 유죄를 선고했지만 국민의 심판대 앞에선 대법원이 뇌물을 주고받은 자들과 함께 피고석에 서게 될 것이다." - 2013년 2월 14일,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의원직 박탈 직후 낸 성명

 

1980년 노동운동에 뛰어든 이래 37년 간 진보 정치 아이콘으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굿굿이 자리를 지켰던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23일 6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 2005년 4월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한국의 진보’ 1편에 용접공으로 깜짝 출연한 노회찬 의원. 사진=노회찬 의원 홈페이지

 

1956년 부산 태생의 노 원내대표는 고려대 재학 중인 1982년 용접기능사 자격증을 딴 뒤 인천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며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노 원내대표는 이후 1987년 6월 인천·부천을 기반으로 한 노동자 계급 정치조직인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 결성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노 원내대표는 인민노련 결성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수배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1989년 경찰에 검거된 그는 법원으로부터 실형을 받고 1992년까지 2년6개월 간 만기 복역했다.

 

그는 이후 민주노동당이 전신 격인 ‘국민승리21’의 기획위원장을 맡으며 진보 정당 운동에 발을 담갔다. 노 원내대표는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부대표를 역임, 2002년 민노당 사무총장을 거쳐 2004년 ‘민노당 비례대표 8번 후보’로 당선돼 국회에 첫 진입했다.

 

노 원내대표는 2004년 17대 총선 당시 “50년 쓰던 고기판에 삼겹살을 구우면 까매진다. 이젠 판을 갈아야 한다”는 ‘판갈이론’을 내세우며 ‘어록 스타’로 사회 이목을 끌었다.  

 

그는 이후 진보 정치인으로선 드물게 ‘3선 의원’으로 자리매김했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 2012년 19대 국회의원(노원 병), 2016년 20대 국회의원(창원 성산)으로 당선됐다. 노 원내대표는 20대 국회 입성과 동시에 정의당 원내대표로 선출돼 사망 전까지 역임했다.  

 

노 원내대표는 19대 총선에서 노원구병 의원으로 당선됐으나 10개월 만에 의원직을 상실했다. 삼성 X파일 사건 관련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다. 떡값 받은 검사들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지만 오히려 노 의원은 유죄가 선고됐다.

 

노 원내대표는 20대 임기 동안 국회의원 특권 폐지 및 소수자 인권 보호에 목소리를 내왔다. 노 원내대표는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를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 발의자는 총 12명으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은 박주민·서형수·표창원 의원 등 3명 뿐이었다.  

 

노 원내대표는 17대 국회때부터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을 주장해왔다. 그는 17대 임기 동안 대체복무제 도입을 골자로 한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올해 노 원내대표는 성폭력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성폭력 피해자 무고 수사 및 재판진행을 유예하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 및 고령노동자의 산업재해를 막기위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등을 발의했다.

 

 

노회찬, 그가 걸어온 길

1956년 8월 31일, 경남 부산시 초량동에서 출생(2남 1녀 중 장남)
1969년 부산 초량초등학교 졸업
1972년 부산 중학교 졸업
1976년 경기 고등학교 졸업
1976년 육군 입대
1979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입학
1982년 전기용접기능사 2급 자격 취득
1983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1988년 결혼
1989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
1992년 만기 출소
1992년 백기완 대통령선거대책본부 조직위원장
1992년 진보정당추진위원회 사무총장
1992년 매일노동뉴스 발행인
1995년 진보정치연합대표 
1997년 대선기구 국민승리21 정책기획위원장
1999년 민주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 정치개혁추진위원장
2000년 민주노동당 초대 부대표
2002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2004년 17대 총선,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비례대표,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2005년 안기부 X파일 전·현직 검사 실명 공개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경선 출마
2008년 진보신당 공동대표
2008년 18대 총선 낙선(노원 병)
2009년 진보신당 대표 
2010년 진보신당 서울시장 후보 출마
2012년 19대 총선 당선(노원 병)
2013년 안기부 X파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대법 판결, 국회의원직 상실
2013년 진보정의당 공동 대표
2014년 국회의원 보궐선거 낙선(서울 동작을)
2016년 20대 총선 당선(경남 창원 성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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