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부대' 출현 이후 점점 늘어나는 가짜 뉴스

[황진선 칼럼] 가짜뉴스·확증 편향과 삶의 불안

논객닷컴 황진성 칼럼 | 입력 : 2018/10/25 [09:59]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지난 16일 ‘알 권리 교란 허위조작정보 엄정 대처 방안’을 발표했다. 가짜뉴스의 주요 유통망인 유튜브를 통한 미디어를 겨냥한 것이라고 한다.

 

법무부는 허위조작정보는 민주주의의 근본인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교란한다고 배경을 설명했지만 엄벌을 앞세우면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학계와 시민단체의 반론이 만만치 않다.

 

▲  가짜뉴스를  배포하는  뉴스타운   © 뉴스타운 켑쳐

 

태극기 집회 이후 점점 늘어나는 가짜 뉴스

 

가짜뉴스가 세계적으로 이목을 끈 것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다. 미국 SNS(사회관계망서비스)는 가짜뉴스로 뒤덮였다. 진짜뉴스보다 가짜뉴스 공유 횟수가 더 많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가짜뉴스의 공유 횟수는 96만건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짜뉴스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17년 초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에서다. 당시 집회에는 북한과 손을 잡은 종북, 빨갱이 세력들이 촛불을 앞세워 박 대통령 탄핵을 기획·조작한다는 가짜뉴스가 넘쳐났다.

 

이제 출범 1년 5개월을 맞은 문재인 정부는 유튜브를 장악하다시피한 보수·극우세력이 양산하는 반정부 성향의 가짜뉴스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허위조작정보를 만들고 유포하는 행위는 엄단해야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한 심정을 금할 길 없다.

 

가짜뉴스의 토대인 확증 편향의 저변은 삶의 불안

 

가짜뉴스는 제 신념과 맞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맞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려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 토대다. 2016년 영국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키워드’는 탈진실(post-truth)이었다.

 

객관적인 사실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는 뜻이다. 그 후 확증 편향은 더 심화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가짜뉴스를 과연 근절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한국 사회를 포함해 전 지구촌 사람들이 왜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을 믿으려 하는지에 천착해야 하지 않을까.

 

가짜뉴스 확산의 저변에는 삶의 불안이 자리잡고 있다. 곧 사람답게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불안은 날로 확대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상대적 박탈감, 지나친 경쟁에서 오는 심리적 압박에서 비롯된 것이다. 삶의 불안은 이기심과 탐욕을 부채질한다.

 

이기심은 다시 삶의 불안을 부른다. 악순환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현대 세계의 상황이 야기하는 불안과 위기 의식은 집단 이기심의……온상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의식 안에 머물 때 탐욕이 커지기 마련입니다’라고 진단했다.

 

전 세계 극우세력 약진은 중하위 계층의 분노 표심을 파고 든 것

 

집단 이기심의 확산은 전 세계에서 우익 내지 극우 세력이 약진하고 있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아메리칸 퍼스트’와 반(反) 이민 정책을 내세운 트럼프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미국,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Brexit)에 찬성한 영국 국민뿐이 아니다.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헝가리, 노르웨이, 그리스 등 유럽 전역에서 극우 정당이 계속 세를 키우고 있다. 21세기 극우 정당의 공통점은 일자리와 복지를 빼앗아 가는 외국인과 이민자들에 대한 중·하위 계층의 분노를 겨냥해 표심을 파고 든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여기에다 남북 분단 상황이 위기감과 불안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탈진실 시대엔 진실도, 공동선도 찾기 어려워

 

탈진실 시대에는 언론 역시 본연의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 저널리즘의 첫째 의무는 진실 추구이다. 미국 스크립스사(Scrips Company)에서 제작하는 신문들의 발행인란(masterhead)에는 ‘빛을 비추어 주면 사람들은 자신의 길을 찾아갈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그런데 확증 편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언론이 빛을 비춰 준다고 믿지 않는다. 탈진실 시대에는 진실도, 공동선도 찾기 어렵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러한(집단이기적, 자기중심적) 태도가 만연할수록, 사회 규범들은 개인 욕구와 상충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존중됩니다’라고 했다.

 

독자나 시청자뿐만 아니라 확증 편향 기자들도 늘어나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가짜뉴스는 아니지만 어떤 현상이나 사건에서 중요도가 떨어지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 본질, 곧 머리와 꼬리를 바꿔버리는 자의적 프레임의 언론 보도가 눈에 띄게 늘었다.

 

뉴스 소비자들은 뉴스 리터러시(news literacy), 곧 뉴스 바로 알기를 공부해야 한다. 언론이 보내는 정보를 그대로 수용할 것이 아니라 어떤 의도를 갖고 뉴스를 구성했는지 해석하는 힘을 키워 나가야 한다. 그렇더라도 궁극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갑갑하기는 마찬가지다.

 

궁극적 해결책은 공정한 사회·경제 체제

 

삶의 조건이 가혹해질수록 집단이기심과 확증 편향은 심화할 수밖에 없다. 현대 세계의 삶의 불안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비롯된 빈부격차 확대와 중산층의 붕괴 탓이라고 하면 지나친 단순화일까.

 

가짜뉴스의 토대가 삶의 불안이라면 궁극적인 해결책은 그 불안을 완화하는 공정한 사회·경제 체제를 만들어 가는 데서 찾을 수밖에 없다. 어려운 중장기적 과제다. 정부 당국의 가짜뉴스 대응법에 갑갑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10월 25일 논객닷컴 발췌

 

 황진선

 논객닷컴 공동대표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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