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에서 '배달 알바' 돼보니 진짜 문제는 최저임금이 아니었다

자영업자들에게 적어도 교육비와 병원비만이라도 공제받을 수 있도록 개선해주길...

서울의소리 | 입력 : 2018/07/31 [09:04]

▲  2017년 6월 17일 오후 ‘최저임금 1만 원 실현 6. 17 걷기대회 만원:런’이 열린 합정역 인근에서 한 맥도날도 배달 노동자가 걷기대회 대열을 향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선대식


나는 한때 회사원이었고, 가맹사업장의 사장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시급제 노동자다. 청년에서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며 다양한 위치에서 내가 겪었던 그리고 겪고 있는 최저임금 경험담을 써보고자 한다.

올여름 폭염처럼 뜨거운 단어가 아마 '최저임금' 아닐까 한다. '최저임금'은 매년 일정한 시기가 되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를 정도로 국민의 관심을 끄는 단어이긴 했다. 하지만 필자의 기억으로는, 올해처럼 뜨거웠던 적은 거의 없었다고 본다. 물론 작년에 파격(?)적인 인상률로 올해 못지않게 말도 많았지만 체감적으로 느끼는 뜨거움은 올해가 분명 최고라고 본다. 일단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자영업자들이 '동맹 휴업'을 거론하며 강력하게 반발하는 모습은 분명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장면이니 말이다.

기억을 20여 년 전 사회 초년병 시절로 돌려 보았다. 중소기업 회사원이었지만 솔직히 '최저임금'이란 단어에 별 관심이 없었다. 정규직이었고 항상 내 월급이 당연히 최저임금 이상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야근수당, 연장수당, 휴일근무수당 등에 대한 인식도 거의 없었다. 나는 물론이고, 당시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직원들치고 그런 수당을 별도로 지급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다 훗날 그것이 '포괄임금제'란 제도로 월급에 이미 이러한 수당이 포함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거의 매일 연장근무를 했고 야근, 휴일근무, 심지어 이박삼일 '철야'까지 심심찮게 이뤄졌다. 그렇다면, 과연 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고 있던 것일까? 

[피시방 사장님] '좋은 사장'도 한순간, 재개발에 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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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회사생활을 접고 인생 2막을 시작했다. 독립자영업자로 피시방 운영을 하게 된 것이다. 회사원일 때 체감하지 못했던 '최저임금'은 일상 속 현실이 되었다. 

참고로 피시방은 편의점과 더불어 지급하는 평균 시급이 가장 하위권에 속하는 업종이다. 즉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업종이었다. 사업 초기에는 직장 생활을 할 때 "내가 사장이었다면"이란 명제로 꿈꿔온 나름의 '소신'을 펼쳤다. 근태가 좋은 알바들의 급여는 얼마라도 올려 줬고, 3개월 이상 성실히 근무하고 나가는 알바들에게는 몇만 원이라도 쥐어 주었다. 덕분에 알바들로부터 '좋은 사장'이란 평가를 받았다. "이 맛에 '사장'을 하는구나!" 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맛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2006년에 3100원이었던 최저임금이 2010년엔 4110원이 되었다. 인근에 새로 오픈한 대형 피시방들의 낮은 이용 요금과 무료 음료 서비스 경쟁에 치였다. 거기다 주변 상권의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괜찮았던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재개발이 진행되면 임대료를 낮춰 주겠다던 건물주는 막상 그날이 닥치자 '불만스러우면 가게 빼고 원상복구 하라'며 단 1원도 깎아 주지 않았다. 덕분에 '좋은 사장'이란 이미지를 받쳐주던 우리 가게의 시급과 최저임금의 간극은 시간이 갈수록 좁혀졌다.

그러던 어느 날, 선임 알바 한 명이 개인 사정이 있어 시급 5000원(당시 그 알바에겐 4500원을 주었던 것 같다)을 받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매출이 최악인 상황에서 그의 시급을 올려주면 다른 알바도 올려줘야 했기에 나는 고민 끝에 피시방 사장들만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성실함은 보증하니 점장 급으로 시급 5000원에 스카우트 해가시오'라는 글을 올려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겐 아직 '소신'이란 것이 남아 있었다.

