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공적 ‘파시즘’의 상징인 파스케스, 하켄크로이츠, 그리고 욱일기

‘민족감정’을 넘어 ‘세계평화·인류공영’을 훼손한 ‘일제’의 상징인 전범기의 국내 게양을 결단코 용납할 수 없다

권혁시 칼럼 | 입력 : 2018/10/05 [18:15]

 

 

파시즘(fascism)의 사전적 의미는 ‘독재적 전체주의’이며(동아출판사, ‘새국어사전’), 전체주의(全體主義)란 ‘개인은 민족이나 국가와 같은 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이념을 바탕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고 정부나 지도자의 권위를 절대화하는 정치사상 및 정치체제’이다(포털 다음, ‘어학사전’). 이러한 파시즘이 극히 위험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데 있다.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인간본성, 개인본위에 기초하여 자유·평등을 위시한 ‘인권’에 관한 정신과 태도를 중시하고 견지한다(이같은 관점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서로의 장점을 상호융화(融化)시켜 나가야 할 인간이 창출한 귀중한 의식적 가치이며 실용적 방편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파시즘은 “사회가 인간을 형성한다” (알프레도 로코) 그처럼 파시스트는 한 사람 한 사람의(각 개인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다. 


단적으로 말해서 극히 호전적이고, 기층민중을 노예화하며, 그 주체는 모든 권력과 부를 장악, 독차지하는 극소수의 엘리트집단이다. 세계대전(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일본 제국주의)는 관동군 731부대의 인간 생체실험(마루타), 여성(세칭 일본군 위안부) 성유린, 청년징병, 노장년징발 등등, 가증할 만행을 서슴지 않고 일삼았다. 나치 독일 역시 빈약한 슬라브민족·유대인, 집시, 지체장애인, 동성애자 등을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무자비하게 무차별 투옥하였다. 


또한 약소민족, 빈곤노동자, 도시빈민 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무조건 경멸하였으며, 외국인·이방인에 대한 맹목적 배타성은 극단적인 차별주의, 과격한 국수주의의 일단을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었다. 그러므로 파시스트는 수구적(일반적인 표현은 극우적) 사고에 의한 일방적 ‘집단행동·체제’의 대명사나 다름없다. 단일공동체, 국가·사회 전체가 만사만물의 우위이므로 개인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등, 다른 모든 의미와 가치를 철저히 부정, 배척한다. 


무엇보다 더 큰 문제와 해악은 ‘국가(사회)우선주의’, 즉 극단의 권위주의적 전체주의에 획일의 독단적 엘리트주의(1당독재)가 결합함으로써 단순한 전체주의가 아닌 데 있는 것이다. 하지만, 파시즘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전 세계를 뒤흔든지가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누구 하나 이에 대한 명확한 ‘정의’(定義)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많은 이유 중에 이들 정권의 이론적 기초가 터무니없이 박약하고 신념과 일관성을 결여한 기회주의적 성향을 여실히 빈번하게 드러냈기 때문일 것으로 여겨진다.


제 2차 세계대전 발발 전에 즈음하여 나타난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권을 필두로 독일의 나치스, 일본 군국주의 등 주축국, 그리고 그후의 라틴아메리카 군사독재 정권들이 파시즘, 곧 전체주의 사상과 체제를 기반으로 삼았다. 이 모두는 다소의 정도 차이가 있을 뿐, 근본적으로는 인류를 전쟁의 참화 속으로 몰아넣었고, 인권유린의 만행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집단적 광기의 발원이었다. 그것은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나치즘),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파시즘), 일본의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동조영기, 쇼비니즘)가 정권장악에 성공을 거두었던 결정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하나같이 ‘선전·선동’에 능란한 카리스마 리더십이 주효했던 까닭인데, 그렇게 구사한 대중 선동술은 마르크시즘처럼 복잡하지가 않아서 아주 단순하게 단도직입적으로 집단적 광기를 불러일으켰다. 더욱이 일본 제국주의(일제) 군벌체제는 카미카제(神風 신풍)의 자폭공격에서 보여주었듯이 ‘쇼비니즘’(chauvinism), 즉 맹목적 국수주의, 배타적 애국주의, 민족적 중심주의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극심하였다.


그럴진대 파시즘이야말로 부단히 경계하고 단연코 배격해야 할 반인륜적인 사상·체제임을 유의, 상기해야 한다. 부연컨대, 파시스트는 인종·국가·국민, 곧 ‘전체 우위’의 미명하에 개인의 희생, 불평등·차별을 당연시한다. 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세계평화·인류공영’을 무너뜨리는 ‘전 세계인의 공적’인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자유주의 사상이 만개한 현 시대일지라도 파시스트의 발호를 견제, 배척해야 하고 또한 스스로가 자제해야 마땅하다. 


