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방북, 북한 ‘비핵화’의 진전-북미간 ‘대타협’의 원동력

세계인의 ‘정신적지도자’ 가톨릭교황의 권유·중재는 ‘비핵화, 세계평화’의 동력이다

권혁시 칼럼 | 입력 : 2018/10/16 [23:57]

2014년 4월 27일, 로마 가톨릭(천주교)의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년 재위)가 제261대 교황 요한 23세(1958~63년 재위)와 함께 성인(聖人, saint) 반열에 올랐다. 그때로부터 4년여 후인 엊그제 10월 14일, 현직의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의 광장에서 시성(諡聖, canonization) 미사를 공동 집전하였다(‘시성’은 가톨릭에서 순교자나 생전에 성덕이 높았던 신자를 성인품위에 올려 전 세계 교회가 공경하도록 교황이 공적으로 선포하는 의식이다).


여기서 제262대 교황 바오로 6세(1963~78년 재위)와, “나를 희망의 표지와 자유의 씨앗으로 삼으소서!” “백성들이 학살당할 때 함께 피를 흘리는 교회만이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이런 신념으로 빈곤과 핍박에 시달리던 엘살바도르 민중을 위해 평생 동안 군사독재정권의 폭력에 항거하다 미사집전 중에 암살당한 오스카 로메노 대주교(1917~80년)를 비롯한 7인을 가톨릭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이 시성식이 실시되기 하루 전인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 순방길에 올랐다. 그 일정 가운데 특별히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은 바티칸에서 교황과의 면담이다. 문 대통령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북한방문 초청의 뜻을 전해 줄 예정이며, 가톨릭 교황의 방북은 사상초유의 일로 성사된다면 전 세계의 이목이 그리로 쏠릴 것이다.

 


교황과 김 위원장의 회동은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인데, “문 대통령이 평양 남북정상회담 중 김 위원장에게 먼저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반도의 평화 번영에 관심이 많다. 김 위원장이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김 위원장은 이에 ‘교황님이 평양을 방문하시면 열렬히 환영한다’며 적극적 환대 의사를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교황 방북’은 현재, 북한의 비핵화를 쟁점으로 전개되는 국제관계에 있어 어느 무엇보다도 탁월하고 유효한 외교 전략일 수 있다. 왜냐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영속적인 ‘평화정착’에 관하여 깊은 관심을 갖고 줄곧 이의 실현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발표해 왔다. 그런 교황으로부터 다시금 우리나라의 비핵화와, 이를 통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노력에 대하여 확실한 지지와 성원을 받는다면 실로 지대한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로마가톨릭 교황은, 과연 어떤 존재이며 오늘날 대한민국이 처한 국제관계에서 무슨 의미와 연관성이 있는 것인가. 교황 바오로 6세와 요한 바오로 2세는 우리나라와 인연이 아주 깊거니와, 바오로 6세는 요한 23세가 주도하여 1962년에 시작된 현대 가톨릭의 개혁(제2차 바티칸공의회)을 이어받아 이를 보다 광폭적·발전적으로 실천해 왔다. 그뿐 아니라, ‘교회일치’(에큐메니칼 ecumenical) 운동을 선도하기도 했던 바오로 6세는 국제연합(UN)의 대한민국 정부 승인(국제사회의 공인)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였다. 


광복 후 1948년 8월 15일 정부를 수립한 우리나라는 그해 12월, 제3차 유엔총회(프랑스 파리)에서 승인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했는데, 프랑스 주재 교황청대사 론칼리 대주교의 한국대표단(단장 장면 張勉 박사, 제2공화국 국무총리)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또한 1969년 3월, 전적으로 신임했던 40대의 젊은 김수환 주교를 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으로 전격 임명(서품)함으로써 한국 가톨릭교회의 위상을 인정하고 고양시켜 교세 확대, 신장의 전기를 이루게 하였다. 


더욱이 요한 바오로 2세와 한국의 인연은 각별하다. 그는 '5·18 광주민주화항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1984년 5월 3일, 한국 가톨릭 2백주년 기념식과 최초의 신부 김대건을 위시한 103인에 대한 시성식을 주례(미사집전)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았다. 전용기에서 내린 그는, ‘순교자의 땅’에 엎드려 친구하였다(친구 親口, 가톨릭에서, 거룩한 대상에게 경의를 나타내기 위하여, 또는 평화와 사랑을 나누기 위하여 입 맞추는 일; 동아출판사, ‘새국어사전’). 


그런 다음,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왔으니 기쁘지 않겠는가!” ‘논어’의 한 구절을 절묘하게 패러디, 한국어로 말하여 우리나라에 대한 친근감과 관심을 적극적으로 나타냈고 한국에서 외면, 멸시받는 현장에 가기를 원했다. “나를 가장 소외된 곳으로 안내해 달라” 익히 4년 전 항쟁의 참화를 인지하고 있던 교황은 광주에 들러 “여러분의 참극과 상처를 잘 안다” “예수께서 몸소 고통을 겪으셨기 때문에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 


그렇게 가슴가득 원한 맺힌 광주시민들을 위로하였고, 이어 부산에 가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정당해야 함을 강조하였으며, 소록도에서는 나병환자들을 만나 위로하며 축복해 주었다. 게다가 미사집전(장충체육관) 중에 민주화운동의 상징물(옥중에 양말 푼 실로 뜬 십자가, 대모 진압용 최루탄 박스)을 기꺼이 선물로 받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도덕적 권위, 그 영성원칙과 가치기준의 대표인 가톨릭교황
북미관계 진작, 북한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세계평화’ 선도 기대

 