[피자집 가맹점주] 임대료, 본사 폭리, 카드 수수료... 가게를 팔다 

2011년 피시방을 팔고 한 신도시에서 프랜차이즈 피자집을 시작했다. 당시 최저임금은 4320원. 그러나 요식 업종의 특성과 신도시라는 점이 더해져 주방은 5000원, 배달은 6000원으로 시급이 형성됐다. 그렇게 오픈 후 몇 달, 몇 년이 흐른 후 내게 그래도 남아 있던 작은 '소신'은 '척박한 현실' 속에서 깨끗이 지워지다 못해 찢어졌다. '좋은 사장'은 온데간데없었고, 매우 좀스럽고 신경질적인 '시시한 사장'이 되어 있었다. 

그나마 언젠가부터는 주변 시세로 시급을 맞춰줄 수 없어 알바 구인을 포기했고 결국 '의리'로 끝까지 남아있던 단 한 명의 배달기사마저 나에게 이해를 구하고 옆 치킨 가게로 옮겨 갔다. 그때 난 속 넓은 사람처럼 웃으며 보냈지만 마음은 울고 있었다. 그렇게 주말만 도와주는 대학생 알바를 제외하고는 거의 가게를 혼자 운영하게 됐고 수지타산을 계산해보니 법정 최저임금도 벌지 못하는 가맹점주로 전락해 있었다.

피자집을 운영하면서 과거 '시급에 그렇게 박하지 않은' 사장에서 최저임금에 절절매야 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무엇이 문제인지 분석했다. 당시 신도시라는 특성으로 다른 지역 상권에 비해 엄청나게 비쌌던 임대료 - 2011년 당시 인근 구도시 비슷한 상권의 10평 임대료가 6, 70만 원, 필자가 영업했던 신도시의 월세가 170,180만 원으로 100만 원 이상 비쌌음 -, 거기에 프랜차이즈 본사의 물류 폭리와 본사에 광고비 같은 각종 명목으로 지불하는 비용, 피시방 때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카드 수수료 등이 문제였다. 이런 것들이 내가 피시방 운영 막바지에 겪었던 '과열 경쟁과 재개발'이란 수익 악화의 요소보다 더 큰 영향을 줬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가져간다'라는 속담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이제는 더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본사와 지지고 볶고 싸웠지만, 결론적으로 가게를 헐값에 팔고 나와야 했다. 계란으로 바위를 쳐 봤더니 바위만 조금 지저분해 보일 뿐이었다.

[배달노동자] 서는 곳이 달라지니, 풍경도 달라졌다 

2016년 가게를 정리하고 빚잔치를 했다. 당장 난 자영업 지옥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가장으로서 가족에 대한 생계유지와 교육 의무는 여전히 유효했다. 여기에 얼마 전부터는 고령으로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는 부모님의 간병이란 부담까지 내 어깨 위에 올라와 있었다. 

오래전부터 아내도 교육계 비정규직으로 경제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오랜 경력과 십여 개에 달하는 자격증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2년 근속을 못 채워 여전히 '비정규직' 이란 타이틀로 최저임금을 받고 있었다. 아내는 그 불편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주경야독하여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고 어린이집 '교사'가 되었지만 사실 빛 좋은 개살구였을 뿐, 여전히 '최저임금'에 절대적으로 지배되는 교육계 '노동자'였다. 결국 난 현실적으로 가장 접근이 쉽고 그나마 시급이 좋은 배달 기사로 급히 취업했다. 시급을 주던 사장에서 시급제 노동자가 된 순간이었다.

당시 내게 약속된 시급은 8000원, 당시 법정 최저임금이 6030원이었으니 꽤 후한 시급이었다. 그리고 포괄임금이 아닌 각종 수당이 별도인 시급이라 근무 상황에 따라 실제 시급은 8000원이 넘어섰다. 서는 곳이 다르면 풍경도 달라진다고 했던가? 난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계속 시급제 노동자가 낫겠는데, 내년에 시급이 오르면 여기도 그만큼 더 오를 터이고 그럼 꿈의 시급이라는 만 원?"