이러한 파시즘, 나치 독일의 죄과에 대하여 (서독)수상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세워진 전쟁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전 세계인을 향하여 무릎 꿇고 통렬히 반성하며 진정으로 사죄하였다. 그에 반해 독일과 같은 ‘전범국’인 일본은 반성과 사과는커녕 후안무치하게도 야스쿠니신사에서 전범들을 추모하며 일제와 침략전쟁을 미화, 합리화시키고 있다. 그도 모자라 버젓이 ‘전범기’인 욱일기를 휘날리며 군사력을 과시하다니 통분을 금치 못할 노릇이 아닌가. 


그 일제의 군기와는 달리 파시스트의 심벌·로고는 대단히 생소할 터인데, 그것은 고대의 무기였으며, 로마의 호위무사(릭토르)가 소지하여 집정관의 권력, ‘결속된 힘’(파쇼)을 과시했던 ‘파스케스’(Fasces)다. 이는 (날카롭게 날을 벼려 자루에 꽂은) 도끼에 붉은색 띠로 수십 개의 자루를 묶은(결속한) 한 다발을 이른다(그래서 파시즘을 ‘결속주의’라고도 한다). 그 파시즘의 동류(同類)이자 아류인 독일 나치스는 ‘하켄크로이츠’(Hakenkreuz), 일본 제국(군국)주의는 문제의 ‘욱일기’(旭日旗)가 상징인 것이다. 


그런데도, “자위함기(욱일기) 게양은 국내 법령상 의무이고, 유엔 해양법조약에서도 군대 소속 선박의 국적을 표시하는 외부 표식에 해당한다” (일본 방위상 오노데라 이쓰노리, 小野寺五典 소야사오전) “국적을 표시하는 자위함기는 국가주권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일본정부는) “욱일승천기를 내리라는 것은 비상식적이고 무례하여 받아들일 수 없다” (산케이 신문) 그러나 이런 주장이 일고의 가치도 없고 가당찮은 이유는 국적표시, 주권상징은 국기인 일장기가 더 합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간과치 말아야 할 점은 앞서 파시즘의 문제를 거론했는 바, 욱일기의 ‘상징성·역사성·불변성’ 때문이다. 같은 연유로 전후에 ‘전쟁범죄’의 표증이 된 나치 독일의 하켄크로이츠의 게시, 활용을 법적으로 전면금지시켰다 ㅡ 독일형법 제86조, ‘a. 나치를 상징하는 깃발, 휘장, 제복, 슬로건 등을 배포하거나 공개적으로 사용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형에 처한다’ ㅡ 뿐만 아니라, 독일과 프랑스는 전범들도 공소시효 없이 언제든지 처벌할 수 있도록 법제화한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제국주의 일본은 조선병탄(1910년), 중일전쟁(1937년), 태평양전쟁(1941년) 등에서 전체주의의 심볼인 욱일(승천)기를 군기로 치켜들고 전투를 벌였다. 패전후 이 욱일기의 게시, 사용을 금하였으나 1954년, 육상자위대를 창설하면서 변형한 욱일기를, 해상자위대는 원형 그대로 자위함기(군기)를 제정하였다. 그뿐 아니라, 운동경기 응원기, 상품마케팅, 대중문화 등, 광범위하게 욱일기의 문양이 거리낌없이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디어는 메시지다” (마샬 맥루한, 디지털·모바일시대의 미디어는 ‘이미지’가 주류를 이루며 다른 어떤 기호보다 더 강력하다.) 맥루한의 이 명제를 패러디하면 “이미지가 메시지다” 그런 까닭에 거듭 주장하건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는 전범기로써 ‘민족감정’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이를 넘어 ‘인류공적’인 파시즘의 상징이므로 하켄크로츠와 마찬가지로 게시·게양은 물론, 여타의 사용까지 전적으로 금지시켜야 옳다. 


더구나 역사 이래로 인류가 추구, 실현하고자 분투해온 ‘인본주의'(humanism)의 철학적·사상적·이론적 신념체계에 반하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천인공노할 파시즘과 결부된 모든 일련의 행태를 전 세계인이 뜻을 모아 철저히 배격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극히 단편적이지만) 오는 10월 10일, 제주해군기지에서 개막하는 ‘관함식’(觀艦式, fleet review)에 일본 해상자위대가 이 욱일기(자위함기)를 게양하지 않기를 바라며, 이를 한국정부는 다시금 보다 엄중하게 경고해야 한다.


그러한 우리 국민과 정부의 정당한 요구를 끝내 거부한다면 두말 할 필요 없이 우리나라 해역의 진입을 단호히 불허, 저지해야 마땅하다. 나아가서 차제에, 앞서 살펴본 파시즘의 문제와 해악을 반면교사 삼아 언제 어디서든지 발호하며 고착화할 수 있는 그같은 퇴행적 사고방식과 행동양식, 즉 수구는 ‘개혁’으로, 통합을 ‘일치’로, 획일성은 ‘다양성’으로, 독선·독단을 ‘합의·협력’으로, 대결·고립주의는 ‘화해·개방·상호주의’ 등으로 일대 전환시킴으로써 역사의 발전과 시대정신의 진보를 구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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