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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 ”가능성이 보이면 진격한다”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8/11/20 [10:12]

이정랑의 고전소통 ”가능성이 보이면 진격한다”

서울의소리 | 입력 : 2018/11/20 [10:12]

 이정랑의 고전소통•견가이진(見可而進)

 

이 말은 『좌전』(기원전 597년 선공 12년조)에 나오는데 관련 대목을 보면 이렇다.

 

‘승리의 가능성’이 보일 때 진격하고, 어렵다는 것을 알면 물러나는 것이 군대를 잘 다스리는 것이다.

 

『오자병법』 「요적」 제2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 모든 조건이 적에 뒤떨어질 때는 생각할 것도 없이 싸움을 피해야 한다. 이른바 ‘가망이’ 보일 때 진격하고, 어렵다고 생각되면 물러나는 것이다.

 

 

이 계략은 ‘진군할 기회’가 보일 때 과감하게 진격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마치 『백전기법』 「진전 進戰」에서 “무릇 적과 싸울 때 적을 이길 수 있는 이치를 알았다면 빨리 군사를 전진시켜 공격해야 한다. 그러면 필승이다”고 한 것과 같다. 여기서 ‘이길 수 있는’이라고 한 것은 역량뿐 아니라 기회도 강조하고 있는 말이다.

 

『신당서』 「이정전 李靖傳」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실려 있다. 이정이 정양(定襄)의 총사령관이 되어 돌궐을 격파하니, 돌궐의 우두머리 힐리가한(頡利可汗)은 철산(鐵山)으로 도망갔다. 그는 사신을 당에 보내 사죄하는 한편 당에 복속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당 태종은 이정으로 하여금 그를 맞아들이게 했다. 그러나 사실 힐리는 표면적으로는 당에 복속하겠다고 했지만 속셈은 그것이 아니었다. 이정은 이 점을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다. 태종은 당검(唐儉)등을 보내 힐리를 위로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정은 장공근(張公謹)에게 정예병 1만을 거느리고 돌궐을 습격하도록 했다.

 

장공근 : 황상께서 그들의 귀속을 허락하시고 위로할 사람까지 보내셨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이정 :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법! 한신이 제(齊)나라를 쳐부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기회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오!

 

마침내 병사들을 독촉하여 신속하게 진군, 음산에(陰山)에 이르렀다. 여기서 힐리의 경계 부대 1천여 명을 전부 포로로 잡아 함께 데리고 계속 전진 했다. 한편 힐리는 당나라에서 파견한 사신을 접하고는 몹시 기뻐하고 있었다. 그는 당나라의 대군이 들이닥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정의 선봉군이 안개가 잔뜩 낀 틈을 타서 힐리가 있는 7 리 밖까지 접근한 뒤에야 힐리의 군대는 이정의 군대를 발견했다. 그러나 미처 전열을 가다듬을 시간도 없이 당 군이 물밀 듯이 쳐들어왔다. 1만여 명이 죽고 10만여 명의 남녀가 포로로 잡혔다. 힐리의 아들 첩라시(疊羅施)도 사로잡혔고 힐리의 아내 의성(義成) 공주는 살해되었다. 힐리는 간신히 도주했으나, 얼마 후 대동(大同)의 부사령관 장보상(張寶相)에게 붙잡혔다.

 

진(晉) 무제(武帝) 때인 279년 진은 대군을 집결하여 오(吳)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한 전투를 개시했다. 280년 정월, 각 군은 예정된 목표를 향해 진군했다. 3월 오나라의 주력군은 판교(板橋)에서 왕혼(王渾) 휘하의 손주(孫疇)‧주준(朱浚)의 부대와 맞붙었으나 대패했다. 왕혼은 대강(大江)으로 전진하여 상류에서 내려오는 왕준(王浚)의 수군을 기다렸다. 양주(揚州)의 별가(別駕) 하운(何惲)은 자사(刺史) 주준에게 이렇게 건의했다.

 

“지금 오나라는 주력군이 대패한 이후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을 것입니다. 왕준이 이미 무창(武昌-지금의 호북성 악성현)을 함락시키고 승세를 몰아 동쪽으로 내려오고 있으므로 오나라는 멀지 않아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빠른 속도로 강을 건너 곧장 건업(建業-지금의 강소성 남경)을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준은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여겨 그를 직접 왕혼에게 보내 계획을 말하게 하려고 했다. 그러자 하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왕혼은 일에 때가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위인입니다. 그는 그저 실수만 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에 우리의 주장에 귀 기울일 리 만무합니다.

 

이에 주준은 자신이 몸소 왕혼을 찾아가 이 계획을 강력하게 건의했다. 아니나 다를까, 왕혼은 이렇게 답했다.