요한 바오로 2세는 가톨릭의 본산인 바티칸에서 비주류(아웃사이더)인 슬라브, 곧 폴란드 출신이지만 근·현대의 교황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전 세계인으로 하여금 영성적 감명을 받게 한 최고의 ‘정신적지도자’로 공인(共認)받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개혁정신’을 철저히 실천하였고 특히, 소련을 위시한 동유럽 공산국가의 연쇄 붕괴에 기폭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군사력이나 경제제재 등 위협적인 방법을 배격하고 신앙에 기초한 ‘용기, 연대’를 실천하여 평화적으로 공산주의 독재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1989년 12월, 바티칸에서 교황을 아내에게 소개하면서 “지구상에서 최고의 도덕적 권위를 가진 인물을 소개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고 말한 고르바초프는, 그 후 “철의 장막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없었다면 붕괴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확언하였다. 이렇게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교황으로서의 영향력뿐 아니라 도덕적 권위, 그 영성적 원칙과 가치 기준을 대표하는 교황의 발언은 뭇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호소력을 지녔기 때문이었는바, 그는 말 그대로 주(Lord,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었다. 


1978년 10월,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급서로 전 세계의 추기경들이 바티칸에 긴급 소집되어 ‘콘클라베’에 참가하였다(콘클라베 Conclave, ‘열쇠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방’, ‘걸쇠로 문을 잠근 방’을 뜻하며 몇 세기에 걸쳐 실시해온 가톨릭의 교황선출 시스템인데, 외부로부터 일체의 간섭을 방지하여 비밀을 보장, 유지하기 위한 선거제도다). 그렇게 교황으로 선출된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듬해 1979년 6월, 공산정권 치하의 조국 폴란드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수백만 군중을 향하여 차분하지만 준엄하게 일갈하였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하여, 미래를 위하여 지금 벌이고 있는 투쟁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에 힘입어 폴란드 ‘자유노조’(Solidarity, 위원장 레흐 바웬사)는 세력이 급격히 커졌고, 그 걷잡을 수 없는 기세는 공산정권들을 동시다발적으로 괴멸시키면서 동유럽 전역에 거센 ‘민주화’의 광풍을 일으켰는바 예컨대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 ‘벨벳혁명’(Velvet Revolution)의 도화선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떤가. 종신제인데도 교황 직을 사임한 베네틱토 16세의 용퇴로 인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주교 베르고글리오가 전혀 생각지 않게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출신 교황이 되었다. 그의 교황당선이 의외였던 것은, 전임 교황 선거(콘클라베)에서 자신이 경합을 벌이며 엎치락뒤치락, 선출이 한없이 지연되자 사퇴의 결단을 내렸다. 그런 터에 비주류(라틴아메리카 출신)인데다가 교황선임에 별로 관심이 없었을 뿐더러 다른 인물(추기경)들이 유력하게 거론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교황 프란치스코(1세)야말로 요한 바오로 2세와 마찬가지로 주류(이탈리아·독일 출신)가 아닌 ‘아웃사이더’여서 보다 더 개혁·개방적일 수 있다. 아울러 여러 가지 관점에서 그러한 가능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응한 ‘반동(저항)종교개혁’(counter reformation, 가톨릭 종교개혁)을 주도한 ‘예수회’의 멤버(수도자)이고, 내세만이 아니라 현세의 모든 인간적인 삶을 중시하고 실천하는 ‘해방신학’의 중심 라틴아메리카 출신이다. 1976~83년, 아르헨티나 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짓밟히는 인권을 회복하고 보호하는 큰 역할을 했고, 지금은 바티칸 교황청의 자체 개혁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러한 성향과 함께 출중한 ‘자질’인 인격·능력·비전과, 탁월한 ‘리더십’으로써 인식·경청·선견지명이 ‘정의·평화, 일치·포용’의 종교관, 세계관을 일관해 지향하는 가톨릭의 ‘교의와 정신’(Catholicism, 우주관적 보편주의)을 투철하게 구현할 것으로 여겨진다. 역사적으로 정통의 ‘보편교회’ 가톨릭은 AD 3·4세기, 박해에 굴복하여 배교한 신도와 사제들의 재입교를 극력 거부했던 세력이 강대한 주관적 ‘근본주의’ 강경파(노바티아누스주의, 도나투스파)를 온건파가 분투 끝에 물리쳐 이단(異端)으로 단죄, 배척하고 배교자들을 용서하여 포용하였다.


그래서 이 같은 ‘그리스도(교) 정신’을 계승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회 있을 때마다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한 결실이 이윽고 맺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고무적인 바는 그가, 한국 땅에 ‘사랑과 평화’의 입맞춤(친구)을 했던 요한 바오로 2세처럼 세계 역사상 유일하게 선교에 의하지 않고 자발적·자주적으로 그리스도(천주교)를 받아들여 믿었고 순교로써 신앙을 지킨 한국(교회)에 지대한 관심과 열절한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특기할 만한 대목은 요한 바오로 2세의 권고(문헌) ‘아시아교회’(Acclesia in Asia)에 기초하여 ‘아시아 복음화(선교)’를 중시하며, 그 역할을 한국 천주교회에 당부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가톨릭 교황의 북한방문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몇 가지의 이유가 거론되기도 하지만, 이러한 여러 가지 관점에서 유추컨대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희망대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흔쾌히 방북요청을 수락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하여 요한 바오로 2세가 그러했듯이 ‘국제정치적 리더십’에 의한 강력한 영향력으로 인해 북한의 '비핵화'와 그 실현의지가 더욱더 확실하게 확인, 천명됨과 아울러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로 하여금 신뢰를 갖게 하는 동시에 그것은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대타협(big deal)을 이루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권혁시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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