난 그곳에서 확실히 시대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처우가 나쁘지 않았던 만큼 그 피자 상점의 알바들의 연령은 다른 가게와는 달리 20대보다 30, 40대였고 소위 말하는 투잡족들이 비중이 컸다. 예전에 패스트푸드점에서 낯선 중년의 가정주부를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배달 기사들 중에는 비정규직 기술자, 정규직 교사, 공장 노동자, 식자재 배송기사 등 다양한 본업과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가끔 나에게 하소연을 하는 이들도 있다. 미혼의 30대 A씨,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형님 전 제가 일하는 시간과 강도를 보면 적어도 월에 '천만 원'은 벌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투잡을 해도 한 달에 삼백만 원도 못 버는 게 정상인가요?"

A씨는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 졸업 후 지금까지 온갖 노동을 다 경험해봤다고 했다. 

이 밖에도 같은 30대지만 가족을 위해 쓰리잡으로 하루 꼬박 16시간을 일하는 B씨, 남편과 맞벌이로 아파트 대출금, 두 자녀에 대한 교육비, 거기다 고령으로 경제력을 상실한 양가 부모님들 용돈, 자신들의 노후 대책을 위해 최소 하루 8시간 이상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수년 동안 주방의 중노동을 감내하는 40대 주방이모...

나의 경우는 거론할 필요도 없다. 이 몇 명의 사연만으로도 사회적 약자, 특히 저소득 근로자들을 위한 '최저임금'이 중요성은 충분히 설명된다고 본다. 그런데 '최저임금'이란 보호 장치도 없는 영세 자영업자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필자가 10여 년 동안 경험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에게 세금 탈루, 알바 착취라는 '주홍글씨'가 여전히 존재함을 느꼈다. 그 단적인 예로 신용카드와 관련된 법제도만 보더라도 미국의 일부 주 등에서는 소비자가 폭넓게 수수료를 부담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일방적으로 자영업자가 부담하고 있고, 주요 선진국에서는 '반독점 위반'으로 폐지된 신용카드 의무수납 제도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것뿐인가. 필자가 회사원일 때 받았던 온갖 소득공제 혜택이 자영업자들은 고작 부양가족 공제 정도 말고는 거의 전무하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특히 소득 신고 때마다 대단히 불합리하다고 느낀 부분은, 근로자일 때 당연히 받았던 '병원비, 교육비' 대한 공제 혜택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병원비, 교육비 등 특별세액 공제는 성실사업자에 한해서만 받을 수 있다. 자영업자 또한 임금제 노동자와 같이 이 나라의 국민임에도 국민의 기본권이라는 '사회권(생존권)'에서 조차 소외되고 차별받는 느낌이었다.

얼마 전 신용카드와 관련하여 '카드 의무수납제 폐지'와 관련된 뉴스에 객원 토론자로 초대된 어느 교수가 '아직도 자영업자들은 세금 탈루에 대한 의지가 있어 이 부분은 시기상조'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난 교수라는 지성인의 편협한 시각에 기가 찰뿐이었다. 그럼 내가 숱하게 보아왔던 기업 소유주들과 그 일가들의 탈세 뉴스는 가짜 뉴스였던가? 그리고 근로자들의 투명한 '유리지갑'이 자영업자들보다 월등한 도덕성의 결과인가?

 

▲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실에서 열린 최저임금 인상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최저임금이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 

근로자였던 필자와 자영업자였던 필자는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닌 동일인이다. 보편적인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문제로 접근하여 제도를 보완하고 대체 수단을 마련하여야 함에도 그저 '자영업자'라는 편견만 가지고 도대체 무엇을 해결을 하겠다고 하는지 이해가지 않을 뿐이다.

십수 년 전부터 자영업 시장은 포화상태라는 기사가 보도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책임이 사회 구조나 정부 정책의 문제보다는 불나방처럼 자영업에 뛰어든 개인들에게 있다는 논조가 대부분이었다.

하바드의 명교수이자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는 마이클 센델은 '징병제'에 비해 합리적으로 보이는 '모병제'를 논하며 가난한 청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그들이 '군입대'를 선택했다면 그것이 과연 진정한 '자유의지'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여기서 난 현재 포화 상태에 다다른 자영업 시장의 문제의 본질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자영업에 뛰어든 사람들의 선택은 진짜 '자유의지'이었을까? 과연 이 사회가 그들에게 고를 만한 선택지는 주기나 했던 것일까?