 

”폐하께서는 내게 강북을 지키면서 오군을 막으라고만 하셨지 섣불리 진공하라고는 하시지 않았소. 당신네들 양주 쪽 군사들이 잘 싸우기는 하나 독자적으로 강동을 깨끗하게 평정할 수 있소? 내가 속히 건업으로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려 승리한다고 해도 그 공로는 별 볼일 없을 것이고, 만에 하나 패한다면 그 죄를 어찌한단 말이오. 하물며 폐하께서는 이미 왕준의 군대를 내 휘하에 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거늘 당신들은 그저 배를 준비해 두었다가 왕준이 온 다음에 강을 건너면 될 것이오.“

 

하운이 나서서 말했다.

 

“왕준은 만리의 도적을 물리쳐 혁혁한 공을 세웠는데 어찌 당신의 통제를 받는단 말씀입니까? 게다가 당신도 장군의 몸이므로 승리의 가능성이 보이면 진격해야지 이렇게 앉아서 명령만 기다리면 어떻게 합니까? 당신이 정 그런다면 모두 불만을 품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왕혼은 꿈쩍도 않고 대군을 강북에 그대로 주둔시켜두었다.

 

왕준은 무창에서 순조롭게 동쪽으로 내려온 다음 건업으로 향했다. 왕준의 해군이 삼산(三山-지금의 남경 서남 5백 리)을 지날 무렵 오나라 군주 손호(孫皓)는 완전 탈진 상태에 있었다. 그는 광록훈(光祿勛) 설영(薛瑩)과 중서령(中書令) 호충(胡沖)의 꾀를 받아들여, 왕혼‧왕준‧사마주(司馬伷) 세 사람에게 항복하겠다는 편지를 각각 따로 보냈다. 세 사람으로 하여금 서로 공을 다투게 하여 내분을 끌어내기 위한 계략이었다. 이때 진나라 군대는 왕준의 부대만 빼고 왕혼과 사마주 등이 모두 강북 기슭에 주둔하고 이었다. 왕혼은 항복 편지를 받은 후 왕준에게 강을 건너와 상의하자고 했다. 여기서 왕준은 즉시 ‘바람 때문에 배를 댈 수 없다’는 구실을 대고, 곧장 건업으로 쳐들어갔다. 3월 15일, 손호는 왕준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항복하고 말았다. 강동에서 57년간 세력을 유지했던 손오(孫吳) 정권은 이렇게 무너졌다.

 

17세기에 영국에서 일어난 제2차 내전에서 크롬웰 장군은 군을 이끌고 국왕의 친위군을 공격했다. 크롬웰의 군대가 목표에 바짝 다가갔을 때 보급품이 동이 났다. 상식대로라면 크롬웰은 곧장 진격, 속전속결의 전략을 펼치고 지구전을 피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튼튼한 적의 진지를 파괴할 수 있는 확실한 기회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진격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철수함으로써 진지로부터 적을 끌어내서 추격케 한 다음 적을 섬멸할 기회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추격해 오는 적이 안전한 공격법을 취하는 통에 크롬웰은 좀처럼 반격의 기회를 찾지 못했다.

 

크롬웰의 군대는 적을 이리저리 끌고 다닐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몇 차례 바짝 뒤쫓기는 위기도 있었다. 부하들은 맞부딪쳐 싸우자고 아우성을 쳤지만 그는 엄청난 자제력으로 감정의 준마를 채찍질하며 결코 쉽게 싸우려 들지 않았다. 20여 일이 지났다. 비바람과 천둥 번개가 몰아치던 어느 날 크롬웰은 피로에 지쳐 허둥대는 적의 왼편 부대가 좁은 계곡에 사이에 끼인 꼴이 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그 부대는 경계가 흩어져 있었다. 크롬웰은 즉시 전력을 다해 맹공을 퍼부었고, 적진은 큰 혼란에 빠져 전군이 궤멸되고 말았다.

 

지휘관의 결심은 전쟁의 실제 상황에 근거하여 적시에 과감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왕혼은 장군의 몸으로 ‘승기를 잡고도 전진하지 않고’, 그저 기계적으로 ‘강북에 주둔한 채 함부로 전진하지 말라’는 명령에만 매달렸다. 주관이 없었고 지나치게 수동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들에게 상급부의 지시‧명령에 대한 집행은 실제 상황에 근거하여 이루어져야지 멍청하게 하라는 대로만 따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견가이진’의 ‘가(可)’는 전체 국면을 분석한 기초 위에 서 있는 것이지, 부분을 보고 판단하는 ‘가’와 ‘불가’는 아니다. 때로는 국부적으로 보아 전진이 가능하더라도 그 전진이 전체 국면에 불리하다면 전진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지휘관이 ‘견가이진’하려면 반드시 전체 국면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판단이 있어야한다.

 

필자 : 이정랑 언론인(중국 고전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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