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과 상식이 실종된 자리.-

무엇으로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는가.

서울의소리 | 입력 : 2011/04/25 [16:53]
전철 속, 어느 판사의 얘기를 듣는 순간, 하늘이 노래지는 충격과  절망을 느꼈다. BBK사건 같은 것은 의례 그러려니 했으니 충격을 받으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양심과 상식의 죽은 유해와 잔해가 세상 도처에 널려 있다고 느낀다. 누가 이런 메일을 보냈다. 도대체 당신은 얼마나 상식적이고 양심적이기에 그렇게 상식과 양심에만 매달리느냐.   

할 말이 없다. 도둑질 조금 한 놈이 많이 한 놈에게 하는 시건방진 충고 정도로 이해를 해 달라. 

아무리 생각을 해도 저럴 사람이 아닌데 하던 사람이 깜짝 놀라게 변신할  때가 있다 그 사람이 살아 온 과거가 소상하게 들어나 있다보니 그가 조금만 변신을 해도 눈에 띈다.

더구나 어떤 점에서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인터넷 덕분에 미주알고주알 다 캐낼 수가 있어 숨길 수가 없다. 더구나 트윗이 뜨면 삽시간에 세계가 다 안다. 그러니 변신을 한다면 이미 각오가 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심지어 조상대대 족보까지 들춰내고 숨어서 방귀 뀐 것 까지 알아낸다. 죽으나 사나 자신이 책임을 질 일이다.

대학총장을 하던 사람이 총리가 된 이후 겪은 낭패는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 져야 하는가에 대한 좋은 교훈이 됐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양심과 상식을 저버렸다고 평가했다. 왜 억울한 점이 없을까만 그건 그의 생각일 뿐이다. 그래서 관 뚜껑을 덮을 때 까지는 처신을 잘 해야 한다고 선현들이 말씀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가까이서 뵈었고 그래서 정치인들의 행적에 대해서 얻어 들은 풍월이 제법 된다. 서당 집 개 풍월 읊는다고 나름대로 평가를 한다고 자부한다. 여기서 바로 상식과  양심의 실종을 발견하게 된다.

양심과 상식의 모습이 가장 일그러져 있는 곳이 정치라고 알고 있다.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정치인 자신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정치적 소신과 철학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속해 있는 정당과 정파의 이해도 무시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넘을 수 없고 넘어서는 안 될 전제가 있다.

양심과 상식이다. 난 상식을 이렇게 정리한다. ‘상식이란 보통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가치판단의 기준’이라고 말이다. 양심은 어떤가. 상식보다 상위 개념이다. 인간과 짐승을 가르는 경계선이다.

정치는 4계절 전천후다. 평생이다. 더구나 선거 때가 되면 동물과 가장 가까운 거리로 근접한다. 요즘 동물과 가까워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도리 없이 그의 가거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음을 슬퍼한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누구인가를. 그들의 모습을 떠 올릴 것이다.

총리 청문회에서 자진 사퇴한 인물에 대해서는 더 언급할 생각이 전혀 없다. 다만 그가 출마한 지역의 국민들이 현명하게 처리할 줄 믿는다.

배가 고파 도둑질한 소년에게 아무리 배가 고파도 참아야지 도둑질을 하느냐고 호통을 치는 법관에게 우리는 법 이전에 한 방울 눈물을 기대한다. 법은 다음이다. 이것이 상식이다. 

우리의 정치 환경을 깨끗하다고 하는 국민들은 거의 없다. 정치인 스스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대도 정치하겠다고 머리 터지게 싸운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정치를 제대로 할 자신감이다. 그래서 어중이떠중이 다 덤빈다. 정치가 나라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더욱 사람다운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나름대로 사회에서는 괜찮다고 평가받던 사람이 정치판에 발을 디뎠다. 헌데정치에 발을 디딘 후 양심과 상식은 아예 그의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했다.

원래 기회주의자란 평가는 있었다. 항상 자신에게 이로운 길만 걸었다. 이제 양심과 상식과는 인연을 끊은 것 같다. 설마 했는데 만나보니 역시 그랬다.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가 있구나 하고 감탄을 했다. 알고 있는 그의 과거와 오늘의 모습. 무엇이 진짜인가. ‘지킬 박사와 하이드’도 저렇지는 않겠지.

어느 시인의 말이 기억난다. 눈에 보이는 지식인들의 사라진 양심과 실종된 상식의 잔해가 더 없이 슬프다고 했다. 그것이 누구의 것이었을까. 내 것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흔히들 양심의 부활을 갈망한다. 반드시 부활의 시간이 오리라고 믿는다. 세계 최대 교회의 대표 성직자가 무릎을 꿇고 잘못했습니다. 용서를 빌었다. 믿는가. 어느 국민도 믿지 않는다. 썩은 자신의 영혼도 구제하지 못하면서 남의 영혼을 구한다는 것은 사기다. 

1천억의 천문학적 재산을 날렸다는 어느 재벌의 비보를 듣고 안타까워하는 인정을 보는가. 최대 재벌 총수의 기웃 둥 거리는 걸음걸이는 조소의 대상일 뿐이다. 닮을까 겁이 난다. 가죽점퍼에 썬 그라스로 모양을 내도 뒤통수에 꽃이는 것은 국민의 조소어린 눈 흘김이다.

집권 여당의 대표들이 토해내는 말의 악취는 구제불능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말을 못하는가. 살 수가 없는가. 국민이 하늘이라고 하면서 진정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가증스럽다. 그들이 하늘이라고 하는 국민이 응징해야 할 것이다.

진정 부활은 없는가. 쓰러진 양심과 상식의 잔해가 크게 환호하며 여기저기서 벌떡벌떡 일어나는 부활과 기적의 광경을 볼 수 없을까. 숲도 나무도 풀도 산과 들과 파헤쳐진 강물이 모두 입을 벌려 환희의 송가를 부르는 때는 언제 오는가.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는 날이 언제인가.

정치꾼들이 실종된 양심을 되찾고 참회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이 미소 짓는 모습을 보고 싶다.

‘소돔과 고모라’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전철 안에도 있고 교회에도 있고 언론총수들의 불륜이 춤추는 부정한 침실에도 있고 재벌 총수와 정당지도자들이 쏟아내는 말의 오물이 바로 ‘소돔과 고모라’다. 그리고 오물을 치우는 힘은 국민만이 가지고 있다.

아침에 배가 고프듯 국민은 늘 양심의 배가 고프다. 양심이란 인간만이 가진 양식이다. 인간만이 먹을 수 있는 양식이다. 용기 있는 자만이 먹을 수 있는 양식이다.

4월 27일. 투표 날이다. 세상을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 같은 국민의 양심이 오물을 청소해 내는 날이다. 진정 ‘사람 사는 세상’이 찾아옴을 국민이 느낄 수 있는 날이다. 국민으로서 가장 보람 찬 날이다. 불의한 세력들은 깨어있는 국민들이 투표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투표가 두렵다.  

다시는 불의한 세력들이 이 땅을 더럽히는 꼴은 보지 말자. 정치가 국민을 두려워하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 양심과 상식이 대접받는 세상을 한 번 만들어 보자. 우선 투표장에 나가자. 투표하지 않으면 정치를 욕할 권리도 없다.  

                                          이  기  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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