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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심재철은 누구인가?

이수경 | 기사입력 2018/10/01 [03:14]

[기자의 눈] 심재철은 누구인가?

이수경 | 입력 : 2018/10/01 [03:14]
▲     © 이수경


심재철은 누구인가?

경향신문에 오른 한 논평 덕분에 요즘 내 입에는 이 명쾌한 질문의 문장이 붙어버렸다. “신성한 주문이 되어 해묵은 잡귀와 같은 오지랖들을 내쫓고 당신에게 자유를 선사할 것”이라는 이 물음의 문장.

‘심재철은 누구인가?’

중학교 2학년 때, 심재철은 내게 막 전학 간 새로운 학교의 영어 선생님이었다. 지역과는 다른, 서울 아이들의 기운에 얼어붙어 있었고, 선생님이 없을 때의 교실 분위기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극적이었다. 그렇게 앉아있던 방금 전학 온 학생에게 영어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영어 문법 질문 하나를 지목해서 대답하게 하였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자, ‘제법인데’ 등과 비슷한 단어로 칭찬을 하고 지나갔고 영어 문법이 약한 중학교 2학년 교실을 고요하게 만들기도 하고 왁자지껄하게 만들면서 수업을 이끌던 선생님이었다. 교실에는 영어 선생님을 사모하는 여학생들이 있었고 그 학생들은 어떻게든 선생님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는 일들이 빈번했다. 


가을 소풍에서 영어 선생님이 입은 빨간 점퍼와 배낭에 달고 온 풍선을 나는 기억한다. 하지만 풍선 색깔은 기억나지 않는다. 여자 중학생들의 감탄과 환호성을 자아냈지만, 그는 미소조차 짓지 않고 냉정한 표정으로 멀리 바라보며 있었다.

- 서울 대학교 출신인데 데모를 하다가 잡혀서 감옥도 갔었데?
- 감옥에 갔는데 다시 중학교 선생님이 될 수 있어? 사립학교도 아니고?

그와 비슷한 속닥거림이 있었던 걸 기억한다. 당시 한문 선생님은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영어 선생님이 외모 때문에 회장이 되었음을 격하게 말하던 일도 있었다. 한문 선생님은 아이들을 웃기려고 한 말이었으나 영어 선생님을 사모하던 아이들은 한문 선생님을 지속해서 미워하기도 한다.

그해 12월, 선생님은 MBC 기자시험에 합격하여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학생들은 울음을 터뜨렸고 선생님이 학교를 떠나던 날, 교문까지 가서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를 외치던 여학생들이 있었다.

심재철은 누구인가?

다시 그를 만난 건 국회청문회 TV 방송에서였다. 눈물을 참으며 육체적인 고통 때문에 거짓 증언을 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말하고 그 모습을 지켜본, 영어 선생님으로 그를 기억하던 많은 학생은 선생님의 앞날을 위해 많은 기도하는 심정이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누명으로 김대중은 사형선고를, 그리고 함께 끌려 들어간 학생들은 상당수, 그의 증언에 힘입어 치안본부 특수대로 끌려가 고문을 당한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이 육체적 고문을 당한 탓에 거짓 증언을 했다는 말이 TV로 중계됐고 나는 그의 냉정한 표정의 빨간 점퍼와 풍선을 떠올렸다.

심재철은 누구인가?

백지연의 수필집, “MBC 뉴스, 백지연입니다” 가 출판될 당시, 사고를 당한 심재철 기자에 관한 이야기가 떠돌고 있었다. MBC로 가자마자 노조와 회사의 대립 속에서 심재철 기자는 노조 쪽으로 구분되어 기자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MBC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갇혔다 풀려나 다시 복직되어 첫 취재를 가던 날, 그는 교통사고를 겪으며 크게 다쳤다. 피가 멈추지 않는 상황에서 수혈을 위해 MBC 기자 후배들은 그가 있던 세브란스 병원 옆 연세대 도서관과 총학생회실로 달려가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기말고사 기간 중인데도 모두 뛰어나와 그를 살리기 위해 수혈했다. 물론 MBC에서도 기자 동료들이 모두 수혈에 나섰다. 그런 그에게 남은 것이 현재 보이는 그 지팡이다.

심재철은 누구인가?

“3당 합당”으로 민주진영을 모호하고 혼탁하게 만들었던 YS 정권이 그를 정계로 불렀다. 2000년 16대 총선을 시작으로 5선 의원이다. 국회 폭력 방지 법안을 이끌었으면서도 그가 휘두르는 지팡이는 가끔 뉴스를 장식했고 그는 이제 더 고문에 흔들리던 민주투사의 모습은 아니었다. 어느새 권력의 한 중앙에 있었고 육체적 고문에 무릎을 꿇었던 그는 사라졌다. 화를 내고 있었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빨간 점퍼와 풍선을 달고 있던 배낭이 가끔은 진짜 일어난 일인지 내 기억이 만들어 낸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은 늙어가며 추해지기도 한다.

이번에 일어난 일들을 지켜보는 심정은 이제 예전과 많이 달라져 버렸다. 빨간 점퍼와 풍선은 내 상상이었을 것이다. 그는 원래 지팡이를 짚고 있었는데 내가 그걸 풍선으로 기억한 모양이다. 가끔 지팡이는 풍선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자.

심재철은 누구인가? 이렇게라도 자꾸 되뇌어 “신성한 주문이 되어 해묵은 잡귀와 같은 오지랖들을 내쫓고” 심재철이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나는 이제 “빨간 점퍼와 풍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로 했다.

“심재철,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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