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의 귀환과 애늙은이들의 행진

실력 기르기를 소홀히 한 채 순탄한 정치의 길을 택하여 권력에 편승한 ‘386세대’ 책임이 크다

권혁시 칼럼 | 입력 : 2018/08/13 [08:57]

지도자의 필수조건은 나이가 아니라,

‘자질’(능력·인격·비전)과 ‘리더십’(인식·경청·선견지명)이다

 

여야 정당들의 대표로 선출되었거나 선거에 나선 유력한 후보들에 대하여 대다수 언론과 경쟁 후보 측은 이구동성으로 ‘올드보이의 귀환’을 세평으로 둘러대며, 그것을 문제점으로 부각시키는 데 열을 올린다. 이 말에서 비아냥대는 게 틀림없는 올드보이(old boy)라는 단어는 대단히 잘못 쓰인 것이다. 


물론 구태의연한, 낡고 한물 가서 쓸모가 없다는 의미로 썼을 테지만, 그 원의가 순우리말인 ‘애늙은이’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함부로 그런 소리를 한 바로 자신을 지칭하는 역설일 수 있음을 스스로 각성해야 할 것이다(그가 젊을수록 더욱 더 그렇다). 여론을 형성하고 주도하는 언론, 정치 등의 이른바 식자들의 부정확한 언어사용은, 그 인식의 불완전성을 드러내기에 한층 더 심각하며 문제가 큰 것이다. 

 

이해찬·김진표(민주당), 김병준(자유한국당), 손학규(바른미래당), 정동영(민주평화당), 이들이 단지 6·70대의 비교적 많은 나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는 것은 과도하게 편향적인 시각이며 단편적인 인식이다. 인간의 능력은 결코 나이와 비례하지도 반비례하지도 않는다. 나이와 관계 없이 정신적·육체적인 사고력과 활동력이 능력 발휘로 나타나는 것이다. 

 


“다만 세대교체라는 것은 나이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정책 내용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지, 나이로만 (세대교체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이해찬, ‘국회 기자간담회’) 더욱이 ‘100세 시대’가 현실이 된 현세에서 6·70대를 지목하여 올드보이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단견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단순하고 치졸하며 고루하기까지 한 애늙은이나 다름없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여하간 ‘나이타령’은 한국인의 의식과 한국사회의 저변에 뿌리박힌 고질병이다(의료보험통합 반대운동을 주도했으나 실패한 나는 사표를 쓰고 재취업을 위해 여기저기 이력서를 냈는데, 40대 중반인데도 하나같이 나이가 많다는 탓을 했다). 


그래서 오랜 정치 경험, 그렇게 쌓인 경륜과 지혜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구태로 싸잡아 매도하는 행태가 오히려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사고방식의 심각한 정신적 병증인 것이다. 그럴진대 우리 사회에 고착화한 나이에 대한 지나친 편견, 강박감, 고정관념을 타파, 일신해야 마땅하며 올드보이, 정확히 말해서 올드맨(old man, 장년·노인)을 폄하하고 경원시하는 애늙은이가 돼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여하간 중진 정치인들의 정당대표를 향한 권토중래가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세대교체를 위해서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있다 하더라도 이를 탓하기 보다는 기성세대를 능가하는 실력과 지혜 기르기를 소홀히 한 채 순탄한 정치의 길을 택하여 권력에 편승, 무임승차했을 ‘86세대’의 책임이 누구보다 크다는 사실을 간과치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용도불명한 특별활동비를 반납, 폐지하는 것이 상식인데도 이를 유지하기 위해 급급하는 데서 여실히 드러나듯 여전히 사리사욕에 눈멀고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가. 더욱 실망스럽기는, 선거에서는 말할 나위 없을 뿐더러 확고한 이념정당, 실질적 정책정당을 정립치 못하여 수많은 정당들이 생멸을 반복하여 왔거니와, 이는 사상과 이념, 그 이론과 정책을 확립하고 창출해내는 브레인,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올드보이의 귀한을 우려하기에 앞서 ‘애늙은이들의 행진’을 멈추어야 한다. 그리하여 발상의 대전환, 신사고(new thought)를 통하여 나이의 덫이 사람의 경륜과 능력의 발휘를 저해하고, 나이타령이 창조와 진보적 발전에 역행하는 부조리와 폐단을 일소해야만 한다. 