벌써 3년 전부터 자영업 폐업률이 역대 최고라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역대'는 매년 다시 갱신되고 있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매년 최저임금은 인상되었다. 그렇다고 자영업자들 위한 실효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니, 거의 전무했다.

최근 진보 언론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자영업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최저임금'보다는 과열화된 자영업 시장, 가맹본사의 갑질, 불공정한 카드수수료, 천정부지의 임대료'라는 것에 필자도 기꺼이 동의한다. 어느 국회의원의 말처럼 자영업자가 본사의 갑질에 저항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국가 대한민국이다. 다른 나라에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임대차 분쟁'이 격한 곳이 이 땅이다.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단체협상권도 줄 수 없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건물주의 재산권을 통제할 수 없으며, 개인들의 사적 계약에 국가가 개입하기 어려운 곳이 바로 우리나라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자영업자들이 도대체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 그리고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인가?

그동안 이런 저런 일들로 수많은 자영업자들을 만나 보았다. 그들 중 상당수는 매출 부진과 최저임금 부담으로 예전의 나같이 일인 자영업자가 되었고 상당수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과도한 노동으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으로 병들고 시들어가고 있었다. 필자 또한 5년 동안의 과도한 주방 노동과 스트레스로 망막염증, 팔 관절 염증, 무릎연골 파열, 발바닥 근막염 등을 얻었다. 자영업을 그만둔 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만성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같은 상황에서 근로자들은 '산재' 신청 가능하고, 휴직이나 퇴직 때 산재보험 또는 고용보험을 통해 일정 수준의 급여를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영세 자영업자들은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은커녕 개인 보험조차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결국 아파서 쉬는 순간 생계유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는 것이다. 필자 또한 각종 근골격에 질환으로 거의 두어 달간 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다행히도 실손 보험 등 개인 보험이 있었고 그조차 없었다면 생계에 엄청난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제는 정치인들과 사회 지도층들이 진심으로 나서야 할 때다 당리당략에 따른 입바른 소리는 하지 말고 아직도 법사위에서 계류 중인 '가맹사업법' '임대차 보호법'이나 빨리 통과시켜주길 바란다. '세금 탈루'가 염려되어 도저히 신용카드를 버릴 수 없다면 관련 제도라도 개선하여 만 원 이하는 수수료 없애고 영세 사업자들에게는 EU 수준의 0.3% 이하의 수수료로 낮춰주길 바란다. 

건강한 국민이 국가 경쟁력이라면 적어도 직업병으로 생계까지 막혀 극빈층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자영업자에 대한 '상병수당' 도입 등 최소한의 사회적 보호 울타리에 편입시켜 주길 바란다. 근로자들에게 편중되었던 '소득공제'도 형평성 있게, 모든 자영업자들에게 적어도 교육비와 병원비만이라도 공제받을 수 있도록 개선해주길 바란다. 

이조차 선결되지 않은 상태로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부담일 수밖에 없는 '최저임금'만 올린다면 벼랑 끝에 서 있는 영세자영업자들을 밀어 버리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본다. 자영업자도 국민이다. 이들이 과거에 불투명한 거래 등으로 문제가 있었더라도 지금은 충분히 대가를 치렀다고 본다. 이제는 그럴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최저임금 만 원'. 분명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당장 내가 시급제 노동자인 것을 떠나서 내 자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용돈을 벌고 있고, 내 아내는 최저임금에 직접 영향을 받는 어린이집 교사이며, 동료 자영업자의 부모님은 실버 노동자로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만약 내가 아직도 자영업자였다면 지금 상황에 좌절했을 것이란 게 분명한 사실이다. 언뜻 로렌스 콜버그의 '도덕적 딜레마'를 연상시키는 이 상황은 우리 사회가 발전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필연적이며 과도기적 현상일까?

지금 이 상황을 풀어줘야 할 기득권, 자본가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을과 병'의 싸움을 넘어 '가족상잔'이 될 수도 있는 이 상황이 빨리 해결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지금은 서로 간 배려와 연민이 필요한 시점이라 본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제도가 가장 사회 정의에 가깝다'라는 존 롤스의 명문을 우리 모두 되새겨 봤으면 한다. <오마이 뉴스>

 

덧붙이는 글 | 위 글의 내용 중 일부는 본인이 운영하는 팟캐스는 '인생가비멀희'에 나온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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