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곳에 써줘” 전재산 훌훌.. 노점상 할머니의 참다운 삶의 궤적

평생 모은 1억8천만원 기부하고 떠나..지역사회, 마지막 길 배웅

정현숙 | 입력 : 2019/02/07 [10:12]

"슬퍼야 하는데 참 따뜻하고 밝고 유쾌한 장례식이었다."

연고가 없어 상주를 맡게 된 장세명(58) 전농1동 동장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1동은 저소득층과 독거노인이 4800명이나 거주하는 곳이다. 지난달 22일 임대아파트에 홀로 살던 노덕춘(85)할머니가 별세했다. 고인은 주민들의 추모속에 벽제 화장터에서 화장한 뒤 인근 숲에 수목장으로 모셔졌다.

 

고인의 죽음은 쓸쓸했으나 마지막 떠나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이처럼 마을 사람들이 고인의 마지막 길에 함께한 것은 평소 고인이 어려운 이웃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사망한 지 9시간 쯤 뒤에 경비원이 신고해 무연고자 장례 절차를 준비하면서 주민센터 직원들이 할머니의 임대 아파트 입주자 관리카드에 첨부된 문서를 발견했다. 변호사가 인증한 유언장에 "장례를 부탁한다. 남긴 돈은 동회 사회복지 담당자와 상의해 좋는 곳에 쓰면 좋겠다"고 적혀 있었다.

 

지난달 숨진 채 발견된 85세 독거노인 노덕춘 씨의 빈소에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이 조문하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제공]

지난달 숨진 채 발견된 독거노인 노덕춘(85·여)씨의 빈소에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이 조문하고 있다. 사진 동대문구청

 

직원들이 할머니의 남은 돈을 찾게 되는데, 현금 1700만 원, 임대아파트 보증금 3400만 원과 예금통장 잔액 등을 합치니 1억8000만 원이나 됐다. 주민센터에서 무연고 장례를 치르려다 '전농동葬'으로 바꿔 동장이 대표 상주 역할을 하기로 했다.

 

할머니의 유언 내용이 알려지자 동네 이곳저곳에서 할머니의 장례를 돕고 싶다는 손길이 이어졌다. 관내 외국어대 캠퍼스 사진관인 "외대 사장"에서 영정사진을, 시신이 안치된 "코리아병원"은 운구차 비용 등 일부를 제외한 장례비용을 부담하는 재능기부를 했다. 동대문 구청장이 빈소를 방문해 고인을 기리고 주민들도 삼삼오오 모여들어 고인의 삶을 추모했다.

 

지난달 30일 동사무소장으로 치러진 노덕춘 할머니 장례식의 상주는 전농1동장 장세명 씨가 맡았다. 장세명 동장은 장례 이후 할머니 삶의 흔적을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 할머니의 기부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2010년 5월 10일 오전 부산 동구 수정동 경남여고에 배낭을 멘 백발의 노덕춘 할머니’가 찾아왔다. 노덕춘 할머니(당시 76세)는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에 사는데 경남여고 25회(1954년) 졸업생이라고 밝히면서 허리춤 전대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어 경남여고 교장 앞에 내밀었다. 노랗게 빛나는 '골드바' 형태의 크고 작은 금덩이 10개 모두 2175g(578.7돈)으로 시가 1억 원 상당이었다고 한다.

 

노덕춘 할머니는 부정맥이라는 지병 때문에 결혼도 못 하고 이북 출신인 부모님이 20여 년 전 돌아가신 후 줄곧 혼자 살면서 변변한 직업도 없이 노점상을 전전하면서 생활해 왔다고 한다.

 

그때 할머니는 학교발전기금 기탁서에 "부정맥이 있는 학생들을 도와 달라. 또 공부 잘하는 학생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 달라"고 적었다. 입시제도가 있던 시절에는 영남지방 최고의 명문 여고였던 경남여고는 할머니의 모교이기도 했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꾸준히 모은 재산을 금으로 바꿔 이날 모교에 기탁한 것이다.  

 

노덕춘 할머니는 기초생활 수급자로 월 45만 원 가량의 정부 지원금을 받아 살아가는 형편이지만 평소 늘 '모교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이렇게 기부를 했다고 한다.

 

당시 노덕춘 할머니는 "지금 사는 동네가 재개발지역이어서 집이 철거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면서도 "내가 꼭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경남여고에 기부하러 왔다"고 말했다.

 

또 할머니는 천안함 사건으로 순국한 장병을 위해 자신의 수중에 있던 현금 75만 원을 몽땅 털어 기금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 노덕춘 할머니는 경남여고 발전기금 기탁서에" 부정맥이 있는 학생 중에 또 공부(잘하는 학생)보다 어려운 학생에게 써 달라."라고 또박또박 쓴 뒤 "할 일을 해서 이제 어깨가 홀가분하다"는 말만 남기고 곧장 서울로 떠났다고 한다

 

필요한 곳에는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았던 노덕춘 할머니는 정작 본인에게는 돈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할머니는 무엇이든지 아껴 쓰셨던 거로 기억한다."며 "보일러든 수도든 모든 것을 아껴 썼다"고 말했다.

 

아파트 경비원 김종구(75)씨는 "돌아가시기 전 이웃의 신고로 119대원이 출동했더니 보일러도 틀지 않고 두꺼운 옷을 입고 모포만 두르고 계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는 법적인 절차를 거쳐 설 연휴 이후 할머니의 유언을 따를 수 있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웃을 도와달라는 할머니의 뜻에 따라 전농동 쪽방촌이나 독거노인을 돕는 곳에 할머니의 유산을 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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