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소득주도성장에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소득주도성장이 시장경제를 무너뜨린다는 주장 거짓이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입력 : 2018/08/31 [04:55]

최근 우리 경제에 대한 어두운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보수언론, 정치인, 일부 학자까지 가세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뒤흔들고 있다. 이 정부는 조선업과 자동차산업의 도산·폐업·감산이라는 충격에서 출발했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교수

이명박·박근혜 집권 동안 우리 경제는 산업 구조조정과 혁신기반 확충의 기회를 날려버렸다. 가계부채는 늘고 내수경기는 추락했다. 누가 새 정부를 맡든 경제 살리기가 가장 어려운 문제일 것이라고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예상했다. 이를 두고 정부의 정책기조 자체를 바꾸라고 하는 것은 이 정부를 탄생시킨 국민의 선택을 부정하는 행위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기조는 경제성장이 국민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 비정상적인 경제구조를 바꿔보자는 명료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우리 경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선진국 수준에 근접, 일본의 90%에 가까워졌지만 가구의 가처분소득은 일본의 70%를 조금 넘는다. OECD 회원국 중 국민들이 가장 오랜 시간 일을 하는데도 말이다.

 

경제성장에 비례해 국민 삶의 질도 개선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이 무시되어온 탓이고 그 결과는 몇몇 재벌가문이 지배하는 세습족벌 자본주의, 극심한 불평등과 양극화, 최저 출산과 고령 빈곤이라는 오명이다. 이제는 이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선 공정한 시장질서가 확립되어야 한다. 대기업과 협력기업들 간의 공정한 거래관계가 확립되어 고용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중소기업들의 숨통이 트여야 임금도 높아질 수 있다. 그래서 공정경제는 소득주도성장의 한 축이 된다. 더불어 기초생계 보장, 안전한 근로환경과 적정한 근로시간 등 노동자들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노동시장의 규율이 확립되어야 한다.

 

규율이 느슨하면 기업은 인권과 생명까지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그 결과가 ‘헬조선’이다. 느슨한 규율을 꼭 죄려면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근로감독과 사회안전망 강화가 필요하다. 이것이 소득주도성장의 다른 한 축이다. 이를 통해 반인권적 비용 감축 경쟁의 패러다임을 기술혁신 경쟁으로 전환할 수 있다.

 

혹자는 소득주도성장이 경제이론에 반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적어도 지난 20여년간 많은 경제학자들이 소득분배의 개선과 사회복지 강화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말해왔다. 이른바 포용적 성장은 국제통화기금(IMF), OECD 등 대표적인 경제협력기구들이 발간하는 보고서에서 지속적으로 강조돼왔다.

 

소득주도성장은 포용적 성장을 내포한다. 소득성장과 혁신성장이 보완적으로 작용, 산업 구조조정과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질 때 지속적 경제발전이 가능하다는 정부의 주장은 그리 새로울 것도 없다. 모범적인 선진국 발전의 역사가 그러했다.

 

소득주도성장이 시장경제를 무너뜨린다는 주장도 거짓이다. 기초 경제학 교육에서 강조하는 시장경제는 공정한 시장경제다. 이는 소수 독과점 기업의 시장 지배력 행사를 최소화해 누구나 좋은 아이디어와 혁신적인 기술을 통해 자유롭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질서를 표방한다. 공정경제는 공정한 시장질서를 바로 세우자는 것이고, 세습족벌이 온갖 횡포를 일삼는 나쁜 자본주의가 아닌 경제학에서 교육하는 진정한 ‘자유시장경제’가 작동되게 하자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은 한국 경제의 체질 변화를 필요로 하는 장기적인 정책기조이다. 우선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과 제도, 그리고 노동시장 규율이 강화되어야 한다. 아울러 상당 기간 동안 상생 발전의 사례들과 관행들이 축적되고 확산되어야 한다. 최근 통계청 경제지표들에 근거해 소득주도성장을 포기하라는 식의 주장이 나온다. 이는 자료에 대한 이해를 생략한 무의미한 비판이다.

 

설사 자료에 객관성이 있었더라도 단기적 부작용으로 장기 정책의 성과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국가경제의 전환기를 짧게 하려면 정부는 현재의 재정여력을 십분 활용하여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쳐야 한다. 물론 이런 단기적 처방이 작동하지 않아 내리막을 마주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상을 향한 노정을 중단해서 되겠는가.

경향신문 주병기 서울대 경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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