여기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은, 예컨대 민주주의를 꽃피운 고대 그리스는 시민들의 의사결정에 의한 정책집행을 ‘평의회’가 관장했는데, 행정수반인 평의회의장은 원로 의원(중추그룹 ‘프리타니’ 소속)들이 맡았는바, 그러한 전통의 소중한 가치로써 원로의 경륜과 지혜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경제개발 일변도의 정책으로 인하여 전통의 예도(禮度)가 말살되다시피하여 이를 경시하고 외면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질량불변의 법칙’은 사회현상에도 그대로 적용되며, 따라서 물질이 극도로 팽창하면 정신은 반비례하여 위축된다). 뿐 아니라, 그런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추앙받을 만한 인품과 역량를 가진 원로그룹의 부재현상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아주 오래된 우리 민족의 보편적 인식 중에 특별한 것이 ‘오기삼당’(五機三當)이다. 한평생을 사는 가운데 다섯 차례의 기회가 오며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세 번의 행운을 잡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오기삼당설에 의하면, (4·8)32세, (5·8)40세, (6·8)48세, (7·8)56세, (8·8)64세 전후에 행운의 기회가 온다는 것이며, 수명이 무려 30세 이상 늘어난 지금은 (9·8)72세까지 늘려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BC 13세기, 마흔 살까지 이집트의 왕자로 호강하던 모세(Moses)는 미디안 광야에서 사십 년이 넘는 인고의 세월을 보낸 후,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해 낸다. 위수 강가에서 곧은 낚시로 세월을 낚으며 지혜와 사상의 깊이를 더해 갔던 강태공(姜太公, 여상 呂尙)은 주 문왕(文王)의 친견으로 여든 한 살에 그의 스승이 되었고, 무왕(武王)을 도와 상나라를 멸망시켜 천하평정을 이루었으며, 그 공으로 제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권혁시 이사장

세종성세를 이룩하는 데 크게 기여하여 조선 최고의 재상으로 칭송받는 황희(黃喜) 정승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며 충성을 다해 봉직했다. 그러던 말년, 좌의정 재직시에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사직했으나 이듬해 1431년, 예순 여덟에 영의정에 복직한 후 18년 간 국정을 이끌며 소임을 충실히 수행하여 노익장을 과시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는 27년 동안 옥살이를 하면서 옥수수 죽, 고기 한 조각으로 겨우 허기를 면하며 살다가 일흔 한 살에 석방된 후 대통령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역시 민주화에 앞장서서 파란만장했던 정치적 역경을 이겨내고 2전3기 끝에 일흔 세살의 나이로 정부수립 50년만에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를 이룩해 내며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지 않았던가.


특히, 위대한 성인 공자(孔子)는 춘추전국 시대, 극도의 혼란지경에 빠진 세상을 이상적 사회로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래서 이를 실현하고자 무려 13년 동안 절치부심하며 동분서주, ‘철환천하’(轍環天下)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노나라로 귀환했는데, 이때(BC 484년)의 나이가 예순 여덟이었다. 그후 공자는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기를,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吾十有五而志于學 오십유오이지우학, 三十而立 삼십이립, 四十而不惑 사십이불혹, 五十而知天命 오십이지천명, 六十而耳順 육십이이순,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 공자, ‘논어’) 


그러므로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위정자, 특히 지도자의 조건은 (체력이 뒷받침되는 한) 오로지 특출난 ‘자질’(능력·인격·비전)과 탁월한 ‘리더십’, 곧 인식(판단력·문제의식·성찰), 경청(소통·겸손·포용), 선견지명(통찰력·방책·비전제시)이 필수이며, 이를 위해서는 ‘치열성·엄정성’을 바탕으로 열심히 배우고 깊이 생각하며, 이를 반드시 실천해야만 한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망령되며,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ㅡ 실천이 없는 이론은 어둡고, 이론이 뒷받침 되지 못한 실천은 위태롭다” (學而不思則罔 학이불사즉망 思而不學則殆 사이불학즉태. 공자,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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