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정권 찬탈에 성공한 내란수괴 살인마 전두환은 1980년 9월 5일 광주 옛 전남도청 청사를 방문해 “광주사태가 국민들의 단합된 노력으로 해결되어 만족스럽다. 이제 더 이상 광주사태를 논의하면 안된다.” 말했다.
 
전씨는 그 해 9월 5일 광주를 방문해 옛 전남도청에서 영산강 홍수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다. 전씨는 이 자리에서 이 지역이 명예와 자존심을 되찾고 타 지역보다 더 모범적이 되라”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전씨는 9월 4~5일 전주~광주~대구(1박)~경북을 1박2일동안 방문한 바 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이런 사실은 주한 미국대사관이 미 국무부에 보낸 ‘3급 비밀전문’에 기록돼 있다. 실제로 국가기록원의 자료를 보면, 전씨가 당시 광주를 방문해 보고를 받던 사진이 남아 있다. 이 사진에서 전씨는 의자에 앉은 채 지긋이 눈을 감고 브리핑 내용을 듣고 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1980년 9월 미 국무부에 보낸 ‘3급 비밀전문’.

 
전씨와 광주의 ‘악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씨는 1980년 11월 6일 광주교도소를 방문해 교도소에 격려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전남지역 민정시찰 차원에서 광주를 방문한 전씨는 사직공원과 광주 북구청, 역전파출소에 이어 이례적으로 광주교도소를 찾았다고 한다.
 
광주시 북구 각화동 옛 광주교도소는 5·18 당시 가혹한 살상행위와 암매장이 자행된 장소로 지목됐던 곳이었다. 전씨는 당시 교도관들에게 격려금을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살인마 전두환을 “민주주의 아버지”라고 발언해 비판을 받았던 전씨의 처 이순자도 그 해 11월 전씨와 함께 광주를 찾아 한 어린이보육시설을 방문했던 사진이 국가기록원에 남아 있다.

 

1981년 1월 간접선거를 통해 12대 대통령에 당선됐던 전씨는 2월 18일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광주를 방문했다. ‘광주항쟁구속자가족회’ 가족들은 당시 광주 와이엠시에이 앞에서 시위를 펼쳤다.
 
전씨 부부가 탄 차가 모습을 보이자 정현애(5월어머니집 관장)씨가 차도로 뛰어들면서 “광주의 구속자를 풀어달라”고 소리쳤다. 1980년 10월25일 계엄사 1심 군사재판에선 255명의 5·18 관련자에게 사형 5명, 무기징역 7명, 징역 163명, 집행유예 80명이 선고됐다.
 
전씨는 이듬해 1982년 3월 10일 또 한차례 광주에 왔지만, 광주에서 숙박을 하지 못했다. 전씨 부부는 당시 인근 담양군 고서면 성산마을에서 숙박한 뒤 민박기념비를 세웠다. 광주전남민주동우회는 1989년 1월13일 이 비를 찾아 부순 뒤 5·18영령들이 묻힌 망월동 묘지 앞 땅에 묻었다. 지금도 비석 옆 안내문엔 5월 영령의 원혼을 달래는 마음으로 이 비석을 짓밟아 달라고 적혀 있다.

 

광주시 북구 망월동 옛 5·18 묘지 들머리 땅에 박혀 있는 전두환씨 부부 민박기념비. 전씨 부부가 1982년 3월 광주에 오지 못하고 인근 전남 담양에서 숙박하고 세운 비다. 1989년 1월 광주전남민주동우회가 망월동 묘지 앞에 묻었다. /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